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9 22:23:06

나가토모 유토/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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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프로 데뷔 이전3. FC 도쿄 1기4. AC 체세나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5.1. 2010-11 시즌5.2. 2011-12 시즌5.3. 2012-13 시즌5.4. 2013-14 시즌5.5. 2014-15 시즌5.6. 2015-16 시즌5.7. 2016-17 시즌5.8. 2017-18 시즌
6. 갈라타사라이 SK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8. FC 도쿄 2기

1. 개요

나가토모 유토의 클럽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프로 데뷔 이전

외할아버지 형제가 경륜 선수로 유명한 스포츠 일가에서 태어난 나가토모는 소학교 1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소학생 시절에 에히메 FC의 유스팀 입단을 노렸지만 실패했고, 시립 중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하던 2001년에 U-15 전일본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현 3위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 후 축구 명문고인 동부 후쿠오카 고등학교에 진학해 주전 멤버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전국적으로는 무명선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체육특기자 전형 지명을 받지 못한 채 지정추천제도를 통해 메이지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했고, 축구부에 들어가긴 했으나 추간판 탈출증에 걸려 부상 이탈하게 되면서 벤치 붙박이가 되었다.[1] 졸업하면 그냥 샐러리맨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을 정도로 나가토모에게는 힘든 시기였으며, 어쩌다 보니 축구 실력보다도 응원석에서 큰북을 두드리는 사람으로 유명했던 모양. 당시 대학축구계에서 상당히 유명했다고 한다. 그냥 일정한 리듬으로 크게 두드리는 다른 큰북과는 달리 아프리카의 정열을 담아 드럼을 두드리듯이 리드미컬한 리듬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 프로팀[2] 서포터즈 집단인 IN.FIGHT에서 '우리 팀에 와서 북을 두들겨주게!'라는 오퍼도 받았다는 모양이다. 이게 인테르 입성 기준으로 불과 5년 전의 일.[3]

하지만 고학년에 진학하면서 척추 부상을 극복하고 강인한 체력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비로소 주전 멤버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3백에서의 센터백으로도 출장하기도 했으며,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전일본 대학 선수권에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명성을 쌓았다.

3. FC 도쿄 1기

2007년 5월부터 특별지명선수로 지목받아 FC 도쿄와 함께 훈련을 소화하더니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 국가대표로 출장, 말레이시아전에서 골을 기록하면서 완전히 축구선수가 되는 것으로 진로를 잡고, 같은 해 8월 메이지 대학 축구부를 퇴단한 후 FC 도쿄에 입단했다. 나가토모 본인은 혼자 힘으로 3남매를 키워주신 어머니에게 보은하고 편하게 사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입단을 결정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입단 첫 해에는 주로 레프트백으로 출장했으나 감독의 스위칭 지시에 의해 라이트백으로도 몇 차례 출장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피지컬 코치와 함께 주법 개량에 매진하여 기량을 끌어올렸고, 결과 같은 해 팀의 J리그 컵 우승에 혁혁한 전공을 세워 J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지명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후 2010 월드컵에서의 활약까지 더해지며 20년만에 세리에 A 승격을 확정지은 AC 체세나로의 이적이 확정되었고, 나가토모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가 되어 언젠가 다시 FC 도쿄의 유니폼을 입고 싶다는 퇴단 소감을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4. AC 체세나

국가대표팀에서도 애용하는 등번호 5번을 받고 이탈리아에 입성한 나가토모는 곧장 레프트백 주전 자리를 확보하며 체세나에 없어선 안될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인테르로 이적하게 되는 1월 이적시장 직전까지 모든 경기를 선발로 뛰었으며, 감독은 그를 라커룸을 단결시키는 존재라며 극찬했다. 2011년 12월 ESPNSTAR.com가 발표한 2011년 세계 수비수 Top 5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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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010-11 시즌

2011년 겨울 이적시장 막바지에 동양인 최초로 인테르[4]에 입단하여 화제가 되었다. 우선 다비데 산톤과 맞임대되는 형식으로 팀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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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에도 기여했다.

5.2. 2011-12 시즌

130억원에 완전이적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7월 29일, 셀틱과의 더블린컵 경기에서 어깨가 탈구되어 2개월 아웃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몇 달 사이에 처지가 확 달라졌다. 무엇보다 팀이 부진한 점도 있지만(2011년 11월초까지 리그 17위로 강등을 겨우 모면 중이다.) 이탈리아 일간 '가제타 델로 스포르토'는 10월 30일 인테르 밀란이 유벤투스에 1대 2로 석패한 2011~2012시즌 세리에A 10라운드를 분석하며 나가토모에게 "잊혀진, 불쌍한 일본인"이라는 평과 함께 팀 내 최저인 4.5점의 평점을 매겼다.

