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16:23:36

HMS 비글

비글 호에서 넘어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SM_V57_D097_Hms_beagle_in_the_straits_of_magellan.png

1. 개요2. 비글함의 1차 탐험 1826-30년3. 다윈과 비글함의 2차 탐험 1831-36년4. 이후5. 여담

1. 개요

HMS Beagle

생물학계를 넘어 인류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꾼 배.

영국 해군 체로키급 10문함 브릭(brig)선이다. 크기는 참수리급 고속정과 비슷한 전장 27.5m, 전폭7.5m, 흘수 3.8m, 242t 이었으며, 함포 7문을 탑재했고, 승조원은 65명이었다.

이름은 사냥개 비글에서 유래했다. 1820년 5월 11일 템즈강의 울위치 조선소에서 진수되었다. 건조 비용은 7,803 파운드였다. 그해 7월, 비글 함은 영국 국왕 조지 4세의 대관식을 경축하는 진수식에 참가하여 새로 만든 런던 브리지 아래를 최초로 통과한 선박이 되었다. 그 후 5년간 예비함이 되었고, 1825년 해로 탐사를 위해 바크(barque)선으로 개조된 비글 함은 이후 세 번의 탐험(1826-30년, 1831-36년, 1837-43년)에 참가했다.

2. 비글함의 1차 탐험 1826-30년

파타고니아티에라델푸에고 섬의 수로를 조사했다.
티에라델푸에고 섬의 남쪽 해안선을 따라가는 해협을 발견하고 배의 이름을 따서 비글 해협이라고 명명하였다.

3. 다윈과 비글함의 2차 탐험 1831-36년

그중 가장 유명한 2차 탐사에서는 찰스 다윈이 승선했다. 비글함 탐험의 공식 목적은 해도를 작성하기 위한 남아메리카의 수로 측량이었으며, 이를 위해 함내에 경도를 측량하기 위한 크로노미터 22개를 비치하고 있었다. 당시 비글 함에는 정규 승조원 외 9명이 추가로 승함하고 있었다.

1831년 12월 27일 비글함은 2차 탐사를 목적으로 잉글랜드의 플리머스 항에서 출항했고, 1836년 10월 2일에 팰머스로 귀항했다. 비글함의 탐사 코스는 브라질의 바히아에서 시작되어 몬테비데오, 티에라 델 푸에고, 포클랜드 제도 등에서 기항하고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여 태평양에 진입했다. 이후 칠레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페루의 카야오에서 남아메리카 해안의 탐사를 끝냈으며, 갈라파고스 제도, 타히티 제도,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본국으로 귀항했다. 당시의 항해 기술로는 이 정도 항해를 하면 살아돌아올 확률이 반 정도였다고 한다.

본래 비글함의 로버트 피츠로이(1805~1865) 함장은 1826~30년 1차 항해 때 지질학에 무지하여 연구 기회를 잃은 것을 한탄해왔으며 또 해군본부의 훈령에서도 과학 조사를 지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바다의 수로를 측량하는 동안 육지의 지질을 조사할 사람으로 다윈을 태웠었다. 그리고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 둘러 표본을 수집하고 남아메리카 본토의 생물상과 비교연구하면서 진화론의 계기가 된 발견을 하게 된다.

4. 이후

그리고 1859년 종의 기원이 나오자 당시 해군 기상청장 직책을 맡고 있던 피츠로이 해군 중장은 자신은 원래 창조설을 믿었지만 진화론을 도왔다는 비난을 받고 분노했고, 더불어 자신이 어처구니없게도 진화론 연구에 기여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결국 1865년 4월 30일 어부들의 반발에 따른 폭풍 경보 시스템의 도입 실패로 인하여 충격을 받고 그와 함께 금전적 곤란과 건강 악화에 따른 우울증이 원인이 되어 면도칼로 목을 찔러 자살해버렸다.

비글함과 다윈 이름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또 다른 공로자인 피츠로이 제독은 이렇게 사라져갔다. 한국창조과학회에선 다윈이 정신이상이 있다며 다윈을 깎아내리고 피츠로이 제독이 위대한 과학자이느니 군인이느니 하고 있다. 사실 그와 별개로 피츠로이 제독은 유능한 수로 측량가이긴 했고 어부선원들의 안전을 위해 1854년 기상청을 조직한 공로가 있지만, 시의원 및 뉴질랜드 총독(1843년~1845년)으로 재직했던 정치가로서의 삶은 실패했다. 피츠로이 제독은 유럽인의 토지 매입으로부터 마오리족의 토지 권리를 보호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마오리족이 그의 정책에 분노하여 저항을 벌였고 이 일로 잘렸다.

1845년에 비글함은 템스 강 하구 및 에섹스 주 해안 지역의 밀수를 단속하는 세관선으로 활동하다가 1870년 민간에 매각 후 해체되었다.

5.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