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6-29 00:58:49

IBM PCjr


<tableclass=narrow><keepall>
#!style
.narrow td{padding: 5px 0}
IBM PC 제품 역사
PC XT jr AT PS/2


1. 개요2. 역사3. 사양4. 실패
4.1. 뒤떨어지는 가격 대비 성능4.2. 조악한 키보드4.3. 호환성 문제
5. 관련 기종
5.1. Tandy 1000 시리즈5.2. IBM JX
6. 기타

1. 개요

IBM PCjr(Model 4860)는 IBM PC XT의 발매로부터 딱 1년 뒤인 1984년 3월 발매된 모델로, 'jr'은 주니어의 약자이다. 이름 그대로 IBM PC를 가정용 지향으로 코스트 다운한 다운그레이드 버전. IBM PC의 계보이지만 제품 자체의 영향력보다 실패 사례로 IT 역사에 남은 제품이다.

2. 역사

1981년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입하며 만든 IBM PC 5150과 그 후계기인 IBM PC XT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Apple II코모도어 64라는 기존의 강자들이 버티고 있던 가정용 컴퓨터 시장에서는 경쟁기종 대비 비싼 가격과 업무용 지향인 하드웨어 스펙 때문에 다소 반응이 좋지 못했다. 물론 기존의 8비트 기기와는 가격 차이만큼의 성능 차이도 있었지만 당시의 가정용 시장을 기준으로 하면 IBM PC의 성능은 오버스펙에 가까웠다. 빠른 연산 속도와 넉넉한 메모리, MDA의 미려한 고해상도 텍스트 등은 업무용 시장에서는 추가적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IBM의 PC를 선택하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지만 가정용 시장에서는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구매할 만한 요인까지는 되지 못했다. 게다가 표현 색상이 4색에 불과한 CGA와 단조로운 단음만을 연주할 수 있는 PC 스피커만을 갖추고 있던 IBM PC는 가정용 PC에서 마케팅 포인트가 될 만한 그래픽이나 사운드 성능(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게임에 필요한 성능)이 몇 배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애플 II와는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수준이고 코모도어 64보다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이에 IBM은 가정용 및 교육용 PC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기존의 IBM PC를 바탕으로 가격을 낮추고 보다 가정용에 적합한 성능의 새로운 모델을 설계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PCjr. 원래 IBM은 PCjr을 1983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생산이 지연되어 3개월 정도 늦게 발매되었다고 한다. 발매 전에는 'IBM이 애플 II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IBM PC와 호환되는 가정용 PC를 내놓을 것이다'라는 소문과 함께 큰 기대를 모았으나 그 기대는 발매와 함께 무너졌다.

모니터를 제외한 가격은 메모리 64KB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뺀 모델이 $669, 메모리 128KB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1대를 내장한 모델이 모델이 $1,269으로 이전에 나온 IBM PC 5150과 IBM PC XT보다는 저렴했으나, 애플 II나 코모도어 64의 가격보다는 꽤 비쌌다. 게다가 기기 자체가 지닌 단점도 명확했다. 시장에서의 평가는 '가정용으로는 너무 비싸고 업무용으로는 저렴한 만큼 성능이 떨어진다'는 혹평이었다. 오히려 가정용 수요보다 저렴한 가격에 작은 공간을 차지하는 적당한 성능의 PC를 필요로 하는 업무용 수요가 많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3개월만에 가격을 각각 $559, $999로 낮췄으나 이미 시장에서의 평가가 나빴던 탓에 판매량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출시로부터 딱 1년만인 1985년 3월에 IBM은 단종을 결정했다. 단종 이후에도 IBM은 재고 소진을 위해 직원들에게 염가로 판매하고 나서도 1985년 내내 할인 판매해야 했다고 한다.

PCjr가 워낙 처참하게 실패했기 때문에 IBM은 한동안 가정용 PC 시장에 재진출할 엄두를 못내다가,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1990년에서야 IBM PS/1[1]을 내놓으며 겨우 가정용 PC 시장에 다시 진입하였다. IBM 제품치고 괜찮은 가성비를 갖추고 기존 IBM PC와의 완벽한 호환성을 제공하여 PCjr의 실패에서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이미 시장의 주도권은 호환기 제조사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이후였던 터라 결국 이것도 크게 재미를 보지는 못한 모양.

