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01 19:47:17

뷔리당의 당나귀

1. 설명2.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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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idan's Donkey / Buridan's Ass

1. 설명

어떤 배고프고 목마른 당나귀가 있다. 그리고 당나귀의 앞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동일한 만족을 주는 건초 묶음과 동이가 놓여져 있다. 하지만 그 당나귀가 이성적 판단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 당나귀는 물을 원하는 만큼 건초를 원하고, 건초를 원하는 만큼 물을 원하기 때문에,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고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어서 죽게 될 것이다. 애초에 죽을 것 같은데 이성적 사고가 가능한지는 예외로 하고.

장 뷔리당이 말했다고 알려진 가설로 두 종류의 선택이 서로 다르지만 선택하는 사람이 느끼기에 완전히 동일한 가치의 결과를 낸다고 할 때, 그 사람에게 충동과 사유로 비롯되는 자유의지가 없다면 그 사람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둘 다 먹으면 쉬운 게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당나귀든 사람이든 선택과 생각을 한 번에 하나밖에 못한다는 점이다.

당나귀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건초 먼저, 혹은 물 먼저 중 하나의 선택지를 고를 것이다. 하지만 만일 자유의지가 없이 계산하는 이성만 존재한다고 하면 당나귀는 50:50의 상황에서 고민하다가 선택을 못하고 죽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이성의 범위를 넓혀서 미래의 경우까지 사유한다 하면 더더욱 자유의지는 불가능하고, 미래의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고려한 결과 또한 50:50의 상황인 경우 또한 당나귀는 죽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 당시에는 수학, 과학적인 방식으로 모든것이 결정된다는 뉴턴적 결정관이 지배하던 사회인지라 그런 수식화된 이성을 지목해서 비판한다고 볼 수 있을것이다.

아마도 현실에선 완전히 동일한 가치 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반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지의 한계와 통약 불가능성 때문에 정말 동등한지 아닌지 알 수 없기에, 역설적으로 일단 동등하다고 치고 선택하게 된다.

위 역설이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선택한 의지가 정말 자유의지인지 알 방법이 없고, 또 우리는 정말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경우 동전 던지기와 같이 반반의 확률로 보이는 도구[1]에 기대 결정하기에 RNG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됐기에 무작위적 선택이 이루어지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현대에 이르러서는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느 쪽으로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2. 유래

사실은 장 뷔리당이 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고, 전대의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말이 와전 되어서 생겨난 말이다.
... 사람이 배고픈 정도와 목마른 정도가 정확히 같은 상황에서 음식과 마실 것이 바로 앞에 있다면 그는 분명 둘 모두를 내버려두고 굶어죽을 것이다.
... a man, being just as hungry as thirsty, and placed in between food and drink, must necessarily remain where he is and starve to death.
- 아리스토텔레스, 천체론(On the Heavens)

이와 비슷하게 뷔리당이 한 서적에서 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동일하다고 여겨지는 두 개의 방법이 있고 (한 사람의 의지가 교착상태인 판단을 깰 수 없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해지기 전까지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Should two courses be judged equal, then the will cannot break the deadlock, all it can do is to suspend judgement until the circumstances change, and the right course of action is clear.
- 장 뷔리당

그리고 후대의 바뤼흐 스피노자가 이 역설을 뷔리당의 당나귀로 소개를 하면서 사람들이 이를 뷔리당의 당나귀로 칭하게 되었다.
만약 자유의지가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다른 선택으로 동일한 가치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인간이 이 균형잡힌 상황[2]에서 그는 굶고 목말라 죽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자유의지가 없는)당나귀 말고 (자유의지가 있는)사람일 때 어떤 결과가 나오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도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고 심지어 어린이, 바보, 미친 인간 같은 이성이 부족한 자들도 모두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
It may be objected, if man does not act from free will, what will happen if the incentives to action are equally balanced, as in the case of Buridan's ass? [In reply,] I am quite ready to admit, that a man placed in the equilibrium described (namely, as perceiving nothing but hunger and thirst, a certain food and a certain drink, each equally distant from him) would die of hunger and thirst. If I am asked, whether such a one should not rather be considered an ass than a man; I answer, that I do not know, neither do I know how a man should be considered, who hangs himself, or how we should consider children, fools, madmen, &c.
-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

[1] 물론 반반에 매우 가까울 뿐 정말 반반은 아니다. 게임의 아이템 드랍 테이블 등에 적용되는 난수도 정말 완벽하게 공정하진 않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은 공정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것에 기대며, 그마저도 여건상 어렵다면 꽃점, 코카콜라 맛있다 등 더 덜 공정한 수단을 활용하곤 한다.[2] 목마름, 배고픔 이외에는 다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동일한 가치의 음식과 물이 인간으로부터 동일한 거리 떨어져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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