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30 15:17:23

공손무지

강제(姜齊)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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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2F7B> '''제(齊)나라 15대 국군'''
강(姜)
여(呂)
무지(無知)
아버지 강이중년(姜夷仲年)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85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85년

1. 개요2. 제 양공 시해와 군주 등극3. 최후

[clearfix]

1. 개요

제나라의 15대 군주. 제장공의 손자.[1] 이중년의 아들. 제희공의 조카. 제양공의 사촌 아우. 제환공의 사촌 형. 그는 제 양공을 죽이고 제나라 군주에 올랐으나 그는 옹림 사람에게 죽었다. 달리 제전폐공이라고도 한다.

2. 제 양공 시해와 군주 등극

제 희공은 동생 이중년을 아꼈는데, 그가 죽자 그 아들 공손무지를 태자[2]와 같은 대우를 하게 했다. 그러나 이는 양공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양공은 즉위하고 그의 특권을 빼앗는다. 공손무지는 이로 인해 양공에게 한을 품었다. 한편 연칭과 관지보 또한 계구 땅을 지키는 데 교대하는 사람을 보내준다고 해놓고서는 끝내 보내주지 않자 결국 그들과 짜고 제 양공을 죽여버렸다. 이때 공손무지의 부하가 패구에 사냥나간 제 양공 앞에 멧돼지 분장을 하고 나타나 공자 팽생을 자칭하니 찔린 제 양공은 신발을 떨어뜨리며 달아났다. 제 양공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이때 제 양공이 자신의 신발을 잃어버린 것을 애꿎은 신발 관리자를 채찍질 300대나 해서 화풀이를 했다. 이에 원망한 관리자[3]는 공손무지 일행에게 제 양공의 위치를 알려주었는데, 제 양공의 호위병이 공손무지 일행을 쳤으나 그들은 모조리 죽었다. 그리고 문틈에 신발이 나온 것을 보고 자세히 알아보니 거기에 제 양공이 있는지라 그를 제거했다. 그리고 그대로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3. 최후

하지만 그의 군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옹림 사람들이 공손무지의 학정에 원망해 그곳에 놀러온 공손무지를 죽여버린 것이다.[4]

제나라 군주 자리가 비자 외국으로 망명가 있던 공자 규와 공자 소백[5]이 서둘러 제나라로 돌아오기 위해 출발한다. [6] 이때 관중이 공자 소백을 활로 쏘아 맞혀 죽인 줄 알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결국 여유있게 제나라로 향한 공자 규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소백이 이미 도착하여 즉위한 후였다. 결국 공자 규 일행은 노나라로 돌아갔으나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해 이기고 공자 규를 죽이라고 요구하여 공자 규는 자결한다. 관중과 함께 공자 규를 섬기던 소홀은 주군을 따라 자결하였지만 관중은 살아남아 제나라로 끌려간다. 포숙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관중은 제 환공을 도와 나라를 이끌고 관중의 도움으로 제 환공은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가 된다.

[1] 공손은 제후의 손자라는 뜻이다. 후대에 수많은 제후의 후손들이 이를 성씨로 사용하게 된다.[2] 훗날 제 양공[3] 소설 열국지에서는 이와 반대로 도인비는 양공을 옷장에다 숨겨두고 반란군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가서 군대를 이끌고 무지를 습격한 것으로 소개되며 나무위키 제양공 항목에도 소설 열국지의 설을 차용하고 있다.[4] 고우영 십팔사략에서는 "무지는 이름 그대로 무지했다"라고 깠다(...)[5] 제 환공의 이름이다.[6] 관중(管仲)은 공자 규(糾)를 모시고 노나라로, 포숙은 공자 소백을 모시고 거나라로 망명간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