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8 11:28:57

볼로 작전


1. 개요2. 배경3. 준비4. 작전수행5. 결과

1. 개요

Operation Bolo. 베트남 전쟁 중에 수행된 미국 공군의 전투기 소탕(Fighter Sweep) 작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미 공군 F-4 비행단이 적 전술을 역이용하여 북베트남 공군의 MiG-21을 끌어낸 뒤 격파한 작전이다.[1]

2. 배경

미국은 롤링썬더 작전을 진행하면서 북베트남의 주요 전략적 목표물[2]에 폭격을 가하고 있었으나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구축된 북베트남의 방공망에 고전하고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은 와일드 위즐이란 이름의 SEAD 작전을 통해 방공망을 교란 및 무력화시키면서 폭격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북베트남군은 이 SEAD 작전의 특징을 역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와일드 위즐 기체들은 접근하면서 반드시 ECM으로 레이더를 교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렇기에 레이더가 교란당하면 미군의 폭격편대가 접근 중이란 사실로 인식하고 즉시 MiG-21를 투입하였고, 요격기의 출현을 감지한 F-105를 위시한 폭격기 혹은 전폭기들이 폭탄을 버리면 공중전을 회피하고 이탈하는 전술로 미군을 골탕먹이기 시작했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미군 수뇌부는 MiG-21을 격추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였으나 소련식 지상관제에 따른 요격체계를 갖췄던 북베트남은 굳이 미군이 유리한 전선에 요격기를 들이밀 이유가 없었기에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난관 속에서 제8전투비행단[3]을 이끌고 있던 로빈 올즈 대령은 이 문제를 타개할 방법을 찾아냈다. 먼저 북베트남군이 미군을 농락하는 배경에는 미군의 지나치게 정형화된 항공기 운용 패턴이 문제라는 점을 확인했는데, 여기서 공중급유기와 만났으니 F-105 폭격편대, 저기서 공중급유기와 만났으니 F-4, 거기서 공중급유기와 만났으니 전자전 기체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패턴이 뻔했다. 이걸 레이더만 보고 확인하는 북베트남군의 경험치만렙까지 올랐으니 미군이 약이 오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북베트남군 역시 전술이 경직적이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고 올즈는 여기에서 활로를 찾았다. 지상 관제에 철저히 의존하는 소련식 공군 관제에 익숙해진 북베트남군이 레이더 지상 관제에 따라 요격을 걸고 있지만 레이더에 나타난 표적이 F-105인지 F-4인지 자신들이 직접 마주치기 전에는 알 수가 없었고, 직접 마주친다고 해도 중앙집권적 관제 구조상 대응이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올즈 대령은 이를 역이용하자는 작전안을 제출한 것이었다.

3. 준비

작전이 확정되자 미군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북베트남군을 낚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 수집 수단에 함정을 파야 했다.
  • 1. 지상 레이더와 통신망 감청 교란
    가ㅣ지상 레이더를 속이기 위하여 로빈 올즈 대령이 지휘하는 F-4C 팬텀 편대는 그날부터 열심히 F-105의 표준편대비행, 공중급유 패턴을 익히기 시작했다. 더불어 통신망 감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정황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F-4C 팬텀 편대는 F-105가 사용하는 콜사인과 무선 교신 방법까지 익혔다. 일례로 포드나 램블러 같은 자동차 브랜드를 편대 콜사인으로 삼는 것은 써드 드라이버들의 대표적인 관습이었다.
  • 2. 와일드 위즐 교란
    레이더 교란을 통해 와일드 위즐기의 접근을 파악하고 있다는 정황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F-4C에 레이더 재밍포드까지 탑재하는 철두철미함을 보여주었다.
  • 3. 정보 교란
    미군 기지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에 반응하는 북베트남 스파이망을 교란하기 위해 작전이 결행될 날짜에 대규모 폭격작전이 있을 것이란 거짓정보를 흘려 북베트남군 수뇌부를 기만하였다.

한편 이 미끼를 물어 MiG-21이 출격하더라도 이들을 격추시키지 못하면 안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격추시킬 수 있도록 공중전 훈련을 거듭하였고, 더불어 북베트남군이 속아넘어가도록 스트라이크 패키지까지 완전히 똑같이 편성하였다. 더불어 중국이나 다른 공산국가로 도망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주요 국경지역 부근에도 편대를 배치하여 도망가는 MiG-21을 요격하게 하였다.

4. 작전수행

1967년 1월 2일, 태국의 우봉 공군기지에서 올즈 대령이 지휘하는 편대가 발진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전이 개시되었다. 이들은 철저하게 F-105의 비행패턴, 공중급유, 무선교신을 이용하였으며 똑같은 패턴으로 레이더 재밍까지 수행하면서 북베트남의 레이더에 낚시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MiG-21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서 짙게 깔린 구름 위로 상승하여 본격적인 공중전을 대비하였다.

한편 북베트남 방공망은 미군이 흘린 가짜자료와 그동안 잘 훈련된 패턴을 바탕으로 레이더에 탐지된 편대를 폭탄을 만재한 F-105 대편대로 판단하였다. 게다가 레이더에서 평소 호위를 위해 따라오는 F-4 팬텀 편대조차도 확인되지 않자 지상에 대기중인 MiG-21 편대에 발진을 명령하였다. 출격 채비를 마친 MiG-21들이 하나 둘 이륙하여 F-105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급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즉시 북베트남 공군의 표준 전술대로 미군 편대의 6시와 10시 방향에서 구름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MiG-21 편대는 바로 F-105로 보이는 대편대를 공격하기 위해 태세를 취하는데 왠지 F-105가 아닌 놈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월맹군 조종사들은 "팬텀이다! 팬텀이다!"를 외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무렵 로빈 올즈 대령의 편대는 북베트남군의 반응이 15분 정도 늦었던 바람에 철수하고 후속 편대와 교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MiG-21들이 속속 구름을 뚫고 올라온 덕분에 쾌재를 부르며 사냥에 돌입하였다.

