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3-28 04:59:11

법칙론적 망


1. 소개2. 설명3. 같이 보기


nomological network (nomological net)
[1][2]

1. 소개

...어떤 개념을 제안할 때, 그 제안자는 자신의 새로운 차원이 기존에 이미 사용 중인 다른 개념들과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지의 구분을 항상 유념하게 된다. 그 구분을 암시하지 않고서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런 구분들을 검증해 주는 것은 타당화 과정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When a construct is proposed, the proponent invariably has in mind distinctions between the new dimension and other constructs already in use. One cannot define without implying distinctions, and the verification of these distinctions is an important part of the validational process.)
Campbell & Fiske, 1959, p.84.

계량적으로 관찰 가능한 여러 구성(construct)[3]들이 서로간에 형성함으로써 이론적 진술의 체계화에 기여하는 관계적 도식.

법칙론적(nomological)이라는 표현은 그리스어의 '법칙적인'(lawful)이라는 단어로부터 기원했으며, 루돌프 카르납(R.Carnap) 등 초기 과학철학자들의 경험주의 및 법칙정립적 연구(nomothetic research)에 대한 논의와 함께 발전해 왔다. 그러다가 1950년대 심리학계에서 과학적 방법을 적용한 성격 연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리 크론바흐(L.J.Cronbach)[4]나 도널드 캠벨(D.T.Campbell)[5] 등 심리학 연구방법론 분야의 쟁쟁한 이론가들이 타당도의 개념화를 위해 도입하였다.

이하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뢰도와 타당도에 대한 기초지식이 필요하다.

2. 설명

초기 타당도 연구는 준거 타당도(criterion validity) 및 내용 타당도(content validity)의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였고, 구성 타당도(construct validity)는 다소 논의가 뒤처져 있었다. 당초 크론바흐는 구성 타당도에 있어서도 측정(measurement)이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점은 잘 인식하였으나, 유독 구성 타당도는 뜻밖의 장애물에 직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구에서 당초 의도했던 구성을 얼마나 정확히 가리키고 있는지 타당도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준거 타당도는 외적인 준거에 빗대어 보면 되고, 내용 타당도는 그 내용의 포괄성과 대표성을 해당 분야 전문가가 판단하면 될 문제였지만, 구성 타당도는 그 구성에 이래저래 연관되어 있는 다른 구성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악조건에 처해 있었다.

구성 타당도에서 여러 구성들은 하나의 거대한 이론 체계 속에서 서로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하나의 구성을 타당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이 그 측정으로 정확하게 지목되었음을 보여줄 필요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론 체계 속의 다른 인접한 구성들까지 그 측정으로 인해 함께 지목되지는 않았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연구방법론 용어로 바꾸자면, 구성 타당도라고는 수렴적(convergent)인 것밖에는 모르던 상황에서 변별적(discriminant)인 타당도 또한 중요함이 처음으로 인식된 것이다. 여기서 각 구성들이 함께 뭉쳐져 있는 바람에 측정 상의 변별이 요구되는 구성들 간의 네트워크가 바로 법칙론적 망이 된다. 그래서 법칙론적 망은 변별 타당도와 깊은 관련성을 갖는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사회과학적 이론들은 언제나 '공사중' 이라는 데 있다. 이론이라는 것은 크고 작은 개선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있으며, 아직 갈 길이 먼 신생 이론들은 변별 타당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살펴볼 법칙론적 망이 미처 준비되어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크론바흐는 강한 프로그램(strong program)과 약한 프로그램(weak program)으로 논의를 나누었다. 초기의 이론에서는 변별 타당도를 그야말로 대충 비슷해 보이는 무언가의 구성을 때려넣어서(…) 이것과 그것이 서로 다름을 보여주면 그만이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점차 이론이 정교화되고 법칙론적 망이 모양새를 갖추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그 이론 내부에 존재하는 구성들을 활용해서 변별 타당도를 도출할 수 있다. 크론바흐는 전자를 약한 프로그램, 후자를 강한 프로그램으로 지칭하면서, 타당화의 반복(iteration)을 통해서 약한 프로그램이 점차적으로 강한 프로그램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두 양극단의 중간쯤에 있으며 이론의 개선에 따라 그 사이를 계속해서 왔다갔다한다고 하였다.

현대의 연구자들에게, 법칙론적 망은 어떤 구성을 측정해야 할 때 그와 유사하거나 심지어 잘못 측정될 수 있지만 명백히 다른 구성을 배제해야 할 때 중요하다. 특히 법칙론적 망은 연구자들이 변별 타당도를 확인할 목적으로 대조하게 될 다른 구성을 가능한 한 이론에 의거하여 선정할 수 있게 한다. 불행히도, 마티아스 치글러(M.Ziegler)에 따르면, 변별 타당도를 위한 다른 구성이 이론적 논리와 무관하게 선정되는 사례가 학계에 드물지 않다. 물론 서로 다르면서도 밀접한(different but closely related) 구성끼리 대조하는 것이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 구성끼리 대조하는 것보다는) 바람직하기는 하나, 여기서의 요지는 그것들을 '이론의 관점' 에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법칙론적 망은 그 내부에 들어오는 모든 구성들이 계량적이고 관측 가능해야 한다는 점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아이디어들을 경험주의적이고 실증적인 사회과학 데이터의 세계로 붙잡아 묶어놓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런 의미에서 수전 엠브렛슨(S.Embretson)은 구성 표상(construct 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면서, 우리가 떠올리던 그 구성이 과연 참가자들의 응답 패턴 속에서 어떻게 표상되는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기능까지도 법칙론적 망이 함께 수행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자들이 이런 측면을 도외시하고 무조건적으로 수렴 타당도와 변별 타당도에만 매달린다면, 그들이 얻은 데이터를 타당하게 해석할 수 있는 논리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시중의 일부 사회조사분석사 참고서들에서는 이런 학문적 배경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에서 '법칙론적 타당도' 같은 표현을 소개하기도 하나, 실상 법칙론적 망은 하나의 타당도라기보다는 구성 타당도(특히 변별 타당도)의 정당화 논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3. 같이 보기


[1] r.1 버전 기준, 이하의 서술은 다음 각주에 명시된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되었다.[2] Preckel, F., & Brunner, M. (2017). Nomological net. In V. Ziegler-Hill, T. K. Shackelford (Eds.), Encyclopedia of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pp.1-4.), Springer.[3] 일반인들에게는 '개념' 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 뜬구름 잡는 추상적 아이디어를 차후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서의 분석단위로 삼기 위해 깔끔하게 가공한 것이 바로 구성이다. 사실 개념(concept)이라고 번역할 만한 다른 영단어가 이미 존재하며, 구성과 개념은 서로 종종 혼용되기도 하지만 뉘앙스가 살짝 달라지는 분야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4] 사회과학 논문을 써 보았다면 이 이름이 익숙하게 느껴질 것인데, 신뢰도(reliability) 계수를 구하는 '크론바흐의 알파'(Cronbach's alpha)를 고안한 그 사람이다.[5] 삼각검증과도 관련이 있는 다특질 다방법 행렬(MTMM; multi-trait multi-method matrix)을 개발하였고, 캠벨의 법칙(Campbell's law)을 제안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