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5 13:08:55

라두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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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가족관계

1. 개요

영어 별명: Radu III the Fair, Radu III the Handsome, Radu III the Beautiful(미남공 라두 3세)
루마니아어 별명: Radu cel Frumos

1437/1439 ~ 1475(37살 혹은 39살)

블라드 가시공의 동생이자 예니체리 군단장. 형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2. 상세

그가 형인 블라드 가시공과 사고관이 조금 달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매국노'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다. 실제로 그는 오스만 제국에서 왈라키아인의 지위 상승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즉 오스만의 지배는 기정 사실이므로 저항해 봐야 무의미하고 제국 내에서 왈라키아인의 지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던 것이다. 15세기는 민족주의가 생기기 한참 전이었기에, 타협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봉건적 계약 관계 아래 불리하다 싶으면 주군 갈아치우며 한 나라 안에 상류층과 평민들은 언어 자체가 다른 게 일반적이었던 유럽에선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1462년에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의 휘하로 친형인 블라드 가시공을 무너뜨리려고 출정했다. 당시 왈라키아 공국의 수도였던 '트르고비슈테'에 도착했을 때 이들이 만난건 말뚝에 꿰어져 죽어 있는 20,000개 이상의 오스만 제국군의 시체였다...

그는 형의 집권기에 공포에 떨었던 보야르들과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색슨 족들에게 유화적인 제스쳐를 보냈고 이후 보야르들은 블라드 가시공을 배신했다. 결국 그가 '포에나리 요새'에서 블라드 가시공을 물리치면서 그를 왈라키아 공국 바깥으로 쫒아내고 메흐메트 2세로부터 '왈라키아의 베이(bey)'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기껏 대공이 되었지만 그의 인생은 더 힘들어졌는데 바로 바사라브 3세와 대공위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싸워야했기 때문이다. 바사라브 3세와 라두 3세는 무려 7번이나 대공위를 교체해가면서 싸웠고 결국 최종적으로 라두가 바사라브에게 패하며 죽음을 맞게 된다.[1] 형을 몰아내고 13년만의 일이었다. 그의 사후 형인 블라드가 1476년에 바사라브 3세를 몰아내고 왈라키아 대공 자리에 복귀하지만 그마저도 1년뒤인 1477년에 오스만에 패해 죽음을 맞게 되고 바사라브 3세가 다시금 대공위에 앉게 된다. 형제가 쌍으로 같은 인물에게 대공위를 뺏긴 것이다.

3. 가족관계



[1] 이때 바사라브를 적극적으로 밀어준 것이 형인 블라드의 동맹이었던 슈테판 3세였다. 형을 기껏 몰아내고도 형의 동맹 때문에 개고생하다 최종적으로 대공좌와 목숨까지 잃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