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6 15:52:35

마이클 조던/플레이 스타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마이클 조던

1. 개요2. 피지컬과 운동능력
2.1. 점프력
3. 공격
3.1. 페네트레이션3.2. 슈팅/프리드로우3.3. 빅게임/클러치3.4. 종합: 농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4. 수비5. 체력과 내구성6. 번외: 조던의 3점 슛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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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부 컨퍼런스에서 감독으로 일하다 보면 누구나 능력이 향상된다. 마이클 조던을 상대하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연구를 하기 때문이다.
전 뉴욕 닉스 감독 제프 밴 건디

긴 설명을 읽기 힘든 사람을 위해 한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마이클 조던은 농구 역사상 최고의 공수겸장이자 극강의 클러치 플레이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공격에선 NBA 역사를 통틀어서 비교대상조차 거의 없는 역대 최고의 득점원이고, 수비에서는 NBA 역사상 최고의 가드 수비수 중 한 명이며, 경기가 더욱 빡빡해지는 플레이오프, 특히 NBA 파이널에서 그 위력이 오히려 상승하는 상식 밖의 클러치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피지컬과 운동능력

"당신은 하늘을 날 수 있나요?"
"조금은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렸을 때 기자와 조던의 대화 내용[1]

본격적으로 플레이 스타일과 운동능력에 관해 다루기 전에, 먼저 얘기해야 할 점은 조던의 신체이다. 일단 그는 슈팅가드로써 상당히 훌륭한 신체조건인 맨발 196cm(착화 198cm)의 신장과 211cm의 윙스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는 파격적인 신체조건은 아니지만, 흔히 말하는 2.5번 스윙맨의 적절하고 이상적인 규격이다.

오히려 키가 착화 6' 6"에 그치기에 나오는 장점도 있는데, 바로 퀵니스와 사이드스텝. 2m 전후의 신장대에서 역대 가장 뛰어난 전천후 수비수로 손꼽히는 데니스 로드맨, 스카티 피펜, 카와이 레너드의 경우 6'3" 이하의 작고 재빠른 가드들을 경기 내내 전담해서 막기는 버거워했다.[2] 그러나 조던은 저들보다는 다소 체격이 작으면서 저들 이상으로 날랜 몸을 타고났기에, 180대의 포인트 가드들과 풀타임으로 매치업 되어도 따라가고도 남을 능력이 있었다. 물론 조던이 비슷한 신장대의 선수들 중에서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재빠른 선수기도 했지만, 만약 그의 키가 6피트 8~9인치 이상이었다면 아무리 빨라도 그 정도 사이드스텝을 갖추기는 어려웠을 것이다.[3][4]

그의 신체조건 중 최대 장점이자 역대 최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엄청난 손 크기로, 현재 NBA에서 손크기로 유명한 카와이 레너드와 비등한 손 크기를 자랑한다.[5] 손목에서 중지 끝까지의 길이는 9.75inch(24.8cm)로 카와이와 같고, 소지부터 엄지까지의 너비는 11.375inch(28.9cm)로 카와이보다 0.125inch 길다. 이런 경이적인 손크기 덕에 그는 그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플레이들을 펼칠 수 있었으며, 감독 필 잭슨도 조던의 압도적인 손크기가 그가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되는데에 한 몫했다는 뉘앙스로 말을 한적 있다.[6]

여튼 조던은 커리어 내내 리그 탑클래스의 운동능력을 자랑했지만 시기마다 차이가 있는 편인데, 커리어가 후반으로 진행될수록 더 묵직하고 강인한 신체로 변해갔던 반면 스피드와 퀵니스, 점프력 등은 커리어 초반(80년대) '블랙캣'이라 불리던 시절이 최전성기였다. 특히 블랙캣 조던은 역대 슈팅가드 중 최고로 분류되는 운동 능력으로 페인트존 닥돌 및 그에 이은 득점 및 파울겟 능력, 풀업 점퍼를 기반으로 점수를 따내는 식이었다. 전성기에 비해 점퍼가 안정적이지는 않았지만, 원체 사기 유닛인지라 부딪히고 붙잡아도 개의치 않고 인사이드를 미친듯이 돌파해 들어갔다. 젊은 시절 조던의 사기적인 민첩성에 대해선 이 영상을 참고하자.

이렇듯 블랙캣 시절의 조던의 운동능력은 역대로도 손꼽힐만한 수준. 단, 윌트 체임벌린이나 르브론 제임스 등 조던보다 퀵니스는 떨어질지언정 신장과 체급에서 훨씬 압도하는 괴수들도 존재하는데, 같은 맥락으로 블랙캣보단 1차 쓰리핏을 끝마친 98kg 시점의 신체를 높게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블랙캣 시절에 비해 민첩성이나 점프력은 떨어지더라도 파워의 측면에서는 궤가 다르기 때문. 루키시즌과 비교하면 단순 체중차이만 10kg 가량이며, 블랙캣 시절에도 힘자체는 당대 가드 중 강한 편이었던 조던은 벌크업 이후 동포지션에서 힘으로 꿇리는 모습을 거의 찾기 어려워졌다.

물론 체급과 완력만 따지면 100kg을 상회했던 2차 쓰리핏 시절이 더 강했으나, 그 시점에서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운동능력이 블랙캣 시절과 비교하면 상당히 열화되었기에 종합적으로는 1차 쓰리핏 직후가 신체적 최전성기로 여겨진다.[7] 그리고 워싱턴 시절의 경우 조던의 전성기가 완전히 지난 시점이라 많이들 간과하지만, '힘 하나만 따지면' 워싱턴 시절이야말로 조던의 전체 커리어 중 가장 강한 축에 들어가는 시기였다고 할 만 하다. 운동능력 전반은 더이상 블랙캣 시절에 비할바가 못되었지만, 인간의 신체능력 중 완력만큼은 40대 때 까지도 건재하거나 더 강한 경우가 많고 풍채 자체도 커리어 통틀어 가장 묵직한 시절이었기 때문. 스몰 포워드 중 파워툴만 따지면 르브론과 함께 역대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 조차 워싱턴 조던과의 맞대결을 회상하며 그의 강한 힘을 강조한 바 있다.[8][9]

2.1. 점프력

우선 조던은 공식적으로 점프력을 측정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인데다 에어조던, 덩크왕이라는 상징성이 있다보니 신화적인 과장과 윤색이 덧붙여지는 경향이 있다. 체공시간 3초라던가[10], 점프력이 서전트 120에 러닝 150을 상회한다던가, 맥스 버티컬이 48인치에 이른다는 등 점프력 관련 낭설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서로 검증된 수치인 것처럼 유명 유튜브에서조차 아무런 검토 없이 재유통되는 경우가 오늘날에도 많다.

참고로 체공시간 3초를 높이로 환산하면 10m가 넘어가고(...) 이후 비교적 현실적인 숫자로 보정된 루머인 48인치조차 122cm에 달한다. 조던과 15년동안 함께 했던 트레이너 Tim S. Grover가 쓴 책: Jump Attack에서 조던의 점프력이 언급된 바 있는데, 정확히는 1989년에 마이클과 함께 일을 시작했을 때 조던의 점프력이 38인치였으나 자신의 책에 언급할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하면서 42인치, 그가 32-33세 였을 즈음에는 마침내 48인치의 버티컬을 보유했다고 쓰여있다. 그런데 32-33세의 조던은 괴물같은 운동능력을 앞세운 블랙캣 시절에서 벗어나 완숙한 플레이를 구사하던 소위 완전체 시절이다. 더군다나 38인치와 48인치,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10인치는 최상위권과 꼴지 그룹의 격차다. 이 시기에 이와 같은 비약적인 운동능력 향상이 있었다는 것은 정황적으로도 신빙성을 의심할 수 밖에…

결론을 말하자면 조던이 점프력이 40인치(약 100cm)를 크게 상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통념처럼 떠도는 48인치는 커녕 약 40인치를 뛰는 장면조차도 최적의 조건에서 드물게 보일 뿐이다. 조던의 신장을 감안하면 백보드에 머리가 닿아야 36인치, 림에 닿아야 42인치이다. 그런데 조던의 높은 점프 하이라이트를 아무리 모아본들 머리가 림을 넘어간다고 주장하는 장면들은 예외 없이 원거리의 부정확한 앵글이나 아래에서 찍어올린 장면이라 정확한 근거가 되기는 어려우며, 머리가 백보드에 닿을 36인치를 상회하는 점프조차 최적의 도움닫기 상황에서나 발견될 뿐이다.

신뢰할만한 자료들 중에서는 1988년 덩크 대회에서 리버스 덩크를 구사할 때 머리가 림 근처 2인치 언저리 내외에 근접했던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를 토대로 리버스 덩크 동작이 아닌 순수하게 측정을 위한 점프라면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추정'은 할 수도 있으나 결국 명확한 답이 되지는 못한다. 21세기 기준 자 모란트, 존 월, 데릭 로즈, 러셀 웨스트브룩, 데니스 스미스 주니어, 섀넌 브라운 등 맥스 버티컬 40 초반대 스펙의 6’2~6‘3” 언저리 가드들이 보여준 head above the rim 퍼포먼스와 비교해보면 조던보다 작은데도 머리가 조던 이상으로 높게 올라가는 걸 볼 수 있다. 조던이 실제로 림에 머리를 부딪힐 수 있는가의 여부를 떠나서, 그와 비슷하거나 더 높게 점프할 수 있는 선수들이 꾸준히 등장해왔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애초에 조던은 점프력도 점프력이지만 공중에서 보여주는 유연성과 바디 컨트롤이 실로 대단한 선수였다. 실제로 NBA의 역대 하이 플라이어들 중에서도 공중 동작의 완성도에 있어 조던에게 가장 비견되는 선수는 조던보다 높게 뛰는 선수들이 아니라, 오히려 조던보다 점프력은 떨어졌지만 공중에서 보여주는 유연성과 바디 컨트롤에 있어선 조던에게도 꿇림이 없었던 코비 브라이언트다. 또한 NBA 가드 기준으로는 딱히 특출나지 않은 점프력을 가지고도 우아한 공중 동작으로 피지컬 대비 엄청난 피니시 능력을 자랑하는 카이리 어빙같은 케이스도 있으며, 조던이 '에어 조던'이라고 불릴 정도로 환상적인 고공 플레이를 밥먹듯이 해낸 이유도 단순히 점프력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정교하고 역동적인 무브로 자신의 체공 시간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공격

3.1. 페네트레이션

파일:vs 76ers.gif
외곽에서 한명을 뚫고 공중에서 두명을 돌파해 골을 넣어버린다.[11]

커리어 초창기 ~ 1차 쓰리핏 시절 조던은 돌파에 있어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그랜트 힐과 함께 역대 최고의 퍼스트 스텝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그 외엔 전성기 드웨인 웨이드, NBA 역사상 가장 빠른 선수인 디애런 팍스가 이들 셋에 비견되는 정도로, 작고 날쎈 포인트 가드들을 제치고 한 덩치 하는 저들이 퍼스트 스텝 최강자로 통하는 건 바로 다리길이의 차이 때문이다.

퍼스트 스텝을 결정하는 건 퀵니스, 보폭, 그리고 이를 돌파에 100% 적용할 수 있게끔 해주는 핸들링이다. 예로 앨런 아이버슨은 블랙캣 시절의 조던보다도 한 술 더 뜨는 민첩성과 역대 최고수준의 드리블을 가진 선수였지만 단신 가드라 보폭이 윙에 비해 짧고, 코비 브라이언트는 사이즈가 조던과 비슷하며 드리블 스킬 자체는 더 뛰어났지만 퀵니스가 조던급에는 못미쳤다.[12] 또한 앤드류 위긴스의 경우 다리가 길고 퀵니스까지 역대급이지만 핸들링이 부족해 퍼스트스텝에 한계가 있으며, 르브론 제임스야니스 아데토쿤보는 250 lbs에 달하는 빅맨의 체급이라 아무리 빨라도 가속하기 위한 공간이 어느정도 필요하다. 즉, 다리가 길지만 빅맨급으로 크고 무겁지는 않은, 동시에 퀵니스와 핸들링 양쪽 모두 듀얼가드 슬래셔 못지 않았던 조던이나 티맥, 힐의 퍼스트 스텝이 가장 뛰어났던 것.

심지어 조던은 이 엄청난 퍼스트스텝을 능히 견뎌내는 무지막지한 내구성까지 있었다. 위의 티맥, 힐, 웨이드를 비롯해 퍼스트스텝이 특기되는 선수들이 대부분 내구성 이슈를 달고 다니는 것과 대조적. 이는 후술하듯 조던의 발목이 유달리 엄청나게 튼튼했기 때문이다.

베이스라인 포스트업으로 시작되는 스핀무브 퍼스트 스텝은 가히 대적할 자가 없으며[13], 그의 최대의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말 체력과 바디 밸런스는 간결한 무브와 미세한 페이크만으로도 쉽게 수비를 제치고 공중에서 빅맨들과 맞부딪히면서도 안정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것도 경기당 40분씩 82경기 꼬박꼬박 뛰던 양반이.[14] 젊었을 때 조던은 정말 말도 안되게 빨라서 어깨를 움찔하는 것만으로 수비수의 타이밍을 뺏고 순식간에 돌파해버리곤 했다.