3. 사양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IBM PC를 바탕으로 삼았으나 기존의 IBM PC와 XT의 설계에서 벗어나는 부분도 꽤 많다.
  • CPU
    인텔 8088 4.77MHz. IBM PC 5150, IBM PC XT와 동일하다. 당시 코모도어나 애플 등 가정용 기기는 1MHz 전후로 세팅되어 있었던 데다가 16비트와 8비트 CPU의 성능 차이를 감안하면 위에서도 말했듯이 처리 속도 하나만큼은 동시대 '가정용' PC 중에서는 최강급에 속했다.
  • RAM
    64KB 모델(4860-004)과 128KB 모델(4860-067)이 있었다. 경쟁기인 8비트 기기들이 보통 64KB까지 RAM을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IBM이 여유있게 설계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128KB 모델은 RAM 용량이 큰 만큼 가격이 비쌌고 이미 PC용 소프트웨어 중에 RAM 128KB 이상을 요구하는 게 꽤 있었던 관계로 호환성을 생각하면 여유있는 용량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 메인보드에 기본적으로 64KB DRAM이 납땜되어있고 128KB 모델은 추가로 64KB 메모리 확장 카드가 내부에 장착되어있다.
    비디오 메모리는 별도로 두지 않고 시스템 메모리의 일부를 할당하여 사용했는데[2] 비싼 메모리 가격 때문에 별도의 비디오 메모리를 장착하지 않은 컴퓨터는 이미 당대에 꽤 많았던 관계로 이 부분이 당시에 단점으로 지적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후에 나온 서드파티 추가 장치로 최대 736KB까지 확장이 가능했다.
  • 그래픽스/모니터
    VGA(Video Gate Array)라고 불리는 CGA 상위호환 그래픽스 회로를 메인보드에 내장하고 있었다. IBM PS/2에 내장된 그래픽스 회로인 VGA(Video Graphics Array)와 축약어가 같지만 전혀 다른 물건이고 현재에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PCjr의 그래픽스 회로를 'VGA'로 불러주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 'CGA 플러스'라고 부르거나 더 성공한 호환품의 이름인 'Tandy Graphics Adapter'(TGA)로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적으로 CGA와 호환성을 갖추고 있으며 128KB 모델은 CGA의 약점이었던 색상 표현 능력을 크게 개선하여 320×200 해상도에서 16색, 640×200 해상도에서 4색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가정용 컴퓨터였기 때문에 당대의 다른 가정용 컴퓨터들과 동일하게 RF와 컴포지트 출력을 지원하여 이를 통해 TV로 화면과 음성을 동시에 실어보낼 수 있으면서[3] 전용 컬러 모니터인 IBM 4863를 위한 RGB 출력도 할 수 있었다. 이 4863 모니터는 5153과 달리 IBM 제조가 아닌 미츠비시 AT-1332A 모니터를 베이스로 사운드 출력을 위해 스피커를 추가한 제품이었는데 기존 IBM PC의 CGA에도 연결할 수 있으나 컨버터가 필요했다.
  • 사운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SN76496를 메인보드에 내장하여 당대의 가정용 컴퓨터나 게임 콘솔과 동등한 사운드 기능을 탑재했다. 네모파 3채널과 노이즈 1채널을 동시에 출력할 수 있는 성능으로 세가 SG-1000이나 콜레코비전 등에 사용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SN76489에 외부 오디오 믹서 기능이 추가된 사운드 칩이었다. IBM은 PC 5150부터 IBM PS/2에 이르기까지 고집스럽게 PC 스피커만을 내장하고 별도의 사운드 장치를 넣지 않았는데 거의 유일한 예외가 PCjr였다.[4]
  • 보조 기억 장치
