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3 00:45:21

김두삼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테크노크라트.

2. 생애

1911년 9월 14일에 함경남도 원산부 두산리에서 태어났다. 원산중학교 졸업 이후 외국으로 유학가서 공업대학을 졸업한 후 1944년 3월 일본 농예화학회사에서 일했다. 해방 이후 흥남인민공장 조사기획부장으로 일하였으며 북조선공산당에 입당했으나 일제에 복무한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출당처분을 당했다. 하지만 김일성의 기술자 발탁 정책에 따라 화학공장 공장장으로 스카웃되어 1948년 국가계획위원회에 배치되었다. 1952년 11월 18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부수상으로 이동한 정일룡의 뒤를 이어 중공업상에 임명되었으며 1953년 7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미영제국주의 무력침범자들을 반대하여 자유와 독립을 수호한 조선인민의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보장함에 있어서 온갖 헌신성과 창발적 활동으로써 특출한 공훈을 세운 국가정권기관 및 당 지도일꾼"으로 선정되어 로력훈장을 받았다. 1954년 3월 전원회의에서 전기상으로 이동했다.

1956년 4월, 3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1957년 9월,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는 한편 전기상에 유임되었다. 1958년 9월 7일, 강량욱, 강영창, 김회일, 리기영, 리송운, 리일경, 리천호, 리희준, 백남운, 정두환, 진반수, 최철환, 한설야와 함께 공훈이 있는 국가기관, 정당, 사회단체 지도일군으로 선정되어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1959년 8월 3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전기성, 석탄공업성, 화학공업성이 통합되어 동력화학공업성이 되면서 동력화학공업상으로 이임하였다. 1960년 1월 15일,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모든 공업성이 중공업위원회로 합병되기로 결정됨에 따라 1960년 4월 4일, 동력화학공업상에서 해임, 내각 부수상 겸 중공업위원장 리종옥 밑의 중공업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되었다. 이후 1961년 10월 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내각 상의 자격을 잃게 되었는데, 이때 중공업위원회 부위원장에서 해임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탈락하였다. 하지만 다시 직무를 받았는지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62년 12월, 남일의 뒤를 이어 국가건설위원장에 임명된 것으로 파악된다. 1965년 8월, 강영창 장의위원을 지냈다. 1967년 12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는 한편 국가건설위원장에 재선되었다. 1969년 3월, 김태근 장의위원을 지냈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검사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어 죽을 때까지 재직하였다. 하지만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는 탈락했다. 애국렬사릉의 직함에서 볼때 말년에는 내각설계총국장으로 재직한 것으로 보인다.

1976년 5월 21일에 사망하였으며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내각설계총국 총국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

  • 서동만, 북조선사회주의체제성립사 1945~1961(서울: 도서출판선인, 2005).
  • 조선대백과사전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