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문서명 != null
문서의 [[https://namu.wiki/acl/러시아의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html <span style="color: var(--espejo-link-color, var(--text-color))">ACL 탭</span>}}}]]을 확인하세요.
<colcolor=#000><colbgcolor=#ffe4c4> 러시아의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великая княжна Татья́на Никола́евна России | |||
| |||
이름 |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Татьяна Николаевна Романова) | ||
출생 | 1897년 6월 10일 | ||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 | |||
사망 | 1918년 7월 17일 (향년 21세) | ||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예카테린부르크 이파티에프 하우스 | |||
아버지 | 니콜라이 2세 | ||
어머니 | 헤센의 알릭스 공녀 | ||
형제 | 올가, 마리야, 아나스타시야, 알렉세이 | ||
종교 | 러시아 정교회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373a3c,#ddd {{{#!folding [ 시성 정보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fe4c4><colcolor=#000> 시성 | 1981년: 해외 러시아 정교회 2000년: 러시아 정교회 | |
축일 | 그레고리력: 7월 17일 율리우스력: 7월 4일 | ||
호칭 | 해외 러시아 정교회: 황실 순교자[1] 러시아 정교회: 황실 수난자[2] | ||
성인 추대 교파 | 러시아 정교회 해외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교회 세르비아 정교회 안티오키아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불가리아 정교회 | }}}}}}}}}}}} |
1. 개요
러시아 제국의 황녀.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둘째이자 차녀이다.2. 생애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생애#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타티야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 가족관계
<rowcolor=#000> 1913년 가족사진 |
3.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러시아 제국의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Великая княгиня Татьяна Николаевна Российская) | 니콜라이 2세 (Николай II) | 알렉산드르 3세 (Аляксандр III) | |
알렉산드르 2세 (Аляксандр III) | |||
헤센의 마리 공녀 (Prinzessin Marie von Hessen) | |||
덴마크의 다우마 공주 (Prinsesse Dagmar af Danmark) | |||
크리스티안 9세 (Christian IX) | |||
헤센카셀의 루이제 (Prinzessin Louise von Hessen-Kassel) | |||
헤센의 알릭스 공녀 (Prinzessin Aliz von Hessen-Kassel) | |||
헤센 대공 루트비히 4세 (Ludwig IV., Großherzog von Hessen) | |||
헤센의 카를 공자 (Prinz Karl von Hessen und bei Rhein) | |||
프로이센의 엘리자베트 공주 (Prinzessin Elisabeth von Preußen) | |||
영국의 앨리스 공주 (Princess Alice of the United Kingdom) |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공자 (Prinz Albert von Sachsen-Coburg und Gotha) | |||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
4. 여담
- 1911년, 아버지 니콜라이 2세와 언니 올가와 함께 오페라 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총리 표트르 스톨리핀이 암살 당했는데 눈앞에서 이를 목격한 자매는 놀라고 밤에도 충격이 가시지 않아 울다가 잠을 설쳤다고 한다.
- 어머니를 닮은 적갈색 머리와 회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미모 덕분에 당시 사람들에게 황제의 네 딸들 중 가장 아름답고 조각 같다고 알려져 있었다. 황실에서 무도회가 열리면 남자 귀족들은 타티야나의 댄스 파트너가 되려고 줄을 섰고 유럽의 내로라하는 왕국에서도 많은 혼담이 들어왔다고 한다.
- 러시아 제국의 공주라는 신분과 미모 덕분에 많은 왕실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의 세르비아 왕국의 국왕이자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초대 국왕 알렉산다르 1세와 혼담이 있었다.[3] 자주 만난 친척이며 나이대가 비슷한 영국의 에드워드 8세와도 혼담이 오갔다.[4] 에드워드의 할머니인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도 러시아의 황녀가 에드워드의 적합한 신붓감이 될 것이라 말했다.[5]
[1] Царственные мученики[2] Царственными страстотерпцами[3] 둘은 전쟁이 일어나면서 혼담이 중단된 제1차 세계 대전 와중에 서로 편지를 교할 정도의 사이였다.[4] 타티야나의 아버지인 니콜라이 2세가 에드워드의 아버지 조지 5세와 이종사촌이다. 또한 조지 5세는 타티야나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황후와도 사촌으로, 알렉산드라의 어머니 영국의 앨리스 공주가 조지 5세의 둘째 고모이다.[5] 에드워드는 타티야나의 언니 올가와도 혼담이 있었다. 에드워드는 타티야나가 더 좋다고 했는데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황태자를 돌보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자매들 중 가장 예뻐서 그랬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