    128KB 모델(4860-067)은 5.25인치 2D(양면 저밀도) 360KB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1대를 기본적으로 내장하고 있다. 드라이브 베이가 1개 뿐이라 공간상 추가적인 드라이브 설치는 불가능하다. 나중에 확장 베이를 추가하여 메모리와 드라이브를 추가할 수 있는 장치도 나오기는 했다.
    전면 드라이브 베이 아래에 외장 슬롯이 2개가 있는데 여기에 PCjr 전용 롬 카트리지를 꽂을 수 있게 되어있어 카트리지로 나온 PCjr 전용 소프트웨어를 구동할 수 있었다. 가정용 지향의 콘셉트에 맞춰서 추가한 기능으로 당연히 이 슬롯용으로 나온 게임 카트리지들도 있다. 카트리지 디자인이 아타리 2600과 유사하다.
    XT에서 이미 폐지되었으나 PCjr는 가정용 지향이라선지 카세트 테이프 인터페이스가 부활하여 외장 데이터 레코더도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기존 PC용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플로피 디스크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어 카세트 테이프용 소프트웨어가 거의 없다보니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없는 64KB 모델에서 BASIC 프로그래밍용으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활용처가 없었다고 한다.
  • 확장 슬롯
    메인보드에 ISA 슬롯이 없는 대신 '사이드카'(Sidecar)라는 이름으로 확장 디바이스를 본체 오른쪽에 장착하는 PCjr 전용 규격이 있다. 이 사이드카를 통해서 외장 드라이브나 모뎀, 확장 메모리 등을 추가할 수 있었다. PCjr용 512KB 메모리 사이드카 사이드카에는 다른 사이드카를 붙여서 복수의 확장 장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독특한 아이디어고 디자인 일관성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았으나 외장장치를 많이 추가할수록 본체 오른쪽으로 사이드카가 줄줄이 붙기 때문에 사이드카 열차(Sidecar train)라는 조롱섞인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다만 일정 개수 이상의 사이드카를 붙이는 경우에는 본체 전원으로는 공급이 부족해서 추가적으로 보조 전원이 필요했다고.
  • 키보드
    62키. IBM PC XT의 83키 배열을 베이스로 우측의 숫자 키패드 부분을 제거하고 4방향 화살표 키와 Fn키가 추가되었다. PgUp/Down을 비롯한 몇몇 키는 이 Fn키와 조합으로 구현되어있어 입력이 몹시 불편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치클릿 키보드'라고 불리는 일종의 멤브레인 키보드가 함께 포함되었는데 이 키보드는 IBM PCjr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였으며 자세한 내용은 별도의 문단으로 후술한다.
  • 운영체제
    PC-DOS 2.1을 번들로 동봉했다. PC-DOS 3.30까지 지원했으나 PC-DOS 3.20부터는 128KB 이상의 메모리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 기타
    • 가정용 PC답게 기존의 거대한 강철 하우징을 사용하여 업무용 분위기가 풀풀 나는 IBM PC 5150과 XT보다 훨씬 작아지고 가정용 PC다운 디자인을 한 플라스틱 하우징을 사용했다. 다만 본체 위에 모니터를 올려놓는 디자인을 고수했기 때문에 하중을 받는 상판과 내부 섀시 일부는 금속제로 되어있다. 사이즈가 작아졌기 때문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베이는 1개로 줄어들었다. 디자인 면에서는 단가 절감으로 인해 만듦새가 조잡하다는 평도 있긴 하지만 가정용에 맞도록 잘 만들어진 컴팩트한 디자인으로 호평하는 경우도 있다.
    • 후면에 라이트펜 인터페이스가 있어서 라이트펜을 사용할 수 있지만 라이트펜을 지원했던 다른 8비트 컴퓨터들과 마찬가지로 라이트펜의 보급률은 미미했다.
    • DMA 컨트롤러가 없어서 키보드, 플로피 디스크를 비롯한 장치간의 통신이 PIO로 작동한다. 참고로 5150과 XT의 DMA 채널은 4개.

