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00년대 초반에 쓰여졌다고 알려진, 휴전선 인근 강원도의 양구군과 인제군 사이에 있었다가 1960년대에 불의의 사건으로 사라졌다고 알려진 마을에 대한 괴담이다.정확한 제목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 강원도 악귀의 땅, 강원도 악귀마을, 악령 마을, 귀신마을, 60년대에 사라진 마을 괴담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린다.
단순히 마을이 폐촌이 되어 사라지는 경우는 전쟁으로 인한 피난, 이촌향도 및 인구소멸, 광산 마을의 경우 폐광 내지 산불이나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 댐 건설로 인한 수몰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이 괴담에서는 악귀의 집단 발현으로 인해 번창해가던 마을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는 점에서 특이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이야기의 출처, 신뢰성, 실제 마을의 위치 등 여러 부분에서 의아한 점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 괴담은 2000년에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각정 사건사고를 수집하고 제보도 받는 한 실명제 기반 사이트에서 모 회원이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다는 이야기라며 쓴 글에서 시작된다. 물론 괴담 작성자의 주장일 뿐이다.사이트 운영자가 해당 회원을 직접 만났고, 그 회원의 할아버지의 유품인 매우 오래되고 이상하게 생긴 염주와 빛 바랜 종이에 쓰여진 부적도 직접 보았다고 한다. 해당 사이트 운영자는 역사 및 민속학에 조예가 있었던 관계로 이 물건들을 넘겨달라 하였지만 해당 회원은 이를 완강히 거절하고 탈퇴하였으며, 사이트 역시 2001년 경에 폐쇄됐다고 한다. 즉 현재로서는 원 출처를 알 수가 없고 그 신빙성도 입증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해당 사이트가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이후 2023년을 즈음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되었고, 여러 커뮤니티와 공포 유튜브들이 이 소재를 다루며 유명해졌으며 마을의 위치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지만 이런 류의 괴담이 그렇듯 정확한 사실관계나 위치 등을 알기는 어렵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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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초, 한국 전쟁이 끝난지 약 10년이 지난 시점에 강원도의 한 산골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야.. 이 이야기를 할아버지한테 전해 들은 글쓴이는 강원도 양구와 인제 사이의 어느 지역이 아닐까 하고 추정하던데, 청년 시절 그 이야기를 겪었던 할아버지의 트라우마가 어마어마한지 일체 함구하셨대.
그나마 그것도 돌아가신 할머니가 실수로 하신 말 때문에 대략 추정하는 것 뿐이고.. 원래 고향이 강원도 창도군[A]이었던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남하하셨어.
수복 후 38선(그때 당시)이 그어지고 결국 창도군은 그 위쪽 북한 땅으로 편성이 되었지.
희한하게 같이 남하했던 동네 주민들이 많아서 상황을 보려고 다 같이 경기도 쪽으로 올라갔다가 유엔과 미국의 결정에 나라가 반으로 쪼개지는 걸 보고 어마어마한 실의에 빠지셨나 봐.
이리저리 알아보다 창도군이 가까운 휴전선에 아주 가까운 지역을 찾았는데 그곳이 처음에 언급한 양구와 인제 사이였어.
좁은 땅이지만 산 아래 있는 땅 같지 않게 굉장히 비옥하고 각종 농사도 잘되었어.
처음 갔을 때 같이 남하한 고향 사람들이 30명이 좀 넘었는데 중간에 외부 사람들도 꽤 유입되고 나중에는 작은 마을을 형성할 정도로 규모도 커지고 모두 힘을 모아 열심히 자리를 잡아서 서서히 자리가 잡혀갔지.
산 지 12년이 조금 넘었을까, 어느 날 아침 허름한 복장의 웬 중 하나가 마을로 들어왔어. 여기저기 다니며 시주를 부탁했는데 한창 마을이 자리잡혀 갈 때니 인심이 좋아서 여기저기 돈이며 먹을 거며 스님의 행낭에 가득 챙겨 드렸대.
중이 아주 고마워하며 시주를 다 받은 후 마을 중앙에 갑자기 걸터앉더니 깊은 명상? 생각?에 잠기더래.
오전 내내 그러고 있더니 갑자기 일어나서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마을 이장 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이장님 잠시 나오시라고 긴히 드릴 말이 있다고 고함을 지르는 거야.
벼락같은 울림에 깜짝 놀란 이장이 급하게 문을 열고 나와서 연유를 물었더니 중이 이장과 집 안으로 들어가서 1시간 가량 이야기하더니 이장이 굉장히 침통한 얼굴로 나와서 마을에 나이가 40 이상 되는 남자들을 다 불러 모았어.
