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22:53:14

라이언 자매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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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라이언 자매3. 실종
3.1. 용의자
4. 2013년 재조사5. 유력 용의자 특정6. 유죄 판결7.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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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5년 3월 25일, 미국워싱턴 D.C. 교외인 메릴랜드주 휘턴 몽고메리 카운티의 한 쇼핑센터에서 12세 실라 라이언과 10세 캐서린 라이넌 자매가 납치되어 성폭행 당한 후 살해된 사건이다.

2. 라이언 자매

파일:라이언 자매.jpg
왼쪽이 언니 쉴라 메리 라이언, 오른쪽이 동생인 캐서린 메리 라이언.

쉴라 메리 라이언(Sheila Mary Lyon)과 캐서린 메리 라이언(Katherine Mary Lyon)은 각각 12세와 10세의 자매로, 미국 메릴랜드켄싱턴 플라이어스 밀 로드(Plyers Mill Road)에 있는 중산층 가정의 존과 메리 라이언 부부 사이에서 4남매 중 둘째, 셋째로 태어났다. 자매에게는 오빠 제이(Jay)와 남동생 조셉(Joseph)이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 ABC 계열사인 WMAL-TV(현 WJLA-TV )의 소유주이자 현재는 사라진 워싱턴 방송국이 운영하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인 WMAL-FM에서 유명하고 인기 있는 라디오 진행자였다.

캐서린은 3월 29일 생, 쉴라는 3월 30일 생으로, 자매 모두 얼마 후에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3. 실종

1975년 3월 25일, 그날은 봄방학의 두번째 날이었다. 아침을 먹은 직후, 캐서린과 쉴라는 휘턴 플라자(Wheaton Plaza) 쇼핑 센터[1]로 걸어가서 부활절 전시회를 둘러보고 이 위치에서 자주 어울리던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으며 어머니 메리는 딸들의 계획을 듣고 "친구를 데리고 집에 들러 피자를 먹는 건 어떠니?"라고 제안했다. 자매들은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에 집을 떠났다. 통금 시간이 둘 다 오후 4시였기에 어머니는 통금 시간 까지 집에 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메리는 친구를 따라 볼링장을 방문했고, 아버지인 존은 자매가 집을 나간 후인 정오에 잠에서 깨어났다.

휘턴 플라자 쇼핑 센터는 집에서 약 0.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자매들은 오렌지볼(Orange Bowl)이라는 쇼핑센터 내 유명 피자 가게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었다고 한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두 소녀 모두 쇼핑 센터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오렌지볼 근처에서 신원 미상의 중년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자매의 오빠 제이는 나중에 식당에서 그의 여동생들이 함께 피자를 먹는 것을 목격했다고 수사관들에게 알렸다.

오후 2시 직후, 캐서린과 쉴라가 쇼핑센터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이것이 최종적으로 검증된 자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5시 45분, 메리는 그들의 집에서 가족의 저녁 식사로 프라이드 치킨을 준비했다. 메리는 나중에 자신의 딸들이 이 시간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짜증이 났던 것을 회상하며 눈물을 보였다. 오후 7시가 되자 가족들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신고 접수 직후 약 이틀 간 가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소하게 여겼다. 제대로 수사가 시작된 것은 셋째 날 부터였다. 두 명의 소녀가 대낮에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대형 쇼핑 센터에서 목격한 사람도,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도, 몸싸움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며칠 간 연락 두절 상태임을 파악한 워싱턴 D.C. 경찰은 그제서야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가족들은 24시간 전화 앞에 앉아 연락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경찰은 자매들의 실종이 비자발적이었다고 판단, 사건을 공개적으로 알려 수많은 증인을 조사했으며 수백 건의 공개 제보를 받았다. 경찰견이 동원되어 쇼핑 센터와 가족 주변 지역을 광범위하게 수색했는데, 자매들의 흔적은 쇼핑 센터에서 건물 근처의 백화점 주차장 주변을 향해 이동한 것 외에는 발견되지 않았다. 스쿠버 다이버들이 동원되어 호수와 연못, 빗물 하수구, 공터, 강, 하천 바닥과 같은 위치를 조사했고, 수많은 민간 자원봉사자들이 공식 수색을 도왔다. 사건에 관련하여 중요한 단서를 제보하는 사람에게 $9,000의 보상금이 약속되었다.