4. 실패

4.1. 뒤떨어지는 가격 대비 성능

파일:c64vsPCjr.jpg
It's not how much you pay.
당신이 얼마나 쓰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It's how much you get.
당신이 얼마나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코모도어 64의 광고 문구
Talk about your bastard offspring. IBM’s attempt to build an inexpensive computer for homes and schools was an orphan almost from the start. The infamous “Chiclet” keyboard on the PCjr. was virtually unusable for typing, and the computer couldn’t run much of the software written for its hugely successful parent, the IBM PC.

A price tag nearly twice that of competing home systems from Commodore and Atari didn’t improve the situation. Two years after Junior’s splashy debut, IBM sent him to his room and never let him out again.

당신의 사생아 자식에 대해 이야기해 보세요. IBM은 가정과 학교를 위한 저렴한 컴퓨터를 만들려 했지만, 처음부터 거의 고아가 되었습니다. PCjr의 악명 높은 "치클릿" 키보드는 타이핑에 거의 사용할 수 없었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모회사인 IBM PC에 사용된 소프트웨어 대부분을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코모도어와 아타리의 경쟁 가정용 시스템보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가격도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습니다. 주니어가 화려하게 데뷔한 지 2년 후, IBM은 그를 방에 가두고 다시는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PCWorld - The 25 Worst Tech Products of All Time[5]

PCjr을 발매했던 1984년 당시 북미와 서유럽의 가정용 컴퓨터 시장은 코모도어 64가 뛰어난 가성비와 게임 성능을 바탕으로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시장이었다. 코모도어는 1985년 여러 컴퓨터 잡지들에 위의 사진과 같은 비교 광고를 내 IBM PCjr를 공격했다. 광고 내용은 '같은 가격으로 IBM PCjr은 컴퓨터 본체와 밑에 서술한 조악한 키보드밖에는 살 수 없지만, 코모도어 64는 그뿐 아니라 좋은 품질의 키보드, 모니터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프린터, 소프트웨어들까지 같이 구매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훗날 PCjr의 실패를 언급할 때 가장 자주 나오는 이야기는 보통 후술할 치클릿 키보드 문제지만 사실 제일 큰 원인은 가격이었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IBM은 캠페인을 진행하여 할인과 딜러에 대한 리베이트 제공으로 1984년 연말까지는 일시적으로 판매량이 급증한 시기도 있었으나 할인 캠페인 종료 후에는 다시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발매 전 컴퓨터 잡지를 비롯한 IT 업계에서는 IBM의 가정용 PC(당시에는 '피넛'(Peanut)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렸다)가 애플 IIe와 비슷하거나 저렴한 가격대인 $1,000 이하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내장하고 IBM PC와 호환성을 갖춘 모습으로 나올 것이라는 소문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시장에 나온 PCjr는 예상보다 200달러 이상 비쌌다. PCjr의 가격 정보를 입수하고 PCjr용 소프트웨어 개발 계획을 취소해버린 개발사가 있었을 정도. 기존의 IBM PC XT와 비교하면 싸진 가격으로 IBM PC용 소프트웨어를 돌릴 수 있는 머신임엔 틀림없었으나 PCjr의 경쟁상대는 자사의 PC XT가 아니라 코모도어 64애플 IIe, 그리고 XT 클론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낮은 가격으로 수준급의 게임 성능을 제공했던 코모도어 64와는 끝까지 비교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PCjr의 내장 그래픽 회로인 VGA(Video Gate Array)는 CGA에 비해 성능이 개선되었으나, 문제는 개선된 그래픽 모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28KB의 메모리가 필요했다는 점이었다. IBM PC는 CGA부터 진일보한 비트맵 그래픽[6]을 지원했는데, 문제는 비트맵 그래픽은 충분한 색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당시로서는 필요한 비디오 메모리의 용량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VGA의 성능을 끌어내려면 128KB 모델을 사야했지만, 그러려면 $1,269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을 감수해야 했다. 64KB 모델은 $699로 비교적 저렴했지만 CGA와 똑같은 4컬러만을 표현할 수 있었다. 물론 CGA의 그래픽스는 비트맵 방식으로 코모도어 64나 애플 II 등이 사용한 제약이 많은 그래픽스 방식에 비해 표현이 자유로웠으나 흑+백에 3원색도 모두 표현을 못하는 4컬러로는 사용자의 눈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해상도가 높고 표현이 자유롭지만 발색이 부족한 CGA보다 코모도어 64의 다양한 발색을 선호했다.[7] 똑같이 본체만 있는 깡통 조건이라면 1984년 당시 코모도어 64는 $300~400달러 수준에 세일이 들어가면 $200 이하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669$짜리 컴퓨터의 (게임) 화면이 200$도 안 하는 코모도어 64만도 못하다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사운드를 담당하는 TI SN76496도 동시대 게임 콘솔에서도 널리 쓰인 칩이니만큼 나쁜 선택은 아니었으나 코모도어 64의 SID에 비하면 큰 차이는 아니지만 다소 부족한 감이 있었다.

