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17:21:12

브라질 제4공화국

브라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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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합중국
Estados Unidos do Brasil
파일:브라질 국기(1960-1968).svg 파일:브라질 국장(1889-1968).png
국기[1] 국장
파일:external/media.web.qa.britannica.com/6850-004-2236FEC5.gif
1946년 1월 31일 ~ 1964년 3월 31일
성립 이전 성립 이후
바르가스 시대
(제2, 제3공화국)
브라질 군사정권
(제5공화국)
수도 리우데자네이루(1946-1960)
브라질리아(1960-1964)
언어 포르투갈어
종교 가톨릭
민족 브라질인
정치체제 대통령제
연방제
국가원수 대통령
통화 크루제이로
1. 개요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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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정치체제. 민주주의의 실험기간으로 일컫어지며, 1945년 제툴리우 바르가스 대통령 사임이후 신헌법이 제정된 1946년부터 주앙 굴라르에 대한 쿠데타가 일어나 제도명령 1호가 공포된 1964년 3월 31일까지의 기간을 이른다.

2. 역사

제툴리우 바르가스는 1937년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권위주의, 전체주의, 파시즘적 정치를 펼쳤으나 1945년제2차 세계대전파시즘의 몰락을 가져오자 바르가스의 파시즘적 체제도 위기에 부닥쳤고, 결국 자유 선거를 약속했으나 이에 반발한 군부의 쿠데타로 바르가스 정권은 무너졌다.

1946년 새로운 헌법이 채택되어 군정이 물러나고 새로운 민주 정부인 제4공화국이 들어섰다. 제4공화국은 초대 대통령으로 군인 출신인 에우리쿠 가스파 두트라를 선출했다. 그는 카지노를 금지하는 등 강력한 반도박, 엄숙주의 정책을 펼쳤고, 소련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등 반공/친미정책을 취했다. 또한 도로, 발전소, 댐 등의 사회 인프라를 갖추는 정책을 시행해 경제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치세 하에 노동자들의 임금이 강하게 억제되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강한 불만을 가지고 총파업을 벌여 두트라 정권을 흔들었으며, 그의 치세에서 수많은 외자가 들어와 브라질의 산업에 참여하는 등 민족주의 정서에도 맞지 않아 두트라의 노선은 강력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

1951년 대선에서는 브라질 민족주의와 친노동자적 태도를 보인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공업진흥과 복지 확충 등의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다시 당선되었다. 정작 그의 임기에는 경제위기가 찾아오는 등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이 틈을 타 외자를 몰아내는 등 경제에서도 민족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가 세워진 것도 이 때이다. 더불어 두트라와는 달리 소련과 우호관계를 맺어서 보수파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경제위기는 더 심화되어 인플레이션이 심해졌으며, 재정 관련 스캔들이 일어나자 군부는 사임을 강요했고 1954년 8월 자살했다.

군부의 생각과는 달리 바르가스의 죽음은 전국민적인 분노를 불러 군부를 비롯한 보수파의 세를 약화시켰고, 이후 임시 대통령들의 시대를 거쳐 1956년에는 주셀리누 쿠비체크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쿠비체크 대통령은 신행정수도 브라질리아 천도를 비롯하여 외자 유치, 자동차 산업 육성 등 각종 개혁정책을 펼치며 집권 기간 동안 연평균 7%의 GDP 증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정부 지출 증가 및 환율 하락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 문제가 더욱 심해지기도 하였다.

결국 1960년 대선에서는 보수파의 지지를 얻은 자니우 쿠아드루스 후보가 정부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며 인기를 얻으며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통령 선거에선 바르가스 정권 때 노동부 장관을 지냈고 쿠아드루스와 반대 성향의 정당 소속인 주앙 굴라르가 당선되었다. 쿠아드루스는 외교적으로는 냉전 대립에서 벗어나 제3의 길을 추구했고,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인 경제 안정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는 보수파와 개혁파 모두의 지지를 모두 잃는 결과로 나타났다. 쿠아드루스는 취임 7개월만에 사임하였지만, 이번에는 군부에서 주앙 굴라르 부통령의 대통령직 승계를 반대하게 된다. 결국 굴라르는 브라질 공화국 역사 상 유일한 내각제 정부가 들어서며 대통령 권한이 축소된 상태로 대통령에 취임했다.[2]

그의 토지개혁 및 일부 산업의 국영화 등을 비롯한 정책은 지배층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인플레이션 문제는 해가 갈수록 악화되어 62년에는 인플레율이 54%까지 치솟았고, 경제성장률도 하락했다. 군부와 보수파는 쿠데타를 모의하기 시작했고, 1964년 3월 31일,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 등 일단의 군부 지도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가 다시 정치에 개입하면서 이후 브라질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섰고,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이 간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 1960년부터 사용되었다. 그 이전에는 표어의 M 아래에 별이 없었다.[2] 1963년 1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제로 회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