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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샴락 | 스즈키 미노루 | 바스 루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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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키 마사카츠 | 콘도 유키 | 후나키 마사카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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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 바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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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네임 | 후나키 마사하루 후나키 마사카츠 ([ruby(船木 誠勝, ruby=ふな き まさかつ)])[1] |
본명 | [ruby(船木 優治, ruby=ふな き まさはる)] 후나키 마사하루 |
생년월일 | 1969. 3. 13 ([age(1969-03-13)]세) |
신장 | 181cm |
체중 | 88kg |
혈액형 | O형 |
출생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아오모리현 히라카와시[2] |
성장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 |
학력 | 히로사키대학 교육학부 부속중학교 (졸업) |
종합격투기 전적 | 55전 40승 13패 2무 |
유형 | 슈터(U계) |
시그니쳐 무브 | 하리테 장저([ruby(掌底, ruby=しょうてい)])[3] 각종 킥 아비세게리([ruby(浴, ruby=あ)]びせ[ruby(蹴, ruby=げ)]り)[4] PK 슬리퍼 홀드 |
피니쉬 무브 | 힐 훅 하이킥 하이브리드 블래스터[5] |
별명[6] | 되살아난 사무라이 ([ruby(甦, ruby=よみがえ)]ったサムライ) 하이브리드 레슬러 (ハイブリッド・レスラー) 라스트 사무라이 (ラストサムライ) |
테마곡 | Danger Zone - Kenny Loggins[7] (1986 - 1989) TO-U - 스즈키 오사무[8] (1989.5 - 1990.4, 2010.3 - 2013.6) Julie's Final (1990.4 - 1991)[9] ONE (2013.7 - 2015.6)[10] RED ZONE - 이시다 오사무[11] (1993.9 - 2000.12, 2007.12 - 2010.2, 2016 - ) |
데뷔 | (영 라이온) 1985년 3월 3일 (15세) 이바라키현 키타이바라키시민체육관 신일본 빅 파이트 시리즈 제 1탄 3일차 vs 고토 타츠토시 (종합격투기) 1993년 9월 21일 (24세) 치바현 우라야스시 도쿄 베이 NK 홀[12] 판크라스 YES, WE ARE HYBRID WRESTLERS 1 vs 켄 샴락 |
SNS | |
1. 개요
일본의 프리랜서 프로레슬러, 종합격투기 선수.2. 커리어
2.1. 초창기
1969년 3월 13일에 아오모리현 오노에마치에서 태어난 후나키 마사하루는 히로사키대학 교육학부 부속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한번 불합격했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합격하면서 입문했다.1985년 3월 3일, 영 라이온배에 출전하면서 키타이바라키시 대회에서 고토 타츠토시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는데 이 때가 불과 15세 11개월로 신일본 역대 최연소 데뷔를 기록하며 데뷔하였다. 데뷔 직후 영 라이온배에 계속 참가했으나 0승 승점 0점으로 신인의 한계를 보여줘야 했다.
1986년 1월에 제 1차 UWF가 붕괴된 후 신일본으로 돌아와 있던 후지와라 요시아키의 스파링 파트너를 맡으며 실전 기술들을 익혀나가기 시작하여 이걸 바탕으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1987년 2월 하시모토 신야에게 아깝게 패배하긴 했으나 영 라이온배에서 더욱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8월 19일 서머 파이트 인 국기관에서 IWGP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전에 참여했으나 1회전에서 코바야시 쿠니아키의 피셔맨 수플렉스를 맞고 패배했다.
1988년 4월 유럽 원정을 떠나게 됐는데, 떠나기 직전 타카다 노부히코와 야마자키 카즈오가 UWF를 부활시킨다는 의향을 전달했고 후나키는 그 시점에서 신생 UWF에 참가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13] 어찌 되었건 4월에서 12월까지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있으면서 수행을 해 나갔고, 1989년 1월부터는 친한 선배 야마다 케이이치와 함께 영국에서 있었다.
제 2차 UWF가 부활하자 해외 원정 도중이었던 1989년 4월 10일에 주간 프로레스를 통하여 UWF 이적을 선언했다. 후나키를 잡고 싶었던 신일본은 재계약금 1천만엔에 후지나미 타츠미 & 초슈 리키와 비슷한 급의 시합 개런티까지 내걸고 후나키를 잡으려 했으나 후나키의 의지는 확고했고, 결국 안토니오 이노키와 마에다 아키라, 같은 시기에 UWF로 이적을 희망한 친우 스즈키 미노루와 후나키의 4자 대담을 통해 그럭저럭 원만한 형태로 이적을 달성했다.