가족들도 자매를 찾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다. 자매의 부모님과 오빠는 직접 주변 이웃을 수색하고 실종자 전단지를 배포했으며 심지어는 영매의 도움까지 받았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 경찰은 실종 직후 소녀들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각종 사기꾼관종으로부터 수많은 전화를 받았다. 특히 1975년 4월 4일, 익명의 남성은 존 라이언이 직접 10,000 달러[2] 가 담긴 서류가방을 아나폴리스 법원 화장실 안에 두고 가라고 요구했다. 존은 법 집행관의 지시에 따라 서류가방 안에 101달러를 남겨두었지만 가져간 사람이 없었다. 이 사람은 나중에 존에게 전화를 걸어 법원 주변에 경찰이 너무 많아서 돈을 회수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3.1. 용의자

두 자매를 아는 동네 소년은 오후 1시쯤 오렌지볼 바깥 벤치에 앉아 있던 자매들이 신원 미상의 남성과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 남자는 50~60세 사이의 나이로 갈색 양복을 입고 안에 녹음기가 든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증언에 따르면, 자매, 그리고 자매와 함께 있던 다른 어린이들은 남자가 들고 있는 마이크에 목소리가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생방송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 신원미상의 남자는 수사관들에 의해 "테이프 레코더 맨"으로 불렸다.

쉴라를 알던 동네 언니 다네트 시어(Danette Shea)는 자매들이 쇼핑 센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기 직전에 장발의 젊은 남자가 자신과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쳐다봤다고 형사들에게 증언했다. 워낙 오랫동안 쳐다봤기에 친구 중 한 명이 그에게 누구냐며 말을 걸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다네트는 이 남성이 자매를 바라보는 것도 목격했다고 했는데 이 시점은 자매들과 다른 아이들이 테이프 레코더 맨의 마이크에 대고 말한 것과 거의 동시간대였다.

경찰은 다네트의 설명을 바탕으로 몽타주를 그렸다. 얼굴에 눈에 띄는 여드름이 있고 왼쪽 뺨에 흉터가 있으며 밝은 색의 피터스 재킷을 입고 있는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의 백인 남성으로 묘사되었는데, 동네 소년이 증언한 용의자 테이프 레코더 맨과 뚜렷하게 대조되었다. 그러나 젊은 남성 용의자는 수사관들이 테이프 레코더를 들고 있는 중년 남성을 추적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닥 주목받지 못했다.

테이프 레코더와 함께 서류 가방을 들고 있는 중년 남성의 몽타주가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된 다음 날인 1975년 4월 1일, 로이드 웰치 주니어(Lloyd Lee Welch Jr)라는 이름의 18세 남성이 3월 25일에 현장에서 용의자의 모습과 일치하는 남자를 보았다고 경찰에게 알렸다. 웰치는 소녀들이 이 남성과 대화하는 것을 본 기존 목격자인 소년의 기록을 뒷받침해주듯 테이프 레코더와 마이크에 대해 언급했다. 또 그 남자가 자매들에게 "사람들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라디오에 방송한단다."라고 말했고 언니 쉴라는 이 말을 듣고 웃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그 남자가 아이들을 흰색 덮개가 달린 빨간색 쉐보레 카마로에 강제로 태우고 서둘러 현장을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웰치는 인근 경찰서에서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받고 거짓 반응을 보였다. 거짓 반응을 내보이고 웰치는 자신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음을 인정했고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증인으로 경찰에 의해 석방되었다. 그는 보상금을 모으려는 욕구로 인해 거짓 증언을 했음이 유력하며 경찰서를 떠나기 전에 경찰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한 강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4월 6일, 윌리엄 크렙스(William Krebs)라는 11세 소년은 자매들이 실종된 직후 버지니아주 센터빌의 211번 국도에서 흰색 2도어 폰티악 세단을 타고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크렙스는 자매 중 한 명이 울고 있었고 또 다른 소녀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 버지니아 주 매너서스의 한 목격자는 실종 당일 오후 7시 30분경 1968년형 베이지색 포드 렌치 왜건 뒷좌석에서 자매와 닮은 두 소녀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 증인은 아이들이 묶여 있고 재갈이 물려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차량의 운전자는 몽타주 속 중년 남성과 매우 유사했으며, 목격자 본인이 차량을 쫒아가자 자신이 미행되고 있음을 눈치채고 신호위반하여 66번 고속도로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스테이션 왜건에는 "DMT-6"[3]으로 시작하는 메릴랜드 번호판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이 목격자의 증언은 처음에는 유력한 증언으로 취급되었지만 수사가 이어지며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되었다.