사실 전 시즌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였던 것도 오버래핑을 무리하게 나가더라도 캄비아소, 마이콘 등의 수비력이 좋은 동료들이 그 빈 자리를 커버를 해주었기 때문. 여태까지는 잘 되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안 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드러난 대표적인 예가 각주에서 언급된 센터백에게 역관광 당한 샬케전. 그리고 2011~2012 시즌, 챔피언스리그 CSKA모스크바와의 원정경기에서 어시스트를 하며 활약한 것을 제외하면 인테르가 전체적으로, 특히 수비에서 불안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5]

그러나 그 동안의 부진을 털어내고 인테르와 함께 귀신같이 부활했다.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시즌 첫 골을 뽑아낸지 3일만에 제노아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몰아치고 2개의 어시스트까지 달성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고, 아시아인 최초로 밀란더비에 풀타임 출장해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나가토모의 활약과 함께 강등권을 왔다갔다하던 인테르는 11/12시즌 후반기 리그 4위까지 치고 올라왔으며 7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고 현재까지 준수한 활약을 펼치는가 했더니 이후로 후반기에 들어서 리그 다섯경기 1무 4패로 8위로 다시 곤두박질쳤다. 이 과정에서 뛰어난 공격력에 비해 수비적으로는 약점을 보이는 나가토모의 딜레마가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고, 이후 주전경쟁에서 밀리면서 PSG 등의 팀이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과 함께 이적설도 나돌았다.

하지만 인테르 수비진의 부진이 계속되자 다시 기용되었고, 그가 뛴 경기에서 성적이 잘 나오면서 선발진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2012년 5월 인터밀란과 재계약 성공. 최종적으로는 2016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고 한다. 이후 꾸준하게 활약을 보여주면서 2012년 겨울 이적시장 즈음부터 맨체스터 시티,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등으로의 이적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5.3. 2012-13 시즌

12-13 시즌 인테르는 그야말로 희대의 부상병동이었는데 나가토모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3년 초에 왼쪽 무릎의 반월판이 손상되는 부상을 당했고, 2달 정도 휴식을 가진 뒤 4월 중순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후반 교체투입된 복귀전에서 투입된지 8분만에 부상이 재발하여 다시 교대되면서 시즌 종료되었다.

5.4. 2013-14 시즌

13-14 시즌에는 개막전에서 골을 터뜨린 것을 시작으로 왼쪽 풀백과 윙으로 중용되면서 커리어 최다인 5골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타 팀으로 이적설이 계속 뜨고 있는데 심지어 FC 바르셀로나까지 링크가 걸릴 정도.

5.5. 2014-15 시즌

하지만 14-15 시즌에는 부주장으로 선임되었지만 잦은 부상과 더불어 브라질의 영건 도도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로 밀려났다. 부상이 그냥 부상이 아니고 햄스트링이었다. 비록 가제타라곤 하지만 방출명단에 들었다는 루머가 있고, 일본 국대 소집도 안됐다. 인테르에서의 입지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5월에서야 전열에 복귀해면서 후반기를 통으로 날렸다.

5.6. 2015-16 시즌

2015-16시즌을 앞두고 2015년 8월 1일,터키에서 갈라타사라이와 벌인 친선경기(0-1로 인테르 패)에서는 아예 25인 주전 명단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만치니 감독은 인터뷰에서 나가토모를 내보낼 예정이라는 말을 하며 방출될 전망이었으나, 이적 협상이 지지부진하며 결국 남았다. 현 상황에서는 그저 일본에 인테르 경기를 중계하게 만드는 브로커역할만 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로마전에 출전하여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이후 출전 회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전만큼은 아니라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어 한동안 쩌리 취급받던 인식을 약간이나마 반전시키는 중이다. 반대쪽 라인의 담브로시오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나폴리전에서 빅 똥을 싸면서 재계약 가능성을 스스로 붕괴시켰다. 포지션 경쟁자인 텔레스가 레드카드 먹고 퇴장당한 나가토모를 뒤이어 나와서 공백을 훌륭하게 메꿨기에 더더욱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준수한 폼이었다고 여겨졌는지 2019년 6월 30일까지 재계약에 성공했다! 연봉은 150만 유로(약 20억원)로 추정. 27경기에 출장해서 나쁘지 않은 폼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나, 활동량 대비 저조한 크로스 성공률이 사실 주전 보장을 발목잡고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나가토모가 재계약할 수 있었던 것은, 만치니가 산톤을 우측에 가져다 꽂으면서 고정적인 왼쪽 주전이 없었던 점이 크며, 또한 만치니가 나가토모를 선수단에게 감독의 의지를 전해줄 수 있는 파이프 라인이 될만한 선수로 판단해서 계약 연장을 추진했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만치니는 인테르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선수 + 이카르디 외에도 감독과 선수단 간의 파이프 라인을 하나 더 놓기를 원했었는데, 그 대상으로 인테르 팀내에 잘 녹아들어 있으면서도 왼쪽 풀백 로테로서 나쁘지 않은 폼을 보여주는 나가토모를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

5.7. 2016-17 시즌

만치니가 떠난 이후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는데, 전반기동안 리그 3경기 출장에 그치면서 안살디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려 당시 맞임대 신세를 지기도 했던 산톤과 사이좋게 벤치를 지키는 신세가 되었다. 때문에 EPL로의 이적설도 있었지만 딱히 적극적인 구단은 없었다.

