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20:20:53

구고신

<colbgcolor=#000><colcolor=#fff> 구고신
Koo Go-shin
파일:구고신 프로필.jpg
나이 50대
직업 노무사
직책 부진노동상담소 소장

1. 개요2. 작중 행적3. 명대사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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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이버 웹툰송곳》의 주인공.

2. 작중 행적

프롤로그에서는 배달부가 발달장애인이라는 것을 이용한 중국집 주인이 죽어라 일을 시키고 급여를 떼어먹은 후 오토바이를 망가뜨렸다고 그냥 쫓아내 노숙자가 된 발달장애인을 발견하고 사정을 들은 후 바로 그 발달장애인을 대동해 가서 전부 받아내는 것으로 처음 등장했다.[1] 그리고 한참 간 이수인 과장 이야기가 나오면서 안 나오다 1-9, 10에서 잠시 등장했다. 단체교섭을 하는 현장에서 노조측 교섭위원으로 나오는 모습이 비춰진다. 1-10에서 이수인이 일하는 마트 앞에서 명함을 돌리는 모습이 나왔다.
2장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다시 얼굴을 보였다. 홍씨 아저씨가 일하는 쓰레기 수거업체에 찾아가 직원들에게 '모두의 양심을 믿는다. 이 건으로 해고되면 복직시켜 주겠다. 서로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고 하면서 명함을 돌렸다. 이에 어떤 직원에게 빨갱이 소리를 듣지만 쿨하게 해결한다. 부진환경 산재건을 처리하면서 본 웹툰의 제목인 '송곳'의 의미를 말한다.

관리자인 이수인이 자신의 사무소에 찾아온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 "당신 지금 나쁜 사람 되기 싫어서 이러는 거잖아? 이 싸움에서 져도 당신이 피해볼 게 전혀 없어."라면서 이수인이 처한 환경에서 회사가 자신에게 행할 제스쳐를 모두 보여주면서 당신 자존심 싸움에 부하 직원들 밥줄 다 끊어지게 할 수 없으니 돌아가라고 한다. 하지만 이수인도 "여기 노동자분들 져도 소장님이 피해가는게 있습니까? 소장님도 자기 싸움 아니잖습니까?"라고 반박하자 아주 약간 마음을 돌리고 이 과장을 부당해고자 시위현장에 데리고 간다.
본격적으로 푸르미 비정규직들을 내쫓기 위한 사건이 발생하자 이수인과 같이 움직인다. 그러던 중 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 중 거꾸로 매달리는 운동기구에서 거꾸로 매달리곤 뭔가 겁을 먹고 이수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과거에 무슨 사건이 있었던 듯. 캐릭터의 직업이나 거꾸로 매달리는 것에 대한 공포심으로 보아서는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PTSD일 가능성도 있다.
2-15에서는 마트에서 시위를 시작하는 푸르미 노조원들에게 응원차 방문하기도 했다.

2-20에서는 과거에 실패한 경험이 등장하면서,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만성 신부전이 있음이 밝혀졌다.

3-1에서 젊었을 때 거꾸로 매달려서 고문받던 상황이 나온다. 대사로 보아 방북했다는 누명을 씌우려고 했던 것 같다. 현재까지 악몽을 꾸고, 경찰을 폭행하면서 강창성을 들먹인다든지, 엘리베이터에서 숨을 못 쉰다든지 등의 모습을 봐서 PTSD가 상당히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수인에게는 "자네 대학교 선배님들한테 당해서 이런 거다." 라는 인구에 회자될 명언을 남겼다.

그리고 결국 드러난 연재분에 따르면 젊었던 시절에 자신을 고문한 경찰이 현재 입주해 있는 건물의 경비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왔다. 엘레베이터에서 괴로워한 초반 연재분에서 감금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아니라 그 경비때문에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왜 피해자인 자신은 가해자를 그렇게 똑똑히 기억하는데 가해자는 피해자인 자신을 기억못할까 생각하며 괴로워한다.[2]