2.2. 종합격투기
이름 | 후나키 마사카츠 ([ruby(船木, ruby=ふなき)] [ruby(誠勝, ruby=まさかつ)]) |
{{{#white [[종합격투기|종합격투기]] 전적}}} | 55전 40승 13패 2무 |
승 | 5KO, 34SUB, 1판정 |
패 | 3KO, 8SUB, 2판정 |
체격 | 183cm / 95kg |
링네임 | 되살아난 사무라이 ([ruby(甦, ruby=よみがえ)]ったサムライ) 하이브리드 레슬러 (ハイブリッド・レスラー) |
주요 타이틀 | Pancrase 4대 무제한급 챔피언 |
Pancrase 6대 무제한급 챔피언 |
일본 종합격투기계의 전설이자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스즈키 미노루와 함께 일본 3대 종합격투기 단체 중 하나인 판크라스(Pancrase)를 공동으로 설립했으며 캐치레슬링을 베이스로 해 초창기 종합격투기 강자들과의 대결에서도 꽤 선전했다.
힉슨 그레이시 전을 앞두고 힉슨에게 패배하면 은퇴하겠다라는 발언을 하였고, 힉슨에게 패배하면서 2000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에 해설과 배우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2005년에 마에다 아키라가 빅 마우스 라우드의 슈퍼바이저로 취임하면서 후나키에게 UWF를 계속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하였고, 이에 마음이 흔들린 후나키는 2005년 9월 11일에 빅 마우스 라우드 탄생 첫 대회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복귀를 결심했으나 마에다와 빅 마우스 라우드의 소유주 우와이 후미히코와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복귀를 단념했다.
하지만 한번 불이 붙자 쉽게 꺼지지 않았고, 시바타 카츠요리와의 스파링, 그리고 동갑인 사쿠라바 카즈시와 타무라 키요시가 여전히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복귀를 결심하여 2007년 3월 종합격투기에서 활약할 수 있는 프로레슬러를 목표로 팀 ARMS를 시바타 카츠요리와 함께 결성하여 코치에 취임한 후, 본인도 2007년 12월 31일 K-1 PREMIUM 2007 Dynamite!!의 메인 이벤트에서 사쿠라바 카즈시와 대결하여 치킨 윙 암락으로 패배하며 복귀했다.
2008년 5월 29일 DREAM의 DREAM.2 미들급에 출장해 그랑프리 1차전에서 타무라 키요시에게 TKO패를 당했고, 9월 23일 DREAM.6에서 재은퇴를 걸고 옛 제자 미노와맨을 상대하여 힐 홀드로 복귀 후 첫 승을 거뒀으나 이듬해 프로레슬러로 복귀하면서 활동을 쉬게 되었다.
2012년 12월 6일 볼크 한의 은퇴 매치로 치러진 Rings - The Outsider 23에서 볼크 한의 은퇴전 상대로 일시 복귀하여 1라운드 15분 무승부를 기록한 이후에는 더이상 격투기 링에 오르지는 않고 있다.
2.3. 프로레슬러
2009년 8월부터 한때 본업이었던 프로레슬러로 돌아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하여 활동하였다. 2013년 시라이시 노부오 사장의 횡포로 인해 제 2차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터지고 무토 케이지가 WRESTLE-1을 세우자 전일본을 퇴단하고 WRESTLE-1에 입단하였으며, 2015년 6월 WRESTLE-1과의 계약이 만료되며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이후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오다 2020년을 기점으로 프로레슬링 NOAH에 준레귤러급 선수로 본격 참전하면서 활발한 프로레슬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성 혹은 이름의 첫 이니셜이 'M'으로 이루어진 선수들[14]로 구성된 M's alliance 소속으로 활동하던 도중, 2022년 1월 22일 HIGHER GROUND 2022에서 금강의 리더인 권왕에게 도전한 내셔널 왕자 챔피언십전에서 4분여만에 한순간 욱여넣은 슬리퍼 홀드로 권왕을 초살시켜 타이틀을 따낸 직후 "권왕 선수, 저와 (팀을) 맺읍시다. 오늘부터, 오늘부터 저도, 금강에 들어갑니다!"라는 말로 권왕에게 굉장히 갑작스러운 입단 신청을 한다.
세컨드로 있다가 이 날벼락에 경악한 M's alliance 멤버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타나카 마사토가 링 위로 뛰어올라오자 후나키는 아직 건강한 동안 둘과도 붙어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마루후지와 타나카는 납득은 안 간다는 표정이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충돌 없이 물러났고, 그사이 링 위에 올라온 금강의 멤버 모두와 악수를 한 다음 다함께 포즈를 취하며 NOAH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군단 이적을 달성했다.
이후로도 금강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금강이 해체된 이후에는 다시 프리랜서 상태로 여러 단체에 참전하고 있다.
