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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험이 출제 범위로 한 고등학교 역사 교과의 과목에 대한 내용은 한국사(과목) 문서 참고하십시오.
필수 영역화 시기에 대한 내용은 대학수학능력시험/한국사 영역 문서 참고하십시오.
사회탐구 영역 선택 과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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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 윤리 | 한국 지리 | 경제 지리 | 세계 지리 | 국사 | 한국 근·현대사 | 세계사 | 경제 | 법과 사회 | 정치 | 사회 · 문화 | |||
'09 개정 | 생활과 윤리 | 윤리와 사상 | 한국 지리 | 세계 지리 |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 | 법과 정치 | ||||||
'11 개정 | 한국사 영역 (필수 영역화) | |||||||||||||
'15 개정 | 정치와 법 | |||||||||||||
'22 개정 | 선택 체제 폐지. 고1 공통 과목을 범위로 한 탐구 영역(통합사회)로 단일화. |
1. 개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2009 개정 교육과정 '한국사' 교과서를 토대로 출제되었던 영역의 선택과목 시험.2014학년도 수능부터 신설되었으며 2016학년도까지 적용되였다. 지난 대학수학능력시험/사회탐구 영역/한국 근·현대사와 대학수학능력시험/사회탐구 영역/국사를 통폐합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2017 수능부터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각론을 수정한 2011 교과 고시의 '한국사'를 토대로 치러지며, 필수화로 전환됨과 동시에 하나의 영역으로 통폐합 및 격상되었다(자세한 건 한국사 영역 문서 참조.)
2. 출제 경향
국정 교과서가 아닌 검정 교과서 체제로 바뀌면서, '교과 수준'은 과거에 비해서는 낮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문제 수준'에 비해서 1등급 컷은 상당히 높다. 이게 다 서울대 때문이다. 서울대를 지원하려는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국사를 사탐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해놓았기 때문에 서울대를 꿈꾸는 학생들이 선택을 하다보니 역덕후들+서울대 지망생들이 모여 모여 응시자가 채워지면서 등급컷은 높아지기만 하고 만점을 받아도 다른 과목보다 표준점수가 낮아서 불이익이 생긴다. 덕분에 문과 고등학생들에게는 고위층의 사치 취급을 받으며 2학년 중반까지만 해도 선택률이 괜찮은 편이나 시간이 지나며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점수는 조금씩 오르는데 석차는 떨어지는 괴현상 때문에 선택률은 갈수록 점점 감소한다. 게다가 고등학교 3학년때 그나마 국사를 선택했던 사람들도 모의고사 문제 등을 풀면서(특히 악명 높은 ebs 시리즈) 기존의 학교 시험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수준에 피를 토하며 결국 중간에 때려치게 되고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하위권 수험생들이 다 떨어져 나가면서 예비 서울대생과 삼사(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1]를 선택한 역덕후들이 모여 치열한 혈투가 전개되는데. 즉, 진짜 알짜들만 남아서 스타워즈,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 펼쳐진다.한국사를 응시하는 서울대 지망생들은 시험만 봤다 하면 엄청난 저력을 보여 준다는 점이 무섭다. 설령 역사가 취향에 안 맞더라도 이들은 욱여넣어서라도 고득점을 받아 낸다. 한국사 좀 할 줄 안다고, 또는 다른 과목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 될 거라 생각했던 평범한 학생들은 열에 여덟은 희생당한다.
그러나 서울대를 지망하는 인문계열 학생에게는 오히려 다행인 것이, 사회탐구 2과목 체제가 되면서 선택과목 사이의 유불리가 심해진 것이 한국사 필수지정으로 다소 완충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서울대 지망생은 한국사를 봐야 하기 때문에 특정 과목을 골라서 생기는
선택과목 한국사 초창기에는 수능 1등급 받으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도 70점 받기에 충분하다고들 했지만, 선택 체제가 끝날 때쯤에는 너무 심하게 충분해져서(!!!) 수능 1등급 받으면 한능검 고급 만점을 바라볼 수 있다.[2]
필수 한국사 영역이 된 이후로는 내신에서 불과목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수능과 다르게 상대평가 9등급제를 유지해버렸기 때문인데, 사실 내신은 예전과 크게 바뀐점이 없으나 문제는 국영수와 같은 기초영역과목이 되면서 한국사에서 벗어날 방법 자체가 아예 봉쇄되어 버린 점이 크다.[3]
3. 시험 의견 및 후기
3.1. 2014학년도
- 6월 모의평가 (2013. 6. 5.)