한편으로 같거나 더 싼 가격에 IBM PC의 소프트웨어 풀과 높은 성능을 원하는 소비자에게는 XT 클론이라는 대안이 있었다. 어느 용도로 보나 굳이 그 가격에 PCjr를 선택해야할 이유가 별로 없었던 셈이다.

4.2. 조악한 키보드

파일:IBM 4860 PCjr 키보드.jpg
PCjr 키보드 리뷰(영어)

PCjr 키보드였던 일명 '치클릿 키보드'[8]는 저질스러운 품질 때문에 발매하자마자 컴퓨터 잡지들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 사실 XT나 AT에 제공되었던 IBM 모델F나 모델M 같은 버클링 스프링 방식 키보드는 현재까지도 중고를 찾는 사람이 있고 재현품이 만들어질 정도로 고품질 키보드였지만 IBM PCjr의 치클릿 키보드는 가격대를 감안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품질의 키보드였다. 심지어는 위에서 언급한 코모도어의 비교 광고에서도 이 키보드를 언급하고 있을 정도고 오늘날에도 PCjr의 실패를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부분이다.

구조 자체는 요즘도 많이 쓰는 멤브레인 키보드 구조와 비슷하지만 각 버튼에 지지대[9]가 없고 고무 돔 위에 직접 플라스틱 재질의 버튼이 높게 얹어져 있어 키를 정확히 위에서 아래로 꾸욱 누르지 않으면 고무 돔이 잘못 꺾이는 바람에 제대로 입력이 인식되지 않곤 했다. 이 때문에 이 키보드로 빠르게 입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안 그래도 키 높이가 높아 깊게 눌러야 하는데 각도도 맞춰 눌러야 했다. 참고로 이 키보드는 신형 또는 보급형 공학용 계산기에 달려 나오는 키보드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계산기는 그나마 키 높이는 낮아 대충 눌러도 인식할 수 있었다. 실제로 원가 절감을 위해 치클릿 키보드를 채용한 컴퓨터는 꽤 있었던 편인데 저렇게 높은 키높이를 채용한 키보드는 거의 없다. 게다가 키캡에 각인도 없어서[10] 보기에도 싸구려스러워 보인다.

PCjr 키보드는 적외선 센서를 사용한 유무선 겸용 키보드였는데, 이 적외선 통신 품질마저 조악했다. PCjr를 개량해 일본, 호주 등지에만 발매된 IBM JX라는 컴퓨터가 있는데 위키피디아 일본판 문서에 따르면 이 적외선 센서는 형광등을 켤 때마다 수신 감도가 떨어졌다고 한다. 이유는 형광등은 가시광선 뿐만 아니라 적외선도 발산하는데 이것이 키보드와 PCjr과의 통신을 방해할 수 있었을 정도로 적외선 통신 시스템이 조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PCjr 유저들은 유선으로 사용했고 무선 기능은 있으나 마나한 기능 취급을 받았다.

결국 IBM은 IBM PCjr 발매 6개월 만에 설계를 개선한 새로운 키보드를 동봉해 판매했다. 키 레이아웃은 그대로 62키를 채용했으나 기존 IBM 스타일을 반영한 멤브레인 키보드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키 입력 인식 문제는 확실하게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적외선 센서는 조악해 유선으로 연결해야 했고 무선 기능은 있으나 마나였다고 한다.

