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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여, 백제의 관계들이다.2. 역사
고구려는 부여를 계승했다고 자칭했으며, 고구려에서 갈라진 백제 역시 부여를 이었음을 자처하였다. 그래서 상황을 잘 모르는 많은 현대 한국인들은 이로 인해 두 나라 사이에 모종의 친근감이 있었다고 생각하기 일쑤인데, 실제로는 그런 사실 없었다. 두 나라는 철저하게 적대 관계였다. 물론 이런 주장이 두 나라간 분쟁으로 떠오른 사례도 없었다. 이유인즉슨, 고구려가 백제의 이러한 주장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일절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 그나마 약간 비슷한 통일신라와 발해의 사례를 보면, 통일신라는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을 부정하고 고려 국호도 대외적으로 쓰지 못하게 기를 쓰고 막았는데 고구려는 백제에 대해 그런 흔적조차도 없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할 정도로 병먹금 해버린 거였다.이렇게 된 이유는, 한성백제를 건국한 주축 집단이 실제로는 부여가 아니라 고구려에서 내려온 게 이유였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백제가 부여를 계승했다는 건 그냥 기록만 있고,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로서는 고구려와 연관있되 부여와 연관된 흔적은 전혀 없다. 일단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로만 보면 부여와 백제는 고구려를 중간에서 뺀다면 관계가 전무한 것이다. 백제와 연관 있을 고구려인들의 고고학적 기록은 가장 이른 시기로 봐도 끽해야 임진강변에서 드러나는 2세기 중후반경 고구려인들인데, 이 시기 고구려는 벌써 태조왕 시기 혹은 모본왕 시기와 태조왕 시기 사이 과도기다.
백제와 부여와의 관계를 나타낸 또다른 기록으로는 부여 출신 신하 중 한 명인 해루가 온조왕을 도왔다는 기록이 전해지긴 하는데, 앞서 말했듯 이것만 가지고 백제가 부여에서 나왔다고 말하긴 증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졸본부여라고 억지로 우겨봐야, 그 졸본부여는 부여 연합을 구성한 나라가 아니라 주몽 이전에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전사 집단이 전국연에게 패배하기 전에 요동 동부에서 고조선을 이뤘던 고조선인들과 연합해 세운 나라였으니, 백제가 부여에서 그대로 갈라져 나온 그 집단이라고 하기엔 근거가 다시 희박해진다.
여담으로 모용선비에 패배하여 부여 백성과 일부 왕족들은 모용선비에 끌려갔으며 이들 중 일부는 요서에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들을 백제 부여씨와 헷갈려 백제인이 요서를 경략했듯 기록된 사실이 있었다. 이는 요서경략설의 떡밥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