3. 종합격투기 전적
- 주요 승: 야나기사와 류시(2), 세스 베젬스, 타카하시 요시키, 바스 루텐, 버논 화이트(3), 후케 타카쿠(2), 그레고리 스미트(2), 스캇"뱀뱀"설리번, 켄 샴락, 스즈키 미노루, 토드 비오르네툰, 제이슨 델루시아(2), 프랭크 샴락, 알렉스 쿡, 레온 딕, 가이 메츠거(2), 이나가키 카츠오미(2), 아우구스트 스미슬, 이토 타카후미, 콘도 유키(2), 세미 슐트(2), 폴 래즌비, 웨스 개서웨이, 시부야 오사미(2), 제이슨 고시, 존 렌켄, 토니 페타라, 미노와 이쿠히사
- 주요 패: 켄 샴락(2), 제이슨 델루시아, 야마다 마나부, 프랭크 샴락, 바스 루텐, 콘도 유키, 가이 메츠거, 세미 슐트, 쿠니오쿠 키우마, 힉슨 그레이시, 사쿠라바 카즈시, 타무라 키요시
- 무승부: 에베네제르 폰테스 브라가, 볼크 한
4. 출연 작품
4.1. 영화
<rowcolor=#fff>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관객수 | 흥행 |
2004 | 역도산 | 이무라 |
5. 여담
- 중졸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신일본 입문에 성공하여 데뷔하였으며, 이 때 불과 15세 11개월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넘어 역대 최연소 기록이었다.[15] 역대 최연소 기록은 이후 나카지마 카츠히코가 15세 9개월로 깼지만 신일본 내에서는 아직도 안 깨지고 있다.
- 진중한 얼굴의 미남으로, 세월이 흘러서도 역변은 일어나지 않고 미중년, 미노년 테크를 밟고 있는데다 항상 철저한 몸관리까지 더해져서 배우로도 활약하고 있다.
- Pancrase의 공동 설립자이자 프로레슬러인 스즈키 미노루와 상당한 절친이였지만, 종합격투기 룰의 수용 과정에서 충돌이 생겨 관계가 소원해졌다.
- 한일 양국 합작으로 기획 제작된 한국 출신의 전설적인 일본 프로레슬러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역도산에 출현했다.
- 신일본 프로레슬링 입단을 15세에 워낙 일찍 하기도 했고, 의외로 장난기가 많은 성격이여서 친한 선배 수신 선더 라이거가 한 것으로 되어있는 대부분의 장난의 실제 실행범이었다고 한다.[16]
- 젊었을 적에 가장 즐겨 했던 장난은 사람의 목줄기 양쪽의 경동맥을 재빨리 눌러 순간적으로 잠깐 기절시키는 것으로, 라이거 왈 달인 수준으로 빠르고 정확했다고 한다. 영국에 무사수행을 갔을 때, 이걸 보고 현지 프로모터가 '오리엔탈 매직'이라고 엄청 좋아해서 링 중앙에 의자 하나 놓고 당해볼 사람을 구했는데, 관객들도 한잔씩 마시고 텐션이 올라있는 상태라 당해보겠다고 막 올라와서 진짜로 한명씩 차례로 시켜줬다고...
- 일찍이 외국인 스튜어디스와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6세 연하의 무대 배우 키야마 이즈미(喜山いづみ)와 무대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1999년에 재혼했다. 슬하에 외아들 후나키 라이안([ruby(船木, ruby=ふな き)]ライアン,2004년생)[17]을 두고 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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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급 | |||||||
권왕 | 소야 마나부 | 후나키 마사카츠 | |||||
주니어 헤비급 | |||||||
콘도 슈지 | 오오하라 하지메 | ||||||
{{{#!folding 【 전 멤버 】 | 코토우게 아츠시 | 이나무라 요시키 | 마사 키타미야 | 패왕 | |||
아레하 | 타다스케 | 나카지마 카츠히코 | 인왕 |
| ||||
2008 | → | 2009 | → | 2010 |
텐코지 코지마 사토시 & 텐잔 히로요시 | → | 신일본 프로레슬링 동기 태그 무토 케이지 & 후나키 마사카츠 | → | VOODOO-MURDERS KENSO & KO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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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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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슈 리키 (1988,1989) | → | 후나키 마사카츠 (1990) | → | 쵸노 마사히로 (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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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티모 드래곤 (1992) | → | 후나키 마사카츠 (1993) | → | 코바시 켄타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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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 마츠다 점보 츠루타 마사 사이토 요시노사토 재키 사토 (1999) | → | 코바야시 쿠니아키 후나키 마사카츠 (2000) | → | 키도 오사무 모모타 요시히로 (2001) |
