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19:59:53

90년대 서부-동부 힙합 전쟁


1. 개요2. 발단 : 서부 힙합의 성장과 동부의 견제3. 전개 : 1995년 소스 어워즈4. 위기 : 데스 로우의 2Pac 영입5. 절정 : 투팍의 광역 디스, 그리고 두 전설의 영면6. 결말 : 진영 간 갈등 종식7. 투팍 살해 용의자의 증언 및 체포8. 기타9. 관련 문서

1. 개요

새롭게 치고 올라오던 LA서부 진영과 힙합의 본거지 뉴욕을 필두로 하는 동부 진영 사이의 갈등 및 디스전으로 1990년대 중엽 미국에서 일어났다.

2. 발단 : 서부 힙합의 성장과 동부의 견제

1988년에 N.W.A가 정규 1집 Straight Outta Compton을 발표해 미국 전역을 강타하는 대박을 터트리며 서부 힙합의 위상이 커진 반면에, 그 N.W.A의 업적을 유일하게 인정하지 않은 지역이 뉴욕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계속 해오던 힙합과 완전히 다른 힙합 음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오히려 N.W.A가 뉴욕에서 공연할 때 야유를 퍼부었다고 한다.

이는 어떻게 보면 뉴욕의 자격지심이기도 했는데, N.W.A가 스타트를 끊고 사이프러스 힐이나 스눕 독을 비롯한 신흥 강자들이 90년대 초반에 서부에서 우후죽순 나오는 동안 동부 진영에서는 이에 대등하게 대적할 만한 아티스트나 앨범이 나오지 못했다. 심지어 90년대 초반이면 동부에서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우탱 클랜 등이 등장한 시기인데, 이들이 발표한 앨범들도 그 때나 지금이나 그 퀄리티나 위상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처음 나왔을 당시에도 N.W.A만큼의 상업적 초대박을 거두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발표된 곡 중 하나가 Tim Dog라는 브롱크스 출신 래퍼가 1991년에 발표한 Fuck Compton이다. N.W.A 전원을 직접 겨냥한 이 곡은 Tim Dog의 이름을 동부에서 알리는 데 나름 공헌했으며, 그로 인해 Tim Dog이 LA에 공연을 갔을 때 컴턴 출신 갱들에게 살해당할 위기도 있었을 정도다.[1] 디스 대상인 N.W.A의 멤버, 닥터 드레와 이지-E도 서로를 물어뜯는 와중에도[2] Tim Dog에게 한 번씩 반격을 했으며, 어떻게 보면 서부-동부 힙합 갈등은 이 때부터 그 징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3. 전개 : 1995년 소스 어워즈

힙합 씬 내부에서 거의 롤링 스톤즈 매거진 급의 위상을 가진 소스 매거진(The Source Magazine)에서는 매년마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상을 주는 소스 어워즈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 시상식은 래퍼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그래미나 오스카 시상식 급으로 여겨지고 있다.

문제의 1995년 소스 어워즈 개최 무렵에는 닥터 드레, 스눕 독을 필두로 엄청난 위상을 자랑하던 캘리포니아의 데스 로우 레코즈(Death Row Records)와 서부 힙합이 맹활약할 무렵 위세를 떨치지 못하던 동부 힙합의 위상을 다시 끌어올린 신흥 레이블 배드 보이 레코즈(Bad Boy Records)가 주인공이었다.

시상식은 8월 3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 건물에서 열렸으며, 각 지역의 자존심을 걸고 수많은 래퍼들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리고 동부의 관객들은 서부에서 온 데스 로우 레코즈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야유를 보냈다. 당시 시상식에 있었던 나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시상식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다들 목숨을 걸다시피했기 때문에 시상식장 내에 긴장감이 감돌았으며 뭔가 큰 일 하나 터질 것만 같았다고 한다(출처 - The Defiant One[3] 3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데스 로우 레코즈의 수상 소감 연설 때 레이블의 수장 슈그 나이트(Suge Knight)가 이 문서에서 설명할 전쟁의 도화선이 된 발언을 쏟아낸다.