4.3. 호환성 문제

기존의 IBM PC와 호환성을 갖추고 있었으나 호환성이 불완전해 일부 동작하지 않는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하필 사무실의 필수품이었던 Lotus 1-2-3[11]가 호환되지 않아서 PCjr 전용 Lotus 1-2-3를 따로 발매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무엇보다 메모리가 최대 128KB에 불과한데다 비디오 메모리로 공유되는 영역을 빼고 나면 그나마 그 미만이 되어 기존의 IBM PCIBM PC XT용 소프트웨어 중에서 128KB 이상을 상정하고 만든 것은 구동할 수 없게 된다. 위의 Lotus 1-2-3-가 이 케이스다. 일반적으로 CGA 호환 모드(320*200/4색) 사용시 상위 16KB를 비디오 메모리용으로 할당하므로 실제 사용 가능한 메모리는 112KB에 불과하게 된다. 이러면 128KB가 빠듯하게 필요한 소프트웨어부터는 사용이 불가능하게 된다. 외장 메모리를 달아 확장하더라도 비디오 메모리의 위치는 128KB 영역 안에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어서 기존의 메인 메모리 128KB와 확장 메모리 사이에 이 비디오 메모리 영역이 단절을 일으켜 확장 메모리를 128KB보다 큰 프로그램을 적재하기 위한 연속 메모리로 이용할 수 없었으나 나중에 이 문제를 해결한 확장 메모리 제품도 나왔다고 한다.

내장 그래픽 회로는 기본적으로는 CGA와 호환성을 갖추고 있었으나 이쪽도 완전한 상위호환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BIOS 콜을 이용한 소프트웨어는 대개 문제가 없었으나 레지스터 매핑이 CGA와 차이가 있었고 비디오 메모리의 배치나 접근 방식이 메인 메모리의 일부를 비디오 메모리로 공유하는 구조 때문에 별도의 비디오 메모리를 장착한 CGA와는 달라서 때문에 직접적으로 하드웨어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의 경우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저런 문제들도 PCjr가 성공했더라면 제작사들도 PCjr의 사양을 고려한 소프트웨어를 많이 만들었을 것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소프트웨어 제작사들은 기존에 이미 잘 팔리고 있던 PC XT 및 호환기를 기준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므로 이 부분도 점점 PCjr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5. 관련 기종

5.1. Tandy 1000 시리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탠디 코퍼레이션 문서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탠디 코퍼레이션#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if 문서명 = 문서명 != null ? 문서명 : calleeTitle
의 [[탠디 코퍼레이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PCjr 발매로부터 8개월 후인 1984년 11월, 미국의 탠디 코퍼레이션(Tandy Corporation)에서 자사의 자회사 전자 소매점인 래디오섀크(RadioShack)[12]에서 발매한 PCjr 및 IBM PC 호환기이다. 기존에 발매했던 Tandy 2000이 높은 성능에도 불구하고 IBM PC와의 호환성이 불완전하여 실패했던 점을 거울삼아 IBM PC와의 호환성 확보를 염두에 두었다.

최초의 Tandy 1000 시스템은 PCjr 호환기로 개발되었다. RAM은 동일하게 128KB, 그래픽도 PCjr과 동일한 성능인데 메인 메모리의 일부를 비디오 메모리로 점유하는 특성도 동일하다. 기본적으로는 PCjr의 VGA(Video Gate Array)와 호환되지만 간혹 드물게 호환이 안되는 소프트웨어도 있다고 한다. 사운드도 동일하게 SN76496을 내장하여 3채널 네모파+1채널 노이즈를 제공했다. 그러면서도 PCjr에 부족했던 점을 대폭 보완했는데 무엇보다 욕을 먹었던 키보드부터 일반적인 키보드로 바꾸고 기존 PC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호환성도 개선하였다. 또한 롬 카트리지와 사이드카 확장 기능은 과감하게 빼버린 대신 ISA 슬롯 3개를 설치하여 PC용 하드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PC XT 호환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XT 클론의 호환성에 PCjr의 게이밍 성능을 갖춘 기기라고도 할 수 있어서 게임과 업무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가정용 PC의 포지션을 확보할 수 있었다.

