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1-31 18:30:41

란쌍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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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라오족
란쌍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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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쌍 왕국
ອານາຈັກລ້ານຊ້າງ
Kingdom of Lan Xang
파일:Laos_-_Reiaume_de_Lan_Xang.png
1400년대의 최대 강역[1]
1353년~1707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고대 라오족 루앙프라방 왕국
크메르 제국 비엔티안 왕국
참파삭 왕국
<colbgcolor=#D70000><colcolor=#fff,#fff> 수도 루앙프라방 (1353~1560)
비엔티안 (1560~1707)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만달라 체제
국가원수
언어 라오어
종교 불교
현재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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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건국2.2. 전성기2.3. 중흥기2.4. 분열

1. 개요

라오스의 왕조.

1353년부터 1707년까지 약 355년 동안 라오스 일대를 다스렸다.

란쌍 왕국은 현대 라오스의 정치적, 문화적 기반을 닦은 왕조로 오랜 기간 동안 통일 왕조를 유지하면서 라오인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란쌍 왕국은 1353년에 건국된 이래로 350여년 동안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들 중 하나였으며 라오스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란쌍'이라는 이름은 '100만 마리 코끼리'라는 뜻이었다.

메콩강의 중국 영내를 흐르는 구간을 이르는 명칭인 란창강[2][3] 란쌍 왕국의 국명을 중국어로 음차한 표기에서 유래했다.

2. 역사

2.1. 건국

파일:fa-ngum.jpg 파일:239f941e52747c12f104c0b933541010.jpg
파응움 국왕 비엔티안의 파응움 동상
란쌍 왕국이 세워지기 이전 라오스 지역에서는 여러 토착 민족들이 섞여 통일 왕조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소왕국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1300년대에 파응움(ຝ້າງູ່ມ)이 등장하면서 라오스의 정치 구도가 본격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파응움의 할아버지인 수완나 캄퐁루앙프라방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군주로, 파응움의 아버지는 왕세자였다. 파응움은 어린 나이에 인근 크메르 제국의 군주인 자야바르만 9세의 양자로 입적되어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양부인 자야바르만 9세는 자신의 딸을 파응움에게 내주었고, 덕분에 부마가 된 파응움은 나름대로 탄탄한 입지를 갖추면서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1343년에 할아버지 수완나 캄퐁이 세상을 떠나자 루앙프라방에서는 왕위 계승 분쟁이 일어났다. 수완나 캄퐁이 제대로 된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승하하면서 여러 후계자들이 왕위를 놓고 다투었다.

이 상황에서 크메르 제국은 자신들이 데리고 있었던 파응움에게 군사를 주어 루앙프라방의 왕위 쟁탈전에 내보냈다. 당시 크메르 제국은 흑사병과 내분의 심화로 막 국력이 쇠퇴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인근의 란나 왕국수코타이 왕국 등이 크메르 제국의 영토를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크메르 제국은 주변의 동맹국이 절실했고, 루앙프라방 지역에서 친크메르파 요인인 파응움이 왕이 된다면 크메르 제국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파응움은 약 10,000명의 군대를 데리고 라오스 남부부터 차근차근 정벌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도시인 비엔티안을 복속시킨 뒤 루앙프라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삼촌을 몰아내고, 1353년에 루앙프라방의 왕위에 올랐다. 파응움은 국호를 란쌍, 즉 '100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뜻으로 바꾸었으며, 메콩강 일대의 영토에 군사 원정을 실시하여 국력을 증강시켜 나갔다.

한편 태국에서는 우통이 아유타야 왕국를 건설하고, 점차 동쪽의 크메르 제국을 위협하면서 크메르의 세력이 날로 쪼그라들어갔다. 아유타야 왕국은 크메르 제국의 서쪽 영토를 집어삼켰고, 최종적으로는 크메르의 수도인 앙코르 함락에도 성공하며 크메르 제국에게 치명타를 먹였다. 이후 크메르 제국은 완전히 남쪽으로 밀려났고, 이 과정에서 크메르 인근의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해졌다. 때문에 1356년 파응움 왕은 군대를 이끌고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비엔티안 지역을 다시 정벌하고, 팽창하는 서쪽의 아유타야 왕국을 견제했다. 한창 내치에 신경을 쓰고 있었던 아유타야 왕국은 란쌍 왕국과의 대립을 원하지 않았기에 100마리의 코끼리와 황금을 란쌍 왕국에게 넘겨주고, 심지어 우통 왕의 딸을 파응움 왕의 두번째 왕비로 보내기도 했다. 이후 파응움 왕은 북쪽의 중국 및 동쪽의 베트남과의 국경을 확립하고,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파응움 왕은 이렇게 국경을 안정시키는 등 여러 업적을 남겼으나, 수코타이 왕국과 지나치게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벌여 사람들의 신망을 잃었으며, 결정적으로 귀족층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실패하여 결국 자신의 아들인 삼샌타이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폐주가 된 파응움은 강제로 루앙프라방의 왕궁에 유폐되었고, 1380년 즈음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371년에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삼샌타이 왕은 아버지 파응움의 뒤를 이어 여러 군사적 업적을 남겼으며, 인근의 란나 왕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또한 중국의 명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책봉을 받으면서 국제적인 외교를 펼쳤다. 1416년에 삼샌타이 왕이 승하하자 그의 뒤를 이어 란 캄 댕이 왕위에 올랐다. 란 캄 댕 왕은 당시 명나라 통치하에서 고통받고 있었던 베트남인들이 람썬 봉기를 일으키자 30,000명의 병력과 100마리의 코끼리를 보내 명나라 군대를 도와주웠다.

