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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B0039><colcolor=#fff> {{{#ffffff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구요비 욥 具要備 | Job Koo Yobi}}} | |||
출생 | 1951년 1월 25일 ([age(1951-01-25)]세) |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 | |||
국적 | 대한민국 | ||
재임기간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 ||
2017년 8월 17일 ~ 현직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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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임명일 | 2017년 6월 28일 | ||
주교 수품일 | 2017년 8월 17일 | ||
학력 |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및 대학원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학교 (영성신학 / 석사) | ||
명의주교 | 스파스페리아 명의주교 | ||
나를 따라라 (sequere m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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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겸 중서울지역 교구장대리 보좌주교로 봉직 중인 한국 가톨릭의 성직자.2. 약력
1981년 ~ 1983년 | 이문동 / 신당동 본당 보좌 |
1986년 ~ 1993년 | 구로2동 / 상계동 본당 주임 |
2000년 ~ 2002년 | 종로 본당 주임 |
2013년 2월 ~ 2017년 8월 | 포이동 본당 주임 |
1986년 ~ 1998년 | 프라도사제회 한국지부 대표 |
2006년 ~ 2012년 | 프라도사제회 한국지부 대표 |
2007년 ~ 2013년 | 프라도사제회 국제평의회 위원 |
1982년 ~ 1983년 | 서울대교구 북부지구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지도신부 |
1983년 ~ 1986년 |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교(노동사목) |
1991년 ~ 1992년 | 가톨릭노동장년회(CWM) 지도신부 |
1993년 ~ 1998년 | 가톨릭노동청년회(현 YCW) 전국 지도신부 /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 |
2002년 ~ 2009년 |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영성지도 신부 |
2017년 10월 ~ | 주교회의 성직주교위원회 위원 |
2024년 3월 14일~ | 서울대교구 총대리 |
3. 생애
3.1. 초년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에서 4남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독실한 신앙을 가졌던 부친 구동식 안토니오는 자녀의 이름을 모두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서 따왔다. 맏이인 딸은 ‘평화의 사도’를 줄여 화사(클라라)로, 둘째이자 맏아들은 요한(요한), 셋째 아들은 요섭(요셉), 구 주교는 요비(욥), 이어 막내아들은 요나(요나)로 이름 지었다.어린 시절, 그의 집은 지역 공소 역할을 했다. 당시 서울대목구 청평본당 주임이었던 윤을수 신부는 구 주교의 집을 공소로 삼아 밀가루 등 미국교회에서 보내온 원조물품을 나눠줬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가톨릭교회의 나눔이 이뤄진 그 현장에서의 체험은 구 주교 신앙의 밑바탕이 됐다. 또한 구 주교의 집을 근간으로 춘천교구 미원본당이 설립됐다.
구 주교의 부친은 자녀들을 모두 사제와 수도자로 키우고 싶어 했다. 구 주교 위의 두 형들을 신학교까지 끌고 갔다 오기도 했고, 결국 구 주교가 아버지의 바람대로 사제의 길을 걷게 됐다.
구 주교의 동생 구요나는 “형제들이 모두 유아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긴 했지만, 구 주교님이 제일 열심이었다”면서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서울 삼양동본당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했고 거의 매일 성체조배를 했다”고 전했다.
3.2. 신학생 및 사제시절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69년부터 사제성소를 꿈꾸게 됐다. 평소 철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정신적이고 영성적인 완덕의 삶을 살고자 신학교에 지원했다.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신학교에서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사제서품 동기 박일 신부(서울 동성고등학교 교장)는 구 주교를, 조용했지만 ‘반전’이 있던 선배로 기억하고 있다. 박 신부는 “당시 1학년이던 나에게 누군가 밝게 ‘도미네~ 식사했수?’라고 인사를 건네 뒤를 돌아보니, 구 주교님이 쑥스럽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면서 “평소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셨지만 4살이나 어린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신학교 1학년이었던 1971년, 모든 신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노동사목 연수에서 노동문제에 눈뜨게 됐다. 이후 노동자들의 생활을 알기 위해 ‘위장취업’을 해, 노동을 체험했다. 또 ‘밀알회’(현재 가톨릭대 신학대학 사회사목연구회)라는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노동자들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 동료 신학생들과 연구했다. 사제수품 이후로는 가톨릭노동장년회(CWM)와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현 YCW) 지도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을 맡으며 꾸준히 노동자들과 함께 해왔다.
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프라도 사제회로 이끌었다. 당시 노동사목에 종사했던 살레시오회 도요안 신부를 통해 ‘프라도 사제회’의 존재를 알게 됐다. 1981년 사제 서품과 동시에 ‘프라도 사제회’ 서약을 하고, 평생 스스로 가난한 삶을 실천해왔다. 1986년부터 1998년,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두 차례 ‘프라도 사제회’ 한국지부 대표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2007년 8월에는 아시아 지역 사제로는 처음으로 ‘프라도 사제회’ 국제평의회 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정월기 신부(서울 광장동본당 주임·프라도 사제회)는 “구 주교님은 프라도 사제회의 맏형이었다”면서 “늘 맏형으로서 모범을 보이셨고, 후배들과도 친구처럼 우정을 나누며 사셨다”고 말했다. 이어 정 신부는 “구 주교님은 예수님을 닮은 사제”라면서 “모든 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사람들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하며(1998~2000) 영성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2년부터 7년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영성 지도 신부를 지냈다. 이후 본당에서도 찾아가는 사목자, 기도하는 겸손한 사목자로 기억되고 있다. 2013년부터 서울 포이동본당 주임을 맡아 꾸준히 본당신자 가정을 찾아가 신자들의 삶을 돌봤다.
[구요비 신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삶과 신앙
3.3. 주교 수품
서울대교구 구요비 욥 주교 서품식 |
2024년 3월 14일, 전임 총대리 손희송 주교가 의정부교구장에 임명된 데 따라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에 임명되었다.
4. 여담
- 한국 가톨릭 주교들 중, 유일하게 세례명이 속명과 일치한다. 주교 서품식에서 축사를 맡은 후배 신부가 욥기 1장을 읽으며, 이 점을 언급한 바 있다.
- 항상 가난의 영성을 강조해 왔고, 평소에 자신의 월급 대부분과 신자들이 주는 선물들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눠준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가 한국 지부의 대표를 역임한 프라도 사제회는 가난의 영성을 따라 살고자 교구 사제들이 모인 축성생활회이다. 교구 사제는 청빈의 의무를 갖지는 않지만, 프라도 사제회에서는 청빈 서약에 준하는 서약을 하며 가난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자 한다. 출처
- 노동운동과 노동사목에도 관심이 많다. 구 주교는 사제가 되기 전 공단 노동자로 위장취업까지 하면서 노동자의 삶을 깊이 체험하였으며, 사제가 된 이후에도 가톨릭노동청년회 및 가톨릭노동장년회 지도 ・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 ・ 노동사목 유학의 경험이 있다. 출처
- 주교품을 받았을 때의 나이는 만 66세로, 이 나이는 주교가 아닌 사제에게는 빠르면 은퇴 청원을 할 수도 있는 나이이다. 구 주교는 지금은 은퇴한 염수정 추기경을 제외하면 서울대교구 주교단 중 가장 최고령이며, 사제 수품일도 가장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