7차 교육과정 시절 국사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만큼 상당히 어렵게 출제되었다. 2012.5.17 예비 시행 때와 동일하게 전근대 6문항, 근현대 14문항으로 30:70 비율로 출제되었으나 전근대의 경우 학생들이 어려워하던 서적사를 비롯한 전근대의 문화사가 등장하지 않은 데다가[4] 근현대사의 경우 꼬아서 내는 문제가 많았다. 이것 때문에 체감상 까다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다만, 예년 수능 근현대사 기출문제 수준 이상의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확정 1등급 컷은 43점이다.
- 9월 모의평가 (2013. 9. 3.)
전체적으로 문항들의 수준이 6평처럼 보통 이상이었다. 9번 문항의 경우 역사적 사실의 단순한 암기에 그쳤다면 동학농민운동의 폐정 개혁안과 갑오개혁 개혁안 간의 연관성을 파악하지 못해 분명히 아는 개념인데도 틀리는 고난도 문항이었고, 13번 문항의 경우 변별을 두기 위해 연도를 외우거나 아니면 흐름을 정확히 꿰고 있어야 하는 개항기 문화 문제가 나왔다. 지문이 EBS 연계이긴 하지만, 어지간해선 대한자강회라는 것을 파악하기 힘든 지문이었다. 이번 모의평가에서 등급을 가르는 문항은 16번 북로군정서의 활동을 묻는 문항이었다. 청산리 대첩이 일어난 곳의 세부적 지명을 알고 있거나 용정이라는 지명과 백두산을 서남쪽으로 둔다는 서술을 바탕으로 위치를 추론해 1930년대 한국 독립군이 아니라[5] 1920년대의 북로군정서임을 알아야 한다. 확정 1등급 컷은 48점으로, 6월 모의평가에 비해 5점 상향 조정되었다.
- 대학수학능력시험 (2013. 11. 7.)
본 수능에서는 6, 9월보다 더 쉬운 수준과, 응시 집단의 특수성으로 인해 1등급 50, 2등급 47이 되어 변별을 상실했다.[6] 다만 중국 관내 독립 운동에 관한 14번 문제는 어느정도 변별을 두기 위한 문제로 (가) 자료의 시기[7]를 분명하게 해석하지 못했다면 틀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3.2. 2015학년도
- 6월 모의평가 (2014. 6. 12.)
작년 수능보다 쉽게 출제되었다. 5번 문제와 20번 문제가 그나마 어려웠다고 평가되나, 정답률이 둘 다 40%를 넘어 변별력을 쥐기에는 부족했다는 평이 많다. 확정 1등급 컷은 47점이다.
- 9월 모의평가 (2014. 9. 3.)
모든 문항이 쉽게 출제되어 변별력을 상실하였다. 주목할 만한 문제는 12번 문제이다.(가) 창립 이래 3년 동안 활발히 활동해 온 우리 당은 삼균제도의 실시를 주창해 왔다. 본 당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모아 대오를 통일하며 임시 정부를 옹호하는 동시에, 반침략 전쟁의 우군과 함께 독립 전쟁을 진척시켜 나갈 것이다. …(중략)… 동양의 평화를 확립하자면 연합국 부대와 더불어 작전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각오하자.(나) 일본은 올해 말 미국을 기습 공격하였으며 동방 각 민족을 노예로 부리려 한다. 본 당은 조선 혁명 간부 학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중국의 항일 전쟁에 참가하였다. …(중략)… 최근 정세로 보아 임시 정부에 대하여 지금까지 취해 온 태도를 버리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올해 5월 임시 정부에 가입하여 그 활동을 지지하기로 결정하였다.
답은 4번이었으나, 1번과 5번을 답으로 착각하여 고른 학생이 여럿 있었다. 확정 1등급 컷은 50점, 2등급 컷은 47점이다.
- 대학수학능력시험 (2014. 11. 13.)
어려웠다. 작년 수능 수준과는 급이 다른, 까다로운 문제를 여럿 출제하여 변별력을 갖추었다. 중세 문제인 4번(오답률 65%)에서 에서 후삼국의 수도인 개경(개성), 완산주(전주), 금성(경주)의 위치를 제시하고 각 지역의 역사를 묻는가 하면, 근대 문제인 9번(오답률 66%)에서는 갑신정변의 장소 이동 (우정국-경우궁-창덕궁),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 (경복궁), 대한제국 선포 (환구단) 등의 장소를 숙지하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 하지만 이런 핵폭탄급 문제를 투하하고 나서도 1등급 컷은 47점 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역덕후와 서울대 지망생의 표본 수준이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점수 1등급컷은 47점, 만점자는 567명(1.46%) 표준점수 67점.
