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5 17:16:45

국민영예상

國民榮譽賞(国民栄誉賞) / People's Honour Award

1. 개요2. 상세3. 창작물에서

1. 개요

국민영예상은 일본 총리가 표창하는 상이다.

1977년 8월 30일, '일본 내각총리대신결정'으로 창설되었다. 당시의 일본 총리는 후쿠다 다케오이다.

"일본국민에게 널리 경애받고, 사회에 밝은 희망을 주는 것에 현저한 업적이 있었던 자에 대하여, 그 영예를 기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총리가 "표창 목적에 비추어 표창함이 적당하다고 인정하는 자에게 준다". 내각총리대신이 표창을 하려는 때는 후보자에 대하여 민간 지식인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되어있고, 일본 국회의 의결을 거칠 필요는 없다. 내각부 웹사이트 - 국민영예상에 대하여

2. 상세

역대 총 27회가 수여되였으며 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운동선수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불리는 일본답게 일본프로야구의 전설로 불리는 오 사다하루가 국민영예상 1호 수상자다. 이외에 키누가사 사치오(6호), 나가시마 시게오(22호), 마쓰이 히데키(23호)가 받았다[1]. 다른 스포츠는 대체로 올림픽 같은 국제적인 대회에서 금메달 혹은 우승을 따낸 선수 혹은 스모 같은 일본 고유 스포츠에서 유명세를 떨치다 사망한 분이 많이 받았으며, 스포츠 이외의 분야에선 구로사와 아키라(14호) 등 영화감독이나 작곡가, 배우 같은 예술계 종사 수상자들이 많다. 여성으로는 미소라 히바리(7호)가 사후에 최초로 수상했으며 사자에상의 작가인 하세가와 미치코(10호)가 만화가로서는 유일하게 사후에 수상하기도 했다. 사후 수상이 많은 것은 생전에 품위를 손상하는 경우를 걸러 내기 위함이다.

대만 국적의 외국인인 오 사다하루나 흑인인 키누가사 사치오가 수상한 것을 보면 겉보기에는 국적, 인종을 따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표창은 이렇게 생겼다. 표창 시기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수시로 한다. 관련 사무는 내각부 대신관방에서 행한다. 수시라고는 하지만 보통 연 1회 시상하며, 동시에 여러명에게 주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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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쇼기/바둑 분야에서 처음으로 국민영예상 시상이 있었다. 하부 요시하루 쇼기 영세 7관(오른쪽)과 이야마 유타 바둑 8관왕(왼쪽). 표창자는 아베 신조 수상(가운데)이다. 이야마 유타는 사상 첫 헤이세이 시대 출생 국민영예상 수상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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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피겨 스케이팅하뉴 유즈루한테 27번째 국민영예상이 시상되었다. 유즈루는 이야마 유타보다도 더 어린 1994년생으로, 역대 최연소. 2018년에 2차례 시상한 거 같지만, 사실 하부 요시하루와 이야마 유타는 2017년에 시상할 예정이었던 것이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때문에 연기된 것이다. 즉, 여전히 연 1회 원칙은 유지되고 있다.

3. 창작물에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YAWARA!에서 이노쿠마 지고로가 항상 이 국민영예상을 타야 한다고 손녀 야와라를 갈군다. 물론 야와라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그러나 야와라는 결국 올림픽 2연속 금메달을 따며[2] 마지막에 국민영예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시상식장은 마츠다 코사쿠 기자의 난입(?)으로 엉망이 되고, 결국 국민영예상은 야와라의 할아버지인 이노쿠마 지고로가 대리 수상한다(...)

용왕이 하는 일!에서 명인이 만약 전관왕이 되면 국민영예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주위에서 설레발을 친다. 여기서도 정작 명인은 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쿠즈류 야이치와의 대국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그 '명인'이 2018년 국민영예상을 받으면서 용왕이 하는 일!에서는 어떻게 처분이 될 지 불명.
[1] 야구계에서 수상을 거부한 인물로 후쿠모토 유타카스즈키 이치로가 있다. 이치로는 세 차례나 수상을 거부했으며 후쿠모토는 거부한 이유가 비범한데, 자세한 사정은 각 항목을 참조[2]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무제한급,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48kg 이하급과 무제한급 두체급 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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