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개요
다비드 비야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1.1. 스포르팅 히혼
비야는 다수의 아스투리아스 연고의 클럽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지역의 대형 클럽들 중 하나인 레알 오비에도는 비야가 키가 너무 작고, 충분한 잠재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그는 유년시절 우상이자 키니라는 별명으로 불린 엔리케 카스트로 곤살레스의 발자취를 따라 지역 클럽인 스포르팅 히혼에 입단하였고, 프로무대에서 대도약을 하게 된다. 클럽 유스팀에서 시작한 그는 2000-01 시즌에 1군에 데뷔하였고, 2시즌간 25골을 넣으며 1군 주전으로 자리잡는다. 당시 스포르팅 히혼의 감독이었던 페페 아세발은 "비야가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에 체력이 부족했었다"고 말하였고, 기회를 조금씩 부여하였으며, 비야의 체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은 "선례에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덧붙였다.1.2. 레알 사라고사
그는 히혼에서 1번의 풀 시즌을 보내며 40골에 가까운 득점을 기록하다가, 히혼이 재정난을 겪게 되면서 스페인 1부 리그로 이적해 활약할 기회를 잡게 되었고, 2003년 여름에 새로이 승격한 레알 사라고사가 그를 약 €3M에 영입하였다. 비야는 상위 리그에 적응하는데 큰 문제를 겪지 않았고, 사라고사에서의 첫 시즌에 17골을 넣으며 1부에서도 통함을 보여주었다. 그의 리그 데뷔전은 그가 이적하고 나서의 사라고사 첫 라리가 경기로 팀은 갈리시아 연고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원정에서 0-1로 패하였다. 첫 골은 2경기 후에 터졌는데, 레알 무르시아와의 경기에서 그는 8분에 득점하여 사라고사의 리드를 2-0으로 벌렸고, 경기는 3-0 승리로 종료되었다. 2003년 12월 4일, 그는 2-2로 비긴 아틀레틱 빌바오전에서 처음으로 멀티골을 달성하였고, 2004년 4월 25일에 비야는 4-4로 비긴 세비야 원정에서 4골을 모두 자신이 넣었으며, 이 중 두 번의 득점은 팀에게 리드를 가져다 주는 득점이기도 하였다.사라고사는 2004년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 진출하였고, 그는 아라곤 연고의 클럽이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1로 리드해 나가는 천금같은 골을 득점하였고, 경기는 3-2 승리로 종료되었다. 국가대표팀 첫 차출과 데뷔 이후, 사라고사는 그의 업적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였고, 그들은 축구 응원가 "이야 이야 이야, 비야 마라비야" ("illa illa illa, Villa maravilla") 를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비야' (Villa) 와 '마라비야' (maravilla) 의 말장난으로, 여기서 '경이로움'을 뜻하나 '아주 멋진'이나 '굉장한'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1.3. 발렌시아 CF
225경기 129골 28도움 |
1.4. FC 바르셀로나
119경기 48골 15도움 |
1.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3년 8월 21일, 비야는 친정 팀 바르셀로나와의 2013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차전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르는 동시에 데뷔골을 오른발 발리슛으로 득점하였다. 이후 9월 1일 레알 소시에다드 원정에서 코케의 패스를 받아 알레띠 소속 리그 첫 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이후 3월 8일, 비야는 셀타 비고를 상대로 아틀레티코 소속 이후 첫 멀티골을 득점하였다.