올즈 대령에게 단련될 대로 단련된 F-4 조종사들은 그 즉시 현란한 공중기동술을 보여주며 스패로우사이드와인더를 발사하면서 MiG-21을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올즈 대령의 1번기를 비롯해 2번기와 4번기가 MiG-21 3기를 격추시키는 쾌거를 올렸다. 그럼에도 지상의 북베트남 레이더 관제사들은 아직까지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MiG-21 편대를 발진, 현장에 투입시켜 미군에게 엄청난 회식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일단 올즈 대령의 편대는 연료 문제로 기수를 돌렸고 뒤를 이어 제8전투비행단 부단장인 대니얼 제임스 주니어 대령[4]이 지휘하는 포드 편대가 현장에 진입하여 MiG기 사냥을 계속하였다. 양측이 상대를 격추시키기 위한 공중기동술이 전개되었는데 기존의 F-4 팬텀 조종사들은 어리바리하다가 오히려 역관광당하고 따이는 편이었으나 올즈 대령이 가르친 제자들은 MiG기의 움직임에 적절한 대응기동을 펼치면서 결코 꿀리지 않는 기동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포드 편대는 10시 방향에서 접근하는 MiG-21 2기에 집중하다가 6시 방향에서 치솟은 MiG-21 1기에게 3, 4번기가 공격 위치를 내주는 위기상황이 있었으나 제임스 대령의 분대가 즉각 대처하여 2번기 파일럿 에버렛 라스베리 대위가 사이드와인더로 6시 방향의 1기를 격추하고 손실없이 철수하였다.

이어서 비행단 전술장교 존 B. 스톤 대위가 지휘하는 램블러 편대가 진입하였다.[5] 램블러 편대 역시 포드 편대가 그랬던 것처럼 기동술을 펼치면서 MiG기와 격투전을 벌였다. 램블러 편대 역시 위기상황을 경험하긴 했으나 이미 F-4 팬텀이 고도 우위와 수적 우세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MiG기를 몰아붙여 스패로우로 3대를 추가 격추시켰다.

전황이 불리함을 파악한 MiG기 편대는 즉시 도주하기 시작했고 모두 구름 아래로 모습을 감춰 전투지역에서 이탈하였다. 적기가 사라지고 SA-2 가이드라인 미사일 발사가 확인되자 램블러 편대를 후속하던 F-4 팬텀 편대 넷도 작전을 중지하고 태국의 우봉 기지로 귀환하였다.

5. 결과

미군은 건 카메라에 촬영된 영상 및 조종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총 7기를 격추시켰다고 발표하였다. F-4 팬텀 II의 손실은 없었다. 당시 북베트남에 총 16기의 MiG-21이 있었고 교전에서 최소 11대 가량의 MiG기 출격이 확인됐기 때문에 그야말로 압승이라고 평할 수 있는 결과였다. 특히 북베트남 공군은 이 한줌밖에 안 되는 MiG-21을 애지중지하여 MiG-19MiG-17 등의 다른 전투기와는 달리 미사일을 쏘자마자 이탈시키곤 했는데, 이런 금쪽같은 최신예 전투기들을 우수수 떨어뜨렸으니 볼로 작전이 북베트남 공군에게 가한 충격은 그야말로 막대했다. 베트남측은 5기의 MiG-21을 상실하였으며 2명의 조종사가 전사했다고 발표하였다.

나흘 뒤인 1월 6일에는 제7공군 소속 F-4C 2기 편대가 밀착 대형으로 고속 비행하여 단독 정찰 임무 중인 RF-4C 1기로 위장, 북베트남 공군 MiG-21 4기를 유인한 뒤 2기를 격추하는 후속 성과를 올렸다.

이 작전의 성과로 미군은 북베트남의 방공망이 위축될 것이라 판단하였고, 실제로 심각한 손실을 입은 북베트남 공군 제921전투기연대는 3개월간 전선에서 물러나 재훈련과 신규 항공기 수령, 새로운 전술 개발 등을 거쳐야 했다. 이후로도 7월까지는 이렇다할 MiG기 요격이 없어 큰 성과를 올렸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전면전이 아닌 한 지속적으로 중소의 지원을 받는 북베트남군의 재건을 막을 수는 없어서 북베트남은 지원받은 물자와 인력으로 방공망을 강화하고 MiG기를 보강한 뒤 훈련을 계속하여 또다시 미군의 폭격편대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1] 당시 북베트남에는 소련이나 중국 측에서 지원한 항공기들이 있었다.[2] 정치적 이유와 본토에 계신 높으신 분들의 삽질까지 더해져 여러 제약이 걸려 실제론 효과가 미미했다.[3] 지금은 주한미군 소속으로 군산공항에 주둔하고 있는 그 비행단이 맞다. 부대 연혁을 소개하면서도 로빈 올즈라는 이름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칭송한다.[4] 터스키기 에어맨 출신의 흑인 파일럿으로 훗날 미군 최초의 흑인 4성장군이 된다.[5] 나중에 히스토리 채널의 인터뷰에 응한 스톤은 당시 올즈에게 적 편대의 위치를 물었는데 올즈가 "알아서 찾아봐"하자 꼰대가 자기 할 말만 한다며 불만스러워 했지만 현장에 도착하자 미그기들을 보고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았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