현시대에선 르브론 제임스의 돌파력이 조던과 비교되는 편인데, 굳이 비교하자면 오픈코트에서의 스프린트는 르브론이 조던에게 꿇릴 것 없지만, 일차적으로 앞선을 찢는 퍼스트스텝 및 이어서 순식간에 최고속도에 도달하는 세컨드스텝에 있어선 조던이 역대 최고로 통한다. 반면 어깨 힘으로 수비수를 누르고 압도적인 높이와 파워로 욱여넣는 데 있어선 르브론이 위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환상적인 운동능력을 가진 정상급 림어태커이지만, 조던은 순간적인 속도변화와 공중 동작에서의 유려함이, 르브론은 F = ma라는 공식이 떠오를 정도로 압도적인 힘과 돌진력이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15]

3.2. 슈팅/프리드로우

커리어 통산 8할대의 뛰어난 자유투 슈터임은 물론, 미드레인지 점퍼에 있어선 역대 최고로 인정받는다.[16] 사실 블랙캣 시절과 그 이후 조던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편인데, 그렇다고 블랙캣 조던의 점프슛이 안 좋았던 것은 아니다. 조던은 데뷔 이후부터 항상 점퍼와 자유투가 좋은 선수였다. 다만 그가 슛 메커니즘을 완성시킨 89년 이후부턴 막을 수 없게 된 것일 뿐이다. 점프슛은 슛(농구)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점프해서 올라오는 모멘텀을 자연스럽게 손목까지 전달해서 쏘는 슛이다. 그런데 대학시절부터 프로 초창기까지 조던은 손목 감각에 크게 의존해서 슛을 쐈다.[17] 엄청난 점프력과 균형감각의 소유자였던 조던은 일단 뛴 상태에서 수비를 제치고 더블클러치 점프슛을 던지는 등 플레이가 잦았는데 문제점은 이렇게 쏘는 슛은 포물선이 극히 낮아 거리가 멀면 성공률이 극히 떨어진다는 것. 이 때문에 조던은 중장거리 점프슛을 계속 연습해서 무기로 장착했다.

애초에 농구가 돌파로 모든 득점을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18],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그의 고감도 점퍼의 타점은 당시부터 매우 높은 편이었다. 다만 슈팅 메커니즘이나 폼에 있어서 약간 어설펐던 것이 사실이고, 이에 대해서는 대학 시절 은사인 딘 스미스 또한 루키 시즌 이후 조던에게 점퍼를 보완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후 90년대 초반 첫 번째 쓰리핏 시절, 운동능력과 기술이 완벽하게 조합된 선수가 된 것.

자유투 성공률은 커리어 통산 83.5%로, 수준급이긴 했지만 의외로 엄청나게 높지는 않았다. 물론 조던은 피파울이 많은 만큼 자유투 시도수 역시 많은 선수였고, 일반적으로 자유투 능력이 동일하다면 시도수와 성공률은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상당히 준수한 수치이기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역대 최고수준이던 조던의 중거리 슈팅 능력에 비하면 묘하게 인간적인 수치이다 보니[19] '조던치고는 좀 의외다' 라는 팬들의 반응이 간혹 나오는 편.[20][21] 그 외 동시대 슈퍼스타 가드들의 자유투 성공률을 보면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78.8%, 미치 리치몬드는 85%, 앤퍼니 하더웨이는 77.4%, 스윙맨은 아니지만 매직 존슨은 84.8%, 존 스탁턴은 82.6%였다. 정교한 슈터로 유명한 마크 프라이스레지 밀러가 각각 90.4%, 88.8%로 조던과 확 차이 나는 정도였다. 그리고 조던과 가장 비슷한 것으로 유명한 코비 브라이언트는 83.7%로, 여기서도 매우 비슷하다.

조던은 특히나 안정적인 자유투 성공률을 자랑했던 선수인데, 팀내 문제 때문에 말년에 팀내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갔던 97-98시즌(78.4%), 노장이자 부상을 안고 뛰었던 01-02시즌(79%)을 제외하면 매번 8할대 성공률이었으며, 특히 98시즌을 제외한 득점왕 시즌 9번 동안은 최저 83.2%에서 최고 85.7%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루키 시즌만 해도 슈팅력이 여물기 전이었지만 84.6%를 기록했다. 즉 자유투라인에서 기복이 적었다. 기대득점 측면에서 봤을 때 자유투는 75% 이상이 되면 쏘는 측이 이득이 되는데, 조던은 단 한번도 시즌 75%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기에 수비 입장에서 조던을 파울하는 것은 항상 부담되는 선택이었다. 특히 조던은 3점 라인 안쪽이라면 어디에서건 득점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수비수들은 난감한 양자택일을 해야했다.

역대 최고 수준인 조던의 중거리 슈팅 능력,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닌 자유투성공률 간의 갭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한데, 중거리 슛과 자유투, 3점 슛은 요구하는 능력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와이드오픈 찬스란 전제라면 당연히 슈팅 메커니즘은 같다. 그러나 조던의 중거리슛 중 와이드오픈 찬스는 거의 없었다. 조던 시대엔 리그 트렌드 상 수비가 거의 3점 라인 안쪽에 몰려있었고, 이렇게 수비밀도가 높은 곳에서 슛을 쏘기 위해선 풀업점퍼, 페이더웨이, 가장 상황이 좋으면 스크린을 타고 잠깐 오픈됐을 때 캐치 앤 슛을 해야했다. 특히 시카고 불스의 팀 특성상 수비를 끌어오는 선수가 거의 없었기에 킥아웃되는 공을 받아서 편하게 오픈샷을 던질 기회가 조던에겐 거의 없었다.

즉, 수비밀도가 중거리 위치에 특히 높았던 조던 시대에서 중거리 슈팅 능력이란 '슈팅 스트로크[22]+수비를 떼어내는 능력'이었던 것이고, 조던의 경우 슈팅 스트로크 자체는 시대를 불문하고 뛰어난 편이긴 해도 샤프슈터급은 아니었지만[23] 수비를 떼어내거나 컨테스트 타이밍을 빼앗는 능력이 역대 원톱으로 뛰어나다보니 미드레인지의 황제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모든 슛이 거리 상관없이 와이드오픈 샷이었다면 중거리건 3점이건 당대 최고의 슈터는 마크 프라이스스티브 커였을 것이다.[24] 그러나 당연히 실제 경기에선 슛 찬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필요하기에 조던이 골밑-미드레인지 영역에서 독보적인 득점력을 보여준 것이고, 반면 수비의 영향을 배제한 채 순수하게 슈팅 스트로크만으로 던지는 자유투라인에서는 '준수하지만 특급까진 아닌' 수준에 그쳤던 것이다.[25]

3.3. 빅게임/클러치

파일:the last shot.gif
불스왕조의 6번째 챔피언쉽을 결정지은
The Last Shot

그는 무지막지한 승부 근성을 바탕으로 NBA 역사상 가장 뛰어난 클러치 플레이어중 한명으로 손꼽힌다.[26] 상대팀은 몇 초가 남건 2점차건 3점차건 경기 종료 직전 그가 볼을 잡았다 하면 에워싸기 일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 스스로가 클러치 타임의 플레이를 설명할 때조차 "그 순간은 나 스스로가 가장 유리하다고 느낀다" 라고 할 정도.

그의 클러치 능력이 가장 빛났던 곳은 플레이오프와 파이널 무대였다. 실제로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등의 레전드들부터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현대의 위대한 선수들까지 역대급 선수들도 거의 전부 플레이오프에서 자신의 팀보다 낮은 전력의 팀에게 패배하는 "업셋(upset)" 경험이 최소 한두 번씩은 있으며, 그 이상되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조던은 13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업셋당한 적이 없다.[27] 업셋을 당한 적 없다는 것은 탑독 자리에 올랐을때 자리를 지키고 하위시드에 있을때 질 팀에게만 졌다는 뜻이다. 조던은 첫 우승을 거둔 뒤 복귀시즌인 1995년 2라운드 탈락말고는 플레이오프 중도 하차가 없었다. 장기간 동안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에서 최강자 자리를 유지한 것도 그가 고평가를 받은 이유이다.

실제로 그가 플레이오프에서 패한 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승팀에게 패한 적이 3번(86년 보스턴,89,90년 디트로이트), 준우승 팀에게 패한 적이 3번(87년 보스턴, 88년 디트로이트, 95년 올랜도)이며 85년 밀워키는 59승팀이었다. 저 중 이때 불스와 상대팀의 승수를 따져보면 85년 밀워키는 -21승, 86년 셀틱스는 -37승(!), 87년 셀틱스는 -19승, 88년 피스톤즈는 -4승, 89년 피스톤즈는 -16승, 90년 피스톤즈는 -4승, 95년 매직은 -10승이었다. 또한 88년에 승수 차이는 4승에 불과하지만 당시 젊은 팀이었던 불스는 멤버들 대부분이 처음으로 2라운드를 경험하는 팀이었으며, 공격에선 조던이 35점을 넣는동안 동료들 중 13점을 넘는 선수가 단 한명도 없을 정도로 원맨팀에 가까웠다. 즉 조던이 플레이오프에서 패했을 때는 상대팀이 우승팀이거나 우승후보이고, 90년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케이스가 압도적인 전력차가 났을 때 뿐이었다.[28]

그의 GOAT자리를 확고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큰 경기에서의 압도적인 기량으로, 대부분의 선수들이 수비가 치열해지는 플레이오프에서는 득점이 정규시즌과 대비해 그대로거나 떨어지는 반면, 조던은 정규시즌->플레이오프->파이널로 가면 갈수록 평균 득점이 쭉쭉 상승하는 매우 희귀한 케이스였다. 98시즌엔 정규시즌 득점이 풀시즌 기준으로 신인 시절 이후 최악인 28점대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에선 32.4점, 파이널에선 무려 33.5점을 기록했다.

게다가 당시 박스 스코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98파이널은 시카고가 평균 88점, 유타는 80점에 시리즈 통틀어 90점을 넘긴 적이 시카고가 2,3차전에서 두번뿐일 정도로 저득점 시리즈였으며, 시카고 불스는 피펜이 15.7점, 쿠코치가 15.2점, 롱리와 하퍼가 5.3점, 5점을 넣은걸 제외하고는 한명도 4점을 못 넘길 정도로 단체로 공격에서 삽을 펐다. 즉, 당시 불스는 수비를 분산시켜 그의 어깨를 가볍게 할 선수가 없었으며 그나마 활약한 경기가 있었던 피펜과 쿠코치가 한 경기 활약하고 다음 경기 부진하는 식이었다. 즉, 집중수비를 받으면서 팀득점의 38%나 넣은 것으로 단순환산해서 팀평균이 100점 경기에서 38점을 넣은 셈이다. 심지어 2004년 2차 핸드체킹룰 개정 전이라 외곽선수들에 대한 수비가 훨씬 빡센 시점. 참고로 2020년 NBA파이널에서 우승팀 LA 레이커스가 평균 110점을 넣었는데, 조던의 득점비율을 여기에 적용한다면 41.8점이 된다. 물론 농구는 산수가 아니니 단순히 그렇게 이해할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조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고 이해할 수 있다.

조던이 얼마나 파이널에서 강했는지는 역대 우승팀 중 1옵션의 득점 비중이 가장 높은 팀이 어떤 팀인지로 간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데, 역대 1위가 93년 우승팀 불스에서 조던이 기록한 38.4%, 2위가 98년 불스의 조던(38%), 3위는 06년 히트의 드웨인 웨이드(37.4%), 4위가 97년 불스의 조던 (36.8), 5위는 2000년 레이커스의 샤킬 오닐(36.2%), 6위는 92년 불스의 조던(34.4%), 7위는 02년 레이커스의 오닐(34.2%), 8위는 01년 레이커스의 오닐(32.8%), 9위는 99년 스퍼스의 팀 던컨(32.3%), 10위는 09년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다.

사실 정규시즌 득점 기록은 윌트 체임벌린이 대부분 앞서지만, 플레이오프에선 윌트조차 비교가 안된다. 플레이오프 득점 기록을 보면 말 그대로 조던의 독무대다. 역대 플레이오프 한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보면 1위, 공동 3위를 포함해 상위 10위까지의 기록 중 딱 절반인 5개가 조던의 기록이다.[29] 플레이오프 때 60점을 넘긴 유일한 선수가 조던과 엘진 베일러뿐이며, 현대 50점을 넘긴 횟수만 봐도 조던 8회, 윌트 체임벌린 4회, 앨런 아이버슨 3회, 제리 웨스트 2회이다. [30]

다만 누적 기록의 경우 조던이 179경기밖에 뛰지 않아 그렇게까지 압도적이진 않다. 2017 플레이오프에서 아직 커리어가 한참 진행중인 르브론 제임스가 조던을 제치고 역대 1위에 올랐을 정도.[31] 그러나 평균에 있어서 그는 플레이오프 통산 33.4점, 파이널 통산 33.6점으로 다른 선수들이 근접조차 못하는 압도적인 1위이며, 역대 유일하게 플레이오프 평균이 30점이 넘는 선수로 다른 정상급 득점원들[32]과 비교하더라도 앞선 수치를 기록했다.[33]

3.4. 종합: 농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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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팀도 환호하게 만든 트리플 클러치[34]

조던의 공격 스타일을 종합하자면 다음과 같다: 골밑 ~ 20피트(6미터) 범위에선 역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득점원.