최근에 보도된 다른 기사에 따르면 중년 남성의 스케치와 일치하는 남자가 자매가 실종되기 몇 주 전에 실제로 여러 명의 어린 소녀들에게 다가가 인덱스 카드를 꽂은 휴대용 마이크자동응답기 메시지를 낭독해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은 인근 프린스 조지 카운티에 있는 말로 하이츠 쇼핑센터와 아이버슨 몰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다만 이러한 신고와 자매 실종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경찰 측에서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언론은 자매들의 실종에 상당한 관심을 쏟았지만, 그들의 행방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1975년 5월 23일, 메릴랜드 부지사 블레어 리(Blair Lee)는 122명의 방위군 소속 장병들에게 실종된 소녀들을 찾기 위해 몽고메리 카운티 숲 수색에 참여할 것을 명령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4. 2013년 재조사

사건의 장기 미제화 이후로 어느덧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1975년 당시의 수사관 중 다수가 은퇴하거나 세상을 떠났고, 정기적으로 제조사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2013년, 수사의 재추진과 함께 모든 수사자료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결정되었고, 보존된 자료를 검토하던 크리스 홈록(Chris Homrock) 경사는 목격자 로이드 웰치의 증언 기록을 보게 되었다. 홈록은 웰치가 1977년 강도 사건에 연루되었을 당시 찍은 머그샷이 목격자 다네트 시어가 납치 직전에 쇼핑 센터에서 소녀들을 흘끗 쳐다봤다고 말한 젊은 백인 남성의 몽타주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웰치를 향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형사들은 그가 1973년부터 1997년 사이 강간, 가정 폭력, 흉기를 사용한 폭넉행위 등 다수의 범죄로 전과를 쌓았고, 현재는 델라웨어에서 10세 소녀를 성추행한 혐의로 29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홈록 경사는 웰치와의 면담을 요청했고 2013년 10월 16일에 8시간의 첫 대면이 진행되었다.

처음에 수사관들은 웰치가 대화를 거부할 것을 우려했으나 웰치는 "저는 당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고 있죠. 실종된 두 아이에 대해 물어보러 이곳에 온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면서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데이비스(David Davis) 형사는 웰치 앞에 자매의 사진을 놓으면서 "여기 있는 이 두 어린 소녀는 실종 이후 단 한번도 목격된 적이 없는데, 그들의 부모는 거의 80세에 가까워서 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여기에 온겁니다."라고 말했다. 첫 대면에서 웰치는 실종 당일 쇼핑 센터 근처에서 자매들을 관찰했음을 인정했지만 건물 내에 계속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했다. 그런 다음 그는 "전 어떤 남자가 여자애 둘을 차 뒷좌석에 태우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울고있었다니까요." 라며 이전에 수사관들이 유력한 용의자로 여겼던 한 아동 성매매범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자신이 자매가 납치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데이비스 형사가 그 소녀들에게 어떤 운명이 닥쳤다고 믿는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아마 그 성매매범이 아이들을 죽이고 강간한 다음 불태웠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로이드 웰치는 12번의 후속 심문에서 누가 자매를 납치 및 성추행하는 것을 목격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진술을 번복했다. 뒤이어 진행된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에서는 여러 번의 거짓말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웰치는 자신의 주장에 이의가 제기되면 곧바로 진술을 거듭해서 번복했고, 다른 설명과 인정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로 인해 수사관은 웰치를 증인이 아닌 범죄 가담자로 간주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는 사건에 대해 대중에 공개되지 않은 사실을 실수로 말하기도 했다.

5. 유력 용의자 특정

2014년 7월, 웰치는 자매가 실종된 다음 날 아버지 로이드 웰치 시니어(Lloyd Welch Sr)와 그의 삼촌 리차드 알렌 웰치(Richard Allen Welch)가 콘크리트 지하실에서 소녀 중 한 명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처음에 웰치는 지하실이 삼촌의 집에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메릴랜드 주 하얏츠빌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 지하실이 있었다고 번복했다. 이 지하실은 건물 뒤쪽에 있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었으며 그의 아버지와 삼촌이 자신을 위협하여 입막음을 시켰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살아있는 것을 그 이후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으며 자매의 죽음을 알게 된 뒤 부동산에서 범죄의 모든 증거를 파기하는 데 강제로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라이언 자매 중 적어도 한 명의 시신이 메릴랜드에서 버지니아 주 탁스턴의 테일러 산으로 이동되어 큰 더플백에 담긴 매장되었다고 고백했다.

2014년 9월, FBI는 테일러 산에 대한 수색에서 여러 개의 분해된 작은 조각, 인간의 치아 1개, 까맣게 탄 철사 조각[4], 구슬 목걸이의 잔해, 캐서린의 것과 유사한 팔찌 조각을 발견했다. 이는 모두 1975년 웰치 가족의 이웃이 기억한 화재가 발생한 장소에서 회수되었다. 그러나 회수된 뼛조각은 너무 오래되어 DNA 분석이 불가능했고, 치아는 본격적인 분석을 해보기도 전에 유실되었다.

