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and Love
Peace and Love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 활동한 티후아나 출신의 프로그레시브 록, 퓨전 재즈, 사이키델릭 록 밴드다. 독창적인 라틴 사운드와 관악기 섹션으로 멕시코 록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밴드들 중 하나다.
1. 형성과 초기 역사
1969년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결성되었다. 티후아나는 미국과의 국경에 위치한 도시로, 미국 록과 라틴 음악의 교차하는 지역적 특성이 밴드의 음악적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초기 멤버
-리카르도 오초아(Ricardo Ochoa): 리드 기타, 보컬, 리더
-라몬 토레스(Ramón Torres): 베이스
-라몬 오초아(Ramón "Bozzo II" Ochoa): 드럼
-펠리페 말도나도(Felipe Maldonado): 오르간, 보컬
-호세 플로레스(José Flores): 색소폰
-에우세비오 코스메(Eusebio Cosme): 트롬본
-살로몬 엘리아스(Salomón Elías): 트럼펫
-엘 카베손(El Cabezón): 퍼커션
밴드는 티후아나의 로컬 무대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1969년 멕시코시티로 진출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티후아나의 다문화적 환경 덕분에 이들은 미국의 Blood, Sweat & Tears[1] Chicago, Santana 같은 밴드의 영향에 멕시코 전통 음악과 라틴 리듬(단손, 맘보 등)을 결합한 독특한[2] 스타일을 구축했다.
밴드명은 히피 문화의 상징인 '평화와 사랑'에서 이름을 따왔고, 반전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음악에 담았다. 이들은 1970년대 초 멕시코의 ‘라 온다 치카나(La Onda Chicana)’, 멕시코계 미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록 운동[3]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2. 음악 스타일
- 재즈 퓨전과 프로그레시브 록, 사이키델릭 록과 라틴 사운드: Santana의 영향을 받아 단손, 맘보, 살사 같은 라틴 리듬을 도입했고, ‘Latin Feeling’ 같은 곡은 이러한 스타일을 대표한다. 지역적 특성과 긴 곡의 배치는 프로그레시브 록 요소를 호함하고, 일부 곡에서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강하게 드러낸다.
- 브라스 섹션과 퍼커션 활용: 색소폰, 트롬본, 트럼펫으로 구성된 브라스 섹션과 ‘El Cabezón’의 퍼커션은 당시 멕시코 밴드 중 독보적인 요소였다.
- 메시지: 평화, 사랑,
마약,자유를 다뤘고, ‘We Got the Power’는 청중의 저항 의식을 자극했다. ‘Mariguana’ 같은 곡은 보수적인 당시 멕시코 주류 사회와 갈등을 빚었다. 영어 가사와 스페인어 가사를 혼합하며 해외 시장을 노렸지만, 어색한 영어 발음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3. 아반다로 참여와 해체
Peace and Love는 1971년 9월 아반다로 록 페스티벌에서 전설적인 공연을 펼쳤다. 페스티벌은 원래 라디오로 생중계되었으나, Peace and Love의 ‘Mariguana’와 군중의 반정부 구호가 방송되자 정부는 즉시 중계를 차단했다. 공연 도중 관객의 외침(“¡Viva México, cabrones!” 등)과 도발적 가사가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고 페스티벌 직후 정부는 주요 신문과 방송을 동원해 아반다로를 공격했다. 관객의 나체 행위, 마약 사용, 그리고 무질서를 강조해 페스티벌을 비도덕적이고 위험한 행사로 묘사했으며, Peace and Love의 ‘Mariguana’는 마약 선동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아반다로를 통해 유명세를 얻은 밴드는 멕시코 록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으며 1971년 영화 ‘Bikinis y Rock’에 출연하여 ‘Sentimiento Latino’를 연주했고, 멕시코시티의 명소인 벨라스 아르테스 궁전(Palacio de Bellas Artes)에서도 공연했다. 이 시기 밴드의 인기는 절정에 달해 주말마다 4~5천 명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였다. 그러나 1971년 말부터 멕시코 내에서 록 콘서트와 페스티벌이 금지되어 공공 장소에서의 공연이 불가능해졌고 라디오와 TV에서 록 음악 송출이 크게 제한되었다. 아반다로 사건 후 정부가 록 뮤지션들을 잠재적 “선동자”로 간주하고 록 음악과 히피 문화를 공식적으로 탄압[4]하기 시작했기 때문. 히피 스타일의 복장과 긴 헤어스타일은 경찰의 표적이 되었으며 밴드의 인기곡 'We Got the Power'와 'Mariguana'는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멤버들은 경찰의 감시와 괴롭힘을 당했고, El Tri, Three Souls in My Mind 등 아반다로에 참가한 다른 밴드와 팬들도 비슷한 불이익을 받았다.록 문화 전반이 반사회 행위로 부정적 낙인이 찍히면서 밴드는 도덕적 타락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정부 조치로 공연을 못하게 되어 경제적 타격을 입자 1972년에 남미 투어(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에콰도르, 페루, 니카라과)를 감행[5]했으나 프로모터의 계약 불이행과 열악한 환경으로 큰 곤란에 처했다. 니카라과의 지진 피해 지역 공연, 낡은 군용 비행기 이용은 멤버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결국 투어 중 리카르도 오초아, 라몬 토레스 등의 멤버가 새로운 프로젝트인 ‘나후아틀(Náhuatl)’을 구상, 밴드를 떠나면서 1973년에 해체된다.