그는 페이스업/포스트업 모두 능했으며 그 상태에서 언제든지 점퍼를 쏘거나 바로 돌파로 전환하는 능력도 대단했다. 실제로 그는 슛거리가 현대 슈팅가드들에 비하면 비교적 짧지만 중거리슛에 있어선 역대 최고 수준의 정확도를 자랑하며, 페이더웨이나 고속이동 중 풀업 점퍼의 정확도 역시 비할데 없이 안정적이고 정확하다. 또한 그가 슛을 쏘는데 다른 선수들이 점프조차 못 하고 바라보는 장면이 자주 나올 정도로 페이크에도 능했는데, 상대해 본 선수들이나 전문가들에 따르면 눈, 어깨, 발, 무릎 등 온갖 부위로 일반인들은 아예 느끼지도 못하는 아주 작은 모션페이크들을 조합해 순간적으로 균형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반응조차 못한다고. 심지어 포스트업 상태에서 등짝으로도 페이크를 넣는다고 한다. 결국 억지로라도 막으려 하면 앤드원 유도.

그리고 위에 언급한 돌파능력에 걸맞게 가드 포지션 최고의 슬래셔/림어태커였다. 그는 스피드, 파워, 높이, 그리고 역대 최고 수준이라 불리는 퍼스트스텝을 바탕으로 돌파해 들어가며 엄청나게 강력한 발목과 하체 덕분에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곧바로 정지, 스핀 후 페이더웨이를 던지거나 바로 풀업을 던지는 등 고난도 플레이에도 능했다. 조던과 다른 슈퍼스타들과 차이점이 있는게 이 강한 발목, 그리고 순간 움직임이다.[35]

일단 골밑에 도달하면 양손 레이업 및 더블클러치, 스쿱샷, 강력한 덩크는 물론 훅슛까지 가능했다.[36] 점프해 공중에서 수비를 따돌리고 쏘는 더블클러치 점퍼의 경우 비슷하게라도 따라하는 선수가 코비 브라이언트 정도밖에 없다.[37] 애초에 조던이 잘 쓰던 더블클러치 점프슛은 2k 같은 게임에서 해보면 거의 100% 빗나갈 정도로 농구의 상식을 벗어난 플레이다. 골밑에서 더블클러치는 자주 있지만 이걸 15~20피트나 그 이상 거리에서 하는 건 제임스 하든처럼 자유투 얻어내려고 연기하는거나 급박한 상황에서 쏘는 게 대부분이지, 조던처럼 진짜 노리고 주무기로 쏘는 사람은 없다. 대표적인 예가 1989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5차전의 "THE SHOT".

조던이 자주 하는 플레이 중 돌파해 들어가다가 축발을 중심으로 강하게 스탭을 밟으며 경쾌하게 반대쪽으로 스핀, 이후 거리에 따라 레이업/덩크를 하거나 페이더웨이를 쏘는 플레이가 있다. 사실 돌파에 이은 스핀무브는 기본기로, 이 플레이 자체를 못하는 NBA선수는 거의 없다. 그러나 조던의 차이점은 저 스탭을 정말 큼직하게 밟아서 한번 밟는 것만으로 수비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38] 그러면 다른 선수들은 왜 이렇게 못하느냐면, 저렇게 크게 스탭을 밟는 것 자체가 발목에 부담이 크며, 조던처럼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즉시 멈추며 반대방향으로 스탭을 밟는 것은 그 부하가 그냥 스핀할 때와 비교불가로 크다. 이런 플레이가 가능하면서 조던처럼 많이 뛰는 것은 발목이 정말 엄청나게 튼튼하다는 것이다.[39][40] 조던이 농구화를 매경기 갈아신으니 망정이지, 만약 다른 선수들처럼 여러 경기 신었다면 마누 지노빌리처럼 농구화가 경기 중 아작이 났을지도 모른다.[41]

또한 블랙캣과 쓰리핏시절 조던의 가장 큰 차이는 포스트업. 블랙캣 조던 역시 뛰어난 포스트무브를 구사할 수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주무기는 페이스업이었다면, 웨이트로 파워-업을 이뤄낸 다음엔 포스트업이 엄청난 옵션이 됐다. 매직 존슨과 함께 가드포지션 역대 최고의 포스트무브를 자랑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데, 매직이 파워포워드의 신체로 '빅맨'의 포스트업을 구사하며 마무리 역시 훅슛을 즐겼다면[42], 조던은 매직만큼의 묵직함이나 높이는 없는 대신 더욱 동적이고 유려한 무브를 보여주었다. 특히 후술하겠지만 포스트업에 이은 턴어라운드 페이더웨이는 그의 시그니쳐 무브로 가장 먼저 언급될 정도.

단순히 막기 어려울 뿐 아니라 수비 상성 자체를 거의 타지 않았다. 백코트 수비수 중 조던만큼 (혹은 조던 이상으로) 민첩한 선수는 극소수이긴 해도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그 정도로 빠르고 날렵한 선수들은 힘과 높이의 한계로 털리고, 조던과 비슷하거나 더 큰 선수들은 조던의 숏포스트에 이은 간결한 후속 동작으로 순식간에 벗겨진다. 그러면 바로 림어택 or 풀 업 점퍼로 마무리하는 식.

즉, 스피드로 붙이면 파워로 찍어 누르고, 힘으로 붙이면 스피드로 털어 먹는다. 애시당초 조던은 미스매치 킬이 극도로 뛰어난 선수였기에 1:1 수비는 큰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2번 포지션에서 조던보다 힘이 강한 정말 몇 안되는 선수였던 '댄 멀리'의 경우 93년 결승에서 매치업되었을때 돌파를 주구장창 당했던 적이 있다.[43]

사실 골밑을 따지면 샤킬 오닐이나 찰스 바클리가 비교 불가로 앞서며, 가드 중에서도 포스트업과 훅슛이 더 위력적인 매직도 골밑 공격 한해선 앞선다. 물론 외곽에선 레지 밀러가 앞선다. 조던의 무서운 점은 극강의 중거리 슛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스텝 두 번만 밟으면 바로 골밑까지 가는 사기급 능력을 지녔으며, 골밑에서 볼을 잡으면 바로 피니쉬할 수 있는 골밑 공격력까지 지녔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던에게 두-세 명의 선수를 붙이면 어떻게 되는가? 바로 패스로 돌리며 어시를 적립한다. 역대급 포인트 가드처럼 어시를 적립한 건 아니지만, 그의 시야는 매우 넓고 패스의 질도 좋았다. 실제 매직 존슨을 상대로한 게임에서도 특유의 경쟁심이 발동하여 득점과 어시를 높은 수치로 기록한 걸 보면, 정말 못하는 게 없다.

이런 종합적인 공격력과 다양한 옵션으로 인해 그가 역대 최강 선수로 군림하는 것.

위에서 예를 든 바클리의 경우 빅맨치고 뛰어난 슈팅력을 지녔지만 20피트 거리에서 페이크를 하면 수비가 잘 반응하지 않는다. 바클리는 골밑에선 야수이기 때문에 차라리 중거리슛을 허용할 수 있으면 훨씬 득되는 장사기 때문. 그러나 조던의 경우 그 거리에서 중거리슛을 확률 높게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돌파가 더 무섭다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 중에라도 반응하게 된다. 밀러의 경우 반대로 돌파가 그리 무섭지 않기 때문에 외곽을 주로 견제하면 된다. 조던의 페이크가 무서운 게 이 때문. 조던은 3점 라인 안 쪽에서는 돌파도 슛도 무섭기 때문에 양자택일해서 막을 수가 없다.[44] 그 거리에서도 순식간에 스텝 한번 밟고 20피트 거리로 들어와 풀업 점퍼를 날리거나, 거리를 두면 아예 가속을 붙어 골밑까지 찢고 들어오기 때문.[45]

조던의 페이크가 그렇게 잘 먹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조던은 골밑에서 3점 라인 부근 어디에서건 공을 잡으면 왼쪽/오른쪽 돌파, 패스, 슛, 포스트업 페이더웨이(왼쪽/오른쪽) 까지 옵션이 무궁무진하다. 물론 이는 스타급 스윙맨들이라면 기본으로 그렇지만 조던의 차이점은 저 옵션 전부가 성공률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수비는 조던을 봉쇄하는 게 아니라 덜 털리는 방향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조던이 유독 클러치 상황에서 강했던 것도 스윙맨이 공 잡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높은 성공률로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기 막판 클러치 상황에서는 볼 소유를 허무하게 넘겨주는 실책을 방지하기 위해 예나 지금이나 팀 내 에이스 스윙맨에게 볼을 넘겨주고[46] 그 선수가 알아서 처리하는 아이솔레이션을 주로 하는데[47] 조던은 일단 볼 잡고 있는 상태에서는 볼 핸들링이 좋아서 잘 뺏기지도 않고, 점퍼든 돌파든 다 확률높게 성공시키는데다가 심지어 더블팀 붙어도 오픈 찬스 난 동료에게 볼을 빼주는 시야까지 갖추고 있다.

시기에 따라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미친듯한 돌파와 비교적 짧은 거리 숏미드 점퍼를 주무기로 했던 80년대에는 조던의 야투 성공률이 대단히 높았는데, 평균 32점을 53.9%의 확률로 넣고, 그 전 시즌에는 평균 35점을 53.5%의 확률로 넣은 적도 있다. 보통 야투율은 슛을 많이 던질수록, 그리고 팀원들 공격력이 낮을수록 떨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원맨팀 시절이던 80년대에 저 스탯을 찍은 조던이 얼마나 사기적인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48][49]

필 잭슨의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플레이 할 때에는 운동능력에 상당히 의존하던 기존 플레이의 약점을 보완하고 체력을 관리하기 위해 포스트업과 페이드-어웨이를 주 무기로 활용하였다.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원래 이름이 트리플 포스트 플레이일 정도로 포스트 플레이가 핵심인 작전이었다. 때문에 포스트 업으로 공간을 잡아먹어줄 수 있는 수준급 빅맨이 반드시 필요했는데,[50] 불스는 수준급 빅맨이 없는 대신 조던의 포스트업이 탑 레벨의 빅맨급으로 뛰어난 덕에 효과적인 전술 수행을 해낼 수 있었다. 조던은 슈팅 가드로서도 장신인 198cm의 키에 웨이트로 다져진 엄청난 근육 덕분에 웬만한 포워드 수준의 피지컬을 지녔고, 그 덕에 어마어마한 근력으로 포스트 플레이를 펼치며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축이 될 수 있었던 것.[51]

페이드-어웨이의 경우 디르크 노비츠키와 함께 역대 최고로 통한다. 기본적으로 페이더웨이는 기술 자체의 난이도가 높은데다 수비가 밀착하면 더더욱 성공률이 낮아지며, 게다가 림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된 턴어라운드 슛이라면 한없이 적중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던은 이런 슛 적중률이 뛰어남은 물론 왠만한 선수들이면 터프샷일 정도로 뒤로 뛰면서 압도적인 안정감까지 갖췄다. 때문에 조던의 하이라이트에 나오는 페이더웨이는 다른 선수들이었다면 얄짤없이 베드 셀렉션인 경우가 매우 많다. 웬만큼 숙달된 선수가 아니라면 샷클락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마지못해 던지는 이런 슛을 메인 옵션으로 활용하고, 볼륨과 성공률을 모두 잘 뽑아낸다는 것 자체가 통상적인 플레이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는 것.

일단 페이더웨이를 구사하는 선수들은 상당히 많지만 대부분 포스트업 상태에서 돌아서 페이더웨이를 던질 때 선호하는 방향이 있다.[52] 그런데 조던은 어느 쪽으로 돌든지 폼도 거의 똑같고 성공률도 동일했다. 이것이 왜 큰 장점이 되냐면 골대를 등진 기준으로 볼 때 왼쪽 베이스라인 쪽에서 포스트업을 했을 때 무조건 오른쪽으로만 돌 경우 코트 중앙 쪽에 밀집된 상대 수비에 부딪힐 확률이 높다. 그런데 왼쪽으로 돌아서 안정적으로 쏠 수 있다면 더블팀하러 들어오는 상대 수비수를 바보로 만들고 여유있게 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페이더웨이 자체가 터프샷에 해당하는지라 주무기로 쓸만한게 아니다. 그런데 조던은 이걸 주무기로 쓰면서도 성공률이 높으니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가 외곽만을 경계하는 순간엔 자비없이 인사이드로 파고들어 여지없이 더블 클러치나 더블 클러치로 안 되면 트리플 클러치 덩크를 꽂아대서 나이를 의심케 만들었다.

