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샤바르시 블라디미로비치 카라페트얀 Шаварш Владимирович Карапетян[1] Շավարշ Կարապետյան[2] Shavarsh Vladimirovich Karapetyan |
국적 | 소련(1953~1991) 러시아(1992~) |
출생 | 1953년 5월 19일 소련 아르메니아 SSR 키로바칸 |
종목 | 수영 |
주종목 | 핀수영 |
1. 개요
소련의 전직 수영 선수이다. 1970년부터 선수로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세계 신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우며 위대한 수영선수가 될 재능을 갖췄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수 생명이 끝장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비록 수영 선수로서의 삶은 일찍 마감해야 했지만, 그는 오늘날까지 만인의 귀감으로서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다.2. 생애
2.1. 선수 시절
만약 그 돌이 더 무거웠다면, 나는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그는 기술학교에서 수영 기술을 익히다가 1970년 핀수영[3]선수로 데뷔해 본격적으로 선수 활동을 개시했다. 그는 핀수영 선수로서 엄청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데뷔한 지 불과 6달만에, 그는 소련 핀수영계 최고 선수로 등극했고 12개월 만에 소련 선수권에서 우승하였으며 그로부터 2개월 후에는 유럽 선수권에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며 우승했다. 이후 13번의 유럽 선수권 우승과 7번의 소련 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핀수영 선수로 우뚝섰다. 그러나 그는 이 과정에서 끔찍한 사고도 경험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핀수영 대회에 참가한 카라페트얀은 경기 도중 산소 탱크 뚜껑이 열려버리는 바람에 산소가 다 빠져 나가 버리는 악재로 숨을 못 쉴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숨을 참아가며 75m나 더 수영해 완주에 성공했다. 그는 그 직후 의식을 잃어버려 병원에 입원했고 병원에서 자신이 1등으로 도착해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듯 대단한 실력에 인내력까지 겸비한 그였지만 정작 그가 전세계의 추앙을 받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다.
2.2. 현실의 슈퍼맨
2.2.1. 통제 불능의 버스를 멈춰세우다
1974년 1월 8일 수영장에 가기 위해 아침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버스가 산길을 타고 올라가던 중 엔진이 오작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운전사는 엔진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카라페트얀을 비롯한 30명의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도주해 버렸고 운전사가 사라진 버스는 경사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긴급한 상황에서 마침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던 카라페트얀이 재빨리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조정해 통제 불능 상태이던 버스를 멈추는 데 성공해 승객 30명을 구원했다. 그 후 기자들이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제가 운전석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었을 뿐입니다.
2.2.2. 호수에 빠진 버스로부터 승객들을 구하다
당시 예레반 호수의 수온은 매우 낮았고 근처의 공장들이 흘려보낸 폐수로 인해 매우 오염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호수에 뛰어들어 호수에 가라앉고 있는 버스를 찾아내 발로 창문을 부수고 승격들을 수면 위로 구출하기 시작했다. 그는 30여 차례나 버스와 육지를 왕복했고 동생 카모는 육지에서 형이 구해낸 승객들에게 응급조치를 취했다. 카라페트얀은 30여번에 걸친 구조 작업의 말미에 이르러 완전히 탈진 상태에 가까워져 그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번은 너무 지친 나머지 가죽의자를 가지고 오고 말았다.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가죽의자를 사람으로 착각해 버렸던 것이다. 훗날,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나만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실수해버리는 걸 두려워했다. 물속은 너무 어두워서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잠수 도중에, 나는 우연히 승객 대신에 의자를 움켜잡아버려 또 한명의 승객을 구할 수 없었다. 그 의자는 여전히 악몽이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의 구조는 헛되지 않아 승객 92명 중 30명이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구조를 마치고 육지로 기어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의 온 몸에 수많은 유리파편들이 박혀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차가운 물에 무방비로 오랜 시간 노출되었고 폐수를 들이마셔버려 양쪽 폐가 모두 폐렴에 걸려버렸으며 패혈증에 시달렸다. 그는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46일간 입원해야 했다. 이후 그는 폐가 망가졌기 때문에 선수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은퇴하고 작은 신발회사를 운영했다.2.2.3. 화재 현장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구하다
2.3. 이후
3. 기타
- 2014년 7월 27일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다.[5]
[1] 러시아어[2] 아르메니아어[3] fin swimming. 핀, 물안경, 스노클을 착용하고 허리의 근육만을 움직여 전진하는 수영 경기다.[4] 소련 시절엔 '소련 스포츠 및 콘서트 복합단지'로 불렸다가 1991년 소련의 패망으로 독립 후에 '아르메니아 복합 단지'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러다가 1999년 카렌 데미르찬 국회의장이 무장집단에게 사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정부는 그를 기리기 위해 이 곳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5] 다만 두 번째 버스 사고의 원인을 첫 번째의 원인 중 일부였던 기계결함으로 기재하는 실수가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진상 승객의 버스기사 폭행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