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22:48:42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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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소개3. 건설4. 구조
4.1. 특징
5. 사고 이후6.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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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체르노빌.jpg
우크라이나어 Чорнобильська атомна електростанція імені Володимира Ілліча Леніна (ЧАЕС)[1]
러시아어 Чернобыльская атомная электростанция имени Владимира Ильича Ленина (ЧАЭС)[2]
영어 Vladimir Ilyich Lenin Memorial Chernobyl Nuclear Power Plant
한국어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기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공식 홈페이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우크라이나 키이우주 이반키우구 프리피야티[3]에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이다. 정식 명칭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기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로 입구에는 레닌 동상이 있었다.

'체르노빌'(우크라이나어: 초르노빌)이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검은 풀', 보통은 ''이라고 번역된다. 정확히 말하면 웜우드라고 불리는 향쑥(쓴쑥)의 이름이다.[4] 하지만 이름이 이름인지라 번역기에서는 쑥보다는 체르노빌이라는 명사 그대로 번역된다.

2. 소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책임자가 다음과 같다.
  • 소장: 빅토르 브류하노프
  • 부소장 & 수석 엔지니어: 니콜라이 포민
  • 발전소 운전 담당 부수석 엔지니어: 아나톨리 댜틀로프

1970년에 착공되어 1978년 5월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프리피야트에서 상용 운전을 개시했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주변 일대를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으로 만드는 동시에 전 세계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방사성 물질을 확산시켰다. 사고 원자로를 제외한 다른 원자로는 한동안 계속 가동되어 전력을 생산했으나 2000년에 가동을 정지했다.

이 발전소 옆에는 소련 내의 단 2기뿐이라고 알려진 가로로는 약 700m, 폭은 약 150m에 다다르는 두가-3[5] 대륙 간 탄도 미사일 경보 초지평선 레이더가 있는 비밀 기지가 존재했으나 원전 사고 이후 버려졌다. 운용 부대가 떠나고 레이더는 거대한 철제 구조물로 전락했는데 폭심지 근처에서 꽤 벗어난 숲 한 가운데에 있어서 방사능 수치가 높지 않은 관계로 현재는 관광 코스 중 하나가 됐다. 심지어 철수한 지 [age(1986-04-26)]년이 지난 이 거대 철제 구조물에 올라가는 용자도 있다. 그냥 버려져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조기경보통제기와 이지스함, 순항미사일이 있는 현재로선 크게 활용도가 있는 건 아니다. 이런 고정식 구형 레이더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군의 탄도탄과 순항미사일 공격으로 전부 파괴됐고 이를 잘 아는 우크라이나군도 저런 건 미끼로 던져 버리고 이동식 레이더와 미사일들은 방공호에 숨겨 놨다.

3. 건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애초에 착공부터 문제가 많았다. 빅토르 브류하노프(1935년 12월 1일 ~ 2021년 10월 13일)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소장으로 부임해서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인 소련 체르노빌 지방으로 파견되었다. 정작 이 인간은 원자력과는 하등 상관없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이었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이 다 그렇듯이 당에 대한 충성심 순위에서 상위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자력 발전소장으로 부임한 것이다.

빅토르 브류하노프가 체르노빌에 도착했는데 그 체르노빌은 아무도 살지 않는 허허벌판이었다. 브류하노프는 원자력 발전소 부지를 확보하고 이에 필요한 예산을 적어다가 키이우의 국영은행에 가서 돈을 타다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했다. 문제는 완전히 허허벌판이다 보니 교통 인프라 따위 없었으며 브류하노프는 매일 차를 얻어타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예산을 더 타다가 아예 여기다 도시를 두 개(체르노빌, 프리피야트) 차렸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시작하는데... 자재를 구하기가 워낙 힘든 데다가 그나마도 중간에 도둑들이 가로채 가는가 하면 발전소 짓지 말라고 툭하면 시위를 하거나 해서 계속 차질을 빚었다. 결국 원래는 1975년 12월에 가동이 예정되어 있었던 1호기이지만 결국 전술한 1978년 5월에 가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공사가 계속 늦어지고 자재가 없다보니 가장 비슷한 물건으로 자재를 대체하는 짓을 반복했는데 이렇게 공사를 하다 보니 에너지부 장관이 이 공사에 대해 브류하노프를 비판하자 브류하노프는 "그럼 니가 이런저런 자재를 구해 와! 자재만 구해다 주면 너가 시키는 대로 만들어줄께!"라며 반박했다. 그러자 에너지부 장관은 브류하노프가 한 공사를 대충 넘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대충 짓다 보니 격납 건물을 짓지도 않았으며 결국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당시 폭발의 피해를 줄여주는 격납 건물이 없다 보니 그 사고로 인해 어마무시한 피해를 야기했다. 이것도 공산주의 답게 사고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정신승리로 땜빵했다.