페이스가 떨어진 90년대에서 하프코트에서 위력도 무서웠지만 80년대 조던의 장점 중 하나는 오픈코트에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53] 당시 시카고에서 자주 하던 플레이 중 하나가 빅맨들이 리바운드를 하고 바로 장거리 아웃렛 패스를 던져주는 것인데, 이걸 바로 조던이 받아 마무리하는 것. 포인트가드급 스피드에 스몰포워드급 키와 파워를 지닌 조던이 달리기 시작하면 제대로 따라붙을 수 있는 선수들이 거의 없었는데, 그는 발빠른 가드들이 막기는 너무 크고 강했으며 그와 비슷하거나 더 큰 키의 선수들은 그냥 달려서 간단히 제쳐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상을 보면 그가 오픈코트에서 얼마나 무서운 선수였는지 알 수 있다.[54]

4. 수비

"조던을 막는 것만을 걱정하지 마라. 조던이 너를 막는 것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던의 수비력은 게리 페이튼과 함께 가드 포지션 역대 최고로 인정받는다. 게리 페이튼은 포인트 가드이므로 슈팅가드 포지션에서는 최고의 수비수인 셈. 역대 최강의 공격력을 가진 선수가 이런 수비력까지 보유한 만큼 자연스레 역대 최고의 투웨이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87~88 시즌에 DPOY(수비왕)을 수상한 것은 물론[55] 이때부터 1차 은퇴 시즌과 복귀 시즌을 제외한 9시즌 연속(87~93 6연속, 95~98 3연속) 올 디펜시브 퍼스트팀 가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드가 갖춰야 하는 모든 수비 방법에 능통했으며, 낮고 안정적인 수비 자세는 기본이요 사이드 스텝도 소위 미친 수준이었다. 상대방과의 거리, 속도를 고려해 크게 스텝을 한 번 밟음으로써 돌파를 완전히 틀어막을 정도로 스텝을 잘 밟았으며, 압도적인 퀵니스와 말체력으로 나무랄 데 없는 퍼리미터 디펜스를 선보였다. 또한 매치업 범위도 넓어 작고 재빠른 포인트 가드부터 자기보다 큰 스몰 포워드까지 가리지 않고 잘 막았고, 빅맨을 수비할 때 보여주는 미스매치 대처 능력도 가드 포지션에선 최상급이었다.

스틸 능력 또한 일품이었으며, 볼을 운반하는 가드들을 특유의 아우라와 운동능력으로 압박하고 약간의 틈이라도 보이면 바로 스틸해냈다. 피펜/조던의 수비 콤비에게 가드가 공을 빼앗긴다면 이어지는 것은 두 마리 야생마들의 속공 후 가벼운 2점 헌납... 두 선수 모두 수비력은 막상막하지만, 피펜의 경우 조던보다 유의미하게 좋은 사이즈로 파워포워드와 같은 큰 선수들을 막는 능력이 더 좋고 팀 수비 능력이 더 뛰어나다.[56] 하지만 대인수비와 가드들을 막는 능력의 경우 조던이 더 뛰어나다. 조던은 전성기 당시 아이제아 토마스와 매치업되던 선수였다. 출처[57]

마이클 조던의 수비 레슨 비디오를 보면 그의 수비방식에 대해 나오는데, 이걸 보면 그가 왜 역대 최고의 맨투맨 수비수인지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농구에서 공격수는 (개인 측면에서 보면) 세 가지 옵션이 있다. 슛/패스/돌파이며 이게 전부 다 되는 선수를 Triple Threat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조던의 수비 스탠스를 보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전부 견제하는 방식이다.

돌파의 경우, 조던은 상대 공격수의 돌파성향에 따라 선호하지 않는 방향으로 돌파하게 유도한다.[58] 보통 돌파를 견제할때 수비수는 사이드스텝이 용이하도록 (정면에서 봤을때) 양쪽으로 넒게 자세를 잡는데 조던은 오히려 한쪽발이 앞으로 가도록 해 (정면에서 봤을때)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자세를 잡는다. 이렇게 되면 장점은 공격수가 조던이 치우친 방향으로 돌파할 경우 더 빨리 따라갈 수 있지만, 단점은 반대쪽으로 돌파할 경우 스탠스를 바꿔야하므로 늦을 수가 있다. 그런데 조던은 이 스탠스를 정말 빨리 바꾼다.[59] 이때문에 한쪽으로만 견제하다가 반대쪽을 공략당함으로 생기는 페널티를 최소화한다. 당연하지만 조던 수준으로 재빠르고 스텝이 정확한 선수가 아니면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돌파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양손으로 패스를 견제하는데 이때 쓰이는 게 상대 공격수 앞에 놓인 오른손이다. 이 오른손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공격수의 시야와 위로 가는 패스를 방해한다. 반대로 왼손은 아래에 놓여서 아래로 가는 패스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스틸을 시도한다. 조던이 지적했다시피 심판들은 위에서 아래로 쳐내는 스틸은 파울을 부는 경향이 높지만 아래에서 위로 쳐내는 스틸에 대해선 관대하기 때문에 주로 아래에서 위쪽으로 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슛의 경우는 부가적인 것에 가까운데 많은 수비수들은 돌파를 견제할 때 양손이 아래로 가 있지만 조던의 경우 한 손이 기본적으로 거의 항상 얼굴께에 있으므로 블럭을 뜨는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렇듯 퍼리미터 디펜스에 있어선 역대 최고수준이었고 가드치고 좋은 사이즈 및 높이와 강인한 힘으로 안쪽에서도 좋은 수비 역량을 보여주었으나, 또다른 역대급 수비수들인 카와이 레너드, 스카티 피펜, 디트시절 데니스 로드맨 등해 비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사이즈가 더 큰 선수들을 수비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점이었다. 앞서 언급된 선수들은 강력한 수비력은 물론 조던보다 더 큰 신체규격으로 그 어떤 포지션의 선수와 매치업이 되어도 충분히 수비가 가능한 다재다능한 수비가 가능한 선수들이다[60]. 반대로 조던의 외곽 수비 및 발빠른 가드에 대한 대처능력은 저들보다 뛰어나지만, 아예 주 포지션을 4번으로 삼아도 무리없을 저들에 비해 빅맨 수비는 상대적으로 뒤떨어진다. 즉 저 선수들은 '역대급 실력을 지닌 스윙맨 사이즈의 선수들'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스타일 자체가 미묘하게 다른데, 조던이 1~3번 수비에 강점을 보이는 수비수라면 레너드나 피펜, 젊은 로드맨은 2~4번 수비에 강점을 보이는 수비수이다. 이 때문에 아이재아 토마스처럼 작은 선수들은 조던이 상성이 더 좋고, 제임스 워디나 매직 존슨처럼 큰 선수들은 피펜이 상성이 더 좋았다.

워싱턴 시절에는 운동능력이 엄청나게 떨어진 지라 더 이상 일류수비수는 아니었지만, 이때조차 특유의 높은 농구 이해도와 센스를 이용해 좋은 수비레벨을 보여주었다.[61] 종합하자면 수비에서는 압도적인 운동능력, 투쟁심, 전술 이해도, 적정한 사이즈와 강한 힘까지 모두 갖추어 큰 공격 부담에도 불구하고 DPOY를 수상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수비수였으며 말년까지도 뛰어난 수비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 조던의 수비왕 수상 관련해서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DPOY는 82-83년부터 시상하기 시작한 의외로 역사가 짧은 상이다. 초대 수상자는 슈팅가드 시드니 몽크리프로 2년 연속 수상, 이후 224cm의 거인 센터인 마크 이튼, 스틸의 달인 알빈 로버트슨, 레이커스의 식스맨 슈팅가드였던 마이클 쿠퍼, 그리고 마이클 조던이 수상하고 이후 이튼이 한번 더 수상하면서 80년대가 마무리된다. 즉 조던은 6대 수상자로 상당히 초반 수상자인 셈이다. 90년대엔 2년 연속 데니스 로드맨, 이후 4대 센터들의 시대가 열리면서 게리 페이튼을 제외하면 전부 센터들만 수상, 00년대에 들어서는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에 이어 벤 월러스가 나오게 된다. 오히려 센터편중 현상은 90년대와 00년대 들어 들어 심해졌고[62], 80년대엔 가드가 받는 해가 더 많았다. [63]
  • 조던이 대단한 점은 가드로서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조던처럼 팀내 비중이 무지막지하게 큰 선수가 수비왕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몽크리프는 뛰어난 선수이자 팀내 득점 1위였지만 몽크리프와 비슷한 득점을 올린(1점 차이) 마퀴즈 존슨이란 선수도 있었다.[64] 이튼과 쿠퍼는 수비 스페셜리스트였으며, 로버트슨이나 페이튼은 득점력이 좋은 선수들이었지만 득점에서 1옵션은 아니었다.[65] 그러나 88년 당시 조던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불스에도 조던을 제외한 두자리수 득점원이 3명 더 있었지만 전부 13점 이하였고, 저 셋의 득점을 전부 합쳐야(35.5) 조던과 비슷했다. 즉 저들은 모두 팀내에 본인과 비슷하거나 더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있어서 부담을 덜었지만, 당시 조던은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선수가 조던밖에 없어 무지막지한 공격부담에 어시스트까지 1위, 리바운드도 5개 넘게 잡으면서 수비왕까지 해먹은 것이다. 그 외 로빈슨은 수비왕할 당시 23점을 넣는 1옵션이었지만 올스타급 조력자 숀 엘리엇과 테리 커밍스가 각각 16점, 17점씩 넣어줬고, 조던에 비견될만한 공수 원맨아미의 시즌을 보낸 선수는 마찬가지로 MVP와 DPOY를 동시에 수상한 93-94시즌의 하킴 올라주원과 19-20시즌의 야니스 아데토쿤보 뿐이다.[66]

5. 체력과 내구성


넘사벽의 운동 능력, 기술 때문에 많이 부각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사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전경기 소화 가능한 말체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내구성이다.

보통 NBA 선수 평균 은퇴연령이 27-28세다. 이는 부상에 따른 조기 은퇴나 기량 하락에 따른 해외리그 진출까지 포함된 숫자라 유념할 측면이 있지만, 흔히 생각하는 30 중후반이 nba 선수의 은퇴연령은 아닌 것은 팩트다.

참고 : https://fieldinsider.com/average-retirement-age-for-nba-players/

즉, 선수 나이 33세 정도면 이미 선발멤버에서 제외되는 시기이며, 35-6세면 은퇴하는 나이다. 아주 특출한 선수만이 계속해서 선발에 이름을 올리고, 여기서 좀 더 특이하면 팀의 1, 2옵션을 맡는 것이다. 현대 의료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무릎과 발목에 쌓이는 누적된 피로나 스트레스는 한계를 자극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신발장수 마사장은, 35세였던 97-98시즌까지 평균 38.8분, 만 40세를 넘긴 마지막 시즌엔 전경기 출장에 평균 37분을 기록했는데, 이 정도 출장 시간은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드물다.[67]

아울러 35세 때에도 출장 경기수가 82경기로 그냥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했다고 봐도 된다. 이 짓거리를 커리어 통털어서 거의 매시즌 했다. 부상당했던 2번째 시즌이나, 복귀 시즌 정도만 적게 뛰었을 뿐.

부상을 잘 안 당한 것도 있지만, 부상을 당하고 참는 능력도 대단했다. 워싱턴 위저즈 시절 복귀 후 첫 시즌에 그는 시즌 후반, 새크라멘토 킹스 전에서 동료와 부딪혀 반월상연골 파열이란 부상을 당했음에도 해당 경기에서 41분을 뛰고, 부상이 더 심해져 수술을 해야 할 때까지 무릎 통증을 참고 7경기 동안 35.9분이나 뛰었다. 심지어 수술 이후에도 시즌 아웃되기 전까지 벤치에서 7경기를 더 뛰었다.[68] 즉, 조던은 다른 80년대의 레전드들, 버드나 아이제아 토마스 등과 마찬가지로 뛸 수 없을 때까지 뛰는 선수로, 그의 놀라운 출장 경기 수는 여기서 오는 것이다. 뒤집어 보면 공수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임에도 저 늦은 나이까지 기량을 유지했다는 것이 더 놀라운 것.

6. 번외: 조던의 3점 슛 능력

조던의 3점 능력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 편인데, 확실한 것 그의 3점 능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엔 표본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수치를 기반으로 한 서술을 하고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각자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농구선수, 스윙맨에게 필요한 신체적&기술적 어빌리티를 모두 갖춘 조던이지만, 딱 하나 3점 슛에 있어서 그는 그리 정통한 선수는 아니었다. 때문에 '조던의 3점'에 대한 논의가 제법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편. 조던의 통산 3점슛 성공률은 통산 32.7%, 3점 라인이 단축되었던 시즌들을 제외하면 워싱턴 시절까지 1,189개를 던져 343개 성공, 28.8%에 그쳤다. 이 때문에 수치상으로 보면 "3점 슛 능력이 없다"라고 정리하기 쉽다. 그러나 고려해야할 부분은 첫째, 조던은 커리어동안 슈팅력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선수이고, 둘째, 조던은 3점 슛을 통계적으로 의미를 가질 정도로 쏜 적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필 잭슨 감독을 포함해 대다수의 조던 주변인들은 조던이 NBA 데뷔 후 훈련을 통해 슈팅력을 키워갔다고 증언한다.[69] 예전의 조던은 슛거리가 그리 긴 선수가 아니었으나[70] 꾸준히 점프슛 능력을 키우며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안정적인 중장거리 점퍼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이런 슈팅의 발전이 수치상으로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조던은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 선수였고, 3점 라인 밖에서 볼을 받아 슛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71] 또한 조던 본인의 선호도도 있었는데, 조던은 확률 높은 공격을 선호했고 3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본인도 인정한 바가 있다. 애시당초 3점 슛을 하나의 옵션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시도수를 가져간 시즌이 별로 없다는 것.