가격은 초반에는 $1,200으로 PCjr와 비교해 크게 싸지는 않았고 구성에 따라서는 가격이 더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PCjr 128KB와 동급의 성능+부족했던 문제 대부분 해결로 각광을 받았다. 이어 1986년에는 단가를 낮추고 애플 II처럼 본체-키보드를 일체형으로 설계한 Tandy 1000EX 모델을 $799에 내놓기도 했다. 덕분에 PCjr의 호환기이면서도 시장에서 크게 성공하여 코모도어 64가 대세였던 당시 미국 컴퓨터 시장에서 약 10% 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덕분에 Tandy 그래픽과 사운드를 호환하는 게임도 상당히 많이 나왔다.(약 800 타이틀 이상). PCjr의 그래픽스와 호환되는 Tandy의 그래픽스 회로를 흔히 'Tandy Graphics Adapter'(TGA)[13]로 적는 경우가 많지만 Tandy의 공식 명칭은 아니라고 한다. 따지고보면 Tandy 그래픽과 사운드는 PCjr의 호환품임인데도 불구하고 지원 게임 내 호환 목록 설정에서는 PCjr가 아닌 Tandy로 적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경우 PCjr에서도 대부분 호환된다고 봐도 된다.

Tandy 1000의 성공을 보면 결국 PCjr의 실패 원인은 컨셉트의 방향보다도 가격 문제나 키보드, 호환성 같은 부수적인 요인이 더 컸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탠디 코퍼레이션의 임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완성된 Tandy 1000을 가리켜 'PCjr가 마땅히 되었어야 할 모습'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5.2. IBM JX

1984년 10월에 일본에서 발매된 PCjr의 파생형이다. 모델넘버는 5511. 설계는 일본 IBM에서 했고 호주, 뉴질랜드에 교육용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기본 설계는 PCjr의 것을 가져왔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채용했다는 점과 사이드카 확장 기능이 생략되었다는 점, 일본어 표시를 위해 720×512/흑백 모드가 추가된 등 PCjr과 차이점도 존재한다. 일본, 한국, 대만 등의 사무용 시장을 타게팅하여 제작했던 '멀티스테이션 5550'의 컨셉트를 일부 이어받은 물건인 동시에 의외로 일본 IBM이 최초로 발매한 IBM PC 아키텍처 제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5550은 CPU로 8086을 채용했지만 PC 아키텍처와는 호환성이 없는 독자설계였다.

출시 당시에 많은 비용을 들여서 상당히 화려한 마케팅을 전개하기도 했지만 비싼 가격 및, 고해상도 그래픽 모드를 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세서는 PCjr과 같은 8088 4.77MHz를 탑재하는 바람에 속도가 느려서[14]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 하였고 판매량도 신통찮았다. 다만 이 720 x 512해상도의 독자 그래픽 모드는 1987년에 출시된 PS/2의 일본 현지화 사양인 PS/55의 초기 모델에도 탑재되었다. 하지만 발매 4개월만에 5550의 염가판인 5540이 발매되었고 무엇보다 일본어 처리가 필요한 사무용 시장은 NEC PC-9801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어 처리가 필요한 시장에도 많이 팔리지 않았다. 가격도 싸다고 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취미용 시장에서도 어필하지 못하여 결국 1987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생산 중단 후에 재고를 일본 IBM 창립 50주년 기념 선물로 직원들에게 뿌려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6. 기타