게다가 일단 발전소장인 브류하노프는 화력 발전소에 대해서야 잘 알았지만 원자력 발전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체르노빌과 함께 완공된 프리피야트의 실질적인 지도자이다 보니 그 쪽의 행정 관련으로도 할 일이 많았던 데다가 모스크바에서는 5호기와 6호기 외에도 제2의 체르노빌 원전 단지를 건설하라는 명령 등 계속해서 시설 확충을 명령했던지라 밤낮없이 일해야 해서 원자로 운영 관련으로는 지식을 쌓을 겨를이 없었다. 거기다 체르노빌 건설 당시 원자로를 제작과 운영에 참여했던 기술진들도 다들 제 갈 길을 가고 새로운 직원들이 자리를 채웠는데 이 중 상당수는 잉여 인력이었고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통제 그룹 사이에서도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가 부족했다. 기껏해야 부수석 엔지니어였던 아냐톨리 댜틀로프 정도. 그런 판에 부소장이랍시고 임명된 니콜라이 포민(1937년 ~ )마저도 원자력 부문 기술자가 아닌 전기공학자 출신으로 이데올로기 요소로 당에서 일어붙여 그 자리에 앉은 것이었다. 이 쪽은 그래도 부임 후 통신 강좌로 핵물리학 지식을 쌓았고 그래서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트의 행정 및 확충으로 눈코 뜰 새 없던 브류하노프를 대신해 포민이 실질적으로 발전소 운영을 담당하게 되었다. 허나 잔뼈 굵은 전문가가 아닌 어중간한 원자로 지식으로의 운영으로는 문제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었고, 실제로 사고를 일으킨 4호기의 문제의 테스트도 포민이 위에서 승인을 받지도 않고 진행했던 것이었다.

4. 구조

파일:attachment/b0044717_4e241ad74c82b.jpg

좌측 중단의 굴뚝 있는 건물이 폭발 사고가 난 원자로 4호기. 원래는 굴뚝을 사이에 두고 3호기가 4호기와 대칭을 이루고 한 건물에 붙어 있었고 그 옆으로 1, 2호기가 개별 건물로 수백m 길이로 이어진다. 체르노빌은 RBMK 반응로를 사용하는데, 흑연으로 만들어진 제어봉이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파일:attachment/e0072368_47996efc607a0.jpg

폭발 이후 화재가 진압된 원자로 4호기의 사진. 수백 장을 찍었는데 필름이 거의 다 방사선으로 타 버렸고[6] 남은 것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사진 하나.[7] 이나마도 헬리콥터에서 촬영된 거라 간신히 형체를 건진 것이지만 지상에서 찍은 건 모조리 타버렸다. 상세한 정보와 분리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문서의 바이오 로봇 목차의 사진도 필름이 방사선에 노출돼 망가지는 바람에 사진이 이상하게 나온 것.

파일:chernobyl.jpg

폭발 후 아침, 원자로 4호기의 정면 사진.

파일:attachment/b0044717_4e241c9e230f5.jpg

북서쪽에서 바라본 수습 후의 체르노빌 원전. 관광객들은 여기서 원전을 보게 된다. 사진 왼쪽에는 추모비가 건립되어 있다.

현재 사진의 원자로 4호기는 방사선 방출을 막기 위해서 석관 위에 추가로 금속 돔을 덮어 놓은 상태다. 이 돔이 특이한 것이 스테인리스강을 포함한 13가지의 재료로 안과 밖을 만들었으며, 인부들의 안전을 위해 발전소로부터 많이 떨어진 곳에서 돔을 건설한 뒤, 4호기 위로 돔을 옮겨 조립한 것이다. 돔을 올리는 영상

4.1. 특징

파일:external/www.schoolnet.org.za/rbmkanal.gif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Реактор Большой Мощности Канальный, Reaktor Bolshoy Moshchnosti Kanalniy; RBMK) 방식이다. 이 방식의 원자로는 기술이 많이 필요 없고 가격이 싼 편이지만 안전성이 상당히 낮은 데다 제어하기 힘들다.[8] 사고로부터 2년 후 죄책감으로 자살한 발레리 레가소프[9]에 의하면 이미 사고 이전부터 소련 정부는 이 흑연감속 비등경수 방식의 발전소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나 이를 은폐했다고 한다.

