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5E4F1><colcolor=#000> 호엔베르크 공작 막시밀리안 폰 호엔베르크 Maximilian, Herzog von Hohenberg | |
이름 | 막시밀리안 카를 프란츠 미하엘 후베르트 안톤 이그나티우스 요제프 마리아 폰 호엔베르크 (Maximilian Karl Franz Michael Hubert Anton Ignatius Joseph Maria von Hohenberg) |
출생 | 1902년 9월 2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 |
사망 | 1962년 1월 8일 (향년 59세) 오스트리아 빈 |
배우자 | 마리아 엘리자베트 보나 폰 발트부르크 추 볼페크 운트 발트제 여백작 (1926년 결혼) |
자녀 | 프란츠 페르디난트, 게오르크, 알브레히트, 요하네스, 페터, 게르하르트 |
아버지 |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
어머니 |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 |
형제 | 조피, 에른스트 |
종교 | 가톨릭 (세례명:막시밀리아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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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라예보 사건의 피해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의 2남 1녀 중 장남.12살 때 사라예보 사건으로 부모가 모두 암살당하면서 누나 조피와 남동생 에른스트와 함께 고아가 되었다. 이후 삼남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물론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없지는 않는데 문제는 다 부동산이여서 정작 당장 써야할 현금은 없었다. 게다가 본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은 호엔베르크 남매들이 귀천상혼으로 태어났으니 합스부르크의 정식 황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금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의붓할머니인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1]가 크게 반대해서 겨우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연금마저 얼마 못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망하면서 날아가 버린다.
이후 1945년부터 10년간 소련군정 치하에서 호엔베르크 공가의 본가가 있는 아르츠테텐(Artstetten)이라는 도시의 시장을 지냈다.
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 / 자녀 |
1남 | 프란츠 (Franz) | 1927년 9월 13일 | 1977년 8월 16일 | 룩셈부르크의 엘리자베트 공녀 슬하 2녀 |
2남 | 게오르크 (Georg) | 1929년 4월 15일 | 2019년 7월 25일 | 아우어스페르크의 엘레오노레 공녀 슬하 2남 1녀 |
3남 | 알브레히트 (Albrecht) | 1931년 2월 4일 | 2021년 2월 25일 | 카시스파라오네의 레온틴 레티티아 슬하 1남 3녀 |
4남 | 요하네스 (Johannes) | 1933년 5월 3일 | 2003년 10월 11일 | 바이어호프레를의 엘리자베트 슬하 2남 2녀 |
5남 | 페터 (Peter) | 1936년 3월 26일 | 2017년 12월 6일 | 크리스틴마리 메일링거 슬하 2녀 |
6남 | 게르하르트 (Gerhard) | 1941년 12월 23일 | 2019년 5월 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