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4 10:42:44

막시밀리안 폰 호엔베르크

<colbgcolor=#C5E4F1><colcolor=#000> 호엔베르크 공작
막시밀리안 폰 호엔베르크
Maximilian, Herzog von Hohenberg
파일:Maximilian_Hohenberg.jpg
이름 막시밀리안 카를 프란츠 미하엘 후베르트 안톤 이그나티우스 요제프 마리아 폰 호엔베르크
(Maximilian Karl Franz Michael Hubert Anton Ignatius Joseph Maria von Hohenberg)
출생 1902년 9월 2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망 1962년 1월 8일 (향년 59세)
오스트리아
배우자 마리아 엘리자베트 보나 폰 발트부르크 추 볼페크 운트 발트제 여백작 (1926년 결혼)
자녀 프란츠 페르디난트, 게오르크, 알브레히트, 요하네스, 페터, 게르하르트
아버지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어머니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
형제 조피, 에른스트
종교 가톨릭 (세례명:막시밀리아노)
1. 개요2.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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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라예보 사건의 피해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의 2남 1녀 중 장남.

12살 때 사라예보 사건으로 부모가 모두 암살당하면서 여동생 조피와 남동생 에른스트와 함께 고아가 되었다. 이후 삼남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물론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없지는 않는데 문제는 다 부동산이여서 정작 당장 써야할 현금은 없었다. 게다가 본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은 호엔베르크 남매들이 귀천상혼으로 태어났으니 합스부르크의 정식 황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금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의붓할머니인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1]가 크게 반대해서 겨우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연금마저 얼마 못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망하면서 날아가 버린다.

이후 1945년부터 10년간 소련군정 치하에서 호엔베르크 공가의 본가가 있는 아르츠테텐(Artstetten)이라는 도시의 시장을 지냈다.

1926년 결혼해서 슬하 6남을 두었다.

명목상 호엔베르크 공작위는 장남 프란츠(1927 ~ 1977)가 승계했다. 프란츠는 룩셈부르크 샤를로트 여대공의 딸 엘리자베트와 결혼하여 두 딸을 보았으나, 살리카법 때문에 명목상의 공작위[2]는 동생인 게오르크(1929 ~ 2019)가 이어받았다. 그는 외교관으로 바티칸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냈다. 슬하 2남 1녀를 두었으며 사후 장남 니콜라우스(1961 ~ )가 당주를 계승했다. 호엔베르크 공작가의 현재 후손 목록

2. 여담

프란츠 페르디난트 슬하 삼남매 가운데 아버지와 제일 닮았다. 만년의 막시밀리안


[1] 아버지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계모. 다만 나이는 마리아 테레사가 프란츠 페르디난트보다 고작 8살 많은 누나뻘이었다. 그럼에도 마리아 테레사가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는 의붓자식들을 굉장히 사랑하며 지극정성으로 키웠기 때문에 사이는 매우 좋았다고.[2] 현재 공화국인 오스트리아는 공작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같은 공화국인 독일은 구 왕족, 구 귀족들에게 귀족 호칭인 "폰"(von) 사용을 허용하나 오스트리아는 그마저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