소련에서 플루토늄 생산로를 개조하여 만든 원자로로 세계 최초로 전력망에 전력을 공급한 원자로가 이 기종이다. 특이한 점은 현대 서방 경수로들과 달리 감속재로 흑연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물론 기체를 열전달매체로 사용하는 개량 가스냉각로와 같이 흑연을 사용하는 원자로는 현재도 일부 존재하나 전체의 5%에 불과하다.

5. 사고 이후

사고를 낸 4호 원자로가 봉인된 이후로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기 부족을 이유로 1, 2, 3호기를 사고 후에도 계속 가동했다. 더욱이 5, 6호기를 새로 건설하다가 1988년 중단했다.

결국 1991년에 2호기에 화재가 발생했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원자로의 손상이 너무 심하다며 2호기를 폐쇄시켰다. 그 후 1호기와 3호기는 2호기 화재 사고 후에도 5년간 운영을 계속하다 문 닫으라는 세계 각국의 압력으로 인해 1996년 11월 1호기가 폐쇄되었고 2000년 11월에 3호기 또한 가동이 정지됨으로써 모든 원자로가 멈추게 되었다.

그렇지만 발전소로서의 기능은 정지됐어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자체가 현재진행형인 문제인 만큼 지금도 일정 인력이 상주하며 관리 중에 있다. 또한 4호 원자로 자체는 봉인되었지만 통제실을 비롯한 일부 4호 발전소 구획은 취재 등의 조건 하에 제한적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물론 위험 지대인 만큼 깔끔하게 정돈된 다른 발전소 건물의 내부 시설과 달리 이쪽은 거의 방치 상태이며 특히 4호 통제실은 기능 정지된 채 기기 여기저기가 낡고 손상된 광경이 거의 귀신의 집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황폐하기 이를 데 없다.

5.1.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러시아군에 의해 한국시간 2022년 2월 25일에 점령당했다. # #

그런데 러시아군이 이 지역을 점령한 직후 일대의 감마선이 비정상적으로 폭증한 것이 감지되었다.# 다만 이는 더티 밤 공격이나 어떠한 군사적 이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발전소 주변 오염된 토지에 대규모 병력 및 군사장비가 이동하면서 오염이 이리저리 흩어져 수치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체르노빌 주변 지역에서 감마선 증가가 관측된 반면 원전 자체의 측정상으로는 변화가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 러시아군이 방사능 폐기물 저장소를 포격한 탓에 감마선 수치가 올라갔다는 보도가 있긴 하다. #

다만 세계 최악의 사고가 있었던 장소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경우 사고 재발의 가능성이 매우 높고, 발전소를 점령한 러시아라도 우크라이나 측 관리인들을 사살하거나 해산시킬 시 만에 하나 발전소에서 일어날 일을 감당할 수 없으며, 혹여나 체르노빌 원전의 방호벽에 다시 손상이 갈 경우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모두 타격이 지대할 것이 확실하기에 체르노빌에서 만큼은 다른 지역과는 완전히 반대로 포로가 되었던 우크라이나 경비 병력과 러시아군이 같이 체르노빌을 지키는, 당연하면서도 진귀한 풍경이 나왔다.

파일:웰컴투 체르노빌 동막골.jpg

"이거 또 터지면 전쟁이고 뭐고 우리 둘 다 큰일난다."라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손에 손잡고 발전소를 같이 경비하는 양국의 군인들. 왼쪽 군인[10]이 러시아군 소속 병사, 오른쪽 군인[11]이 우크라이나군 소속 병사. 다만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된 이후라서 우크라이나군은 비무장 상태이다.[12] 물론 무장 상황과 전쟁 진행 여부와 관계없이 전투를 벌이다 사고가 일어나는 것보다 사이좋게 카메라로 상황 파악을 하는 게 서로에게 더 이롭다.[13]

2022년 2월 25일 기준 0.093mSv/h로(전일 기준 약 0.06~0.07mSv/h) 결코 낮지 않은 수치의 감마선이 감지되었으나 러시아군이 남쪽 키이우쪽으로 진격한 후인 2월 28일에 0.005mSv/h이 나오면서 우려할 만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IAEA는 원전 내 방사성 물질이 잘 보관돼 있는지 확인하는 원격 모니터링 장비의 통신 연결이 끊겼다고 밝혔다. # 설상가상으로 러시아군이 교대 근무를 허용하지 않아 직원들이 2주일 동안 휴식 없이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2022년 3월 30일, 러시아군 병사들이 급성방사선증후군으로 쓰러졌으며, 이들을 태운 버스 7대가 벨라루스로 향했다. # 러시아군이 키이우 전투에서 피해를 입은 병력들의 재집결 장소로 체르노빌을 선택한 데다 병사들에게 화생방보호의 등의 장비를 일절 착용시키지 않고 붉은 숲에 배치해 참호를 파게 하는 등의 방사능 피폭 가능성을 높이는 행동을 하다가 병사들이 피폭당한 것으로 보인다.#[14]

그리고 3월 31일 IAEA가 다시 우크라이나가 통제권을 되찾았다고 발표했다. # 러시아군은 후퇴하면서 생필품들을 훔쳐 달아났다. #

4월 5일에 체르노빌의 붉은 숲에서 주둔했던 러시아 병사가 피폭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체르노빌의 악명이 여전함을 보여주었다.[15] 피폭으로 인해 붉은 숲에 배치되었던 러시아 병사들 상당수가 사망할 예정이라고 한다.