"투팍 샤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말해두지. 우리는 그의 편이야. 그리고 하나 더.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스타가 되고 싶은, 모든 뮤직비디오, 음반에 나오려고 하는 프로듀서에 대한 걱정은 하기 싫은 아티스트들, 데스 로우로 와!" - 슈그 나이트

이 시기 투팍은 총격 사건으로 인해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범인으로 퍼프대디와 비기를 의심하고 있었다. 슈그 나이트의 발언은 사실상 배드 보이 레코즈의 사장 퍼프 대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발언이었으며, 더 나아가 배드 보이 레코즈의 음악적 업적 및 위상을 깔아뭉개는 발언이었다. 당연히 동부에서 개최된 시상식인지라 엄청난 야유가 쏟아져 나왔고[4] 그 때까지만 해도 서부 힙합을 인정하고 호의를 보내던 동부 래퍼들 전원이 이 발언을 기점으로 서부 진영을 백안시하게 되면서 자칫 잘못하면 서로 총격전까지 갈 수도 있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상식에서 올해의 프로듀서 상으로 닥터 드레가 수상하게 되었는데, 사회자부터 "어이쿠, 말이 좀 나올 수 있겠네요."라며 반응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고,[5] 그 말대로 닥터 드레가 스테이지에 올라서자 반응이 빈말로도 좋다고 볼 수 없었는데, 이걸 보고 참다 못해 빡친 스눕 독이 돌연 마이크를 빼앗아 2차 도발을 감행했다.

"동부는 닥터 드레랑 스눕 독이 마음에 안 들어?! 동부는 닥터 드레랑 스눕 독이 마음에 안 들어?! 데스 로우도? 다들 우리가 싫어? 우리가 아니꼬와?! 그래 확실히 말해두지, 우린 X도 신경 안 써! 여긴 동부니까, 우리도 안다고!" - 스눕 독[6]

사실상 이 순간 이후로 서부 힙합과 동부 힙합 간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4. 위기 : 데스 로우의 2Pac 영입

수많은 논란을 야기시킨 소스 어워즈 시상식이 마무리된 지 2개월 후, 데스 로우는 그 당시 기준 작년에 교도소에 들어간 래퍼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앨범을 세 장 내는 것을 조건으로 그의 출소에 필요한 거액의 보석금을 대신 지불하고 영입했는데, 그 래퍼가 바로 2Pac이었다.

이 당시 투팍은 작년 선거공판 전에 방문했던 배드 보이 레코즈 사무실 앞에서 강도한테 총격을 맞고 4만불에 달하는 귀금속을 도난당했는데, 그 사건의 원흉으로 노토리어스 B.I.G.를 비롯한 배드 보이 레코즈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는데 하필 수감 생활 중에 새로 나온 비기의 신곡 제목이 Who Shot Ya?였던 탓에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 터라 데스 로우 입장에서는 투팍만큼 동부 진영과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래퍼도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데스 로우의 예상대로, 투팍은 데스 로우에 들어오자마자 미친 듯이 녹음실에서 작업물들을 수백 개 만들었고...

5. 절정 : 투팍의 광역 디스, 그리고 두 전설의 영면

한 해를 넘긴 1996년, 투팍의 정규 4집 앨범 All Eyez on Me가 발매되었고, 이 앨범 역시 미국 전역을 강타하며 대박을 쳤다. 그러나 이 무렵의 투팍은 3집까지의 모습이 상당 부분 희석되고 오히려 분노에 가득찬 갱스터가 되어 있었으며[7] 이후 배드 보이 레코즈를 정면으로 저격하는 디스곡, Hit 'Em Up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투팍은 Hit 'Em Up에서 배드 보이뿐만 아니라 맙 딥도 저격했으며, 이 곡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나스, 제이지를 포함한 모든 동부 래퍼들을 미친듯이 까는 막나가는 행보를 보인다.[8] 심지어 투팍은 그냥 랩으로 비난한 것도 아니고 아예 동부 래퍼들의 가족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용감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비기, 맙 딥을 비롯한 수많은 래퍼들이 반격을 하기에 이르렀지만, 슈그 나이트는 아랑곳 하지 않고 투팍이 더 날뛸 수 있도록 방치하였다.[9]

그렇게 브레이크 없이 서로를 향해 액셀을 밟고 달려가던 서부 진영과 동부 진영 간 갈등은, 96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마이크 타이슨 선수의 복싱 경기가 열린 날에야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 날 경기를 구경했던 투팍이 총격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6개월을 넘긴 1997년, 투팍의 주요 디스 대상이었던 노토리어스 B.I.G.가 진영 간 전쟁을 끝낼 것을 제안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넘어갔는데 그 곳에서 비기도 총격으로 사망하게 된다.