3.3. 2016학년도
- 6월 모의평가 (2015. 6. 4.)
11번, 15번, 19번은 가채점 기준으로 정답률이 50% 이하인 문제들이었고 7번, 20번도 정답률이 50%를 약간 상회하는 문제들이었다. 현대사 파트가 어렵게 나온 편. 곳곳에 수준 있는 문제들을 넣어서 변별력을 확보하였다. 확정 1등급 컷은 47점, 만점자 비율은 1.5%(515명)이다.
- 9월 모의평가 (2015. 9. 2.)
특이하게도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에 관한 내용이 출제되었다. 눈치 좀 있으면 다 백제 유적지임을 간파하고 무령왕릉을 찍을 수 있었다. 작년 수능에 나온 유형인 궁궐문제가 출제 되었으나 간단한 지식만 물어봐 수월했다. 일본공사 오토리 게이스케로 시대구분하는 문제가 나와서 수험생을 당황시켰다. 12번 문제에서 한글자 차이로 완전히 차이나는 독립군 부대를 구별하지 못하면 틀릴 수 있고,(조선 의용군, 조선 의용대) 13번 문제에서 국가 총동원령(1938)과 황국 신민 서사(1937)가 헷갈릴 수 있다. 14번문제에서 자료 (가)를 을미사변으로 잘못 파악해서 틀린 경우도 꽤 있는 듯 하다. 나머지는 한국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쉬웠다.
이 모의평가에서는 "생소한 사료와 쉬운 선지"를 주로 활용했기 때문에 본 수능에서 단순히 "생소한 사료"만을 출제해 불이 될 것을 대비해 공부를 더욱 꼼꼼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등급 컷은 50점이며, 만점자 비율은 6.62%이다.
- 대학수학능력시험 (2015. 11. 12.)
한국사가 수능에서 필수가 되기 전 마지막 시험이다. 2014학년도 수능보다는 어려웠지만, 한국사 선택자 수준을 간과하여 만점자가 10%를 소폭 넘어 간신히 2등급 블랭크를 면할 정도로 변별력을 상실했다.
최고난도 문제는 9번(오답률 69%)이다. 이 문제 덕분에 등급 블랭크를 막을 수 있었는데, 지문 (ㄱ)에서 "일본 공관을 새로 지을 수 있도록"이라는 핵심 키워드로 삼아 한성조약임을 맞혀야 했는데, 다수가 제물포 조약이라고 판단하여 틀렸다. 이 문제를 틀리면 2등급이었고, 3점짜리를 틀리면 3등급이 됐다. 1등급 컷은 50점, 만점자는 3901명(10.47%) 표준점수 63점. 절대평가 대비용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사실 이 수능은 절대평가 한국사 이래 가장 어렵게 출제된 2022학년도 9월 모평(40점 이상 1등급 7.6%)보다도 훨씬 어려웠다. 한국사 응시자 표본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시험.
4. 학습 팁
이 당시 한국사는 전근대 20%, 근현대 80% 정도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으며, 수능 때는 전근대 30%, 근현대 70%의 비율로 출제한다. 또한 교과서에서 서술되어 있는 세계사 부분도 한국사의 흐름 내에 영향을 주는 범위 내에서만 출제하며, 또한 그 수준 또한 매우 낮은 편이다.[8]6종 교과서 중 3종 이상의 교과서의 공통 부분만 정답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전근대의 경우는 지엽적인 선지가 많이 줄었다. 다만 지엽적이지 않을 뿐이지 전근대사의 내용이 적은 건 결코 아니다. 교과서만 하더라도 내용이 적은 게 아니라 요약식일 뿐 내용이 상당히 많다. 사회문화 같은 경우 한 단원에서 배워야 하는 공부량이 한국사에선 소단원에 불과하다 싶을 정도로 양이 정말 많다. 거의 암기과목 수준으로 나열되어 있는 개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교과서만 숙지하더라도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나온다는 점이 위안일 듯. 실제로 교과서의 공통분모를 묶어보면, 전근대는 어느정도 내용이 많은 조선 후기 화폐경제의 발전을 제외하면 정치사 밖에 낼 데가 없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다면, 평가원 홈페이지를 통해 교육과정 해설서에서 교과 단원 영역별 내용에서 요구하는 바를 보고 시험에 나올 것을 정리해보자. 국가교육과정 정보센터 홈페이지. 교과별로 내용을 보고 싶다면, 위 링크에서 영역/교과목별을 클릭한 뒤 한국사에서 2009 개정 시기 고등학교를 보면 2016학년도까지의 한국사 관련 교육과정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근현대사인데, 이게 7차의 한국근현대사 내용에서 내용이 줄은 것도 있는데다, 수준도 내려갔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실수가 허용될 수가 없다. 그런데 교과서로만 공부해서는 흐름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흐름을 잡을 수 있는 인강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이후 수능 기출 문제를 풀면서 개념을 다진다. 여기까진 거의 대부분 과목들과 테크가 같다.
