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19 00:10:48

수단 인민해방군

SPLA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
2.1. 창설2.2. 주도권 확립2.3. 위기2.4. 하르툼 평화협정2.5. 재통합2.6. 포괄적 평화협정

1. 개요

수단 인민해방군, Sudan People's Liberation Army

제2차 수단 내전 당시 남수단 독립운동 조직.

항쟁 결과 포괄적 평화협정을 거쳐 2005년 자치권을, 2011년 남수단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독립 이후 남수단군으로 개편되었다.

2. 역사

2.1. 창설

1983년, 수단 공화국가파르 니메이리아디스아바바 협정을 어기고 자치권을 보장한 남수단을 포함한 전 수단의 샤리아화, 아랍 우월주의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

수단군 육군본부는 수단 남부의 보르에 주둔하던 남수단 출신들로 구성된 105대대에게 무장을 해제하고 북부로 이동하라 요구했고 105대대장 케루비노 콰닌 볼 소령이 이를 거부하고 1983년 5월, 보르 105대대 반란을 일으키며 제2차 수단 내전의 신호탄을 쏘았다.

이에 수단군은 하르툼에서 근무하던 아냐냐 출신의 존 가랑 중령에게 이들을 말리라고 명령해 파견했으나 존 가랑은 오히려 반군 세력에 합류해 리더십을 잡았고, 에티오피아 남부의 반군 세력들을 집결시켰다. 집결이 끝나자 가랑은 군사 조직으로 SPLA를, 정치 조직으로 SPLM을 창설했다.

2.2. 주도권 확립

초기 SPLA는 데르그의 수장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의 지원을 받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했다.[1]

SPLA의 수장 존 가랑은 수단주의라는 이념을 주장했다. 수단주의는 남수단의 독립이 아니라 수단 공화국 전체를 세속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연방제 국가로 개혁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리에크 마차르 등 완전독립을 주장하는 파벌과 갈등을 빚었다.

초기 SPLA는 딩카족을 주류로 시작했으나 점차 누에르족 등 남부의 다양한 부족 청년들을 모집해 22년간 이어지는 내전으로의 발판을 마련했다.

2.3. 위기

1991년, 에티오피아 인민민주공화국의 멩기스투 정권이 몰락하고 멜레스 제나위가 집권했다. 이 사건으로 SPLA는 그동안의 무기 지원과 후방 기지를 상실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누에르족리에크 마차르와 람 아콜 등이 가랑의 독재적 리더십에 반발하며 누에르족 파벌을 이끌고 독립해 SPLA-나시르를 창설했다. 가랑의 잔존 파벌은 SPLA-가랑, 혹은 SPLA-메인스트림[2], SPLA-토리트 등으로 불렸다.

SPLA-가랑은 여전히 수단주의를 고수한 반면 SPLA-나시르는 남수단의 완전독립을 고수했다.

SPLA-나시르는 같은 누에르족인 누에르 백군과 결탁해 1991년 보르를 공격해 딩카족 2,000명 이상을 학살하고 소 수십만 달리를 빼앗는 등 이른바 "보르 학살"을 벌였다. 보르 학살로 수만명이 기아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에 SPLA-가랑도 누에르족 거주 지역을 향해 참혹한 보복 공격을 감행하는 등 딩카족과 누에르족 간 갈등이 극대화되었다.

수단군은 이러한 교착 상태를 적극 활용했다. SPLA-나시르와 비밀리에 접촉해 중화기와 군수 물자, 자금을 지원했고 남부 반군들끼리의 교전을 통한 이이제이를 꾀했다.

1992년부터 1994년 사이에 에티오피아 멩기스투 정권의 붕괴되고 SPLA가 분열되는 등 개판이 되자 수단군수단 공군의 폭격과 기갑부대를 앞세워 토리트, 카포에타, 보르 등 SPLA가 점령한 남부의 주요 거점들을 다수 탈환했다.

이에 더해 전투기와 수송기를 개조한 폭격기를 이용해 반군 통제 지역의 민간인 거주지와 병원, 구호물자 지급처 등을 파괴해 반군의 민간인 지원을 막으려 했다.

그리고 북부와 남부 경계의 아랍계 민병대 무라할린을 지원해 SPLA의 보급 기반이 되는 남부의 마을들을 습격하게 했다. 무라할린은 소를 약탈하고 곡물 창고를 약탈했으며 남수단 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키거나 노예로 팔았다.

2.4. 하르툼 평화협정

1991년 나시르 선언을 통해 갈라진 리에크 마차르의 SPLA-나시르는 남수단독립운동이란 뜻의 SSIM으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시르 파벌은 가랑 파벌에 비해 군사적으로 불리했다.

수단 공화국오마르 알바시르 행정부는 이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들은 주력인 가랑 라벌을 고립시키고 이탈 파벌들과 이간질시키는 일명 "내부로부터의 평화" 전략을 사용했다.

나시르 파벌와 북수단의 바시르 행정부는 1996년 정치 헌장에 서명하고 1997년 4월 21일 일명 하르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하르툼 평화협정은 겉으로는 자치권 확대와 독립 투표, 석유 수익 분배 등을 규정하는 등 상당한 자치권과 진보적 조항들이 포함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정부에 투항한 반군 등을 중심으로 남수단 방위군을 창설하고 사령관으로 리에크 마차르가 임명됐다.

리에크의 속셈은 수단을 이용해 가랑을 제거하고 자신이 남수단의 1인자가 되겠다는 권력욕이었다. 이는 한국으로 치면 독립운동가가 독립된 한국의 정권을 잡기 위해 기존 독립운동가들을 몰아내고자 일본 제국과 손을 잡는 행위였다. 물론 당연하지만 북수단은 하르툼 평화협정 따위를 지킬 생각이 전무했다.

북수단의 직접적인 목적은 아비에이 등의 유전 지대의 확보였다. 수단군은 남수단 방위군을 앞세워 가랑 파벌을 유니티 주 등 석유 매장지대에서 몰아내고 통제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곳에 외국 자본이 들어오며 나온 수익으로 북수단은 무기를 구매하여 가랑 파벌 공격에 사용했다.

이에 더해 북수단은 마차르도 신뢰하지 않았기에 다른 누에르족 군벌인 파울리노 마팁을 마차르의 남수단 방위군과 대립하도록 했다.

이제서야 북수단이 자신과의 약속 따위는 깨버리고 자신을 숙청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명예 수단인 마차르는 정부 직책을 사임하고 하르툼을 탈출해 2002년 가랑의 본대로 복귀했다. 가랑한테 총알당하지 않은 것이 용하다.

2.5. 재통합

2002년 1월, 가랑의 SPLA와 마차르의 수단인민방위군(SPDF)이 나이로비 선언을 통해 공식적으로 재통합되었다. 두 파벌의 통합안 1991년 이래 딩카족과 누에르족의 갈등을 대폭 감소시켜 하르툼 입장에서는 분할 통치가 무력화되었음을 의미했고, SPLA는 다시 단일 대오로 하르툼 정부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2.6. 포괄적 평화협정

SPLA의 대단결은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국제사회의 중재와 맞물려 바시르의 북수단을 협상장으로 끌어냈다.

2005년 1월 9일, 케냐 나이바샤에서 SPLM/A와 북수단 사이에 포괄적 평화협정(CPA)이 체결되어 제2차 수단 내전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1] 제1차 수단 내전 당시 고든 무오르타트 마옌 등이 이끌던 독립군인 아냐냐는 멩기스투의 공산주의 도입을 거부했었는데 다른 점.[2] 영어로 주류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