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03 19:45:23

권혁수(독립운동가)

파일:권혁수(독립운동가).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곤야마 칸쥬(權山赫壽)
본관 안동 권씨[1]
출생 1926년 9월 15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서면 가곡리
(現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
사망 1965년 6월 9일 (향년 38세)
경상북도 안동군
(現 경상북도 안동시)
부모 아버지 권충섭(생부)·권오창(양부)
어머니 청도 김씨(생모)
형제자매 남동생 권재혁[2], 권재민[3]
상훈 대통령표창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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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권준희는 그의 증조부 권준하(權準夏, 초명 권태능(權泰能), 1855 ~ 1919. 12. 15)의 6촌 재종형(再從兄)으로, 권혁수에게는 9촌 삼종증조부(三從曾祖父)가 된다. 기업인 권용순은 그의 7촌 재종질(再從姪)이다.

2. 생애

1926년 9월 15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서면 가곡리(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에서 아버지 권충섭(權忠燮, 1905 ~ 1949. 1. 3)과 어머니 청도 김씨(1903 ~ 1941. 4. 26)[4] 사이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5촌 당숙 권오창(權五昌, 1891 ~ 1938. 8)[5]에 입양되었으며, 안동군 안동읍 안기정(현 안동시 안기동) 144번지로 이주하여 안동농림학교 임과(林科)에 9회로 입학하였다.

1944년 안동농림학교 재학 중 학우들과 함께 8회 선배들이 조직한 비밀결사인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에 가입하였다. 그 해 11월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은 명성회(明星會)와 제휴하여 1945년 초에 무력봉기를 일으키기로 계획하고, 자금과 동지규합에 힘썼다. 명성회 측에서는 학생과 지식층에 항일사상을 고취하여 구국운동대열에 참여토록 하며, 일제의 공공시설을 무력으로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죽일 것 등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단원 일부가 체포되자 계획을 변경하여 1945년 3월 초 경찰서, 헌병파견대 등을 습격한 후 의성군으로 진출하여 일본군과 교전할 것을 계획하는 등의 거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1945년 3월 10일 안동군 무덕장(武德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구류가 취소되어 출옥했다.

그러나 이후 다시 구금되었으며,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광복 이튿날인 8월 16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불기소처분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여생을 보내다가 옥고의 여독으로 1965년 6월 9일 38세의 이른 나이로 요절하였다.

200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1] 복야공파 박(搏)계 36세 혁(赫) 항렬. 안동권씨대동세보 22권 477쪽에는 권재탁(權在倬)으로 등재되어 있다.[2] 權在赫. 1945년생.[3] 權在民. 1948년생.[4] 김시목(金時穆)의 딸이다.[5] 초명 권오인(權五寅). 1938년 조선지원병으로 징집되어 그 해 8월경 장고봉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