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15:27

서병두

파일:서병두.jpg
성명 서병두(徐丙斗)
생몰 1879년 2월 19일 ~ 1930년 12월 17일
출생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
본관 이천 서씨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서병두는 1879년 2월 19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1년 12월 19일 서울에서 정인호가 구국단(救國團)을 조직했을 때 여기에 가담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총장 명의의 군자금 납입 명령서와 영수증 용지 수십매를 인쇄했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민의회 의원 서임장 수십 매를 인쇄했으며, 서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의 군자금 모집을 지원했다.

그러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22년 2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1922년 12월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지시에 따라 상하이에서 국내로 폭탄을 반입한 김한(金翰), 정설교, 윤익중(尹益重) 등과 협력하여 조선 독립에 관한 격문과 독립자금 영수증 용지 등을 인쇄했으며, 인장을 조각했고 독립선전문 살포를 담당했다.

그러나 서병두는 얼마 후 일제 경찰에게 또다시 체포되었고, 1923년 5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강도 예비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에 공소했지만 1923년 10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에는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30년 12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서병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3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