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6 22:02:24

결련택견협회

대한민국의 주요 택견 단체
4대 분파
대한택견회
구 대한택견협회
결련택견협회
구 택견계승회
한국택견협회
구 충주택견보존회
윗대태껸협회
구 위대태껸회
4대 분파 외 조직
노들택견
파일:결련택견협회_로고.jpg
명칭 결련택견협회
회장 도기현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8가길 111(동숭동)
링크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교육과정4. 여담5. 관련 인물 6. 관련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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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택견 협회 중 하나.

2. 역사

1980년대 초 연세대학교도기현을 비롯한 젊은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택견꾼 송덕기에게 몇년간 택견을 배웠는데, 이 사람들의 모임인 택견 계승회가 그 시발점이며 1983년 6월 1일 단체로서 결성되었다. 수련생을 체크하고 회비를 걷어 송덕기의 식사비를 대는 등 원시적이긴 하지만 단순 동아리라고 보기에는 규약과 회비를 제정함으로 단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신한승의 '충주 택견보존회'와 대비되는 이름으로 '서울 택견보존회'라고도 불렸다. 당시 회장은 송덕기, 총무는 도기현이었으며 이 당시의 이야기는 도기현의 저서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 편에 잘 나와 있다.

1985년 도기현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그 와중인 1987년 송덕기 옹과 신한승 선생이 모두 타계하면서 단체의 앞날도 불투명해졌으나, 유학에서 돌아온 도기현이 남아있던 회원들을 구성해 새롭게 단체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름도 '결련택견계승회'라는 이름으로 재정립했다.

한때는 대한택견협회(현재의 대한택견회)와 협조 관계에 있었으나[1], 품밟기에서 대한택견회가 역품을 고집하고 허리를 흔드는 동작 등에서도 단체간 차이가 생겨나고 의견이 맞지 않음에 따라 결국 결별, 2000년 사단법인 결련택견협회로 새출발을 하게 된다.

사족으로 이에 대해 이용복은 저서에서 주장하기를, 도기현은 당시 대한택견협회 서울지부의 전무이사였고 결련택견계승회는 그 서울지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가 도기현 이하 계승회 회원들이 대한택견협회의 전신인 한국전통택견연구회에 속해 함께 운동했다는 것인데, 애초에 이용복의 한국전통택견연구회보다 도기현 등의 서울 태껸보존회가 먼저 생겼기에 대한택견측의 주장은 오류가 있다.

결련택견협회는 1996년 무렵부터 '송덕기 옹 추모대회'라는 이름의 5:5 단체전 택견 대회를 열었고, 2004년부터는 인사동 문화마당에서 매년 천하제일 결련택견패 결정전 '택견배틀'을 열면서 주목을 받았다. 더불어 기존에 열던 송덕기 옹 추모대회도 택견배틀이 끝난 뒤 11월에 대회를 열고 있으며 이 대회의 규칙은 택견배틀과 좀 다르다.

3. 교육과정

단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결련택견, 즉 마을과 마을간에 겨루던 단체전 택견을 지향한다.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이 먼저라는 점에서 대한택견회, 한국택견협회와 차이가 있다.

결련택견협회는 단급제도는 따로 없고 호칭 없는 상태에서부터 시작하여 '결련택견꾼 -> 비각택견꾼 -> 옛법택견꾼' 순으로 올라간다. 대한택견회는 일본의 단급제도를 그대로 도입해서 사용하고, 한국택견협회 역시 단을 동, 급을 째라는 이름으로 바꿨을 뿐 단급제도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 차이점. 옛법택견꾼 이후는 지도자 과정으로 '3급 지도자 -> 2급 지도자 -> 1급 지도자 -> 선생 -> 큰선생' 순으로 되어 있다.

결련택견꾼부터 옛법택견꾼까지 도달하는데의 총 심사횟수는 각 과정마다 5번으로, 총 15회이다. 각 과정은 기본마당-아랫마당-사잇마당-윗마당-택견꾼 심사로 이루어져있다. 그 중 기본마당부터 윗마당까지는 본인이 다니는 전수관에서 심사를 보고 그 다음은 택견꾼 심사를 서울 인사동에서 결련택견협회 본부 중앙전수관에서 실시한다. 택견꾼 심사과목은 일종의 품새라고 할 수 있는 본때, 스파링인 결련, 필기 이론 심사가 있다.

이후 옛법택견꾼을 수료하면 지도자 심사를 볼 자격이 주어지며 지도자 심사에 합격하면 3급 지도자 자격을 얻는다. 지도자 심사는 매번 정기적으로 열리는 결련택견협회 지도자 연수때 심사 대상자들이 참가하여 심사를 본다.


2018년, 황인무의 지도하에 옛법 택견반이 결련택견협회 중앙전수관에서 정식으로 수업이 개설되었다. 옛법 전수자가 늘어나면 택견 손기술의 사장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 여담

  • 구한말 택견꾼들이 택견을 수련했던 곳으로 알려진 감투바위 수련터를 처음 복원한 곳이 결련택견협회이다.
  • 결련택견을 서울 지역의 지역 문화재로 추진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 2천년대까지만 해도 한국택견협회대한택견회의 구성원에 비하면 아무래도 송덕기에게 직접적, 상대적으로 더 오래 사사한 인물들이 속해있었기에 정통성 측면에서 가장 앞에 있는 단체라 할만했으나[2], 송덕기에게 오랜 기간 사사한 고용우와 송덕기가 전승 후계자로 직접 지명한 적이 있는 이준서가 소속된 위대태껸회의 재등장[3]으로 이 부분은 상당히 희석되긴 했다. 그래서인지 두 단체는 연대할 거리 역시 많음에도 현실에선 사이가 상당히 어그러진 편이다. 결련택견 측에서 위대태껸 측을 한풀 사이비로 매도하고 있기 때문.

5. 관련 인물

6. 관련 서적



[1] 이용복이 세운 대한택견회가 충주의 한국택견협회와 마찰을 빚으면서 정통성 논란이 일자 결련택견협회를 끌어들여 이를 만회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2] 다만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쪽은 신한승계인 한국택견협회 측이다. 송덕기쪽은 자/타의적으로 전승이 끊긴 상태. 애초에 택견이 무형문화재로 보존되어야 할만큼 맥이 끊긴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3] 위대태껸회 자체는 1983년 송덕기 옹이 직접 창립한 협회이나 송덕기의 사망 이후 유령협회로 남아있었다가 후일 고용우 회장이 복원하였다. 고용우가 미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국내에선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