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모든 데모의 어머니 (The Mother of All Demos)는 1968년 12월 9일, 컴퓨터 과학자 더글러스 엥겔바트와 그의 연구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선보인 전설적인 컴퓨터 시연을 말한다. 이 90분간의 발표는 현대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미래를 압축하여 보여준, IT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평가받는다.이 시연에서 엥겔바트는 세계 최초로 마우스, GUI, 하이퍼텍스트, 화상 회의, 실시간 공동 편집 등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기술을 하나의 통합 시스템 안에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당시의 기술 수준을 수십 년은 앞서간 이 발표는 청중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이후 Xerox PARC,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어지는 개인용 컴퓨터 혁명의 거대한 서막을 열었다.
이 명칭은 후대에 붙여진 것으로, 록 밴드 프랭크 자파가 자신의 밴드 이름을 "발명의 어머니(The Mothers of Invention)"라고 지은 것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걸프 전쟁을 '모든 전투의 어머니'라고 칭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배경: 인간 지성의 증강을 꿈꾸다
1960년대 초, 컴퓨터는 여전히 거대한 방을 차지하는 계산 기계에 불과했다. 하지만 더글러스 엥겔바트는 컴퓨터가 인류의 지성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스탠퍼드 연구소(SRI) 산하에 증강 연구 센터(Augmentation Research Center, ARC)를 설립하고, 자신의 비전을 담은 통합 컴퓨팅 시스템인 NLS(oN-Line System) 개발에 착수했다.수년간의 연구 끝에, 엥겔바트와 그의 팀은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ARPA)의 권유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가을 합동 컴퓨터 콘퍼런스(Fall Joint Computer Conference)'에서 NLS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3. 90분간의 미래: 시연 내용
1968년 12월 9일, 1,000여 명의 컴퓨터 전문가들이 모인 강당에서 엥겔바트는 헤드셋을 끼고 무대에 올랐다. 그의 앞에는 키보드와 작은 나무 상자, 그리고 22피트 높이의 거대한 스크린이 있었다. 시연은 다음과 같은 혁신적인 기술들을 차례로 선보였다.3.1. 마우스와 그래픽 인터페이스
엥겔바트는 나무로 만든 세 개의 버튼이 달린 작은 장치를 움직여 화면의 포인터를 자유자재로 조작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마우스였다. 그는 마우스를 이용해 텍스트를 선택하고, 화면에 나타난 창(Window)의 크기를 조절하며, 아이콘과 유사한 개념을 시연했다. 이는 인간이 컴퓨터와 시각적으로 직접 상호작용하는 GUI의 서막을 연 순간이었다.3.2. 하이퍼텍스트와 동적 파일 연결
그는 화면의 특정 단어(밑줄 친 텍스트)를 클릭하자, 관련된 다른 문서로 즉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텍스트가 단순히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될 수 있다는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을 세계 최초로 구현한 것이다. 이는 훗날 월드 와이드 웹(WWW)의 핵심 원리가 된다.3.3. 화상 회의와 실시간 협업
시연의 압권은 협업 기능이었다. 엥겔바트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자신의 연구소에 있는 동료 제프 룰리프슨(Jeff Rulifson)을 화상으로 연결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동시에, 화면에 떠 있는 같은 문서를 실시간으로 함께 편집했다. 한 사람이 텍스트를 입력하면 다른 사람의 화면에도 즉시 반영되었고, 서로의 마우스 커서 움직임까지 공유되었다. 이는 오늘날의 구글 문서나 MS 365와 같은 클라우드 기반 협업 도구의 완벽한 원형이었다.3.4. 그 외 혁신적인 개념들
이 외에도 시연에서는 다음과 같은 개념들이 소개되었다.- 계층적 파일 시스템: 폴더 안에 하위 폴더를 만들어 파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
- 워드 프로세싱: 텍스트의 복사, 붙여넣기, 편집 기능.
- 버전 관리 시스템: 문서의 수정 이력을 추적하고 관리하는 기능.
- 명령어 기반 내비게이션: 효율적인 작업을 위한 키보드 단축키 및 명령어 입력 시스템.
이 모든 것이 단 90분 만에, 버그 하나 없이 완벽하게 시연되었다. 시연이 끝나자, 충격과 경외에 휩싸인 청중은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4. 영향과 유산
모두가 넋을 잃고 환상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사람들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했습니다.
--- 앤디 밴댐 (Andy van Dam), 시연 참석자
--- 앤디 밴댐 (Andy van Dam), 시연 참석자
엥겔바트의 시연은 너무나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당대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현실적인 기술이 아닌,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겼다.
하지만 이 시연은 소수의 선구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남겼다. 시연을 직접 목격한 젊은 연구자들은 훗날 개인용 컴퓨터 혁명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 Xerox PARC: 엥겔바트의 연구팀(ARC)에서 이탈한 핵심 인력들은 제록스 PARC로 옮겨가 그의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켜 최초의 현대적 PC인 제록스 알토(Xerox Alto)를 개발했다.
- 앨런 케이: 시연에 참석했던 앨런 케이는 엥겔바트의 비전에 큰 영향을 받아,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인 스몰토크(Smalltalk)와 태블릿 컴퓨터의 원형인 다이나북(Dynabook)을 구상했다.
- 애플과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훗날 제록스 PARC에서 알토를 보고 영감을 얻어 매킨토시를 개발했다. 매킨토시의 GUI는 사실상 '모든 데모의 어머니'에서 제시된 비전이 상업적으로 구현된 첫 사례였다.
결국, 엥겔바트가 뿌린 씨앗은 10년이 지나 제록스 PARC에서 싹을 틔웠고, 다시 10년이 지나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 서비스는 '모든 데모의 어머니'에서 보여준 미래에 빚을 지고 있다. 이 시연은 한 사람의 비전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 가장 극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