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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상참의(常參儀)란 과거 문화재청,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재보호재단(現 국가유산진흥원)에서 궁궐 일상화 재현을 위해 시행했던 궁중 의례 재현 행사 중 하나로, 조선시대 국왕이 6품 이상의 참상관들에게 문안 인사를 받은 후 계사관들에 의해 밤사이 있었던 국정 현안을 보고 받고 처리하는 상참(常參)을 재현 및 연출한 행사였는데, 주로 경복궁 사정전(思政殿)을 무대로 펼쳐졌었으며, 현재는 궁궐의 일상을 걷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작고 짧게 연출되고 있다.2. 순서
상참의 재현 행사의 절차는 크게 보면 알현 절차와 조계 절차 2가지로 나뉜다. 세부적인 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식순 | 설명 | 비고 |
엄고 삼타 |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엄고를 3번 타고 | |
상참관 도열 | 상참의에 참여하는 상참관들이 입장하여 합문 밖에 도열 | |
국왕 입장 | 국정의 총 책임자인 국왕이 강녕전에서 나와 산선시위 및 호위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각자의 자리에 배치 | |
향화 | 국왕이 어좌에 앉으면 내시가 향을 피워 국왕의 신성함을 표현 | |
상참관 입장 | 상참의에 참여하는 동,서반 관리들이 사정전으로 입장하여 배치 | |
국궁재배 | 국왕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기 위해 2번 절하는 절차 | 알현 |
계사관 입장 | 국정 현안을 보고하는 계사관들은 사정전 내로 입장 | |
일부 관리 퇴장 | 계사관 외 관원 및 산선시위들이 사정전 밖으로 퇴장 | |
조계 | 국정 현안을 논하고 처리하는 절차 | 조계 |
예필 | 통찬이 상참의가 끝났음을 국왕께 아룀 | |
퇴장 | 국왕 및 계사관 퇴장 |
3. 고증
시기 |
복식 |
의장 |
궁중어 |
4. 등장인물
상참의 재현 행사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신분은 크게 분류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국왕(세종) |
계사관 |
상참관 |
운검 |
내관 |
산선시위 |
시위군사 |
악사 및 악원 |
차비 |
그 외에 총 150여명의 출연진들이 동원되었다.
5. 여담
- 해당 행사를 재현하기 위하여 조선사, 복식사, 궁중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각자의 분야에 맞춰 고증하였다.- 처음 이 행사가 시행되었을 때에는 국왕인 세종 역할로 배우 길용우가 출연하였다.
- 참고로 궁중조회 상참의는 수문장 교대의식 및 궁성문 개폐의식과 왕가의 산책의 연장선으로 이어지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문화재청과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는 위의 그림과 같이 경복궁을 배경으로 한 조선 전기 궁궐 일상 재현을 목표로 궁중의 일상적인 모습을 행사로 연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밤새 근무를 섰던 수문장들이 아침 해가 뜰 무렵 서로 근무 교대를 하면서 도총부 경력과 승정원 주서, 액정서 사약과 같은 중앙 관리들이 감독하는 아래 궁성문을 열면, 밤새 궁성 주변을 순찰하던 요령장과 요령군, 그리고 상참의에 참여할 문무백관들이 관복 차림으로 광화문을 통과해 흥례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이후 궁중 조회 상참의를 진행한 후 국정을 돌보던 국왕이 궁궐 내를 산책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왕가의 산책이 펼쳐지고, 다시 해가 질 무렵 다시 당직 근무자를 제외한 문무백관과 요령장과 요령군이 흥례문에서 나와 광화문 밖으로 퇴장하게 되고, 이후 다시 개문 절차와 같이 도총부 경력, 승정원 주서, 액정서 사약이 감독하는 아래 궁성문을 닫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이러한 재현을 통해 그저 궁궐이 비어있는 큰 장소가 아니라 당시 궁중의 일상이 어떤 루트로 펼쳐졌는지를 보여줌으로서 궁궐이 보다 친근하고 살아숨쉬는 느낌을 제공하기 위하여 하나로 묶어 연출된 것이다.
- 문헌 기록에 따르면 상참의는 매일 아침 해뜰 무렵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무관리들이 대궐로 출근하기 위해서는 궁궐 정문과 사대문이 열려야 출근이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 도성문은 인정(人定)[6]과 파루(罷漏)[7]에 닫고 열었으며 궁궐문은 해뜰 무렵 열고 해질 무렵 닫았다. 그러니까 사대문과 궁성문이 열리는 아침 새벽녘부터 이러한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따라서 상참의를 참석하기 위해서라도 6품 이상 참상관 급 관리들은 상참에 참석하지 않는 참하관들보다 더 일찍 출근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는 새벽에 상참을 해야하지만, 새벽에 관람객들이 보러 오지 않을 뿐더러, 예나 지금이나 경복궁은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까지 운영되므로, 궁중조회 상참의 재현행사는 관람객들이 붐비기 시작하는 오전 10시나 정오 즈음에 재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현재 상참의는 메인 이벤트로 진행되지 않으며, 궁중문화축전 또는 궁궐의 일상을 걷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부대 행사로 작게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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