2014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도 선발출전하였다. 디에고 코스타가 햄스트링으로 경기시작하지 얼마안된 시점으로 이탈하면서 공격진을 이끌어야했지만, 디에고 고딘의 골로 앞섰다. 하지만 후반 종료 직전에 세르히오 라모스에게 동점골을 내주더니 연장전에서만 가레스 베일, 마르셀루 비에이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무려 3골을 내주면서 4대1로 참패, 결국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2013-14 시즌 아틀레티코에서 라리가 36경기 13골 4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비록 시즌 내내 패스 성공률이 저조했고, 챔피언스리그 7경기 무득점 무 공격포인트였으며 자주 고립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많은 활동량과 함께 중요한 순간에는 득점을 기록하며 골게터로써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듯. 디에고 코스타에 이어 리그에서 팀내 득점 2위를 기록했다.[1] 또한 팀이 리가 우승을 거머쥐며, 개인 통산 세번째 라리가 메달을 획득했다.[2]
시즌이 막내린지 얼마되지 않아 5월 31일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팀으로 창단되는 뉴욕 시티 멤버로 뛴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참고로 이 팀은 리얼부 구단주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얀과 뉴욕 양키스가 합작해서 만든 팀이다. 2015시즌부터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게 된다. 다만 지분은 맨체스터 시티가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다. 2014년 6월 1일부로 뉴욕시티 FC의 첫 번째 선수가 됐고, 뒤 이어 프랭크 램파드 역시 뉴욕 시티에 영입이 되었다.
2013-14 시즌: 47경기 15골 4도움
라리가: 36경기 13골 4도움
UEFA 챔피언스 리그: 7경기
코파 델 레이: 2경기 1골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경기 1골
1.6. 뉴욕 시티 FC
뉴욕 시티에서 정리한 다비드 비야의 커리어 |
1.6.1. 멜버른 시티 FC (임대)
멜버른 시티의 트레이닝 캠프부터 참가하게 되었고 10월 11일 A리그 데뷔경기에서 시느니를 상대로 63분에 득점하여 데뷔경기에 데뷔골을 기록했다. 10월 19일 뉴캐슬 제츠와의 경기에서 0:1로 패배하고 있는 가운데 87분에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고 그 뒤 10월 25일에 멜버른 빅토리, 10월 31일에 애들레이드과의 경기에 출전하였고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MLS 개막과 뉴욕시티의 트레이닝 캠프 일정에 맞춰 최소 10경기는 출전하여 2014년은 멜버른 시티에서 보낼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0월 31일 애들레이드 경기를 끝으로 뉴욕 시티로 복귀하였다.1.6.2. 복귀
2015년 1월이 시작되자마자 맨체스터 시티로 임대 간 프랭크 램파드의 이적 파동으로 시끄러워졌고, 프랑크 램파드는 뉴욕 시티 FC가 아니라 시티 풋볼 그룹과 계약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램파드의 뉴욕 시티행은 위장 전입과 다름없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때문에 다비드 비야 역시 맨체스터 시티의 위장 영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나왔으나, 뉴욕 시티의 트레이닝 캠프에 멀쩡히 참가하고 있었고 별 다른 소식이 없기 때문에 비야는 램파드와 다르게 애초부터 뉴욕 시티에서 영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시즌 시작 전에 신생팀의 첫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15년 2월 11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펼쳐진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 클럽 세인트 미렌과의 친선경기에서 첫 득점을 기록했다. 뉴욕 시티의 역대 최초 등록 선수이자 뉴욕 시티의 역대 최초 득점을 기록한 것. 다만 2월 17일 덴마크의 브뢴비와의 경기에서는 묻혔다. 그 이후 북미 프리시즌 컵 대회인 첼린지 컵 등에도 참가 하였고 2015 MLS 개막전에는 카카의 올랜도 시티와 경기를 치르며 MLS에 데뷔했다. 3월 15일 뉴 잉글랜드 레볼루션과의 경기에서 MLS 데뷔 득점을 기록했다. 이렇다 할 공격 옵션이 없는 뉴욕시티에서 다비드 비야 혼자 분전했으나 신생팀의 한계인지 15년 5월 까지 1승 5무 8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고 다비드 비야 역시 중간에 부상까지 당하면서 공백이 있었다. 하지만 다비드 비야가 복귀한뒤 5월 30일 경기부터 7월 10일까지 5경기 중 6골을 기록하고 팀도 4승 1패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뉴욕 시티는 현재 유일한 공격 옵션인 다비드 비야가 미드필더진까지 내려와 볼 배급을 하고 공격까지 마무리 하는 등 혼자 팀을 이끌고 있는 중이며 얇은 미드필더진이 약점으로 지적받고 있으나 이 부분은 안드레아 피를로와 프랭크 램파드의 영입으로 해소될 예정. 7월 26일 안드레아 피를로가 후반전에 잠시 출전한것에 그쳤지만 그럼에도 미드필더 진을 장악하며 특유의 롱패스로 공격을 진행했고 덕분에 다비드 비야는 공격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신생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분전하며 30경기 18골을 넣으며 수준급의 활약을 보여줬지만 신생팀의 한계 때문인지 34경기 10승 17무 7패 컨퍼런스 8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6년에는 2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 나와 33경기 23골 5어시스트라는, 정말 나이가 무색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활약덕에 국가대표 복귀설까지 나오고 있으며, 시즌 종료 후에는 2016 랜던 도노반 MVP[3]까지 수상했다.
