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21 23:28:46

막시밀리안 폰 호엔베르크

<colbgcolor=#C5E4F1><colcolor=#000> 호엔베르크 공작
막시밀리안 폰 호엔베르크
Maximilian, Herzog von Hohenberg
파일:Maximilian_Hohenberg.jpg
이름 막시밀리안 카를 프란츠 미하엘 후베르트 안톤 이그나티우스 요제프 마리아 폰 호엔베르크
(Maximilian Karl Franz Michael Hubert Anton Ignatius Joseph Maria von Hohenberg)
출생 1902년 9월 2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망 1962년 1월 8일 (향년 59세)
오스트리아
배우자 마리아 엘리자베트 보나 폰 발트부르크 추 볼페크 운트 발트제 여백작 (1926년 결혼)
자녀 프란츠 페르디난트, 게오르크, 알브레히트, 요하네스, 페터, 게르하르트
아버지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어머니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
형제 조피, 에른스트
종교 가톨릭 (세례명:막시밀리아노)
1. 개요2.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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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라예보 사건의 피해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의 2남 1녀 중 장남.

12살 때 사라예보 사건으로 부모가 모두 암살당하면서 누나 조피와 남동생 에른스트와 함께 고아가 되었다. 이후 삼남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물론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없지는 않는데 문제는 다 부동산이여서 정작 당장 써야할 현금은 없었다. 게다가 본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은 호엔베르크 남매들이 귀천상혼으로 태어났으니 합스부르크의 정식 황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금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의붓할머니인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1]가 크게 반대해서 겨우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이 연금마저 얼마 못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망하면서 날아가 버린다.

이후 1945년부터 10년간 소련군정 치하에서 호엔베르크 공가의 본가가 있는 아르츠테텐(Artstetten)이라는 도시의 시장을 지냈다.

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프란츠
(Franz)
1927년 9월 13일 1977년 8월 16일 룩셈부르크의 엘리자베트 공녀
슬하 2녀
2남 게오르크
(Georg)
1929년 4월 15일 2019년 7월 25일 아우어스페르크의 엘레오노레 공녀
슬하 2남 1녀
3남 알브레히트
(Albrecht)
1931년 2월 4일 2021년 2월 25일 카시스파라오네의 레온틴 레티티아
슬하 1남 3녀
4남 요하네스
(Johannes)
1933년 5월 3일 2003년 10월 11일 바이어호프레를의 엘리자베트
슬하 2남 2녀
5남 페터
(Peter)
1936년 3월 26일 2017년 12월 6일 크리스틴마리 메일링거
슬하 2녀
6남 게르하르트
(Gerhard)
1941년 12월 23일 2019년 5월 8일


[1] 아버지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계모. 다만 나이는 마리아 테레사가 프란츠 페르디난트보다 고작 8살 많은 누나뻘이었다. 그럼에도 마리아 테레사가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는 의붓자식들을 굉장히 사랑하며 지극정성으로 키웠기 때문에 사이는 매우 좋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