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준장.2. 생애
사관생도(육사 10기) 출신이었으며, 임관한 지 1년도 되지 않아서 6.25 전쟁이 발발했고, 소대장으로서 전쟁에 참전했다. 전후 황 장군은 미 육군보병학교와 육군참모대학에서 군사교육을 이수, 귀국 후 육군정보처장, 육군 대학 교수부장을 지냈다. 그리고 다수의 2차 세계대전 서적을 번역하였다.[1] 1976년 3월 준장으로 예편했다.생전 엄청난 전우애의 소유자로 유명했다. 그는 6.25 전쟁 당시 경북 안강지구 전투에 참전했었는데, 그 때 그를 도와주러왔던 다른 군인들 중 한 명인 김수영 소위가 안타깝게도 그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2] 김 소위의 도움을 받은 황 장군은 그에게 자신과 다른 전우들을 살려줬다는 고마움을 가짐과 동시에 소중한 전우를 잃었다는 슬픔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투가 너무 치열했던 나머지 우선적으로 김 소위의 시신을 근처 소나무 밑에 가매장한 뒤 표식을 남겼다. 이후 김 소위를 가매장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은 황 장군은 전쟁 후 10년 만인 1963년, 그의 시신을 다시 찾아내어 이듬해인 1964년 국립서울현충원에 그를 정식으로 안장시켰고, 매년 명절마다 그의 묘를 찾아 돌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 소위의 성씨만 알고 이름을 몰랐던 황 장군. 그의 묘비에 이름이 안 적혀있는 모습을 본 황 장군은 그의 이름도 찾아주자는 마음으로 그를 현충원에 안장시킨 1964년부터 2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의 이름을 찾는 것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으며, 마침내 1990년, 잊혀졌던 그의 이름까지 찾아주었다.[3] 그러나 이러한 영웅적인 행동에 대해 황 장군은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다."라고 하며 말을 아꼈다.
3. 전우 김수영 소위와 함께 영면하다
"김 소위를 놔두고 내가 혼자 어떻게 가요. 같이 있어야지... 내세에 가서, 김 소위를 이제 만나면은, 김 소위가 나한테 아마 술 한 잔 잘 살 거야."
2007년 6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김수영 소위의 묘소를 찾아온 황규만 장군과의 인터뷰 중 황 장군이 기자에게 한 발언
2007년 6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김수영 소위의 묘소를 찾아온 황규만 장군과의 인터뷰 중 황 장군이 기자에게 한 발언
황 장군은 생전에 "내가 김 소위를 놔두고 어떻게 가느냐, 같이 있어야 한다. 내세에 가서 김 소위를 만나면 김 소위가 아마 나에게 술 한 잔 잘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황 장군은 자신의 부대를 도우러 왔다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전우의 곁에서 끝까지 함께 남겠다는 뜻을 밝혔고, 자신이 김수영 소위 옆에 묻혀야 자신의 가족들이 김 소위의 묘까지 함께 돌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장교 묘역에 황규만 장군과 김수영 소위의 묘비가 함께 붙어있는 것은 이러한 그의 신념과 유언 때문이다.
참고로 황규만 준장은 채명신 장군 이후 두 번째로 화장된 장군이며, 장군이 장군 묘역이 아닌 다른 묘역(장교 묘역)에 안장된 또다른 사례가 되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