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14:22:52

가스통 1세 드 푸아그레일리

성명 가스통 1세 드 푸아그레일리
Gaston I de Foix-Grailly
생몰년도 미상 ~ 1451년 이후
출생지 가스코뉴 공국
사망지 아라곤 왕국 마엘라
아버지 아르샹보 드 그레일리
어머니 이자벨 드 푸아카스텔봉
형제 장 1세, 가스통 1세, 아르샹보, 마티외, 피에르
아내 마르그리트 달브레
자녀 , 이자보, 아녜스
직위 부흐의 카프탈, 롱그빌 백작, 베누즈 백작, 카스티용 자작, 마엘라 자작. 그레일리의 영주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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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에 귀속된 가스코뉴 공국의 귀족, 군인. 다른 가족과는 달리 잉글랜드 왕국에 충성을 바쳤고, 가스코뉴 전역이 프랑스 왕국에 귀속되자 귀순을 거부하고 아라곤 왕국 내 영지로 망명해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2. 생애

카스티용 자작 겸 부흐의 카프탈(Captal, 특정한 주의 최고 영주)로서 가스코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잉글랜드 왕국을 위해 프랑스 왕국에 맞서 싸웠던 아르샹보 드 그레일리와 카스텔봉 자작 로저 베르나르 2세 드 푸아카스텔봉의 장녀인 이자벨의 차남이다. 형제로 장 1세, 아르샹보, 마티외, 피에르가 있었다.

1391년 8월 1일,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고 있던 푸아 백작 가스통 3세 페부스가 사냥을 마치고 식사하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곧 사망했다. 가스통 3세의 유일한 적법한 아들이었던 가스통은 1380년 6월에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했기 때문에, 푸아 백국의 작위와 영토는 가스통 3세의 두번째 사촌이자 이자벨의 남동생인 마티외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마티외 역시 1398년에 자녀를 남기지 못한 채 사망했고, 이로 인해 아르샹보의 아내 이자벨이 푸아 가문의 마지막 구성원으로서 모든 영지와 작위를 물려받았다. 아르샹보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카스텔봉 자작에 이자벨의 남편으로서 푸아 백국의 공동 섭정 자격으로 마르샹 자작, 안도라 공동 공, 베아른 자작, 카스텔봉 자작, 그리고 푸아 백작에 취임했다.

그러나 프랑스 왕실은 프랑스 왕국의 가장 큰 영토 중 하나였던 푸아 백국이 잉글랜드의 봉신에게 넘어가는 걸 두고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르샹보가 프랑스 왕실에 충성을 서약하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는 프랑스 무관장 루이 드 상세르에게 푸아 백국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루이 드 상세르는 군대를 일으켜 아르샹보가 다스리고 있던 대부분의 영토를 점거해, 아르샹보가 1399년 5월 10일에 타르브에서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 되겠다고 서약하도록 강요했다. 그 후 아르샹보는 프랑스 국왕을 주군으로 받들었으며, 두 아들 장 1세와 가스통 1세를 인질로 파리 궁정에 인질로 보내야 했다. 1412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는 잉글랜드 왕국에 속한 카스티용 자작과 그레일리 영지, 그리고 부흐의 카프탈 직위를 물려받았고, 다른 가족이 프랑스 왕실에 경의를 표한 것과는 달리 그는 잉글랜드 왕실에 충성했다.

1415년 늦여름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의 군대를 돕기 위해 북상했고, 10월 25일 아쟁쿠르 전투에 참여해 대승에 기여했다. 1419년 7월 31일에 퐁투아즈를 야간 기습해 그곳의 수비대장인 장 드 빌리에르를 별다른 전투도 없이 항복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군이 일드프랑스로 진출하는 길이 열렸다. 1420년 헨리 5세가 프랑스 왕위의 정당한 후계자로 인정된 트루아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때 그는 롱그빌 백국을 봉토로 받았다. 그러나 1422년 헨리 5세가 사망한 뒤 아르마냑파가 트루아 조약을 부정하고 롱그빌 백국을 점거하면서 무산되었다.

1424년 잉글랜드 왕실에 의해 바자스 시의 수비대장으로 선임되었으며, 1438년 또는 1439년에 가터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다. 1441년 잉글랜드군이 타르타 공방전을 수행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1451년 프랑스군이 가스코뉴를 맹공격한 끝에 보르도를 비롯한 가스코뉴 전역을 휩쓸자, 그해 6월 20일 84,000 크라운을 받는 대가로 기옌에 있는 모든 땅을 푸아 백작이자 조카인 가스통 4세 드 푸아베아른에게 양도한 뒤 아라곤 왕국 내 자신의 영지인 마엘라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사망했다. 사망년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3. 가족

  • 마르그리트 달브레(? ~ 1453): 알브레 영주 아르노 아마니외 달브레의 딸.
    • 장 드 푸아(1410 ~ 1485): 켄달 백작.
    • 이자보 드 푸아: 튀렌 자작 르노 6세 드 폰스와 초혼, 산티스테반 백작 피에르 드 페랄타와 재혼.
    • 아네스 드 푸아: 페이 포통 드 라멘산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