예를 들어 래리 버드의 경우 79년에 데뷔한 선수이지만 뛰어난 외곽슛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는 3점 성공률이 루키 시즌에 40.6%를 기록한 직후 2년차 때 27%, 3년차 때 21.2%로 떨어질 정도로 들쭉날쭉했다.[72] 그 이유는 3점슛 시도 갯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2년차때부터 5년차이던 83-84시즌까지 버드는 경기당 평균 0.9개의 3점슛을 시도, 0.2개를 성공시키며 25.7%를 기록했다. 당시 셀틱스는 불스의 조던과 마찬가지로 버드가 3점슛을 쏘게 하는 전술이 거의 없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저 정도로 적은 시도수로는 정확하게 선수의 슈팅력을 반영할 수 없다, 즉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 외 버드의 나머지 시즌을 보면 루키시즌 0.7개 성공/40.6%, 그 외엔 0.7개 성공/42.7%, 1개 성공/42.3%, 1.2개 성공/40%, 1.3개 성공/41.4%, 0.9개 성공/33.3%, 1.3개 성공/38.9%, 1.2개 성공/40.6%를 기록했다.

즉, 어느정도 유의미한 시도수를 가져간 시점에서는 오히려 극도로 적은 시도를 가져갔을 때 보단 그럴싸한 성공률이 나왔다. 그는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통산 88.6%에 달하는 당대 최고의 슈터였기에 3점 시도수와 성공률이 미미했던 2~5년차의 3점 지표에 대해선 괴리감이 생기는 것. 또한 애시당초 미드레인지, 자유투, 3점 슛의 요구 능력은 (어느정도 비례성이 있더라도) 완전히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73] 그러나 버드의 경우 '무의미한 시도수'를 가져간 2~5년차 앞 뒤, 즉 루키 시즌과 6년차 시즌에 4할대를 기록했으니 만큼 적어도 이 문단에서는 '유의미한 시도수와 무의미한 시도수의 성공률 괴리'의 사례로 인정할 수 있다.

이제 조던의 시즌별 시도/성공 갯수를 보면 된다. 루키시즌부터 88-89시즌까지는 사실 볼 것도 없다. 가장 적었을 때가 0.6개 시도해 0.1개 넣고 13.2%를 기록한 87-88시즌이었고, 가장 많을 때는 1.2개 던져 0.3개 넣어 27.6%를 기록한 88-89시즌, 5시즌 통합하면 경기당 0.8개 던져 0.2개를 넣었 20.2%를 기록했다. 그러나 조던이 3점슛을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정도로 시도한 시즌만 놓고 본다면 89-90시즌에는 경기당 3개를 던져 1.1개를 넣고 37.6%를 기록했고, 92-93시즌에는 2.9개를 던져 1개 성공, 35.2%를 기록했다. 94-95시즌에 1.9개 중 절반을 넣어 5할을 기록한 건 표본수가 적으니 제외, 95-96시즌에 1.4개 성공/3.2개 시도/42.7%, 96-97시즌에 1.4개 성공/3.6개 시도/37.4%까지 조던이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을 정도로 3점을 던진 총 네 시즌동안 각각 37.6%, 35.2%, 42.7%, 37.4%를 기록했다.

저 중 94-95, 95-96, 96-97시즌은 3점이 롱2에 가까웠을 정도의 단축라인이 있던 시즌이라는 점은 확실하게 감안할 필요가 있다.[74] 게다가 96과 97 두 시즌은 조던이 3점 슛을 각각 3.2개, 3.6개로 커리어 중 가장 많은 시도수를 가져간 구간이고, 라인이 원래 길이로 돌아온 97-98 시즌에는 1.5개 시도, 23.8%로 3점 옵션을 사실상 거세한 시즌이다. 그러나 89-90, 92-93의 경우 정상적인 라인에서 3점 슛을 3개 가량 시도, 3할 중반대 확률의 성공률을 보여주었다.[75]

감안해야 할 것은 기준을 충족하는 게 두 시즌 뿐이라 표본이 적다는 것, 그리고 조던이 3점을 신중하게 쏘는 선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비 브라이언트는 3점 슛이 특출나진 않아도 상당히 능숙한 편이었는데, 전성기인 05-06시즌에 수비를 달고 쏘는 막장 슛셀렉션으로 34.7%에 그쳤다. 이걸 두고 "조던이 코비보다 3점 슛을 잘 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다른 예로 단축라인에서 치뤄진 95-96시즌에 조던의 3점 성공률은 41%를 기록한 레지 밀러보다 높았지만, 이 때 조던이 3.2개 쏜 것에 비해 밀러는 5.4개나 쐈다. 즉,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표본이 두 시즌 뿐인 조던의 성공률을, 보다 적극적으로 3점을 던지며 커리어 내내 유의미한 기록을 낸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커리어 전반적으로 평범하거나 평균 이하의 3점 슈터였던 선수라도 시즌 단위로 쪼개보면 그 정도 시도하여 그 정도 기록을 낸 경우가 흔하다면 흔하기 때문.[76]

물론 '조던의 3점이 유의미한 시도수 하에서 괜찮은 성공률을 기록한 시즌'은 적다곤 하나 어쨌건 복수 존재하는 반면, '조던의 3점이 유의미한 시도수 하에서도 나쁜 성공률을 기록한 시즌'은 아예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게 골때린다면 골때리는 게 처음으로 3점 장착이 이루어진 89-90 시즌부터 이와 성공률이 비슷한 92-93 시즌까지, 한 번 장착이 이루어진 선수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일관적으로 2~3개씩만이라도 던져주었다면 사실 이런 논의가 나올 필요도 없었다. 그 36% 전후의 성공률이 얼마나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지는 얼추 확인할 수 있었을테니. 그런데 조던은 3개 시도에 37.6%라는 지표를 기록하며 3점을 꽤 쏠쏠하게 써먹었음에도 그 다음 두시즌간 경기당 1개 정도만 시도하며 3점 옵션을 사실상 봉인해버렸다. 보통 3점을 장착해 그 맛을 본 선수들은 그 다음 시즌에도 비슷하거나 더 많은 3점을 시도한다는 걸 생각하면, 불스 오펜스가 조던이 3점을 자주 던지기 좋은 시스템은 아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선호하는 옵션은 아니었던 셈.

조던의 3점슛 능력은 위에 언급된 두 시즌을(정상라인/유의미한 시도 갯수)만을 본다면 기껏해야 평균 3개 시도, 시즌 35~37% 정도로 당대 슈팅가드 중엔 평균 이상 수준이고 현대 기준으로는 시도수가 적긴 해도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조던이 3점슛이 뛰어났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축라인을 제외하면 커리어 2할대" 성공률이 암시하는 수준의 형편없는 외곽슈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77][78] 어쨌거나 유의미한 통계 수치가 저 정도이고, 요점은 두가지이다.
  • 첫째는 '유의미한 수의 3점을 던진 (즉 옵션으로 활용한) 시즌'에는 일관적으로 준수한 성공률을 기록했다는 것. 일반적으로 3점은 시도수와 성공률이 반비례한다곤 하나, 지극히 적은 시도를 가져간 선수들에게는 이 공식이 통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 둘째는 정상 라인으로 제한할 경우 '그러한 시즌이 고작 두 시즌 뿐'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라는 것. 위에 버드가 예시로 언급되긴 했으나, 그 버드에 비해서도 "통상적인 조건 하에 유의미한 3점을 시도한 시즌"이 현저히 적은 것 역시 사실이고, 애초에 조던은 버드처럼 뛰어난 외곽슈팅력을 갖고 있다고 인정받는 선수는 아니므로 케이스가 다르다.[79] 버드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수준의 3점을 시도한 적이 통산 13시즌 중 6번이고, 조던은 두 번 밖에 안되니 애초에 동일 선상에서 비교될 케이스가 아니며, 이 문서에서 버드가 언급된 이유도 둘을 비교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며, 포인트는 버드건 조던이건 둘 다 표본이 지나치게 적은 시즌은 이들의 슈팅능력을 성공률에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가지고 어떻게 해석할지는 사실 각자에게 달렸고, 명백히 '조던의 3점은 어느 정도였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기록이 너무나 부족하다. 즉, 저 수치를 커리어 내내 일관적으로 기록했을지, 아니면 몇시즌에 그칠지는 알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조던의 3점은 괜찮은 수준이었다' 혹은 '조던의 3점 슛 능력은 떨어진다''라고 잘라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약하면,
  • 만약 조던이 정상라인/유의미한 시도 갯수를 가졌던 시즌이 래리 버드처럼 여러 번이었다면 이를 기반으로 '조던은 저 정도의 슈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딱 두 번 뿐이라는 점에서 조던은 괜찮은 3점 슈터였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 만약 조던이 정상라인/유의미한 시도 갯수를 가졌던 두 시즌 중 성공률이 수준 이하였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조던은 3점이 약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조던의 3점 슛 능력이 떨어진다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도 없다.