란쌍 왕국은 란 캄 댕 왕 사후 극도의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1428년부터 1438년까지 10년 동안 남자 왕 7명과 여왕 1명이 연달아 즉위하는 등 나라가 어지러워졌다.[4] 1440년에는 이 틈을 타 비엔티안 지역이 봉기를 일으켰고, 수도 루앙프라방의 궁정에서는 겨우겨우 비엔티안의 반란군들을 진압했다. 란쌍 왕국의 정치적 혼란기는 1456년짜까팟 왕이 즉위하면서 종결되었다. 참고로 이 시기에 라오스-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대월후 레 왕조는 과거 명나라에 대항한 람썬 봉기 때 란쌍 왕국이 명나라 군대에게 협력했던 것에 대해 깊은 앙금을 품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란쌍 왕국과 베트남 사이의 관계는 대단히 좋지 않았다. 이렇게 긴장 관계가 고조되던 와중 한 사건이 터졌다. 베트남 후 레 왕조성종이 란쌍 왕국에 흰 코끼리[5]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흰 코끼리의 털을 뽑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란쌍 왕국은 이를 왕권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고, 상자에 코끼리 똥을 가득 담아 베트남 조정에 보내버렸다. 당연히 격노한 베트남의 성종은 180,000명에 달하는 대군을 보내 란쌍 왕국을 공격했고, 란쌍 왕국은 200,000명의 대군으로 반격했으나 참패했다.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된 란쌍의 국왕은 베트남 군대를 피해 남쪽으로 도망갔다. 베트남 군대는 국왕을 사로잡기 위해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 란쌍 왕국 전역을 헤집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각개격파당했다. 이후 베트남 측은 어쩔 수 없이 퇴각하면서 마지막 복수로 수도인 루앙프라방의 왕궁에 불을 놓았다. 이후 약 200여년 동안 베트남과 라오스의 직접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2.2. 전성기

파일:Wat_Visoun,_Luang_Prabang_Laos_by_Louis_Delaporte.jpg 파일:16534693568_0cbaa73c5b.jpg
왓 위순[6] 세타티랏 왕의 동상
이후 즉위한 란쌍의 국왕들은 모두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입은 막대한 피해를 회복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국왕들이 내치에 신경을 기울이면서 란쌍의 문화와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특히 1500년부터 1520년까지 재위한 위순 왕 시대에는 란쌍의 첫 고전문학이 집필되는 등 여러 문화적 업적들이 성취되었다. 대승 불교의 승려들과 사찰들을 중심으로 교육과 학문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왕국 전역에 여러 사찰들과 장대한 건축물들이 지어졌다. 또한 비엔티안에 모셔져 있었던 '프라방 불상'[7]을 수도인 루앙프라방으로 옮겨오기도 했다.[8] 명군인 위순 왕의 뒤를 연이어 즉위한 포티사랏 왕과 세타티랏 왕 모두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란쌍 왕국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덕분에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왕국들 중 하나로 군림할 수 있었다.

1520년부터 1550년까지 란쌍을 다스린 포티사랏 왕은 라오스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손꼽힌다. 포티사랏 왕은 란나 왕국아유타야 왕국에서 왕비를 맞아들여 안정적인 외교를 꾀했으며, 독실한 불교 신자로 힌두교정령 신앙 등을 억제하고 불교 진흥에 힘썼다. 포티사랏 왕은 궁정을 남쪽의 비엔티안으로 옮겨서 동쪽의 베트남과 서쪽의 아유타야로부터의 공격에 대한 방어가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그 외에도 남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확고하게 굳혔으며, 란나 왕국의 국왕이 승하하자 자신의 아들이자 란나의 공주 사이에서 낳은 후계자인 세타티랏을 란나의 국왕으로 즉위시켜 란나 왕국을 사실상 집어삼켰다. 이때 란쌍 왕국이 가장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면서 라오스 전통문화의 꽃을 피웠으니, 우리로 치면 태조 이성계세종 이도를 합쳐놓은 정도의 성군이 포티사랏이었다. 그러나 포티사랏 왕은 1550년경 수도인 루앙프라방에서 외교 사절을 접견하기 위해 코끼리를 타고 가다가 사고로 떨어져 승하했다.