중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당신네들 고향이 이곳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이 땅은 7백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원래 우거진 숲이었는데 어떤 영적인 인과에 의해서 지금과 같이 사람이 살 수 있게 보이는 비옥한 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곳의 주인은 악귀들이다. 보통 원귀나 악령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이며, 그들은 지옥의 야차나 나찰 같은 무서운 요괴다.
자기들의 땅에 인간이 와서 터를 잡고 사물을 마음대로 바꾸고 땅을 뒤집으니 어찌 분노가 일지 않겠는가?
이들이 지금 금제에 걸려 있어 활동을 못 하는 것뿐이지 곧 풀리게 된다.
3주 안에 준비를 마치고 달포가 되기 전에 마을을 떠나야 한다.
달포가 되기 전에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마을은 피 칠갑이 되어서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 하리라.”
항상 휴전선 이북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던 이들이기에 그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지.
말을 마치고 중은 합장을 하고 한다는 말이 내가 천기누설을 한 거라고, 전쟁 이후 시주를 다니는데 이렇게 부처님을 위해 자비와 정성의 마음으로 보시한 마을은 이곳뿐이었다고.
목에 걸고 있는 큰 염주와 흰색 한지에 기이한 문양이 그려진 종이 몇 개를 주며 이것은 달포 안에 요사스러운 기운에 의해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걸 최대한 방지하는 것이니 잘 간직하고, 달포가 지난 후에는 그것으로도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테니 어서 준비해야 한다.
말을 마치고 중이 쓸쓸히 뒤돌아 떠나기 시작하고 자리에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마을 어른들은 넋이 나가서 중의 뒤통수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장이 달려 나가 중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엎어지며 울고불고 사정했다는 거야.
우리는 말씀하셨다시피 고향을 등지고 남하해 그나마 가까운 철책선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고. 우리는 남쪽에 연고도 없고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어디로 가냐고, 그게 말이 되냐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대.
60이 넘은 이장 영감이 통곡하는 걸 보고 중이 굉장히 난감한 표정으로 억지로 떼놓지도 가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데 눈치를 챈 나머지 어른들도 몰려와 모두 무릎을 꿇고 사정에 사정을 했어.
이런 일을 미리 알고 목숨을 구할 방도까지 말씀해 주시는 도력 높은 스님이라면 그 악귀들을 물리치고 우리가 여기 살 수 있게 해주는 방도도 아시지 않겠냐고. 제발 부탁이니 가르쳐 달라고, 마을의 재산을 모두 털어서라도 부처님께 시주하고 차후에 마을 뒷산 중턱에 절을 세워 대대손손 부처님을 모시는 마을이 되겠다고 악을 쓰며 모두 고개를 숙여 흐느끼니 중이 감고 입술을 깨물고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어차피 내 명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천기를 이미 한번 누설했는데 두 번을 못 하겠소. 천기를 누설하고 백여 명의 사람을 구한다고 내 큰 죄가 씻겨질지 알 수 없지만..”
중의 방도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한한 것이었어.
"달포가 되어서 금제가 풀리고 기묘한 붉은 달이 떠서 마을을 감싸면 죽음의 잔치가 시작된다.
내가 그날을 알려줄 테니 당일 날 마을에 10살을 제외한 그 밑의 어린아이들을 마을 입구 당산나무 앞에 둥글게 원을 만들어 앉게 한다. 그 시간은 축시(새벽 1:30)가 시작되는 때. 앉은 채로 손을 마주 잡고 첫 닭이 여러 번 울고 동이 트는 묘시(새벽 5:00)가 되면 요괴들이 하늘의 명을 받아 땅속에 700년간 봉인될 것이니 그 후에는 당신들 말처럼 천기에 의해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바뀌게 되니 먼 훗날 요괴가 봉인에 풀리더라도 해하지 못하고 지옥으로 사라질 것이다.
단 그 의식을 하는 동안 절대로 아이들은 감은 눈을 떠서도 서로 잡은 손을 놓아서도 안 된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처음 말한 대로 마을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 하리라. "
이장이 뭐라 대답을 하려는데 중이 느닷없이 품속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어 자신의 약지를 깊이 벤 후 뿜어져 나오는 피를 당산나무에 뿌리고 그대로 자른 부분을 당산나무에 갖다 대고 계속 피를 나무에 스며들게 했다는 거야. 쉴 새 없이 알아듣지 못할 주문 같은 걸 읊조리며 몸을 파르르 떨더래. 기겁한 마을 사람들은 말리지도 못하고 질린 표정으로 말없이 지켜보는데, 이윽고 행동을 마친 중이 “난 이제 떠나니 꼭 내 말대로 하시오.”라고 힘없이 중얼거리고 법복을 칼로 찢어 대충 손가락을 동여매고 터벅터벅 마을 밖으로 나갔어.