포인트는 조던의 3점 능력이 괜찮은 수준이었다고 볼만한 근거도 있고, 반대로 조던의 3점 능력이 떨어진다고 볼만한 근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 무리하게 결론을 내리기보단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고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문단에 기여한 이들 중 '조던이 훌륭한 3점 슈터'라고 주장하는 이는 없다. 조던이 유의미한 시도수와 정상 라인이라는 조건을 만족한 두 시즌을 근거로 약 3개 정도 시도하는 선에서는 '실제로 조던이 기록한 바 있는' 36% 전후의 성공률을 기록할 수 있다는 예측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고, 반대로 조던이 유의미한 시도를 한 적이 두번이기 때문에 '저 때가 유독 성공률이 높았을 뿐 저 정도 수준의 슈터는 아니다'란 예측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1] 사실 질문 자체는 병크에 가까운 내용인데 위트 있게 받아쳐서 명언으로 남은 부분. 이 외에도 "신이 된 기분이 어떠냐?"란 이뭐병스러운 질문도 받은 적이 있다.[2] 실제로 스카티 피펜의 경우 맘먹고 붙으면 어지간한 포인트 가드는 찍어누를 수 있는 수비력을 가졌지만, 스몰포워드를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론 하퍼와 함께 뛸 때에도 주 수비 포지션은 윙이었다. 2m 100kg를 넘는 그가 포인트 가드를 길게 막았다간 장기적으로 무릎이나 관절이 죄다 갈려나가 남아나지를 않을테니까. (다만 그땐 조던 역시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 1번 수비는 잘 맡지 않았다.)[3] 물론 저들보다 상대적으로 작아서 오는 단점이 없는건 아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인 이상 신체조건에 따라 장점이 있다면 단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벤 월러스드레이먼드 그린은 빅맨임에도 가드까지 막아설 수 있는 역대급의 전천후 수비력을 자랑하지만, 언더사이즈의 한계로 체격과 기술이 모두 뛰어난 7푸터 에이스들은 비교적 막기가 힘들다. 반면 디켐베 무톰보루디 고베어같이 큰 선수들은 작고 재빠른 선수들을 막기 힘들다. 조던의 경우 저들보다 작기 때문에 더 빠르지만 체격과 파워가 떨어져서 저들은 막을 수 있는 빅맨들과는 매치업하기 힘들다. 대표적으로 91파이널의 경우 사실상 빅맨의 신체를 지닌 매직 존슨을 막을 때 많이 힘들어했고, 피펜이 오히려 피지컬적으로 더 유리했다.[4] 물론 이 때는 2차전을 제외하곤 조던이 주매치업이었는데, 매직의 주요 무기인 포스트업은 (조던보다는 좀 느려도 키가 더 크고 힘이 강한) 피펜조차 막기 무리였고, 이때만 해도 피펜의 전성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피지컬에선 밀려도 조던이 막는게 더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피펜이 매직에게 붙으면 조던은 워디를 막아야했는데, 워디도 매직과 비슷한 사이즈에 파워라서 어차피 체력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워디가 시리즈 중 유일하게 결장한 5차전에서 피펜과 조던은 매직을 번갈아가며 막을 수 있었고, 이 경기에서 피펜은 시리즈 처음으로 득점에서 조던을 앞서며 그야말로 날아다녔다.[5] 참고로 레너드는 역대로도 보기드문 손 크기를 가졌으나 정작 본인이 속한 2011 드래프트 클래스에서는 2위에 그쳤다. 1위는 그레고리 스미스.# 이 선수는 맨발키 198cm로 측정되었던 카와이와 비교해 5cm가 더 큰 203cm의 체격이며, 후술할 사이트 기준 NBA 역대 4위의 손 크기를 가진 선수이다. 역대 NBA 손크기 순위 거구의 센터인 샤킬 오닐만 해도 해당 신장대(213~216)에서 가장 큰 축에 드는 손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데, 포워드인 레너드나 가드인 조던이 그 오닐급의 손 크기를 가졌다는건 정말 특수한 사례이다.[6] 조던, 그리고 조던보다도 손이 컸던 줄리어스 어빙은 돌파할때 볼을 잡고 페이크를 쓰거나 크게 휘둘러 수비를 제끼는 등 플레이를 한손으로 할 수 있었다. 래리 버드의 경우 큰 손과 강한 악력을 이용해 한손으로 강하게 패스 페이크를 해서 수비를 낚은 뒤 바로 볼을 빼 슛으로 연결하는 플레이가 가능했는데, 조던은 버드와는 좀 달랐지만 속공시 한손으로 살짝 패스 페이크를 하고 바로 레이업으로 연결하기도 했다. 조던의 특기 중 하나가 바로 한손 슛이었다.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상체균형만 유지해 안정적으로 슛을 쏘는건 그 자체만으로도 고난도 플레이인데, 조던은 아예 한손으로 공을 잡고 슛을 올려놓을 수 있었다. 코비 브라이언트같은 선수들은 저런 슛이 가능하지만 한손으로 하진 못하는데, 조던은 케빈 가넷이나 샤킬 오닐처럼 손이 솥뚜껑처럼 큰 7푸터들만의 전유물에 가까운 한손슛을 저런식으로 쐈던 것이다. -하지만 샤크는 자유투가 에러-[7] 같은 예시로 르브론 역시 순수 운동능력은 클리블래드 1기 시절이 최고라고들 하지만, 벌크업으로 어지간한 7풋 덩어리 센터급의 체중인 120kg까지 늘렸던 마이애미 시절이 종합적으로는 더 강력한 하드웨어였다는 평이 적지않다.[8] 신체적 최전성기인 1차 쓰리핏 직후의 조던이었다면 오히려 순수 힘에 있어선 아테스트에게 압도당했을 것이다. 물론 그 시점에서도 조던은 가드포지션 최상급 피지컬이었지만, 앞서 언급했듯 샌디포드아테스트는 파워 하나만큼은 그 르브론에게도 전혀 꿇리지 않고 어지간한 4~5번 덩어리 빅맨들조차 힘으로는 제압하기 버거워 할 정도의 묵직함과 떡대를 자랑했다.[9] 여담으로 사실 아테스트같은 선수들은 오히려 조던을 막기 힘든 유형에 속한다. 아래에도 언급되지만 조던은 2미터 언저리 선수들 중 압도적으로 재빠른 선수들이라 그를 가장 잘 막는 선수들은 190대 초반에 어느 정도 파워를 지닌 선수들이었고, 이 때문에 디트로이트는 백투백 수비왕인 데니스 로드맨이 아닌 조 듀마스를 그의 전담 마크맨으로 두었다. 아테스트가 덩치에 비해 사이드스탭이 빠른 선수이긴 하나 조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조던은 워싱턴 시절 몸무게가 늘고 스피드 및 특히 순간움직임이 크게 느려졌기 때문에 스몰포워드로 뛰어 아테스트와 매치업되었지, 불스 시절 조던과 아테스트는 애초에 포지션과 체급이 다르다. 93년 파이널에서 디펜스 세컨팀 가드였던 댄 멀리는 조던을 상대로 파워에서 우위를 점하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가드였지만 조던의 스탭을 못 따라가 정신없이 털렸다. 반면 바로 직전 시리즈였던 동부 결승에서 조던만큼 재빨랐던 단신 존 스탁스는 조던을 비교적 잘 막았다. (물론 혼자 막은게 아니라 닉스, 선즈의 수비력가 결정적이었지만 스탁스가 훨씬 선방한 건 확실하다.)[10] 바리에이션으로 체공시간 2.5초라던가 2초 등도 있고 이 주제로 수백플짜리 키배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11] 바로 앞에서 이걸 목격하고 당한 상대팀 찰스 바클리"도대체 저걸 무슨수로 막냐"며 고개를 절래 흔들며 허탈하게 웃음짓는게 가히 압권.[12]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위 둘도 알아주는 퍼스트 스텝을 가지고 있었다.[13] 많은 플레이에서 조던을 쏙 닮은 코비 브라이언트 역시 베이스라인 돌파와 관련 기술이 뛰어나지만, 조던은 훨씬 민첩했기 때문에 더 위력적이었던 것. 사실 코비는 조던을 워낙 닮았고 필 잭슨 감독피셜로 조던보다도 더 노력을 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론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시피했으나(기본기가 조던이 더 좋지만 드리블 잔기술이나 슛거리는 코비가 더 낫고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결국 둘 다 완벽에 가까운 기술을 가졌단 점에서 우열을 가리는게 별 의미는 없다), 이런 선천적 신체능력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14] 90년대 조던에게 익숙한 한국 농구팬들이 80년대 조던의 경기를 보면 또 하나의 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웨이트가 완벽하지는 않고 플레이도 90년대에 비하면 영 엉성해 보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사람이 아닌 듯한 스피드와 탄력을 지녔다.[15] 조던 시대엔 (3점라인 밖을 많이 수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3점라인 안쪽의 수비밀도가 높은데다 더 피지컬해서 골밑까지 돌파해들어가는 게 더욱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조던은 그 빠른 발을 갖고도 돌파해들어가다가 순간적으로 멈춰 풀업점퍼를 쏘는 방식으로 대부분 득점을 했다. 반면 르브론은 핸드체킹룰 개정 이후 시대 선수고 수비가 더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시대기 때문에 풀업보다는 그냥 가속도를 올려 육중한 덩치로 밀고 들어가는 식의 돌파를 자주 썼다. 물론 시대가 다른만큼 각자 시대에 맞춰 진화한 결과다. 만약 르브론이 조던시대에 뛰었다면 아무리 그의 신체스펙이 사기라도 매번 몸뚱이들 사이로 돌파해들어가는 건 무리이므로(8,90년대의 평균 신체사이즈는 현재와 별 차이가 없었다. 키는 같았고 몸무게가 약간 가벼웠던 정도) 풀업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쓸 것이며, 조던이 현시대에 뛰었다면 풀업보다는 끝까지 들어가 레이업/덩크하는 마무리를 많이 쓸 것이다.[16] 2021년 현재 NBA에서 최고의 미드레인지 슈터로 평가받는 레너드, 듀란트는 각각 플레이오프 미드레인지 최다 성공 갯수 시즌 기준으로 카와이 59/118(49.2%), 듀란트 88/162(54.3%)를 기록했다. 1992 조던의 플옵 미드레인지 기록은 무려 142/292(48.6%)이며 경기당으로 따져도 카와이 경기당 2.4개, 듀란트 경기당 4.2개, 조던 경기당 6.5개이다. 물론 시도수의 경우 현대농구 트렌드가 미드레인지보다는 3점슛을 더 많이 던지는 추세임을 감안할 필요는 있고, 케빈 듀란트디르크 노비츠키 등은 조던 못지 않은 미드레인지 슈터로 인정받는다. 주로 저 셋이 미드레인지 3강으로 통하는 편.[17] 자유투는 초창기부터 완성되어 있었지만 이건 정자세에서 쏘는 거니까.[18] 아무리 돌파의 비중을 높여도 빅맨이 아닌 이상에야 점퍼는 필수다. 전성기 르브론처럼 스윙맨이면서도 돌파만으로 20득점씩 할 수 있는 선수라도 점퍼를 결코 도외시하지는 않았으며, 심지어 센터조차도 뛰어난 스코어러가 되기 위해선 미드레인지 정도는 예전부터 필수에 가까웠다.[19] 물론 점퍼와 자유투 능력은 연관성이 아예 없지는 않더라도 엄연히 별개이다.[20] 여담이지만 최정상급 슈터들의 경우 자유투 성공률이 80년대 후반~90년대와 2020년대 선수들 사이 큰 차이가 없다. 당시에도 현재도 최고의 슈터들은 80%후반~90대 초반이다. 역대 커리어 자유투 성공률톱 15명 중 시대를 나눠보면 현역(10~20년대 선수)이 네명(스테판 커리, 데미안 릴라드, JJ 레딕, 케빈 듀란트), 그리고 조던이 뛰었던 시대(8~90년대) 선수가 네 명(마크 프라이스, 레지 밀러, 래리 버드, 스캇 스카일스), 그리고 90~00년대에 주로 뛴 선수들이 네 명(스티브 내시, 페자 스토야코비치, 천시 빌럽스, 레이 앨런), 그리고 5~60년대의 빌 샤먼, 6~70년대의 릭 베리, 7~80년대의 캘빈 머피가 한 명씩 있다. 참고: https://www.basketball-reference.com/leaders/ft_pct_career.html[21] 평균 자유투로 따질시 조던이 리그에서 뛴 15년간 리그의 자유투 평균 성공률은 75.5%가 나온다. 2010년 이후 리그 자유투 평균 성공률은 74.9%, 76.3%, 75.2%, 75.3%, 75.6%, 75%, 75.7%, 77.2%, 76.7%, 76.7%, 77.3%, 77.8%이니, 2020년대에 비교하면 유의미한 차이가 나지만 2010년대 전반과 비교했을 때 아주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22] 번역이 애매한데 '슛감' 정도의 의미로, 슛을 안정적으로 넣어줄 수 있는 손목의 감각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23] 현대 농구판에서 최근 두번의 시즌 아웃을 겪어서 아직 8번의 시즌만 소화한 클레이 탐슨이 통산 84.8%인데 이는 조던이 데뷔 후 8번째 시즌까지 소화했을 당시 자유투 성공률인 84.7%과 거의 똑같다. 상세한 비교를 하면 조던은 8번시즌동안 최저 83.2%에서 최고 85.7%로 기복이 적었고, 탐슨은 루키 시즌부터 86.8%의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다가 3번째 시즌에 79.5%로 떨어졌고, 최고가 87.9%/최저가 81.6%였다. 포인트는 당시에도 현재에도 조던의 자유투 실력은 딱 준수한 수준이란 것.[24] 커의 자유투 실력은 기계처럼 정확했지만 통산 0.8개에 불과하다보니 자유투 쏘는 빈도수가 적었기에 성공률은 들쭉날쭉했다.(커리어 86.4%) 예를 들어 루키시즌 66.7%를 기록했는데 실상은 시즌 내내 9개 던져서(...) 6개 넣었다. 이 정도면 한번 삑사리 나면 시즌 전체 성공률이 유의미하게 낮아지는 수준이다.[25] 물론 애초에 자유투 성공률이 84%에 육박한다면 이것이 준수하지 못 한 수치라고 보는 이는 당연히 없다. 왠만큼 슛 좀 쏜다는 선수들의 자유투 성공률도 생각보다 8할 중반대를 넘어가는게 쉽지 않기 때문. 