6. 결말 : 진영 간 갈등 종식

두 명의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을 떠나 보내고서야, 힙합 아티스트들은 그들이 서로 죽일 각오로 싸우던 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상호 간 교류를 통해 진영 간 갈등을 천천히 봉합해나갔다. 사이프러스 힐이 우탱 클랜과 작업을 하고, JAY-Z 또한 닥터 드레를 비롯한 서부 힙합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했다.

덧붙여 디스전의 방향도 서로 죽일 기세로 싸우던 양상에서 하나의 게임으로 강도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선 넘는 도발을 감행하면 사실상 씬에서 매장당하게 되는 문화가 형성되기도 했고.[10]

7. 투팍 살해 용의자의 증언 및 체포

투팍 살인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키피 D(Keefe D)는 공개석상에서 자신이 투팍을 살해한 데에는 퍼프 대디의 사주가 있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결국 키피 D는 2023년 경찰에 체포되었다. 자세한 것은 투팍 샤커 살인 사건 문서 참조.

8. 기타

  • 힙합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한 번 이상은 거론되는 사건인데, 그만큼 이 사건이 힙합 관련 이슈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고, 규모도 컸으며 중대성에 있어서는 말하는 게 입 아픈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잊을 만하면 한 편씩 거의 주기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힙합 역사 또는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아티스트의 이력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도 한 번씩은 반드시 등장한다.[11]

9. 관련 문서


[1] 이 당시 Tim Dog과 친분이 있었던 아이스-T가 그를 보호했으며, Tim Dog 본인도 LA에서는 Fuck Compton을 부르지 않았다.[2] 당시 N.W.A의 매니저였던 제리 헬러의 횡령에 빡친 닥터 드레가 루슬리스 레코즈를 나가고 N.W.A를 떠났는데 계약 문제 건으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그래서 The Chronic에서 닥터 드레가 먼저 디스를 때렸고, Eazy-E도 맞불을 놓았으며 데스 로우 VS 루슬리스로 서부 진영 내부에서도 레이블 간 전쟁이 발생하고 있었다.[3] HBO에서 제작한 인터스코프 레코드 관련 4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어 제목 '비트의 승부사들'. 넷플릭스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4] The Defiant One 3화에서 퍼프 대디가 당시를 회상하며 분을 삭이는 모습도 나왔고, 스눕 독도 이 때는 슈그와 한 식구였으니 박수 치며 호응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당시 슈그의 발언이 희대의 개소리였다 평했다.[5] 사실 당시 후보들을 보면 누가 봐도 닥터드레가 받으면 역반응이 나올 것이라는걸 확신할 수 있을 목록이었는데 닥터드레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이 현재 기준으로도 동부힙합 레전드 프로듀서로 평가받는 DJ 프리미어, 이지 모 비, 피트 록이다.[6] 스눕 독 본인도 이 순간을 후회하며, 공격에는 공격으로도 맞설 수 있으나 사랑이나 부탁으로도 대응 가능하다 얘기했으며, 나스 또한 스눕 독이 그 당시에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했다.[7] 투팍의 데뷔를 도와준 디지털 언더그라운드의 리더 Shock-G도 이를 보고 이건 내가 알던 투팍이 아니라며 아쉬워했다. 출처 - 힙합 에볼루션 시즌3 1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8] 그래서 지금도 Hit 'Em Up은 서부 힙합 팬들에게는 전설로 남아있지만, 동부 래퍼들 (특히 노토리어스 B.I.G.)의 팬들은 과대평가라고 까기도 한다.[9] 당시 데스 로우를 지원하고 있었던 인터스코프 측에서도 슈그를 제지하려 했으나 슈그는 이를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10] 그 예시가 50센트를 지원한 에미넴을 디스한 자 룰. 당시 미성년자였던 에미넴의 딸을 건드린 것으로 인해 욕을 많이 먹었다. 다만 디스전 이후에도 Wonderful, New York 등의 히트곡을 내놓던 자 룰이 퇴물이 된 이유는 디스전과 관련 없는 2005년의 회사 압수수색 때문이었다.[11] 이 문서의 출처가 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힙합 에볼루션'과 '비트의 승부사들'이 각각 힙합의 역사, 인터스코프 레코드의 역사를 주제로 하는데 힙합 에볼루션이야 당연히 언급하는 게 맞고 데스 로우를 지원하고 있던 이상 인터스코프 레코드도 이 사건과 뗄래야 뗄 수가 없는 입장이니 마찬가지로 비트의 승부사들에서도 언급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