마을 사람들은 그 날로 스님에게 받은 그 종이 몇 장과 염주를 청년들 중 가장 힘이 셌던 글쓴이 할아버지 집에 우선 보관했고, 그날부터 마을 이장을 비롯한 중한테 같이 이야기를 들었던 어른들이 마을의 10세 미만의 아이들을 불러 모아 다그치고 때리기도 하며 굉장히 엄하게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대.
10살 이하라면 부모가 아무리 통제해도 제멋대로인 아이들인데 동네 어른들의 무서운 호통과 매질, 마을의 급박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의외로 금방 그 의식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대.
축시부터 묘시까지 아이들을 둥글게 앉히고 손잡고 눈을 감게 해서 앞에서 꽹과리를 치고 동물 울음소리를 내면서 어떤 경우라도 너희들은 소리를 내거나 감은 눈을 떠서는 안된다고 혹독하게 연습을 시킨 결과 그 난리에도 애들이 시간 동안 해낸 거야.
그 청년 (글쓴이 조부)은 그 꼴을 보면서 그냥 마을을 떠나면 되지 않나.. 아이들한테 저런 몹쓸 짓까지 시켜야 하나 하고 고민을 많이 했대. 너무 무섭기도 했고.
달포가 다가오는데 마을의 소나 닭, 개가 갑자기 죽어나가고 여름이라 들끓던 파리, 모기와 극성이던 쥐까지 자취를 감추는 등 이상한 일이 일어났대.
피가 스며든 당산나무를 유심히 지켜보던 남자가 갑자기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큰 무당까지 불러왔는데 무당이 당산나무와 마을을 밖에서 흩어보더니 이건 내가 모시는 신이 감당할 일이 아니다, 어떻게 지옥 위에 마을이 생겼는가라는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입구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대로 줄행랑을 치는 일까지 발생했고..
그 의식을 치르는 날이 되고, 일찌감치 동네 애들은 이장 집에 모여 있다가 축시가 임박하자 그 당산나무에 모두 모여 손잡고 앉고 이장이 엄하게 단속한 후 어른들은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문을 꼭꼭 걸어 잠갔대. 마을의 닭이 모조리 죽어버려서 악귀를 쫓는다는 흰 개 몇 마리와 닭을 미리 준비해서 이장의 집안에 묶어 놓았고..
청년(글쓴이 조부)은 너무 무섭고 소름 돋았는데 이상하게 의식이고 뭐고 여기 계속 있다가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대.
그래서 그중에게 받은 염주와 종이를 품에 가지고 마을 뒤 산으로 해서 혼자 몰래 빠져나갔다는 거야..
마을을 벗어날 때 이장 집에 묶여있던 개가 끈이 풀려서 자신을 쫓아 나왔는데, 이상하게 벽이라도 쳐진 듯 마을 경계선상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서 엎어지고 낑낑대며 울부짖는 걸 눈앞에서 목격하고 더욱 확신을 가지고 죽을힘을 다해 산을 넘는데 갑자기 마을 쪽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짐승들의 울부짖음과 고함소리, 무슨 웃음소리와 뭐가 계속 부서지고 내려앉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지. 그러다 너무 공포에 질린 나머지 그 자리에서 쓰러져 기절을 해버렸는데, 눈을 뜨니 그다음 날 낮인 것 같은데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어.
청년은 울부짖으며 도망가다가 너무 양심에 찔려서 길을 크게 돌아 다시 마을 입구를 먼발치에서 볼 수 있는 곳까지 죽을힘을 다해 가서 마을을 봤는데..
그 중이 의식을 한 당산나무가 세로로 쪼개져 벼락을 맞은 듯 시커멓게 타버리고 무슨 살점 같은 것들과 피가 당산나무 근처로 비를 타고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형성되어 있었대.
마을의 집들은 모조리 폭삭 내려앉아 있어서 멀리서도 참혹한 풍경이 보였고.. 그 자리에 앉아 대성통곡하는 와중에 마을에서 이상한 느낌과 기운이 흘러나와 정신을 차리고 겨우 도망쳤어.
그 후, 글쓴이 할아버지는 제주도로 내려가셔서 평생 죽을 때까지 그곳에 사셨는데 그걸 자식들한테도 말하지 않고 할머니한테만 이야기했어. 할머니가 죽기 전에 그걸 가족들에게 털어놓고 돌아가셨기에 글쓴이도 알게 된 거고.