간혹 조던의 자유투에 대해 나오는 '의외'라는 평가 역시 그 수치 자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왠지 자유투 정돈 9할대로도 넣어버릴 것 같은(...) 조던의 '이미지'와의 괴리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26] 래리 버드,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등도 클러치 플레이어로써 명성이 자자하다.[27] 오히려 89시즌엔 결승 상대인 LA 레이커스조차 스윕해버린 압도적 전력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유일하게 플레이오프 패배(2패)를 안길 정도로 강팀들을 물고 늘어졌다. 참고로 배드 보이즈는 백투백 우승 시즌에 플레이오프에서 7경기 패배했는데 이중 5경기가 조던 불스에 의한 패배였다. 비록 연장 접전 끝에 패하긴 했지만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이자 당대 최강의 수비팀인 86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플레이오프 기록인 63점을 세운 것도 그의 강심장을 드러내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28] 반면 시드나 승수에서 앞서는 팀을 잡아낸 적은 몇 번 있다. 89년에는 팀로스터 붕괴의 여파로 47승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57승 캐브스, 52승 닉스를 연거푸 잡고 컨퍼런스 결승까지 오른 적이 대표적. 왕조 시절에도 팀승수가 57승으로 떨어진 93년에 60승 닉스를 리버스 스윕으로 잡고, 62승 선즈를 상대로 원정 전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조던의 불스는 위기에 처했을 때나 원정에 강한 팀이었는데, 98년 파이널 최종전에서도 불리한 상황에서 조던의 원맨쇼로 원정에서 우승했다.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뺏긴 상태에서 치른 98년 파이널의 원정 성적은 2승1패.[29] 출처[30] 50점을 2회 이상 기록한 선수는 이들 뿐이며, 찰스 바클리(56점),레이 앨런(51점), 코비 브라이언트(50점), 빈스 카터(50점), 칼 말론 (50점), 도미니크 윌킨스(50점) 등도 한번씩 넘겨본 적이 있다. 르브론도 51점을 기록하며 여기에 합류했는데 문제는 르브론만 져서 파이널 게임에서 50점을 넣고도 진 유일한 선수가 됐다.[31] 212경기 째에서 조던을 제쳤다. 이는 클러치 샷 메이드도 다르지 않아 플레이오프에서 클러치 샷 메이드는 르브론 제임스가 가장 많고 성공률도 조던과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쪽은 커리어 초창기부터 새가슴 논쟁이 없던 조던과 다르게 본인이 새가슴이라는 평가를 스스로 극복한 경우이다.[32] 제임스 28.4점, 제리 웨스트 29.1점, 케빈 듀란트 28.8점 등[33] 최근에 주가를 크게 올리고 있는 루카 돈치치가 조던의 플레이오프 평균 득점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아마 커리어가 진행되어 경기수가 더 쌓이면 유일이 유이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34] 이 트리플 클러치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 영상을 보면 상대팀인 뉴저지 네츠 선수들도 이 플레이에 경악해서 팀 동료가 슈퍼플레이 한 것 마냥 환호하려다가 감독 눈치보고 급하게 주저앉는다.[35] 르브론 제임스의 경우 조던을 능가하는 파워와 조던 못지 않은 스피드, 강력한 발목을 지녔지만 조던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돌파를 하거나 돌파에서 바로 후속동작으로 전환하는 스피드는 현저히 모자랐다. 물론 르브론의 가속/감속 능력도 상당하지만 아무래도 이쪽은 113~120kg라는, 슬래셔임에도 사실상 센터 수준의 체중을 가졌기에 퀵니스와 제동 등에서는 조던보다 떨어졌다. 곧바로 풀스피드로 가속할 수 있는 조던과 달리 르브론은 그렇게 바로 가속하긴 덩치가 너무 크기 때문에 돌파할때 그만큼 속력을 붙힐만한 공간이 더 필요하기도 하다. 퍼스트스텝은 조던 못지 않다고 평가받던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과 그랜트 힐은 내구도가 부족했다. 특히 힐의 퍼스트스텝은 (체격이 가냘파서 림어택 비중이 비교적 적었던 맥그레이디과 달리) 조던에 비할만한 스피드와 파워를 지녔지만, 전성기에 돌입해야할 20대 후반에 발목이 아작나며 엘리트 선수로서 생명은 끝났다. 코비는 운동능력이나 내구도가 조던이나 르브론같은 비인간적인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36] 다만 습관인지 왼손 덩크의 비중은 극히 적었다. 그의 돌파력은 왼쪽/오른쪽 따질 것 없이 모두 위력적이었는데 유독 왼쪽으로 돌파하면 레이업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은 손을 바꿔 오른손으로 덩크.[37] 완성도가 비슷하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이쪽은 피벗으로 스핀하며 수비를 벗겨내는 이상한 슛을 애용하기도(...) 조던은 빠른 움직임과 강한 힘으로 수비를 1차적으로 벗겨낸 다음 미처 제치지 못한 수비는 높은 점프력을 활용한 체공력으로 벗겨내는 식의 더블클러치슛을 많이 쐈는데, 코비는 조던만큼의 운동능력을 지니지 못한 반면 더 유연했기에 몸을 비틀어서 수비에게서 벗어나는 식의 슛이 있었다. 피벗 후 스핀의 경우 조던은 빠르고 경쾌한 스탭을 밟고 높이 뛰었기에 스핀방향의 축발을 정석적으로 밟고 도는 것만으로도 여유있게 턴어러운드 슛을 쏠 수 있었지만, 코비는 스탭만큼으로 그만큼의 위력을 내진 못했지만 엄청나게 유연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축발이 왼발인데 오른쪽으로 도는 희한한 턴어라운드 슛을 쏘기도 했다. 직접 해보면 알겠지만 이 짓을 하면 공중에서 몸이 뒤틀려서 꼬이기 마련인데 코비는 엄청나게 유연했기에 이게 가능했다. 이 점은 코비의 대단한 부분인데, 조던보다 여러 부분에서 재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단순한 하위호환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음에도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 (조던만큼의 위력은 아니라도) 특기를 만들어낸 것.[38] 가장 유명한 플레이 중 하나가 97년 뉴욕 닉스전에서 나온 것으로, 별 다른 동작 없이 스탭 한번 밟음으로서 마크맨인 앨런 휴스턴을 멀찌감찌 떨어뜨리고 여유롭게 슛을 쐈다. 이때 나온 해설자의 멘트가 "Allan Houston is somewhere in Houston!"[39] 신기하게 이렇게 발목을 혹사시켰는데도 발목으로 고생한 적은 없다. 2년차 때 발이 부러진 적이 있고, 위저즈 시절에 무릎이 나가서 계속 고생한 것과 대비된다. 물론 발목이 잠깐 돌아가 절뚝거린다던지 그런 적은 많았지만, 93년 닉스 시리즈에 손목통증 때문에 고생을 하거나, 96년 파이널처럼 등 통증 때문에 경기력에 지장을 받은 것처럼 발목이 큰 문제가 된 적은 없다.[40] 위에 언급된 힐의 케이스처럼 2미터/100kg 언저리의 선수가 저 정도로 빠르고 격렬하게 움직인다면 발목에 부담이 가서 내구도를 깎아먹어야 정상이다. 심지어 힐은 퍼스트스탭만 보면 조던에 비할 정도지만 전체적으로 순간움직임이나 격렬한 움직임이 조던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빠른 퍼스트스탭으로 전력질주를 하다가 급제동하는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힘을 가한다면 제동하는 압력+새 방향으로 움직이는 압력이 전부 발목으로 가게 된다. 르브론이 센터급 덩치로 가드처럼 뛰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던의 저 불가사의한 발목은 타고났단 말로밖에 설명이 안된다.[41] 반대로 이렇게 하기 때문에 농구화의 내구도 소모가 심해서 매 경기 갈아신는 것일 수도 있다.[42] 물론 매직은 훅슛을 거리 숏미들에 가까운 거리에서도 무난하게 던질 정도로 롱훅에 능했다. 대표적으로 87년 파이널 4차전의 베이비 훅[43] 조던을 가장 잘 막았던 선수들은 조던보다 크고 강한 타입이 아니었다. 오히려 작더라도 조던의 힘을 어느 정도까진 버틸 수 있는 하체 근력과 조던의 움직임을 쫓을 수 있는 스피드, 그리고 조던의 체력을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와 근성을 가진 190 초반대의 가드들이었다. 그 예시가 바로 조 듀마스게리 페이튼. 현대 농구로 비유하면 카와이 레너드보다 토니 앨런같은 타입이 그나마 적합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토니 앨런은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또다른 미드레인지 마스터 듀란트와 맞대결했을 때 카와이만큼이나 잘 제어한 경험이 있다.[44] 심지어 포틀랜드, 시애틀과의 파이널에서 보듯이 3점 라인 밖에서도 안 막을 수가 없다.[45] 조던은 사실 돌파 관련해서는 당시 농구 트렌드 때문에 약간 손해를 본 편이다. 조던 시대엔 3점의 비중이 적었기 때문에 수비가 3점 라인 안쪽에 옹기종기 밀집되어 있었고, 수비수가 공격수의 진행방향에 손을 써서 영향을 주는 것(핸드체킹)을 허용했기 때문에 가속하기도 그만큼 더 어려웠다. 이 때문에 조던은 골밑까지 쭉 돌파하는 것보다는 돌파를 하다가 기습적으로 멈춰 풀업 점퍼를 쏘는 공격스타일이었다. 실제로 운동능력이 절정에 달했던 초창기에도 보면 레이업/덩크보다 풀업 점퍼를 쏘는 비중이 월등히 높으며, 63점 신기록을 세운 보스턴 셀틱스와의 경기도 보면 대부분이 중거리슛으로 한 득점이다. 골밑돌파를 주구장창 할때는 93년 파이널처럼 상대팀 센터의 골밑존재감이 빈약했을 때 정도이다. 이 때문에 조던이 현대농구에서 뛰었다면 그 위력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최소한 돌파의 비중이 훨씬 늘었을 거란 점과 골밑공략의 빈도수가 늘었을 거란 예측은 할 수 있다. 핸드체킹이 없고 수비밀집도가 떨어져서 골밑까지 돌파를 할 수 있는데 굳이 멈춰서 중거리슛을 날릴 필요가 없기 때문.[46] 빅맨을 활용한 골밑득점이 성공률은 더 높지만 3초룰 때문에 골밑에서 좋은 자리를 잡는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게다가 클러치상황엔 확률높은 공격 방지 + 실패한 슛 리바운드 단속 때문에 골밑이 훨씬 빡빡해진다. 역대급 골밑 공격수인 샤킬 오닐을 보유하고 있던 밀레니엄 레이커스도 경기 막판 클러치 슛은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스윙맨이나 데릭 피셔, 로버트 오리같은 외곽슈터의 몫이었다.[47] 모션 오펜스가 아무리 정교한 공격 방식이고 오픈찬스를 만들 수 있어도, 수비가 타이트해지고 집중력이 말도 안되게 높아지는 경기 막판 클러치 상황에서는 패스 돌리다가 패스길 끊겨서 허무하게 볼 소유권을 넘겨주거나, 슛 성공률 낮은 엉뚱한 선수에게 오픈이 날 수도 있다. 그리고 오픈찬스가 난다고 해서 다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48] 참고로 조던이 35점을 찍을 때는 그를 제외하면 10점대 초중반이 팀 내 2위일 정도로 공격력이 빈약했는데 저렇게 득점을 많이하면서 팀 내 야투율 1위였다. 심지어 조던은 악질 수비로 유명한 "배드 보이즈" 피스톤즈를 상대로 야투율 77%로 59점을 넣은 적도 있다.[49] 이 때 기록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이때 조던은 야투 27개 중 21개를 넣고 자유투 19개 중 17개를 적중시켰다. 이때 훗날 스타가 되는 스카티 피펜과 호레이스 그랜트는 경기당 20분 정도 출전하는 후보에 불과했던 터라 (이날 둘이 합쳐 슛 7개 던져 1점 넣었다) 이때는 그야말로 완벽한 조던의 원맨팀이었다. 오죽하면 팀내 2옵션이 득점이 아닌 리바운드와 수비에 특화된 파워 포워드 찰스 오클리(12.4점)일 정도. 심지어 팀에서 두자리수 득점을 한 선수는 이 둘뿐이었다.[50] 이 때문에 후에 LA 레이커스는 2000년대 초반의 샤킬 오닐, 그리고 그의 이적 후 2000년대 후반 영입된 파우 가솔같은 빅맨을 통해 트라이앵글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51] 사실 조던의 몸을 결정적으로 키워준 계기가 된 건 그 당시 "배드 보이즈" 라고 불렸던 아이제아 토마스를 중심으로 한 피스톤즈 덕분이었다. 당시 디트는 조던을 막기 위해 더블팀, 트리플팀을 기본으로 온갖 거친 방법을 동원하여 조던을 막았으며(조던 룰) 제 아무리 최고의 기량을 가진 조던이었다고 하더라도 체력적으로 가드는 물론이거니와 더티한 포워드나 센터들이 피지컬 플레이를 하는 걸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결국 그 조던 룰을 이겨내기 위해 악착 같이 웨이트를 하며 피스톤즈를 넘어서게 된다. 후에 조던도 인터뷰에서 그 점을 인정했다.[52] 케빈 가넷의 경우 왼쪽으로 돌았을 때도 성공률이 높지만, 습관인지 거의 오른쪽으로 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오른손잡이의 경우 슛할 때 자연스럽게 오른발이 앞으로 가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도는 게 자연스럽다. 왼쪽으로 돌면 공중에서 자세를 한번 더 잡거나 몸이 약간 비틀린 상태에서 쏴야 한다.[53] 물론 90년대에도 오픈코트에서 무서운 위력을 보였다. 90년대 후반 시카고는 조던-피펜-로드맨-하퍼까지 압박수비를 하고, 스틸이 나는 동시에 조던과 피펜이 야생마처럼 달려가서 마무리하는데 능했는데 둘 다 스피드, 점프력, 파워를 겸비했기 때문에 이들의 속공은 막기가 정말 힘들었다. 