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5f5f5,#050505><colcolor=#333,#ddd> 박승희 朴勝熙 | Park Seunghee | |
출생 | 1972년 4월 2일[조기입학] |
전라북도 전주시 | |
사망 | 1991년 5월 19일 (향년 19세) |
광주광역시 전남대학교 병원 | |
사인 | 분신자살, 패혈증 |
학력 | 목포 정명여자고등학교 (졸업) 전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 명예학사) |
부모 | 아버지 박심배, 어머니 이영순 |
형제자매 | 남동생 박선경 여동생 박정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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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이자 열사로 1991년 연쇄 분신 파동의 스타트를 끊은 인물이다.2. 생애
1972년 4월 12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났다.고등학교 시절 목포 고교생 YMCA에서 활동하였고 학생회장에 출마하기도 하였으며,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창립 이후 전교조 가입 교사에 대한 부당 징계에 대해 항의하는 징계 철회 투쟁에 참여하였고, 참교육 1세대로 불리는 ‘자주교육쟁취고등학생연합’(자고연)에서 활동하였다. 목포 정명여고를 졸업하고 1990년 전남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한 후에는 학과 대의원, 교지 『용봉』 편집위원회 수습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평소 환경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외국산 커피와 콜라를 마시지 않는 등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작은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강경대 학생이 백골단의 폭행으로 사망한 후 전국적으로 강경대를 추모하고 노태우 정부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집회와 시위가 전개되었다.
분신을 결심하고 분신 전날인 4월 28일 목포 집에 가서 부모를 끌어안고 “가족들을 사랑한다”며 해후 한 뒤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묻어 달라. 항상 함께 있고 싶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그 다음날인 4월 29일 14시 전남대학교에서 개최된 ‘강경대 살인 만행 규탄 및 살인 정권 폭력 정권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2만 학우 결의대회’에 참석하고 15시경 전남대학교 본부(용봉관) 뒤쪽에서 분신하였다.[2]
이후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전신 3도 화상으로 인해 세균 감염으로 패혈증이 발생해서 38도를 조금 넘는 고열과 과호흡, 빈맥, 의식 저하가 발생했으나 1주일 후 차츰 회복되면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이 때 “노태우 정권 타도, 미국 놈들 몰아내자.”라고 손가락 글씨로 구호를 적기도 하였으며 계속 치료를 받으면서 회복하려는 참에 1991년 5월 17일에 다시 패혈증이 발생해서 40도 이상의 고열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 위독해졌고 5월 19일 끝내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사후 망월묘지공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