자식들은 당연히 무슨 말이냐며 아무도 믿지 않았는데, 큰 고모가 어릴 적 할아버지가 물건을 보관해 두는 창고에서 노랗게 변한 이상한 문양이 적힌 종이 몇 개를 본적이 있다고 해서 친척과 글쓴이 가족들 사이에 큰 논란이 되기도 했고..
본 이야기에 이어, 보배드림에서 해당 괴담에 살을 붙여 해당 마을을 군 생활 때 매복 작전을 나가 근처에 가 봤고, 괴이한 일을 겪었다는 후일담도 있다. 평화의 댐 북쪽으로, 매복조가 겪은 일화를 썼는데 수십 년이 지난 일이고 정확한 위치일지는 미지수다.
3. 의문점
이 내용대로라면 글쓴이의 할아버지의 트롤짓으로 인해 악귀 퇴치가 실패하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여러 가지 의문점이 존재한다.우선 가장 큰 의문으로는, “왜 그 마을의 어른들은 이주를 포기하고, 마을과 주민 모두의 생사가 달린 일을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맡겼나?“가 있겠다. 상식적으로 마을을 떠나지 않고는 거의 무조건 죽는 상황이라면, 파멸을 피해 이주하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마을의 운명을 어른도 아니고 어린애들에게 맡겨,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했단 것. 게다가 마을을 떠날 수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선택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2]
아이들을 아무리 엄히 단속하고 교육시킨다 한들, 악귀가 없어도 외부인이나 들짐승이 오가는 등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산골짜기의 작은 마을에서 새벽 한 시 반부터 다섯 시까지 세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아이들끼리만 놔두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며, 거기에 실제로 악귀들이 깨어난다면 악귀들을 아이들만의 힘으로 막아내야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된다.
거기에 누구도 이 긴 시간동안 눈을 떠도, 손을 놓아도 안 된다는 조건은 사실상 성립 불가능하다. 어른들도 이 상황이면 무의식적으로 눈이 떠지고 도망을 가고 싶어할 텐데, 과연 아이들은 그렇지 않을까? 특히 지옥에 상주하는 수준의 악귀들이라면 간단히 목소리 등으로 아이들을 속이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고, 곰곰이 따져보면 애초에 성공하기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생각해보면 글쓴이의 할아버지는 이 위험한 상황을 조성해두고, 그 어느 어른들도 이에 반발하거나 함께 위험에 맞서려 하지 않고 자기들만 집 안에 틀어박히는 위험천만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감행하려 하는 것에 위화감 내지는 잘못됨을 느꼈을 공산이 크다. 이야기를 읽으면 염주와 부적을 들고 도망친 할아버지가 실패의 근원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할아버지의 판단이 오히려 상식적이고 납득이 되는 것. 실제로 할아버지는 살아남았지만, 마을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목숨을 잃게 되었음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간과하기 쉽지만, 스님이 준 염주와 부적은 달포가 차기 전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아주는 것이 목적이지, 마을을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실제로 스님이 내건 조건 역시 아이들이 모여 앉으라는 것이었지, 염주와 부적을 누군가 지니고 마을을 지키라는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글쓴이의 할아버지 역시 남들에 비해 힘이 세서 이 물건들을 맡았을 뿐 특정한 역할을 부여받은 건 아니었다.
다만 조건으로 마을을 떠나지 말고 집에 있으란 것이 있었기에 간접적인 책임은 질 지 몰라도, 역시 아이들이 그 긴 시간을 버텨내리란 보장이 없었기에 책임이 전적으로 있다고 보긴 어렵다.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게 아니냔 것.
이런 불가능한 조건을 생각해볼 때, 과연 중이 제대로 된 대비책을 일러준 것이 맞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천기를 누설하며 마을에 닥쳐올 재난을 일러준 건 맞지만, 해결책이란 게 야심한 밤, 그것도 악귀들이 몰려올 마을 입구에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손을 모아 새벽이 올 때까지 버티는 건 실현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
따라서 오히려 그 중의 정체가 악귀 내지 악귀의 사주를 받은 하수인, 혹은 악귀를 모시는 무당과 같은 존재가 아니냐는 주장 또한 있다. 악귀를 쫓는 등의 행동은 무당이 하지, 일반적인 스님이 할 행동은 아니기 때문. 제시한 해결책 역시 악령에 취약할 아이들을 동네 입구에 내버려둬서 사실상의 미끼로 삼아 되려 악귀들을 끌어들이려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이미 결말이 정해졌단 점, 희생자를 현혹한다는 점 등에서 마치 곡성 내지는 랑종이 연상된다는 반응도 있다.
