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있는 괄호 안은 중심도시) | |||
바르셀로나주 (바르셀로나) | 례이다주 (례이다) | 지로나주 (지로나) | 타라고나주 (타라고나) |
Lleida 례이다 | |||||
국가 | 스페인 | ||||
주 | 카탈루냐 | ||||
면적 | 212.3km² | ||||
인구 | 140,797명[1] | ||||
시간대 | UTC+01:00(서머타임 적용) | ||||
지역전화 | +34(스페인) +973(례이다) | ||||
지로나 행정 사이트 | |||||
카탈루냐어 : Lleida
스페인어 : Lérida
1. 개요
스페인 카탈루냐 서쪽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례이다주의 중심 도시이다.2. 역사
카탈루냐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례이다는 이 일대에 살았던 히스파니아 부족인 일레게테스(Ilergetes) 부족의 정착지 였다. 이 때 이름은 일레르다이다. 그러나 포에니 전쟁이후 스페인 일대는 로마 공화국의 속주가 되었고 일레르다는 그 중심 도시가 되었다. 카이사르 내전 당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끄는 카이사르군가 폼페이우스의 부하인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와 마르쿠스 페트레이우스가 싸운 일레르다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로마 제국 시절에 례이다는 자체적으로 주화를 제조했을 정도로 매우 번영하였다. 이는 중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인 대부분이 무슬림들의 지배를 받았을 때도 레이다는 번영한 상업 도시였고, 이는 레콩키스타로 바르셀로나 백작령을 다스리던 백작 라몬 베렝게르 4세가 탈환한 후도 마찬가지 였다. 아라곤 왕국의 하메스 2세는 카탈루냐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례이다 대학을 세우기도 했다.하지만 15세기 후반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합병되자 인구가 많았던 카스티야 중심으로 왕국이 돌아가자 례이다는 점차 쇠퇴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어 지중해 무역의 중요성이 떨어지자 례이다의 상업은 활기를 잃어갔다. 그 와중에 이어진 전쟁과 전염병으로 경기 침체는 심화되었고 이는 카탈루냐 봉기로 이어졌다. 봉기가 실패로 끝나고 그 중심에 있었던 례이다는 도시의 특권을 잃어버리고 대학도 폐쇄되었다. 그 이후 례이다는 카탈루냐의 평범한 도시로 전락하였다. 스페인 내전 당시 례이다는 공화파의 최후 거점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를 보호하기 위한 전초 도시 였다. 그래서 1937년 11월 왕당파 공군은 례이다를 폭격했고, 이로 인해 250여명의 주민이 사망하였다. 스페인 내전이 왕당파의 승리로 끝나자 례이다 성은 공화파를 수감하는 강제 수용소가 되었다. 2만명이 넘는 공화파 포로들이 례이다 성에 수감되었으며, 사망자는 전몰자의 계곡으로 보내졌다.
3. 명소
- 라 세우 벨라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 de la Seu Vella) : 원래 기독교 성당이 위치한 곳인데 아랍인이 스페인을 정복한 이후 모스크로 개조되었다. 하지만 다시 기독교 세력이 탈환하자 재축성 및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리모델링한 성당이다.
- 라 로트하 데 례이다 (La Llotja de Lleida) : 2010년 1월 문을 연 극장 겸 회의 센터.
- 하우메 모레라 미술관 (Museu d'Art Jaume Morera) : 례이다 시에 위치한 근현대 미술관으로 입장료는 무료이다.
- 라 파에리아 궁전 (La Paeria) : 1264년 지어진 카탈루냐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현재 례이다 시의회가 들어서있다.
4. 자매 도시
5. 여담
- 1980년 부터 매년 5월 주말에 세계 최대의 달팽이 먹기 축제인 라플렉 델 카라골(L'Aplec del Caragol)이 열린다.
[1] 통계인구, 2012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