명군 포티사랏 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세타티랏 왕은 점점 커져만 가는 인근의 아유타야 왕국과 미얀마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란나를 다스리고 있었던 세타티랏이 란쌍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기 위해 란나를 떠나 루앙프라방으로 향하자 세타티랏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던 란나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란쌍의 패권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이후 세타티랏 왕은 란나를 되찾기 위해 군사 원정을 펼치면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결국 란나 왕국을 완전하게 되찾는 데는 실패했고 이후 란나 왕국은 미얀마를 통치한 따웅우 왕조의 봉신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세타티랏 왕은 1560년에 공식적으로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천도했다. 이로써 란쌍 왕국은 무려 250년 만에 수도를 옮기게 되었다. 세타티랏 왕은 천도하면서 대규모 건설 사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거대한 궁궐들을 세웠으며 란나의 치앙마이에서 옮겨온 '에메랄드 불상'[9]을 보관하기 위해 사찰을 개축했다.

그러나 이후 미얀마를 최강국으로 성장시킨 따웅우 왕조1570년에 쳐들어오면서 란쌍 왕국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미얀마의 봉신국이었던 아유타야 왕국은 미얀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란쌍 왕국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란쌍 왕국이 이에 응하면서 아유타야 왕국과 함께 미얀마를 기습 공격했다. 이에 미얀마 군대는 빠른 속도로 아유타야 왕국을 무너뜨린 후 란쌍 왕국에게 반격을 퍼부었다. 미얀마 군대는 란쌍이 다스리고 있었던 치앙마이를 정복하고 란쌍 왕국을 몰아붙였다. 워낙 압도적인 따웅우 왕조의 군사력으로 인해 란쌍 왕국의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결국에는 왕이 수도인 비엔티안마저 버리고 도주하는 수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비엔티안을 함락시킨 미얀마 군대는 왕궁을 불태우고 왕자들을 미얀마로 끌고 갔다. 세타티랏 왕은 수도를 버린 후 게릴라 전술과 청야 전술 등을 펼치면서 따웅우 왕조의 군대를 필사적으로 막아냈고, 결국 미얀마군은 전염병과 식량 부족 등의 이유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2.3. 중흥기

비엔티안 함락 당시 미얀마로 잡혀간 노깨우 꾸만 왕자는 약 16년 동안 인질로 잡혀 살았다. 그러던 중 1591년에 란쌍 왕국의 국왕이 승하하자 귀족들이 꾸만 왕자를 새로운 왕으로 즉위시키기 위해 미얀마 왕에게 왕자의 송환을 요청했다. 꾸만 왕자는 미얀마의 봉신으로서 충성을 맹세하는 대가로 풀려나 란쌍 왕국으로 돌아가 비엔티안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뒤통수를 치고 미얀마에 대한 독립을 선포했으며, 곧바로 란쌍 왕국의 옛 영토들을 되찾기 위한 수복전쟁을 실시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옛 영토들을 대부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꾸만 왕은 이후 아유타야 왕국의 전쟁영웅인 나레수안 왕과도 맞서 싸웠는데, 당시 란쌍군이 아유타야군과 싸우기에는 무리가 있어 결국 란쌍 왕국은 이전의 세력을 완벽히 회복하지는 못한채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며 중흥했다.

란쌍 왕국의 마지막 중흥기를 이끈 수리냐웡사 왕은 1637년부터 1694년까지 무려 57년이나 재위하면서 라오스의 마지막 황금기를 이루었다. 당시 라오스의 불교 문화가 정점에 다다르면서 막대한 경제 발전과 문화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졌고 문학, 궁정 예술, 조각, 건축 등 이전 혼란기를 거치면서 쇠퇴했던 분야들이 다시 번성했다. 수리냐웡사 왕은 또한 법전을 재정비하고 법원을 세웠으며 인근 국가들과의 국경을 확립하는 등 여러 업적들을 동시에 남긴 걸출한 명군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유럽의 열강들이 동남아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1641년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첫 접촉이 이루어졌으며, 메콩강 유역에서 거래를 트는 등 점점 서양 세력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1년 후인 1642년에는 첫 예수회 선교사들이 란쌍 왕국에 도착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라오스가 워낙 불교색이 짙은 사회였기에 선교사들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2.4. 분열

