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윤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4번 | ||||
김용철 (1989~1992) | → | 강태윤 (1993~1995) | → | 곽채진 (1996) |
강태윤 姜泰允 | |
일본명 | [ruby(中山, ruby=なかやま)] [ruby(義允, ruby=よしみつ)] (나카야마 요시미츠) |
출생 | 1965년 8월 16일[1] ([age(1965-08-16)]세) |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호쿠요고등학교(北陽高等学校) - 긴키대학교(近畿大学)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3년 해외교포 입단 (삼성)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3~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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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재일교포 외야수.2. 선수 경력
2.1. 프로 데뷔 이전
오사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호쿠요 고등학교, 긴키 대학을 거치며 간사이 지역 야구 대회에서 활약했다. 대학 시절에는 간사이 지역 대학 동기였던 후루타 아츠야와 함께 간사이 지역 대표팀으로 선출되기도 했다.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 일본IBM야스(日本IBM野洲)[2]에서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활동했다.
2.2. KBO 경력
1993년 시즌 전 삼성 라이온즈에 해외교포 선수로 입단하였다. 1993 시즌 삼성은 강태윤을 포함해 강춘경, 한명호 등 3명의 아마추어 재일교포 선수를 수집하였다. 여기에 시즌 중 재미교포 투수 최용희까지 영입하여 삼성은 4명의 해외교포 선수를 보유하였다. 재일교포 선수 중 강춘경, 한명호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지만 강태윤은 백업 외야수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럭저럭 삼성에서 활약하였다. 입단 첫해인 1993년에 포스트시즌에 출전하였고,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올랐다. 시리즈 최종전 0:4로 뒤지던 9회말 2아웃 선동열에게서 1타점 만회 적시타를 쳤으나 그것으로 삼성의 대권 도전은 끝났다.1994 시즌에도 백업으로 활약한 후 1995 시즌을 기대했으나, 시즌 개막 직후에 손가락 골절로 1군에서 제외되었다. 1995 시즌은 해외교포 선수의 등록이 2명으로 제한되면서 더 이상 교포 선수를 많이 보유할 수 없었고, 결국 7월 이후 복귀했으나 시즌 후 방출되었다.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 여러 사업을 하다가 2006년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야구 아카데미를 차렸다. NPB 프로 선수를 여럿 배출하는 등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다.4. 여담
삼성에 입단하고 한국에 처음 왔을 당시 한국말은 거의 하지 못하였으나, 팀 동료들과의 관계는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팀 선배였던 강기웅, 김용국과 야구 관련으로 연락을 한다고 전해지며, 삼성이 일본 전지훈련을 갈 때 자주 캠프에 방문한다고 한다.이승엽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하던 시절 도쿄 돔을 찾아 이승엽을 응원했다는 기사가 있다.
2019년~2022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활동했던 나카야마 쇼타가 그의 조카이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타자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
1993 | 삼성 | 50 | 87 | .253 | 22 | 1 | 0 | 1 | 7 | 5 | 0 | 10 | .299 | .327 | ||
1994 | 35 | 68 | .309 | 21 | 4 | 0 | 1 | 8 | 3 | 0 | 8 | .412 | .382 | |||
1995 | 40 | 54 | .167 | 9 | 0 | 0 | 0 | 3 | 3 | 0 | 6 | .167 | .246 | |||
KBO 통산 (3시즌) | 125 | 209 | .249 | 52 | 5 | 0 | 2 | 18 | 11 | 0 | 24 | .301 | .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