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15:14:04

김회일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철도기관사 출신으로 부총리까지 오른 교통 테크노크라트.

2. 생애

1909년 2월 29일에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출생했다. 해방 전 철도국 정주기관구장을 지내다가 해방 이후 북한 정권에 합류했다.철도국 중심으로 조직된 복구 돌격대에서 열심히 일하여 김회일을 본받자는 '김회일 운동'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생산돌격운동'으로 발전했으며 사회 전 부문에 확산, 광업 부문에서 김회일 채탄돌격대가 조직되기도 했다.

1949년 교통성 부상에 임명, 6.25 전쟁 중에는 교통성 정권대표로 임명되어 서울에 파견되었다. 1953년 7월, 박의완의 뒤를 이어 김회일이 신임 철도상에 임명되었다. 1953년 7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미영제국주의 무력침범자들을 반대하여 자유와 독립을 수호한 조선인민의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보장함에 있어서 온갖 헌신성과 창발적 활동으로써 특출한 공훈을 세운 국가정권기관 및 당 지도일꾼"으로 선정되어 국기훈장 제2급을 받았다. 김일성을 수행하여 소련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1953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철도성이 교통성으로 개편됨에 따라 교통상에 유임되었다.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56년 6월, 철도성 대표단장으로 불가리아를 방문했다. 1957년 9월, 2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내각 교통상에 유임되었다. 1958년 9월 7일, 강량욱, 강영창, 김두삼, 리기영, 리송운, 리일경, 리천호, 리희준, 백남운, 정두환, 진반수, 최철환, 한설야와 함께 공훈이 있는 국가기관, 정당, 사회단체 지도일군으로 선정되어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1958년 11월, 류경수 장의위원을 지냈다.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1962년 6월, 철도성 대표단장으로 몽골을 방문했다.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교통상에 유임되었다. 이후 1964년 2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교통성이 다시 철도성으로 개편되었고 철도상으로 유임되었다. 1964년 5월, 철도성 대표단장으로 소련, 1965년 3월에 북베트남을 방문하였다. 1966년 9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남일이 철도상에 임명되면서 물러나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1970년 9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사망한 전임 철도상 김갑순의 뒤를 이어 철도상에 임명되었다.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교통운수위원회와 철도성이 통합되어 정무원 교통체신위원회가 됨에 따라 현무광에게 자리를 내주고 퇴임했고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도 탈락했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1976년,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다시 당선되었으며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1981년 9월, 정무원 부총리 겸 교통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982년 4월,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2년 4월, 7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정무원 부총리 겸 교통위원장에 유명되었다.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 1983년 1월, 강량욱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3년 12월, 부총리에서, 1985년 9월, 교통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 박용석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1984년 3월, 김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5년 중앙인민위원회 경제정책위원회 참사에 임명되었다. 1986년,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90년 5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는 한편 1992년 4월 22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혁명과 건설에서 영웅적 위훈을 세운 공으로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6년 11월 2일 5시 30분에 87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사망했다. 중앙위원회와 중앙인민위원회는 공동 명의로 부고를 발표, "동지는 오랜 기간 철도운수부문을 비롯한 경제부문의 중요한 초소들에서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지혜와 정력을 다 바쳐 일하였으며 교통운수를 발전시키고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라고 칭송했다.

이후 시신이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

  • 김태윤 (2017) 해방 직후 북한 철도시설의 실태와 복구 양상 (1945~1948), 한국민족운동사연구, 92
  • 박종철, 임지호 (2020). 전쟁시기 북한철도에 대한 연구: 북중관계를 중심으로. 한국동북아논총, 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