이후로는 공동묘지[3]를 찾아가 그곳에서 젊은 시절 함께 했던 후배[4]를 만난다.그가 노조를 깨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구고신은 분노하면서 왜 그런 일을 하냐며 따지지만,이내 이야기를 듣고 그의 다릴 보며 또다시 죄책감에 시달린다.그러다가 피를 토하고,토마토 주스를 흘린 거라며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이후 눈이 내리는 막힌 도로에서 눈사람을 만들고,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눈사람을 만드는 광경을 보며,피를 토하고 쓰러진다. 간에 문제가 생겼던 모양인지 그걸 알게된 구고신이 도와줬던 다른 사람들이 앞다투어 간을 기증하겠다고 병원에서 난리가 아니다. 그걸 지켜보던 옛 동료의 말이 압권. "병원 생기고 나서 이런 난리는 처음이래요. 이렇게 죽는 것도 괜찮은 죽음이죠. 누가... 이렇게 죽을 수 있겠어요?" 여러모로 구고신은 '송곳'으로 사는 삶의 양면적인 속성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일생에 걸쳐 약자의 편에 섰기에 누구에게나 존경받을 만한 인물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엔딩에서는 산재 문제로 입원한 청소부 할머니와 반장과 힘든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 휠체어로 초고속으로 나타나 "산재? 그런거는 또 우리가 전문이지." 라고 한다. 건강을 많이 회복한 듯.

3. 명대사

비겁하고 무력해 보이는 껍데기를 잡고, 흔들고, 압박하면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같은 인간이.
사람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거요. 노동운동 10년 해도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인간이란 말이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오.

4. 기타

그 쪽 동네(?)에선 구고신의 모델은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이라 카더라는 썰[5]이 강했지만 8월 5일자 하종강의 노동학개론에서 하종강 본인이 '구고신의 모델과 같이 밥을 먹었다'고 언급했다. 하종강 소장과 가까운 노동운동가로 추정된다. 결국 구고신의 모델은 그를 비롯한 여러 노동운동가들을 기초로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 #

사실 구고신의 모델은 이수인과 달리 전적으로 한 사람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여러 시대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수 명의 노동운동가들을 하나의 캐릭터로 형상화 시킨 것이 구고신이기 때문이다. 이수인과 다르게 실제 인물이 특정되지 않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6] 이 점은 위의 문재훈 소장 인터뷰에서도 나와있다. 후에 최규석 인터뷰에 따르면 노동운동가 대부분이 너무 착해서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본인이 여러 운동가들 중 납득이 갈만한 부분을 살리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묘하게 트레버 필립스와 닮은 꼴이다.

[1] 드라마에서는 지역 내 사업체들에 전화해서 그 중국집 음식을 시키지 말라고 하자 다들 군말없이 수용하였고 결국 매출이 반토막이 나 경악한 중국집 주인이 "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2] 구고신의 원형은 최규석이 인터뷰하고 참고한 여러 노동운동가의 총체라고 밝혔으나, 이 에피소드만은 하종강의 이야기에서 따온 듯 하다. 하종강이 운동하던 시절 부잣집 자제인 후배가 수사당하면서 배후로 지목한 것이 하종강이었다고. 사실 그 후배는 조직에서 하종강이 아주 대체 불가능한 일을 맡고 있던 상황이 아니었어서 조직에 타격을 가장 적게 갈만한 사람을 꼽아보다가 하종강을 택했다고 한다. 하종강에게는 "형이 감옥갈 때가 된 것 같은데 안가서 말했다"라고 했다고. 하여간 이 후배와 하종강을 맡은 수사관은 그 후배의 집안이 짱짱한지라 수사때부터 계속 연을 이어왔던 모양. 그래서 나중에 퇴직하고 사업했다 말아먹은 후 후배에게 부탁해서 후배 소유 빌딩 주차관리인으로 일했다고 한다. 하종강은 나중에 그 사람과 차 한 잔 하면서 이야길 나눠봤는데 본인을 수사한 사실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하종강이 수사선상에 오른 일 조차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종강이 이 에피소드를 말하며 담담한 정도를 넘어서 여담 정도로 얘기하는 것으로 봐서는 트라우마까진 아닌 것 같고 일단 황당한 정도의 감정은 갖고 있는 듯 하다.[3] 경기도 마석에 있는 모란공원으로 추정되는데 전태일, 이소선, 백기완, 조영래, 노회찬, 문익환 등 노동, 통일, 민주화 운동가들이 이곳에 많이 안장되어있다.[4] 젊은 시절 구고신이 고문을 받을 때 살고자 팔아넘긴 그 후배 본인이다.고문 후유증인지 한쪽 다리를 절고 있다.본인은 주댕이라고 부른다.[5] 고문 전 심문과정은 하종강의 경험담이 맞다고 한다. 작가 최규석이 인터뷰에서 캐릭터 구성을 위해 하종강 소장과의 인터뷰를 많이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벙커원 강의에서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6] 대표적인 예로는 전두환 정권 때 학생운동을 하다 잡혀가 고문을 당해 콩팥이 터지고, 이후 두고두고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면서도 끝까지 노조 자문을 위해 투석 중에도 전화기를 놓지 않았던 노동운동가 송영수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 내용은 하종강 소장의 글 〈고문이 내게 가르쳐 준 것〉에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