그래픽과 사운드가 향상되었기 때문에 128KB PCjr 지원을 염두에 두고 만든 소프트웨어, 특히 게임의 경우 기존 PC용으로 나온 것보다 월등한 품질을 보여줬다. 적어도 동시대 가정용 PC나 게임 콘솔의 평균 수준은 충분히 따라가는 품질. PCjr용 게임 동영상 (유튜브) 다만 PCjr의 상업적 실패로 지원 소프트웨어가 많지 않은 것이 아쉬운 점이다. 이 점은 나중에 호환기인 Tandy 1000의 성공으로 이쪽을 지원하는 게임이 많아져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는 PCjr가 정식으로 들어온 바가 없다. 당시에도 한국 IBM이 영업을 하고 있긴 했으나 주로 B2B가 주업무였고 B2C로 PC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꽤 지나서 PS/2 시절쯤 가서다. 당시 한국 PC 시장의 주류는 주로 삼성전자, 금성사 같은 대기업이 생산하는 XT 클론 아니면 대만산 부품을 수입해 세운상가 등지에서 조립생산한 XT 클론 둘 중 하나였는데 그나마도 업무용이나 학술용 용도로나 팔렸고 1989년 교육용 PC 사업 시행 이전의 일반 사용자 시장은 8비트 PC인 Apple IIMSX가 주류였다. 그렇다보니 실시간으로 PCjr을 직접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한국 유저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극소수지만 국내 컴퓨터 잡지에도 PCjr의 상업적 실패에 대한 내용은 여러 번 기사로 실렸기 때문에 나이가 좀 있는 한국 컴덕들이라면 들어서는 알고 있는 경우가 꽤 많다.

하드웨어가 독특하다보니 에뮬레이터에서도 구현이 완벽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86Box나 MartyPC 등 지원하는 에뮬레이터가 종종 있고 DOSBox도 완전하진 않지만 PCjr 에뮬레이션을 지원한다. 실기와 비슷한 설정으로 돌려보고 싶다면 86Box 쪽이 좋다.
[1] 업무용 라인이었던 IBM PS/2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는 암시를 주는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폐쇄 아키텍처였던 PS/2와 달리 호환기 시장의 표준 설계를 사용했다고 한다. 가정용 브랜드는 1994년 이후에는 'IBM Aptiva'로 브랜드를 개편한다.[2] 최대 96KB까지 할당 가능했다고 하는데 CGA 호환모드인 320×200/4색 모드가 16KB, 최대 색상인 320×200/16색 모드가 32KB를 필요로 했으므로 그 이상을 할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3] 당시에는 컬러 디스플레이의 가격이 꽤 비쌌고 가정용 컴퓨터의 해상도도 별로 높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 콘솔처럼 TV를 모니터 대용으로 쓸 수 있도록 설계한 PC가 많았다. 물론 전용 모니터에 비해서는 화질이 떨어졌다.[4] 나중에 PCjr의 뒤를 잇는 가정용 라인인 IBM PS/1 부터는 사운드 블래스터 호환 카드를 탑재하기는 했다.[5] 전체 25위 중 13위로 선정되었다.[6] 픽셀 단위로 색상을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는 그래픽스 방식. 현재는 당연히 비트맵 방식을 사용하지만 초기 8비트 컴퓨터들은 비디오 메모리 절약을 위해 표현에 제약은 있지만 메모리 사용량이 줄어드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그래픽을 표시했다.[7] CGA도 세미그래픽스 모드(Semigraphics) 모드를 사용하면 160×200 해상도에서 16컬러를 사용할 수 있지만 표현에 제약이 많고 너무 해상도가 낮아 거의 쓰이지 않았다.[8] 이 키보드의 정식 명칭은 아니고 정확히는 이런 부류의 키보드 카테고리를 가리키는 별명이다. 키캡이 치클릿(Chiclets) 껌처럼 생겼다고 붙은 별명. PCjr 이전에도 저가형 설계에 많이 사용되었다.[9] 키 캡 아래에 있는 고무 돔 압착용 기둥 혹은 플런저 같은 것들과 거기에 맞춘 홈.[10] 키캡 윗쪽 키보드 하우징에 적혀 있다.[11]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이 부상하기 전 가장 많이 쓰였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이다.[12] 1921년에 설립한 전자 소매점 회사. 원래 가죽 제품 회사였던 탠디 코퍼레이션이 전자 제품 사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1963년에 인수했으며, 1975년에 전자 제품 사업 부문을 분할해 독립했다. Tandy 1000 시리즈 이후에는 전자 제품 유통 사업만 하다가 탠디 코퍼레이션이 아예 라디오셰크 코퍼레이션으로 이름을 바꿨고, 지금은 파산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진 상태.[13] 'Adapter'로 쓰지만 카드형태로 제공하지는 않고 메인보드에 내장하는 형태다.[14] 멀티스테이션 5550을 팀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CPU 성능을 억제한 것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