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라주데 Goražde Горажд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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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ffffff> 시기 | 문장 | ||||
| <colbgcolor=#DC143C> 국가 | <colbgcolor=#fff,#191919> | ||||
| 공화국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 ||||
| 면적 | 248.8㎢ | ||||
| 인구 | 20,897명[A] | ||||
| 우편번호 | 73000 | ||||
| 시간대 | UTC+2 | ||||
1. 개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드리나 강 유역에 위치해있다.2. 역사
고라주데는 1376년까지 세르비아 제국의 일부로 트브르트코 1세에 의해 보스니아 왕국에 병합되었다. 고라주데은 상업이 발전했으며 1415년에는 두브로브니크의 상인들과 긴밀한 무역 관계를 맺었다. 1465년 오스만 제국이 고라주데를 정복하였고, 이 지역은 동양적인 모습을 띠었다. 오스만 제국 시절 고라주데는 보스니아 도로와 두브로보니크 도로라는 두 주요 도로의 교차로에 위치한 중요한 무역 중심지였다. 1519년, 고라주데는 보스니아 최초의 인쇄소 중 하나가 설치된 곳으로 기록되며, 이는 슬라브어로 된 정교 기도서 등을 인쇄하였다.1878년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보스니아를 점령하였다. 오헝제국은 고라주데에 서구식 행정제도와 교육, 인프라를 도입하였다. 이 시기 철도와 도로가 개발되었고, 고라주데는 다시금 전략적 교통지로 기능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우스타샤, 체트니크, 파르티잔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후에는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하에서 산업화되었고, 제지 산업, 금속 가공 등 중공업이 발전하였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보스니아 전쟁 동안 고라주데는 스레브레니차, 사라예보와 함께 세르비아군이 포위한 6개의 보스니아인 거주지 중 하나였다. 1994년 3월 30일과 4월 23일 사이에 세르비아는 고라주데를 향해 대규모 공세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NATO가 최후 통첩을 하자 세르비아군은 포병과 장갑차를 철수하였다. 전후 고라주데는 보슈냐크 다수 도시로 남았다. 경제적으로는 전쟁 피해에서 회복 중이며, 최근에는 EU 기금과 NGO의 지원으로 사회 인프라가 점차 복구되고 있다.
[A] 2013년 1월 1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