한국시간으로 5월 1일 나폴리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나폴리의 로렌조 인시네가 올린 평범한 크로스를 어설프게 처리하다 호세 카예혼에게 결승골을 헌납해 0-1 패배의 주범이 되었다. 이로인해 인테르 팬들도 나가토모를 당장 방출하라고 구단에 엄청나게 항의를 하는 등 곧 방출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5.8. 2017-18 시즌

'덤보토모'라며 팬덤에서는 여전히 조롱거리로 불리지만 프리시즌동안 여전히 부동의 주전으로 풀백자리를 잡고 있다.

다우베르트의 영입으로 입지가 위축되고 있다. 일단 오래 호흡을 맞춰왔고 프리시즌 내내 기용되었으며 다우베르트가 늦게 팀에 합류한 탓에 개막전인 ACF 피오렌티나 전과 AS 로마 전 두 경기 연속으로 주전 출장했다. 그러나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오히려 AS 로마전에서 교체 투입된 다우베르트가 어마어마한 슈퍼세이브를 보여주면서 확실히 눈도장 찍은 상황이다. 3라운드인 SPAL 2013 전 부터는 백업이 될 것으로 보였는데 해당 경기에서 다우베르트가 마누엘 라차리에게 탈탈 털리고, 이후에도 다우베르트의 공격력이 예상보다 무딘 모습을 보여주자, 루치아노 스팔레티이반 페리시치에게 횡폭이 넓은 움직임을 가져가도록 요구하면서 풀백의 공격가담이 중요해지게 되며 다시 주전으로 도약하였다. 경기력은 그닥 신통치 못하지만 어쨌든 스팔레티가 풀백에 요구한 것은 수비가 아닌 공격이고, 그 공격을 더 잘 해내는 쪽은 다우베르트가 아닌 나가토모였기에 아쉬운대로 계속 기용되었다.

6. 갈라타사라이 SK

결국 2018년 1월 31일, 겨울이적시장 마지막 날 터키 쉬페르리그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갈라타사라이 SK에 6개월 단기 임대로 이적하였다.

갈라타사라이에서는 바로 주전 풀백으로 뛰면서 준수한 활약을 펼쳐 팬들 사이에서의 평가가 바로 높아지면서 갈라타사라이 우승에 큰 보탬이 되었다. 현지에선 성실한 플레이와 자기관리로 인기가 급상승중. 감독 파티흐 테림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한 선수 중 한명으로 뽑기도 했다. 그 후 이적료 250만 유로(약 32억원)에 완전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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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7/18 시즌, 2018/19 시즌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성공했으며 터키 리그컵에다 슈퍼컵까지 쓸어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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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시즌에도 레프트백 자리에서 주전으로 출전하지만 노쇠화로 인해 예전보단 폼이 많이 떨어진 상태.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 갈라타사라이가 RB 라이프치히의 레프트백 마르셀로 사라치를 임대영입하면서 외국인 등록명단을 초과하게되어 명단에 등록할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볼로냐 FC 1909로 이적이 점쳐졌으나 겨울이적시장 기간이 지나 실패하게된다.

결국 남은 반시즌을 경기출전없이 갈라타사라이에서 남게 되었는데, '받을 자격이 없으므로 주급을 받지 않을 것'을 선언하여 1억가량의 급료를 포기하였다고 밝혔다.

결국 시즌 종료후 계약 만료로 2년 반시즌동안 몸담은 팀을 떠나게되었다. 갈라타사라이에서 2번의 리그 우승, 1번의 리그컵과 슈퍼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현지시간으로 2020년 8월 31일, 프랑스 리그앙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FA로 합류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

하지만 최근 자책골을 넣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비난을 받고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노쇠화의 기점이 된듯

하지만 그 후 어시스트를 적립하는 등 부활의 조짐이 보였으나 다시 부진하면서 주전경쟁에 밀린 상태로 있다가 결국 2021년 7월 1일, 계약만료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

8. FC 도쿄 2기

9월 10일 발표된 소식에 따르면 친정팀 FC 도쿄로의 복귀가 유력하다고 한다. # 그리고 최종적으로 FC 도쿄 복귀가 확정되었다.

2021 시즌에는 하세가와 켄타 감독이 중도 사임한 가운데 이적하자마자 주전 레프트백으로 출전했다.

2022 시즌에도 주전 레프트백으로서 31경기[6] 출전해 여전한 기량을 보여줘 클래스를 증명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승선할 수 있었다.


[1] 그 때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한 때는 노는 데 열중했으나 누나와 동창생들의 격려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2] 그 프로팀이 가시마 앤틀러스다.[3] 그리고 결국 북치는 CM까지 찍었다. 링크[4] 긴축재정에 돌입했다지만 직전 시즌 트레블을 달성한 팀이고 당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던 세리에의 패왕이었다.[5] 대표적인 예가 나폴리와 유벤투스와의 홈경기. 나폴리전은 마크를 최악으로 하여 실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고 유벤투스전에선 유벤투스의 효과적인 공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챔피언스리그 트라브존스포르와의 홈경기에서도 수비수들 전체의 잘못이긴 하지만 흘러나온 볼의 처리를 미루다가 결국 실점하는 빌미를 제공했다.[6] 리그 30경기, 천황배 1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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