반대로 80년대에 하프코트에서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돌파력을 무기로 페이스업에서 그냥 다 뚫어버리거나, 당시 이미 장착하고 있던 포스트업 페이더웨이나[80] 포스트업 스핀무브 후 돌파, 더블클러치 점프슛 등 하프코트에서도 최강이었다. 다만 운동능력이 80년대엔 워낙 뛰어났기에 오픈코트에서 위력이 그만큼 더 뛰어났고, 반면 90년대에는 운동능력도 떨어지고 당시 추세 자체가 페이스가 낮은 저득점 농구였기에 하프코트 농구를 더 많이 한 것 뿐이다.[54] 여담으로 위에 언급된 "리바운드 후 장거리 아웃렛 패스"를 가장 잘해주는 선수가 바로 찰스 오클리였는데, 조던 본인과의 친분도 있지만 코트 위에서 누구보다도 호흡이 잘 맞는 동료였기에 그가 트래이드되고 그토록 열받아한 것.[55] 이 시즌은 무려 득점왕, MVP, DPOY를 한시즌에 동시에 수상했다.[56] 팀 수비를 전두지휘하는 앵커 역할을 맡기도 했다.[57] 아이제아 토마스가 어떤 선수냐면 조던보다 13cm 작은 185cm에 전광석화와 같은 스피드, 엄청난 드리블링과 돌파력, 빠른 릴리스의 점퍼를 자랑하던 선수였다. 물론 토마스는 조던이 붙더라도 어느정도 할 건 하는 선수였지만, 조던을 상대로는 돌파를 쉽사리 선택하지 못하고 패스를 돌리거나 점퍼를 주로 던지곤 했으며, 아무리 릴리스가 빨라도 조던의 컨테스트도 만만치 않게 빠른데다 블로킹 타점이 높아서 쉽게 득점하지는 못했다.[58] 당연히 상대 선수 성향을 미리 연구한다는 것이 전제된다.[59] 이 스탠스 전환은 위에 언급된 아이버슨 수비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저 짧은 순간에 조던은 스탠스를 세번 바꾸는데 전혀 균형을 잃지 않는다. 만 34세의 노장 선수가.[60] 이는 저 선수들의 어마어마한 키 대비 윙스팬 덕분이기도 하다. 키201cm 윙스팬221cm, 키203cm 윙스팬222cm, 키201cm 윙스팬225cm.[61] 이 영상은 조던의 복귀 첫 시즌 당시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이던 빈스 카터와 첫 대결로, 전반에 조던은 카터를 상대로 좋은 수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카터의 사기적인 운동능력에 밀려 23점을 헌납하는 등 탈탈 털린다. 특히수비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카터를 잘 박스아웃했음에도 카터가 엄청난 점프력으로 조던의 등 뒤에서 날아올라 공격 리바운드를 낚아채는 등 늙은 조던과 젊은 카터의 신체능력 격차마저 돋보이던 상황. 그러나 후반에 조던은 작정한 듯 엄청난 디나이로 카터가 공을 못 잡거나 어렵게 잡도록 한다. 또한 발은 느려졌지만 스크린을 뚫고 지나가는 대신 상대 공격의 흐름과 카터의 움직임을 예측해 스크린을 피해 돌아가는 등 센스로 운동능력 저하를 커버한다. 이에 카터는 짜증섞인 반응을 보이면서 경기를 망치고 결국 후반 무득점에 그치고 만다.[62] 00년대엔 센터 아닌 선수가 받은 적이 딱 두번이고 둘다 포워드[63] 올해의 수비수상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80년대 이후 가드 수상자들이 (96년의 게리 페이튼을 제외하곤) 사라진다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룰과 트렌드 변화가 큰데, 과거에서는 핸드체킹의 영향으로 외곽에서도 거칠게 부딪히며 수비를 했기 때문에 외곽수비수들(가드)들이 미치는 영향이 컸다. 실제로 86년 수상자 알빈 로버트슨에 대해선 케니 스미스가 자신이 상대한 선수 중 가장 힘이 셌다고 언급할 정도로 피지컬했고, 전체적인 스틸 수치도 높았다. 그러나 플래그런트 파울 처벌 강화, 핸드체킹 규제 등이 이어지면서 현재 외곽 수비는 과거에 비해 피지컬한 비중이 줄었고, 외곽수비수 중 수비왕급의 영향력을 미치는 선수들은 맨투맨 위주 선수들보단 카와이 레너드처럼 팀수비를 지휘하는 영향력을 지닌 선수들이다. 그런 면에서 '가드로 수비왕 타서 대단하다'는 평을 받을 선수는 오히려 게리 페이튼이다. 이미 트렌드 변화가 절반 정도는 이뤄진 시점에서, 수비왕급 센터들이 득실대던 90년대 수상자이기 때문. 물론 아래 언급됐듯이 조던처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선수가 수비왕까지 받은게 미친 업적인 것은 확실하다. 또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면, 88년 조던의 수비 퍼포먼스라면 트렌드와 상관없이 수비왕급이며, 핸드체킹룰 1차개정(94년) 이후 뛰었어도 수비왕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조던은 맨투맨만 있는게 아니라 팀수비도 역대급이었던 선수기 때문.[64] 실제로 당시 벅스에서 두자리수 득점을 올린 선수는 83년 6명, 84년 5명이었다.[65] 로버트슨은 팀내에 본인보다 6점이나 더 넣은 선수가 있었으며 당시 스퍼스엔 두자리수 득점원이 7명이나 있었다.[66] 그리고 쿤보는 최소한 옆에 야투율 49% 이상으로 20득점을 기록하는 크리스 미들턴이라도 항상 있었으며, 하킴은 본인 제외하면 득점 2위가 14점에 불과한 상황에서 평득 27에 수비왕을 수상했다. 저때는 이미 로우페이스 시대에 접어든 시점이라 수치는 비슷해도 시카고의 조력자들이 더 처참한 수준이었고, 하킴의 27점도 대단하지만 조던은 역대급 수치인 35점을 넣었으며 야투율도 팀내 1위였다. 물론 이 시즌 하킴은 우승에 파이널 MVP까지 쓸어담았기에 최종적인 성과까지 고려하면 88조던을 넘어서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어디까지나 에이스 한 명에 대한 의존도는 94 로켓츠보다 88 불스가 훨씬 더 컸다는 소리.[67] 내구성으로 역대로 손꼽히는 르브론 제임스조차도 30대 중후반인 레이커스 이적 이후 5시즌 동안 60경기 이상 출전경기가 단 1시즌에 불과할 정도로 결장횟수가 많아졌다.[68] 이 시기 위저즈에 신인으로 입단해 백업센터 역할을 수행한 이탄 토마스라는 선수가 라스트댄스 방영에 맞춰 위저즈에서의 조던과 관련된 일화를 몇 가지 밝혔는데, 개중에 조던의 무릎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의료진이 큰 주사로 무릎 속에 찬 걸 빼는 걸 보면서 '왜 이렇게까지 하나요?'라고 묻자 조던이 '나도 모르겠다'라고 하더라는 일화도 있다.#[69] 이 부분은 사실 수치만 보면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조던은 루키 시즌보다 필드골 성공률이 51.5%에 달했으며, 80년대 후반에는 53%를 상회하는 엄청난 야투율을 기록하다가 오히려 2차 3연패 시기에 야투율이 세 시즌 통합 48.2%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건 수치가 아닌 경기를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부분으로, 초창기의 조던은 돌파의 비중이 높았다. 물론 80년대에는 수비범위가 좁아 골밑~중거리까지 수비가 대부분 집중되어 있어 림까지 돌파하는 것보다도 돌파하다 멈춰서 단거리~중거리 슛을 쏘는 공격루트가 더 많았다. 조던이 2년차 때 NBA 플레이오프 신기록인 63점을 기록한 경기의 영상을 보면 (https://www.youtube.com/watch?v=QcU5Q_f4mYU) 골밑까지 돌파해 덩크나 레이업으로 마무리하는 것보다 풀업점퍼나 러닝점프슛이 훨씬 많다. 실제로 이 경기에서 넣은 22개 필드골 중에서 덩크는 단 한개에 불과했다.[70] 조던의 점퍼는 풀점프를 한 뒤 공중에서 손목힘으로 쏘는 슛과 정석대로 하체의 힘까지 이용한 점프슛으로 나뉘는데, 전자의 경우 더블클러치 점프슛이 가능할 정도로 체공시간이 길어 수비를 떼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손목힘에 의존하기 때문에 포물선이 낮아 슛거리가 짧다는 단점이 있고, 후자는 전자처럼 자유자재로 쏘면서 수비까지 떼어낼 수는 없지만 안정적이고 슛거리가 길다는 장점이 있다. 조던의 커리어 초창기에는 엄청난 움직임으로 수비를 떼어내면서 일단 뜨고보는 슛의 비중이 높았고, 그 누구보다 빠른 움직임을 이용해 비교적 짧은 거리에서 점프슛을 쐈기 때문에 그 집중수비를 받으면서도 성공률이 저렇게 높았던 것이다. 반면 정석적인 점프슛도 분명히 쏘긴 했으나, 그 빈도수가 비교적 적었고 그렇게 안정적인 것도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훗날 그의 동료가 된 론 하퍼와 비슷했고, 많은 80년대 윙플레이어들이 이런 식으로 득점했다.[71] 애시당초 트라이앵글 오펜스 특성상 삼각형의 꼭지점 역할을 하는 조던은 3점 라인에서 쏠 기회 또한 거의 없었다. 조던이 3점 슛을 쏘는 경우는 공격시간이 거의 다 떨어질 때 쏘거나, 혹은 골밑의 다른 동료에게 수비가 몰려서 그 공을 킥아웃 해줬을 때 그 공을 받아 3점을 쏘곤 했다. 여기서 문제점이 나오는데 당시 불스의 팀구성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조던의 동료 중 수비가 몰릴 만한 선수가 없다. 위저즈 시절에도 마찬가지인데, 당시 젊고 미숙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라 조던을 살려줄 만한 공격력이나 패스력을 지닌 선수가 없었다. 그나마 수비를 끌어올 수 있던 제리 스택하우스는 볼호그였다.[72] 그에 비해 버드의 자유투, 슛폼 등은 커리어 전반적으로 일정한 편이었다.[73] 단적인 예시로 통산 자유투 성공률이 6할조차 안되는 브루스 보웬은 공격에서 사실상 사이드 3점만을 담당하여 통산 39.3% 성공률을 기록했다. 반대로 커리어 통산 8할 중반대의 고감도 자유투 슈터인 리키 루비오는 3점 성공률이 3할 초반대에 그치며, 현재 6.5개 시도 및 36.8% 성공률의 준수한 3점 슈터이며 딥3도 심심찮게 집어넣는 르브론 제임스는 자유투 성공률이 6할대냐 7할 턱걸이냐를 따지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 문서의 주인공인 마이클 조던부터가 역대 최고의 미드레인지 + 8할대의 자유투를 자랑하지만 3점 슛 능력은 상대적으로 쳐지지 않는가.[74] 게다가 94-95는 위에 언급되어 있듯이 표본이 너무 적어 판단기준으로 언급되지는 않는 편.[75] 참고로 단축라인 기간 동안(94-95시즌부터 96-97시즌) 레지 밀러는 경기당 5.9개를 시도해 2.5개를 넣으며 41.8%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밀러는 커리어 통산 39.5%를 기록했으며, 라인이 정상화된 97-98시즌에 42.9%로 오히려 단축라인에서보다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단축라인이라고 무조건 성공률이 올라가진 않는다는 얘기. 물론 3점보단 그보다 한 걸음 앞에서 던지는 롱2가 훨씬 정확했던 조던의 경우 단축 라인에서 던지는 3점이 성공률에 있어 훨씬 유리한 게 맞다.[76] 이건 딱히 롤플레이어와 에이스를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불스가 3점을 위한 전술을 그다지 활용하지 않는 팀이었고 조던에게 오픈이 잘 나지 않았다지만 수비 역량이 상대적으로 안쪽에 쏠려있던 80~90년대에, 정말 오픈 3점 몇 번 던져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외곽 찬스가 안생긴 건 아니었을 뿐더러 애초에 3점 슛이라는 게 보통은 오픈을 전제로 던지는 슛이다. 그리고 그 역시 유의미하게 3점을 시도한 시즌에는 어지간하면 오픈 찬스에서 3점을 던졌다.[77] 실제로 저 정도의 슈터라면 같은 팀의 론 하퍼처럼 외곽에서 노골적으로 새깅을 당해야 정상지만, 당시 팀들 중 조던을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새깅하는 팀은 없었고 하더라도 피를 보곤 했다. 참고로 하퍼의 통산 3점성공률은 단축라인 제외하고 28.1%로 수치만 보면 조던과 비슷한 수준이었다.[78] 89-90시즌 당시 NBA에서 단 한 경기라도 뛴 선수들 중 슈팅가드로 분류된 선수는 75명이다. 저 중 해당 시즌 조던의 37% 성공률보다 높은 성공률을 기록한 선수는 12명, 35%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20명이었다. (그리고 이건 기계적으로 수치만 보고 분류한 것으로 이 시즌에 9경기만을 뛰며 삼점슛 2개를 던져 1개 넣은 코리 게인즈라는 선수, 그리고 이 시즌에 14개를 던져 5개를 넣고 통산 20개 던져 7개 넣은 바이런 어빙이란 선수는 제외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기 때문에 시즌 통틀어 5개 이하로 넣은 선수를 제외한다면 실질적으로 조던보다 높은 성공률을 기록한 선수는 73명 중 11명, 35%이상은 18명으로 봐야한다.) 또 92-93시즌의 경우 총 75명 중 조던의 35.2% 성공률보다 높은 성공률을 기록한 선수는 19명, 35%이상 기록한 선수도 마찬가지로 19명이다. (마찬가지로 슈팅가드 77명 중 1개 던져 1개 넣은 경이적인 100% 성공률의 바이런 어빙, 5개씩 던져 2개 넣은 바비 필스와 재런 잭슨 두명을 제외한다.) 어쨌건 유의미한 3점을 시도수를 기록한 시즌에는 적어도 해당 시즌 내에는 평균 이상의 3점 슈터이긴 했다는 것.[79] 애초에 위에서 버드의 사례를 든 것은 "버드같이 뛰어난 선수도 표본수가 적으면 성공률이 저렇게 엉터리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지, 버드의 사례를 온전히 조던에게 대입하려는 것이 아니다. 즉, 두 선수는 "표본이 극단적으로 적으면 성공률이 그 능력을 정확히 나타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이지 둘의 슈팅능력이 동일선상에서 비교된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