수능에서 역사 과목은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가령 조일통상장정을 공부한다고 하면, 그 조약으로 인해, 또는 그 조약 전후와 비교해서 어떠한 사회 경제적 영향이 있었는지 파악해야 하며[9], 물산장려운동에 대해 공부한다고 하면 발생 배경이 무엇이며 과정은 어떻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또 특기 사항은 무엇인지[10] 기억해야 한다. 이 중요한 점을 잊고 단순히 한 사건을 별개로 간주한다면, 수십 개를 다 외웠다고 해도 거의 대다수의 문제를 풀 수 없다. 특히 3.1 운동은 교육과정에서부터 배경, 과정, 결과와, 이에 따른 임시정부 수립을 중요시하며 이 부분을 이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1]
현대사 쪽으로 들어가면 몇 달 차이를 구분하는 문제는 예사로 나오며, 개항기 동학농민운동에서는 며칠 차이를 구분하는 문제조차 나온다. 이런 면에서 1894년과 해방정국은 그저 생지옥.[12][해방정국은 이것보다는 덜 촘촘하지만 여전히 몇달 단위로 사건이 붙어 있고 많은 회의가 열려 헷갈린다.]사실 이를 다 외워야 할 필요는 없으며 제시문에서 다른 힌트를 찾아 묻는 바를 찾으면 된다. 또 제시되는 사료 또한 매년 새로운 것을 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지문 해석력 또한 요구한다. 특히 현대사 부분은 시사에 관심이 많다면 들은 이야기가 많아 공부하는 데 매우 수월할 것이다.
기존 근현대사를 공부하듯 개항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일제강점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대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나눠서 공부하여도 큰 무리는 없다. 다만 경제와 문화는 전통적으로 개항기 쪽에서 많이 출제되었으며, 가끔 일제강점기 문화가 나오고, 2014학년도 수능에서 당시 상황을 묻는 문제가 현대사에서 나오기도 했다. 현대사는 2014학년도 본 수능에서는 중상의 수준으로 나오고 최고난도 문제는 나오지 않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부분이기 때문에 현대사를 꼼꼼이 공부하는 것이 만점을 놓치지 않는 방법이다.
독립운동사 파트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최대 관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름 가지고 장난치는 건 신민회-신간회부터 시작해서, 그 절정은 무장 독립 운동사. 이름들이 비슷비슷한 무장 독립 운동 단체(ex : 대한 독립군, 대한 독립군단, 한국독립군, 한국 광복군, / 조선 의용대, 조선 의용군/조선 혁명당, 조선 민족 혁명당. 글자 한두개만 바꾸면 완전히 다른 단체가 된다. 이름은 같은데 시기가 다르고 전혀 관련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거기에 소속이 임정이냐 사회주의 저항군이나에 따라 또 갈리고 합병도 한다. 심지어 한국 독립당은 1919년부터 광복까지 무려 네 단체가 한국 독립당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또한 지도자 이름도 당연히 같이 외워야 하는 건 치는 사람이면 다 알 것이다.)들과 그 활동 지역, 지도자들을 구분하는 것이 학생들을 압도한다.
2014 수능에서 이 부분을 변별을 시도한 문제로 냈는데, 위에서 서술했듯 (가) 자료에 한국독립당을 언급했지만 이게 1935년의 상황인지 1940년의 상황인지 구별하지 못하면 그냥 썰리는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한국사를 다른 과목처럼 평범하게 공부했던 학생들은 문제의 유일한 키워드인 '5당 통합'이란 표현을 시험지를 받은 그때서야 처음 봤다는 것이었다. 알 만큼 알고 공부할 만큼 했는데, 참고서 한 권에서 모르는 내용이 하나도 없는데, 역대 기출문제와 EBS와 시중의 문제집들을 모두 외웠는데 시험에 모르는 내용이 나와서 틀리는 황당한 상황이 한국사에서는 연출된다.