2014년 12월, 웰치의 사촌인 헨리 파커(Henry Parker)는 1975년 봄에 버지니아주 텍스턴에 있는 테일러 마운틴 로드(Taylor's Mountain Road)에 있는 웰치 가족 소유지에서 웰치를 만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파커는 웰치의 차량에서 군용 스타일의 더플백 2개를 옮기는 것을 도왔는데, 이 두 개의 더플백들은 붉은 얼룩으로 덮여 있었고 무게는 약 60~70파운드였으며, 끔찍한 악취가 났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언가 불길한 기분에 웰치에게 내용물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고 불에 가방을 던졌다고 했다. 이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쓰레기를 태우는 행위가 흔했기 때문에 이웃 중 누구도 화재와 관련해서 별 의문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헨리 파커의 여동생인 코니 아커스(Connie Akers)는 1975년 어느 시점에 당시 10대였던 자신이 웰치와 그의 임신한 여자친구 헬렌 크레이버(Helen Craver)가 부풀어오른 "군용 스타일의 더플백"을 가지고 이 부지에 도착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오빠의 증언을 뒷받침해주었다. 녹색 더플백에서는 상한 쇠고기에서 나온 톡 쏘는 냄새가 났었다고 한다. 또 아커스는 웰치로부터 피 묻은 두 벌의 세탁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2015년 5월, 웰치의 아버지 집 지하실 뒷방에 대한 감식에서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천장까지 광범위한 혈액 반응이 검출되었다. 반응의 정도로 보았을 때 이는 인간 또는 동물이 한때 이 자리에서 도살되었어야 나타날수 있는 수준의 양이라고 한다. 이어진 DNA 검사를 통해 이 혈흔이 인간의 것임이 밝혀졌지만, DNA 계보 분석 검사는 수행할 수 없었다. 이로써 웰치의 살인 혐의가 충분히 입증되었고, 수사관들은 웰치와 그 삼촌인 리차드 알렌 웰치를 라이언 자매 살해의 용의자로 지목했다.

2015년 7월, 웰치는 라이언 자매의 죽음에 대해 2건의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그는 자신과 삼촌이 지하실에서 성폭행을 목적으로 삼촌 집으로 자매를 납치했다고 인정했다. 수사관들은 공개적으로 웰치의 가족 구성원 모두가 용의자로 간주된다고 밝혔지만 납치, 살인 혐의로 기소된 것은 로이드 웰치 뿐이었다.

웰치가 기소까지 미제사건 수사관들은 자매 실종 재수사에 16,000시간 이상을 투자했고, 50개 이상의 수색 영장을 발부했으며, 가족, 목격자, 기타 인물들과 100회가 넘는 공식 인터뷰를 실시했다.

6. 유죄 판결

로이드 웰치는 살인과 성폭행 혐의에 대해 완강히 부인했지만, 2017년 9월 12일 두 건의 1급 살인에 유죄를 선고받았다.

로이드 웰치는 유죄를 시인하는 것과 유가족들에게 한마디를 전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발언을 거부했다. 그는 2건의 1급 살인 혐의로 2건의 48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라이언 자매 사건과 별개로 북부 버지니아에서 아동을 상대로 저지른 2건의 성폭행과 관련하여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웰치는 아이들의 시신이 묻힌 베드포드 카운티에서 기소되었다. 유가족과의 사전 합의를 통해 검찰은 웰치가 유죄를 인정하는 대가로 사형을 구형하지 않기로 했다. 이 재판에는 77세가 된 자매의 부모와 형제들이 모두 참석했다.

7. 사건 이후

아직까지도 캐서린과 쉴라 라이언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2017년, 국립 실종·착취아동 센터의 중역인 로버트 로워리는 자매 실종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수사관들의 굳은 결의와 42년 만에 이루어진 가해자에 대한 유죄 판결의 선고를 언급하면서 "수사관들이 한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웰치가 완전한 유죄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수사관들은 어느 정도 정의를 달성했네요"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리처드 웰치는 증거가 부족하여 자매 납치 및 살인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그의 아내 패트리샤는 수사관에게 고의로 허위 정보를 제공하고 사건을 가족 내에서 은폐하려는 분위기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2014년 12월 위증 혐의로 기소되었다.

[1] 현재 웨스트필드 휘턴(Westfield Wheaton).[2] 2024년 현재 약 57,100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3] 번호판이 구부러져 마지막 두 자리가 가려졌다고 한다.[4] 쉴라의 철테 안경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