파일:Laos_-_Division_territòriala_vèrs_1750_(vuege).png
분열 이후 라오스의 판도[10]

라오스의 중흥을 이끈 수리냐웡사 왕이 1694년에 승하하면서 란쌍 왕국은 분열되었다. 수리냐웡사 왕에겐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아들이 고위 관료의 아내와 간통을 해서 처형되는 바람에 왕위 계승을 할 사람이 딱히 없었다. 이 혼란은 수리냐웡사의 손자가 왕위를 계승하고, 수리냐웡사 왕의 사위가 섭정을 하게 되면서 잠시 가라앉았다가, 1700년에 남부의 실력자에 의해 왕위가 찬탈당했다.

이렇게 왕실의 권위가 무너지고 찬탈자가 활개치는 와중에 베트남으로 망명했었던 수리냐웡사 왕의 맏형의 아들이자 수리냐웡사 왕에게는 조카였던 사이 옹 웨(Sai Ong We)가 비엔티안으로 돌아와 찬탈자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했다. 수리냐웡사의 손자들이 버젓이 살아있었음에도 그가 손쉽게 왕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는 다른 후계자들이 각각 지방으로 도망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유력한 후계자들 중 한 명이었던 낑낏사랏은 씹송빤나 지역으로 도망가 있었고, 다른 공주는 참파삭 지방으로 도피해 있는 등 도망간 지역들도 다양했다. 그와중에 사이 옹 웨가 왕위를 계승했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낑낏사랏은 곧바로 작은 군대를 꾸려 루앙프라방으로 향했고, 사이 옹 웨가 임명한 루앙프라방의 영주가 도망치면서 루앙프라방에 무혈입성했다. 낑낏사랏은 루앙프라방에서 따로 대관식을 치르고 란쌍 왕국의 정당한 계승자를 자처하면서 1707년 루앙프라방 왕국을 세웠다. 이로 인해 란쌍 왕국은 1707년에 루앙프라방 왕국과 비엔티안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이어서 1713년에는 또다시 남부의 참파삭 지방이 비엔티안 왕국에게 반란을 일으켜 떨어져 나가면서 결과적으로 란쌍 왕국은 북부의 루앙프라방 왕국, 중부의 비엔티안 왕국, 남부의 참파삭 왕국으로 분열되어 공식적으로 무너졌다.

참고로 이렇게 나누어진 란쌍 왕국 계열의 삼왕국들은 1779년태국이나 베트남의 속국으로 전락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했다. 특히 이중 비엔티안 왕국은 베트남응우옌 왕조에게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었는데, 1826년에 비엔티안 왕국의 마지막 군주인 아누웡 왕이 태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배하고 결국 베트남에 합병되면서 완전히 멸망했다. 이원복 교수의 교양만화인《가로세로 세계사》2권에는 라오스 땅이 태국과 베트남에게 찢겨져 나라 자체가 없어졌다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나머지 국가들은 멸망하고 북쪽의 루앙프라방 왕국은 살아남았다.
[1] 매우 연한 보라색으로 표시된 국가가 란쌍 왕국이다.[2] 瀾滄江, Láncāng Jiāng[3] 메콩강 전체를 부르는 명칭은 메콩의 음역어인 메이궁허(湄公河, Méigōng Hé)를 사용한다.[4] 신기한 것은 이 남자 왕 7명이 모두 뒤에서 국가를 좌지우지했던 왕비 낭 깨오 핌파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전술한 행적 때문에 '잔인한 자'(the Cruel)라는 별칭이 붙었다. 낭 깨오 핌파1438년에 일곱 번째 남자 왕을 죽인 뒤 직접 왕위에 올라 라오스 역사상 유일한 여왕이 되었으나, 재위 몇 개월 만에 조정에 의해 나가에게 제물로 바쳐져 강에서 익사했다.[5] 당시 동남아시아에서는 흰색 코끼리가 신성한 왕권의 상징이었다.[6] 위순 왕이 세운 사찰의 모습이다.[7] 라오스 최고의 신성한 불상으로 83cm 정도의 크기에, 입식 금제 부처상이다.[8] 참고로 이 프라방 불상이 옮겨온 것을 기념해서 도시의 이름이 '루앙프라방'으로 바뀐 것이다. 이전까지의 이름은 '므앙 수아'였다.[9] 현재 태국의 왓 프라깨우에 있는 그 불상이 맞다. 당시에도 이미 동남아시아에서 유명할 정도로 신성한 불상이었다.[10] 위에서부터 루앙프라방 왕국, 샹쿠앙 공국(므앙푸안), 비엔티안 왕국, 참파삭 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