사실 한국사는 선택자들의 수준과 선택 이유와 목표 점수부터 일단 다른 과목과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과목에 대해서만은, 이것까지는 외울 필요가 없고 암기 없이 쉽게 가도 된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2015 수능 기준 다 맞은 것(표준점수 67)과 1개 틀린 것(표준점수 65)은 한국사 선택자에게는 하늘과 땅 차이이며, 그들은 대기권을 뚫고 성간 여행을 하기 시작한 문제 수준을 극복하고 후자가 아닌 전자의 점수를 등급컷에 상관없이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한국사는 47점 1등급을 받고도 기뻐할 수 없는 과목이다.
2015 수능 기준으로 국어 97점(1등급), 수학 96점(1등급), 영어 98점(1등급), 한국사 47점(1등급), 사회문화 50점(1등급)을 받으면 서울대식 표준점수로 524.8점이 되어, 526점이 되지 않아 서울대 어떤 학과에도 합격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사가 만점이면 526.4점이 되어 서울대 합격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사가 2등급이어도 언수외 만점이면 서울대에 갈 수 있기는 하지만 합격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한국사 만점이라는 것이다. 한국사 만점을 받지 못하면 꼼짝없이 언수외 만점을 받아야만 하는 잔인한 입시 현실에서 암기하지 않아도 풀리게끔 문제가 출제될 거라고 대충 넘겨짚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므로 수능 한국사 공부는 어쩔 수 없이 교과서에 있는 모든 연도를 다 외우는 기행적이고 비인간적인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5. 역대 수능 한국사 상대평가 커트라인
2009 개정 교육과정
2과목 선택 적용 시기 (2014~2016)}}} ||<rowcolor=#000,#ddd> 학년도 | 월 | 1등급컷 | 2등급컷 | 3등급컷 |
2014 | 6 | 43 | 39 | 33 |
2014 | 9 | 48 | 44 | 38 |
2014 | 수능 | 50 | 47 | 43 |
2015 | 6 | 47 | 43 | 36 |
2015 | 9 | 50 | 47 | 44 |
2015 | 수능 | 47 | 44 | 40 |
2016 | 6 | 47 | 42 | 36 |
2016 | 9 | 50 | 46 | 44 |
2016 | 수능 | 50 | 48 | 46 |
[1] 이전의 삼사(三史)는 '국사, 한국 근ㆍ현대사, 세계사'였다.[2] 서울대에 가기 위해 필요한 공부량 자체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1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한국지리, 사회문화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사실 그것보다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수준이 대폭 하락한 탓이 더 크다. 초창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는 우리나라의 철도가 협궤인지 광궤인지 표준궤인지 알아야 하는 문제가 출제되기도 하는 등, 과거의 7급 공무원 한국사보다도 어렵고, 학예사 시험에 준하는 수준이었다.[3] 이전에는 수능 필수더라도 결국 사탐이라 이과로 도망치면 도피할 수 있었다.[4] 전근대의 경우 가장 낮은 정답률의 문제는 3번 문항의 임술농민봉기였다. 그마저도 정답률이 50% 중반, 틀린 학생들은 동학농민운동과 혼동했을 것이다.[5] 교과서에 한국 독립군의 활동 위치가 나와 있다.[6] 만점자 비율이 응시자의 8.94%이고 만점자 표점이 64점이다. 의외인 점은 48-47점이 표준점수 증발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48점에서 11%를 넘지 못하여 2등급컷은 48점이 아닌 47점이 나왔다.[7] 민족혁명당 결성 직후로서 1935년에 해당한다. 얼핏 잘못 해석하면 1940년 한국독립당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자료였다.[8] 6월에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사를, 본 수능 때는 한국사에 영향을 준 동북아 국가나 서구 열강들 사이의 조약과 이에 관련된 한국사의 사건을 묻는 문항을 출제했다.[9] 특히 이 조약은 조일수호조규와 비교되어 3점 짜리 문제 단골이다.[10]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았다.[11] 즉 3.1 운동은 수능에서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12]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남쪽은 동학농민운동, 중앙에서는 갑오개혁, 북쪽에는 청일전쟁이라는 세 사건이 나란히 전개되고 있었으니 당연한 노릇. 동학농민운동 1차 고부봉기(1.11)+2차 백산봉기(3)+청군 진입+일본군 진입+일본군 경복궁 점거(6.21)+갑오개혁(6.25)+청일전쟁 발발(7.25)+3차 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