4월 11일에는 러시아군이 체르노빌에서 각종 화학 약품과 방사능 물질들을 절도했음이 밝혀졌는데 방사성 폐기물 700kg에 해당하므로 비전문가가 함부로 접촉하면 안 된다고 한다.

6. 매체



[1] Chornobylʹsʹka atomna elektrostantsiya imeni Volodymyra Illicha Lenina, 초르노빌스카 아톰나 엘렉트로스탄치야 이메니 볼로디미라 일리챠 레니나, 볼로디미르 일리치 레닌 기념 초르노빌 원자력 발전소[2] Chernobyl'skaya atomnaya elektrostantsiya imeni Vladimira Il'icha Lenina, 체르노빌스카야 아톰나야 일렉트로스탄치야 이메니 블라디미라 일리챠 레니나,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기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3] 의외일 수 있으나, 이름과 달리 이 발전소는 실제로 체르노빌에 위치하지 않는다. 체르노빌은 지명으로 따로 존재하며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체르노빌 마을에서 약 15km, 프리피야트 도시에서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명칭 인지도상, 그리고 그 유명한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책임 소재가 소련인만큼, 지명도 러시아어 표기인 '체르노빌'로 표기하였다. 우크라이나어 표기로는 '초르노빌'이라고 부른다.[4] 유명한 술 압생트에 들어가는 재료다.[5] 러시아어로 ДУГА가는 두가이며 우크라이나어로는 두하이다.[6] 방사선에 전체적으로 노출된 필름은 증감현상한 것처럼 거친 그레인이 나타나고 색 재현성이 떨어진다. 일부가 노출되면 방향에 따라 서치라이트를 비춘 듯한 무늬가 나타나며(발전소 지붕에서 촬영한 사진에 이런 흔적이 나타난다) 영상 필름의 경우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듯한 모습이 나타난다. 디지털 카메라가 본격 보급된 이후엔 별 의미가 없어졌지만, 과거 필름카메라가 대세이던 시절 공항 보안 엑스레이 통과시에 필름이 망가질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별도 안내가 표시되어 있었던 적도 있었다.[7] 이고리 코스틴은 1진으로 도착한 보도 사진 작가들 중 한 명으로 헬리콥터에 탑승해 사고 현장을 촬영하였다. 그의 카메라들은 몇 분 만에 전부 고장나 버리는 바람에 겨우 12장만을 찍을 수 있었다.[8] 왜냐하면 소련이 자기네들이 쓰던 군사용 플루토늄 생산로를 대충 고쳐서 전력용으로 써먹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원자로로는 영국에서 개발한 마그녹스가 있다.[9]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조사위원회 위원장. 자세한 것은 링크 참조.[10] 소총을 들고 헬멧을 쓴 병사.[11] 비무장 상태로 모자를 쓴 병사.[12] 러시아군이 들고 있는 총기는 RPK-74M.[13]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항목 '피해'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러시아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보다 덜했을 뿐이지 이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로 출입이 제한된 지역이 일부 존재한다.[14] 물론 우리 일상에서도 방사능은 당연히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자연 방사선이다. 허나 그 수치는 인체에 아무런 악영향이 없는 극도로 낮은 수치이다. 하지만 체르노빌에서 나오는 방사능 수치는 일상에서 지내는 방사능 수치보다 확연히 높다.[15] 어디까지나 과거보다 좋아졌다는 거지 절대로 안전한 것은 아니다.[16] 스토커 섀도우 오브 체르노빌[17] 이들이 발전소를 지키는 이유 중 조직명이기도 한 모노리스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모노리스는 1986년 당시 폭발한 4번 반응로를 코앞에서 약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 사실상 반응로가 위치한 공간에 세워져 있는 셈. 실제로 이곳엔 접근조차 불가능하겠지만 게임상에서는 이 모노리스에 접근할 수 있고 당연히 박살 나서 뒤엎어진 반응로 뚜껑도 코 앞에서 구경해 볼 수 있다.[18] 게임 내에서는 키예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