동구의 당산나무에 피를 뿌리는 행동 역시 의아한데, 실제로 이후 당산나무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이 기절하는 등 나무에 이미 악귀가 쓰였거나 되려 악귀를 불러 일으킨 게 아니냐고 의심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스님이 악귀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당산나무에 효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일수도, 악귀를 끌어들이려 할 수도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막판에 할아버지가 다시 마을로 돌아갔을 때, 이미 마을은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스님의 이야기로는 새벽 5시 이후에는 다시금 봉인될 것이라 했는데 의식이 실패한 시점에서 악귀들이 세상 각지로 풀려났는지, 다시 악귀들보다 보다 상위의 신령에 의해 봉인되었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마을 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는 언급을 보아 봉인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나, 이 역시 불확실하다.
봉인이 된다면, 그것을 봉인시킬 존재가 있어야 하고, 봉인시킬 매개체, 수단도 있어야 한다. 거기에 지옥의 악귀들 같은 강한 존재라면 어지간한 신으로는 어림도 없는 강력한 신이 있어야 한다. 바보라고 700년 만에 풀려난 악귀들이 교도소에서 운동시간 보내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얌전히 스스로를 다시 봉인할 리가 없으니까. 이 괴담은, "어떻게 풀려난 악귀들이 다시 봉인되는지, 그리고 아이들은 왜 모여야 하는지, 그 모인 아이들이 어떻게 악귀들을 봉인시키는지"에 대한 원리나 전개 자체가 비어있다.
작중의 시점에 관련된 의문도 있다. 1960년대 초반이면 이미 한국 정부의 행정망이 정비되기 시작한 부분인데, 통신 및 교통이 어느 정도는 구비되기 시작할 시점이다. 그리고 묘사처럼 마을의 집들이 폭삭 내려앉고 나무가 두 쪽으로 갈라져 타버렸다거나, 핏자국이 선명하다던가 하는 부분은 마치 전쟁의 참화를 묘사한 부분과도 유사하다.
그리고 이 정도 규모의 일이 터졌다면 아무리 소식이 느린 60년대라지만 전국에 소문이 퍼질 대사건이지만 관련된 보도 내용 등은 보이지 않는다.[3] 차라리 한국 전쟁 중이었다면, 남북 양측의 포격이나 공군의 폭격이나 오폭, 불발탄의 폭발, 혹은 민간 학살 등의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이 이야기의 일이 더 현실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결국은 괴담은 괴담일 뿐. 이런 의문점들이 있음에도, 조선 시대나 그 이전도 아니고 비교적 최근인 현대에 700년 간 봉인된 악귀들이 풀려나 일을 벌인다는 소재 및 전개의 긴박성 등으로 인래 흥미로운 이야기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
해당 괴담에 대한 민속학적인 분석 연구
4. 여담
- 작중에 등장하는 창도군은 분단 이후 1952년 북한에 의해 만들어진 행정구역으로, 그 이전엔 김화군으로 불렸다. 김화군의 동부 지역에 해당한다. 실향민들이라면 창도군이 아닌 김화군으로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실향민인 할아버지에게 들은 것이라면 다소 오류라는 지적이 있다.
- 남북 분단은 유엔과 미국이 한 것이 아니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 직전에 몰리면서 조선군과 만주군 사이의 관할경계 문제 및 만주 전략 공세 작전 때문에 소련군이 진공하며 38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미군, 북쪽은 소련군이 진주하며 이루어졌고 이후 각종 통일을 위한 회담과 논의가 좌절되며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고착화됐다. 유엔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대한민국을 인정했으나, 소련군이 진주한 한반도 북쪽은 총선거를 치르지 못했고, 결국 북한이 정권을 출범시키며 분단이 이루어진다.
- 과연 이 악귀 마을이 어디었냐에 대한 추측이 무성하나 확정된 것은 없다. 양구군 및 인제군 일대의, 휴전선이 가까워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민통선 북부 내지 비무장지대 내라는 설만 무성하다. 인제군이나 펀치볼 인근, 평화의 댐 북쪽, 파로호 북부, 대암산 인근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없다. 설사 괴담은 차치하고 마을에 사고가 생겨 사람들이 죽고 집들이 무너진 것이 사실이더라도 이미 마을이 사라진 지 60년은 넘은 시점이기에, 마을의 흔적은 사라지고 풀만 우거진 지역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곳은 민통선 내에서 거주하는 것이 어렵고 인구 소멸로 폐촌이 되는 마을 내지 민가가 많아졌기 때문에 특정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