4. 디스코그래피
- Peace and Love(1971, LP): 재즈 퓨전, 라틴 록, 사이키델릭 록의 혼합으로, ‘Latin Feeling’과 ‘We Got the Power’는 라틴 리듬과 강렬한 메탈 사운드가 두드러진다. ‘Mariguana’는 데이비드 필(David Peel)의 커버곡으로, 멕시코 사회의 보수적 태도에 도전했다. 4채널 녹음과 빈약한 프로듀싱으로 음질이 별로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앨범 커버는 더블 게이트폴드 디자인과 포스터를 포함한 야심작이다.
-레이블: Cisne Raff (RF-942), 재발매: Discos y Cintas Denver (1992)
-트랙 리스트 (원본 LP): Latin Feeling, Until, We Got the Power, Against the Devil, Can’t You Tell?, Peace and Love* Peace and Love EP(1972): 리카르도 오초아와 라몬 토레스가 떠난 후 새로운 멤버(에르네스토 에르난데스, 아르투로 라바스티다 등)로 녹음되었다. ‘Tijuana’는 펠리페 말도나도의 작곡으로, 밴드의 지역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레이블: Raff
-트랙 리스트: ‘Latin Feeling’ / ‘We Got the Power’ / ‘Tijuana’ / ‘Me Extraña Que Siendo Araña’* 두 번째 앨범(미완성, 1972): 1972년 두 번째 앨범 녹음을 시작했으나, 내부 갈등과 재정 문제로 불발되었다. EP의 ‘Tijuana’와 ‘Me Extraña Que Siendo Araña’는 이 시기 녹음한 곡들.
-트랙 리스트 (원본 LP): Latin Feeling, Until, We Got the Power, Against the Devil, Can’t You Tell?, Peace and Love* Peace and Love EP(1972): 리카르도 오초아와 라몬 토레스가 떠난 후 새로운 멤버(에르네스토 에르난데스, 아르투로 라바스티다 등)로 녹음되었다. ‘Tijuana’는 펠리페 말도나도의 작곡으로, 밴드의 지역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레이블: Raff
-트랙 리스트: ‘Latin Feeling’ / ‘We Got the Power’ / ‘Tijuana’ / ‘Me Extraña Que Siendo Araña’* 두 번째 앨범(미완성, 1972): 1972년 두 번째 앨범 녹음을 시작했으나, 내부 갈등과 재정 문제로 불발되었다. EP의 ‘Tijuana’와 ‘Me Extraña Que Siendo Araña’는 이 시기 녹음한 곡들.
5. 해체와 재결합
해체 후 펠리페 말도나도와 라몬 오초아는 티후아나의 ‘Champaña a Go-Go’ 같은 클럽에서 새로운 멤버들과 활동을 이어갔다. 리카르도 오초아는 1985년 독립 레이블 Comrock을 설립해 El Tri, 카이파네스(Caifanes) 같은 밴드의 음반을 제작했다.2018년, 밴드는 리카르도 오초아와 라몬 ‘Bozzo II’ 오초아를 중심으로 Peace and Love Forever라는 이름으로 재결합했다. 아반다로 페스티벌 47주년을 기념해 ‘Love Session’ 라이브 맥시 싱글(4곡)을 발표했으며, 러브 아미(Love Army) 같은 동시대 밴드와 공연했다. 2018년 4월 UNAM의 책과 장미 축제(Fiesta del Libro y la Rosa)에서 공연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펠리페 말도나도는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리카르도 오초아는 프로듀서로서 활발히 활동 중.
[1] 1967년 뉴욕에서 결성된 재즈 록 밴드.[2] 당시 멕시코 록 밴드 중 브라스 섹션과 라틴풍 퍼커션을 적극 활용한 밴드가 드물었다.[3] 그런데 밴드 발표곡들의 가사는 대부분 영어이다.[4] 이후 멕시코 록 음악은 암흑기에 들어서며 1980년대 초반까지 주류로 돌아오지 못했다.[5] 당시 이 국가들은 모두 독재 정권이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