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3 00:48:22

정두환(북한)



1. 개요2. 생애3. 여담4.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1912년 3월 15일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3년, 중앙위원회 부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56년 1월 상무위원회 이후 당 상업재정협동단체부장 김용진이 자강도 당위원장으로 이동하면서 후임 부장에 임명되었다.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 중앙위원회 상업재정협동단체부장에 유임되었다. 1957년,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예산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58년 3월, 1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다. 1958년 9월 7일, 강량욱, 강영창, 김두삼, 김회일, 리기영, 리송운, 리일경, 리천호, 리희준, 백남운, 진반수, 최철환, 한설야와 함께 공훈이 있는 국가기관, 정당, 사회단체 지도일군으로 선정되어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1959년 5월 2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숙청된 진반수의 뒤를 이어 상업상에 임명되었다가 1960년 5월 1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상업상에서 해임되어 한대영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다. 1962년 9월, 김경석 장의위원을 지냈다. 그런데 이후로 갑자기 외교관 쪽으로 방향을 돌려 1962년 11월 21일, 김병직의 뒤를 이어 주 루마니아 대사에 임명되었다. 1966년 12월 21일, 김태희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후 일시귀국했다가 1968년 2월 4일, 김충원의 뒤를 이어 신임 주 소련 대사에 임명되었다. 1969년 12월 1일, 렴태준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귀국했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검사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72년 7월에 다시 로동상에 임명, 1972년 12월에 5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로동성이 로동행정부로 개편됨에 따라 5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에 재선되는 한편 정무원 로동행정부장에 임명되었다.

1977년 5월 25일, 김병호의 뒤를 이어 주 이집트 대사로 발령받아서 다시 해외로 나갔다. 1979년 7월에 강만수에게 자리를 내주고 귀국했다. 귀국 후 1980년 9월, 조국전선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검사위원회 위원에 재선, 1982년 7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상설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83년 1월, 강량욱 장의위원, 1986년 4월, 천세봉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6년 8기 최고인민회의에서도 상설회의 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90년 9기 최고인민회의에서도 상설회의 의원에 선출되었다. 1990년 8월 범민련 북측본부가 설치되자 중앙위원을 맡았다. 1991년 6월, 허정숙 장의위원,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6년 9월 려연구 장의위원을 맡았으나 김정일 집권 이후에는 활동이 극도로 뜸해지더니 1998년 4월, 조국통일상을 받은 이후로는 두문불출했다. 2001년 4월에 조국전선 의장에서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죽었는지 2006년 4월에 애국렬사릉에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 직함으로 시신이 안장되었다.

3. 여담

  • 김일의 사돈으로, 그의 딸 정경숙이 김일의 아들 박용석과 결혼했다.

4. 참고문헌

  • 서동만,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서울: 도서출판선인, 2005).
  • 통일부 정보분석국 사회문화담당관실, 북한의 주요인물 2005(서울: 통일부,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