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메디아 대성당 2만 순교자 20,000 Martyrs of Nicomed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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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메디아 대성당이 불에 타는 모습 | |||
<colbgcolor=#bc002d><colcolor=#fff> 발생일 | 304년 12월 25일 | ||
발생 위치 | |||
니코메디아 대성당(現 튀르키예 이즈미트) | |||
유형 | 화재 | ||
원인 | 황제 막시미아누스의 그리스도교 박해 명령 | ||
인명 피해 | 20,000명 |
1. 개요
304년 12월 25일 성탄절에 니코메디아의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자행된 잔혹한 대학살이다.2. 상세
304년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1], 동로마 제국의 도시 니코메디아로 이동해 현지 그리스도 공동체에게 로마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승리를 감사하라고 명령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거부하자 막시미아누스 휘하의 군인들은 몇 천 명에서 2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학살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끔찍한 고문을 당하거나 교회 안에서 산 채로 불태워지기까지 하며 희생되었다.3. 순교자에 대한 기록
[그림1]. 니코메디아의 주교 안티모와 그리스도인들
니코메디아의 주교 안티모(Anthimus)는 학살을 피해 오마나(Omana)라는 작은 마을로 피신하여 생존자들을 돌보고, 굳건히 신앙을 지키라 권면하는 서신을 계속 보냈다. 그러나 어린 자녀를 둔 사람조차 대부분 로마 병사들에게 추격·체포되어 결국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에우세비우스에 의하면 이 박해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치세에 벌어진 것으로 전해지며, 당시에는 "피의 강"이 흐를 정도로 참혹했다고 한다.
대량 학살과 고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절멸 이후, 니코메디아의 그리스도인 존재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일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로마 병사들의 추적을 피해 숨는 데 성공했다. 그들 가운데 당시 아기였던 성녀 바실리사(Basilissa)도 있었다. 학살에 의해 부모가 숨진 뒤 그녀는 한 사제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다섯 해 뒤인 309년에 겨우 아홉 살의 나이로 다시 붙잡혀 고문 끝에 순교했다.
당시에는 니코메디아의 주교였던 치릴로(Cyril)의 영향으로 황제의 궁전 안에도 비밀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 무렵 이교 제사장이었던 돔나(Domna)라는 여인은 하느님의 섭리를 통하여 사도행전과 성 바오로 서간을 손에 넣었고, 그리스도교 교리를 더 알고자 마음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세례 후 돔나는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었고 자신들은 먹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궁정 총환관은 돔나와 이를 도움 인데스(Indes)를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천사의 도움으로 그들은 해를 입지 않았다.
한편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황제는 전 제사장 돔나를 찾으라고 명했다. 파견된 군사들은 수도원을 파괴하고 수녀들을 감옥에 넣어 고문하고 능욕했으나 누구도 정절을 잃지 않았다. 수녀 가운데 테오필라(Theophila)는 매음굴에 던져졌지만, 주님의 천사의 도움으로 순결을 잃지 않았다. 천사는 그녀를 그곳에서 끌어내어 대성당으로 데려다 주었다. 얼마 뒤 황제는 군대를 이끌고 교회로 가서, 군중에게 우상 숭배를 하면 형벌을 면해 주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교회와 함께 불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순교자는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기도와 주님의 이름을 그치지 않았고, 결국 화형에 처해졌다.
[그림2]. 성녀 동정 순교자 율리아나(juliana)
율리아나는 이교도인 아버지의 강요로 황제의 고문관 가운데 한사람과 정략결혼을 할 처지에 놓이자, 이를 거부하고 순교하였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성녀는 오랜 시간 잔혹한 매질을 당했으나, 매번 하느님의 은총으로 상처가 치유되고 새 힘을 얻었다. 그 광경은 많은 군중 앞에서 자행되었다. 이를 지켜본 500명의 남자와 130명의 여자가 성녀의 굳건한 용기에 감동해 그리스도를 고백하였고, 모두 참수되어 자기의 피로 세례를 받았다.
니코메디아 학살로 희생된 수천에서 2만 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순교자로 공경되어, 로마 가톨릭·동방 정교회·비잔틴 가톨릭·오리엔트 정교·루터교·성공회 등 여러 교회 전례에서 기념된다. 가톨릭 교회는 "2만명" 이라는 숫자는 전승상의 아포크리팔(과장)으로 보지만, 니코메디아 순교자들에게는 여전히 고유한 축일이 지정되어 있다. 동방 정교회와 비잔틴 가톨릭 교회는 12월 28일에 이들을 기념하고, 로마 순교록에는 별도의 항목이 두차례 실려있다. 하나는 4월 24일 니코메디아의 안티모와 동료 순교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6월 23일 니코메디아의 많은 거룩한 순교자들의 기념이다.
[1] 304년에 발생한 에티오피아 전쟁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297년 - 299년에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북아프리카를 정벌한 기록은 남아있다. 사료적으로 보건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에티오피아 전승 기록은 5 - 6세기엔 이미 필사본에 자리잡은 고대·중세적 교회 설화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