[1] 1989년 9월 7일 UWF FIGHTING BASE대회부터 변경한 링네임. 이후로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2] 원 출생지는 미나미츠가루군(南津軽郡) 오노에마치(尾上町)이나, 2006년 1월 1일 오노에 정, 히라카 정, 이카리가세키 촌이 합병되어 히라카와시가 되었다.[3] 손바닥의 가장 두툼한 부분인 장저 부분으로 상대 턱을 올려치는 기술. 일반적인 하리테(원래 하리테는 스모의 기술인데 프로레슬링에서는 그냥 뺨 때리기에 가깝다.)와의 차이점은 옆으로 후려치는게 아니라 위로 올려친다는 것. 일찍이 친한 선배 수신 선더 라이거와 호리베 세이지의 골법을 수련한 이후 쭉 사용해 왔다.[4] 앞으로 낙법하듯 구르며 왼발 뒷꿈치로 상대 머리를 덮치는 기술로 '쏟아붓는 발차기'라는 의미.[5] 해머락 닐링 리버스 파일드라이버. 2013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기술로, 쌀포대를 들듯 상대를 오른 어깨에 들쳐멘 후 텐잔 히로요시의 TTD와 동일한 자세로 찍는다. 격투가로서의 후나키 마사카츠가 아닌 프로레슬러로서의 후나키 마사카츠를 보여주는 프로레슬링 기술다운 피니셔이다.[6] 보통 주로 쓰이는 별명과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된 별명이 분명한 다른 프로레슬러들과는 다르게, 후나키는 이 세 개의 별명 모두 후나키를 상징하는 별명으로 쓰이고 있다. 라스트 사무라이가 비교적 최근에 붙여진 별명으로, 보통 앞의 두 개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7] 영화 탑건의 OST. 신일본 시절에 사용했다.[8] 신 UWF시절에 사용했다가 팔 골절로 장기 결장 후 복귀전에서 Julie's Final로 테마곡을 바꾸며 사용을 중지했으나, 프로레슬링 복귀 이후 RED ZONE은 너무 종합격투기 시절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이유로 전일본 시절이었던 2010년에 이 곡을 다시 사용하다가 WRESTLE-1으로 이적하면서 사용을 중지했다.[9] 1986년 개봉한 미국의 청춘 영화 AMERICAN ANTHEM(국내 개봉명 '불타는 도전')의 OST. 제 2차 UWF 시절 팔 골절상 이후 복귀전인 1990년 4월 15일의 스즈키 미노루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후지와라구미 시절 1991년 여름 후지와라 요시아키, 켄 샴락에게 2연패를 했을 때까지 사용했다.[10] WRESTLE-1 이적 후에 사용한 테마곡. CD화가 안 되어 음원을 찾을 수 없게 된 곡이다.[11] 후나키 마사카츠의 상징곡. 후나키와 친분이 있는 작곡가 이시다 오사무의 곡. 판크라스 시절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1차 은퇴까지 사용했다가, 복귀 이후 2009년 8월에 프로레슬링계로 복귀한 이후 2010년 2월까지 사용한 후, 너무 종합격투기 시절 이미지가 강하다는 이유로 한때 변경했다가 WRESTLE-1이후 다시 변경하여 사용해오고 있다.[12] 2005년 7월 10일 폐관. 2022년에 공사를 거쳐 현재는 도쿄 디즈니 리조트 토이 스토리 호텔이 되었다.[13] 실제로 해외 원정 중에도 마에다 아키라 등이 후나키를 설득하러 찾아왔다고 한다.[14] 원래는 성의 첫 이니셜이 M인 것이 가입 조건이었으나, '이름의 첫 이니셜이 'M'이면 이름을 영어로 표기하면 M이 맨 앞에 오니까'라는 이유로 후나키 마사카츠(Masakatsu)와 타나카 마사토(Masato)도 멤버로 받아들였다.[15] 이전 기록은 메라 아키히사(더 그레이트 카부키)의 16세 1개월이었다.[16] 물론 수신도 자신이 직접 하지만 않았다 뿐이지, 항상 키득대면서 현장에 같이 있었다고 한다.[17] 실제로 한자 없이 카타카나로 '라이안'이다. 후나키 마사카츠 왈 '처음엔 라이온(사자)라고 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사람인데 짐승의 이름을 붙이는 건 좀 안 좋다 해서 바꿨다'라고 한다.[18] 그래도 격투기를 업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아들도 고교 시절 소림사권법 등을 익혔으며, 격투기도 계속 해오긴 해서 후나키가 아들을 스파링 파트너로 써먹는다고 한다. 아들과 사이가 좋은 편이고 같이 더위를 잘 탄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추위를 잘 타는 아내는 다른 방에서 혼자 자고 아들과 함께 한 방에서 에어컨을 틀고 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