2017년에도 비야의 활약은 여전했다. 작년보다 더 빠른 득점 페이스를 보이면서 24경기 19골을 기록하고 있다. 6월에는 MLS 통산 50골을 기록하고 45m 거리에서 골을 넣는 등[4]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결국 3년 2개월 만에 국가대표에 재승선하게 되었다. 이로써 비야는 스페인 국대 센추리 클럽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2018년 4월 30일 MLS 9라운드 댈러스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커리어 통산 400득점을 돌파했다. 전반기에는 리그 정상급 활약을 보여줬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하고 월드컵 이후로도 기량 하락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클래스는 어디가지 않아서 후반기에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공헌을 하고 필라델피아 유니언과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도 골을 집어넣으면서 승리를 거뒀지만, 2라운드 애틀랜타 유나이티드와의 홈 앤드 어웨이 경기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1.7. 비셀 고베
현지 시각 2018년 11월 30일, 뜬끔없이 J리그 진출설이 나오더니 몇 시간 후 정말로 고베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는 오피셜이 떴다!이로써 FC 바르셀로나 시절 팀동료였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일본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등번호는 7번이 될 가능성이 큰데, 현재 7번을 달고있는 미타 히로타카는 원래 8번을 달고있다가 이니에스타에게 등번호를 빼앗겼던 선수였다. 아마 이번에 또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결국 비야는 7번 확정.. 히로타카는 14번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VIP 3인방 중에서 그나마 제몫을 하고 있다. 중간 잠깐 부상기를 제외하면 경기도 가장 잘 나오고 있고 6월까지 15경기 출전 9골이라는 괜찮은 스탯도 가지고 있다.
이전에 비해 속도나 활동량이 죽어서 돈값을 못하고 있다곤 하지만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기량 하락이 오지 않을리없고 아직도 전성기 수준이었다면 애초에 고베로 이적했을리도 없다. 고베에서도 전성기급 활약을 기대하면서 그 돈을 지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니에스타와 포돌스키가 아무리 똥을 쌌어도 2018시즌 고베의 한 해 수익이 역대 제이리그 최다 수익인 점을 감안하면 비야의 굿즈 판매와 비야를 보려는 관중증가 등으로 볼때 손해보는 장사도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여태까지의 슈퍼스타들과 다르게 활약도가 좋다는 점이다.
7월 6일 시미즈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터뜨리면서 득점 선두까지 올라갔다.
2019년 11월 13일, 이번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리그 13골을 기록하면서 득점선두 5위의 준수한 성적으로 현역 마지막 시즌을 마쳤다.
야심차게 데려왔던 스타들이 경기력 부진,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던 반면에 다비드 비야는 마지막까지 계약한 팀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선수였다.
2020년 1월 1일 열린 2019 천황배 결승전에서 소속팀 비셀 고베가 승리함에 따라 우승 트로피 1개를 추가함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며 커리어를 종료하게 됐다.
[1] 모든 대회를 합치면 팀내 득점 2위는 라울 가르시아.[2] 그리고 7년 뒤에 비야와 같이 바르셀로나에서 쫓겨나고 아틀레티코를 우승시킨 선수가 등장했다.[3] 2016년부터 MLS 최우수 선수상의 이름을 미국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랜던 도노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랜던 도노반 MVP로 바꾸었다.[4] http://www.mbcsportsplus.com/news/?mode=view&cate=21&b_idx=9994901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