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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림의 육대 문파 중 하나. 불가의 승려들로 구성된 문파로, 무협물에서 항상 강대 문파로 등장하는 소림사의 활협전 버전이다.[1] 이 때문에 무협지의 클리셰대로 숭산파 최고의 고수들로 이뤄진 숭산18동인[2]도 있는데, 18명이서 150명을 가볍게 이길 정도로 강하다.20년 전 극락교와의 전쟁에서 당문과 함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터라, 그 전까지는 육대문파 중 가장 강성한 문파였으나 현재는 그 세가 전진교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나마 당문정도로 몰락한건 아니라 아직까지는 그 위세가 제법 남아있다. 이렇듯 극락교와의 전쟁에 당문과 함께 적극적으로 동참한 이력이 있어 초회차에도 무림대회에서 당문이 마교로 몰릴 때 당문을 지지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우호적인 편. 다만 위치가 멀어서 서무림맹 결성 때 숭산파는 참가시킬 수 없고, 대신 복운이 개인 호감도에 따라 서무림맹에 참가한다.
2. 석명(釋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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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파 복건 분사의 방장. 당수홍과 결탁하여 촉중당문의 장악을 노린다. 숭산파가 이름도 높은데다가 석명도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이름 높은 고승이었기에 당문이 오히려 불리한 상황에 놓였고 무림맹주 추대식 이후에는 당문의 암기로 무림동맹에 포함된 문파 일부를 죽였고 그 증거가 당문만이 금향궁에게 초대받은 게 증거라고 조화랑 함께 당문도 마교랑 연관되어 있다는 모욕을 일삼으며 일이 커진다.[3] 행보가 '당수홍과 결탁해 당문 습격', '무림맹주 선출식에서 숭산파도 참가하여 세를 불려야 복구중인 사찰을 복구할 수 있다며 반대', '불경을 자의적 해석', '살의를 운하지 말아야 하는 스님이 살의를 쉽게 운운하는 행동' 등을 보면 겉만 불교인이지 사실상 부와 권력을 탐하는 타락한 땡중이며 복운과 숭산파와 우호관계가 좋을 경우에는 복운과 숭산파는 당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석명은 자신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숭산파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데, 여기서 조화가 불문을 모욕하는 말을 내뱉어 숭산 방장에게서 직접 "그대는 나와 이제 연이 없소" 라며 절연당해 공개적으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당문에 지나치게 적대적이면서 덕망이 높은 승려라고 볼 수 없는 소인배스러운 행동이나 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라 얕볼 수 있지만, 무공만큼은 우습게 볼 수 없다. 광주당문 습격 사태에서도 당쟁이 직접 맞서다 상처를 입었으며, 복운 역시 기습이긴 하지만 내공으로 침묵하게 해서 당문을 변호할 수 없게 만들었다.
서무림맹 루트 돌입시 직접 상대해 처단할 수 있는데, 서무림맹 결성 후 결투 2차전 선택지서 대머리 손님을 선택하면 등장한다. 여기서도 비겁하게도 몇 턴이 지나면 제자들이 합류해 3대1로 조활과 싸운다. 조활에게 패배할 경우 조활이 내공대결을 걸어와 이기려 드는데, 내공력에 밀려 피를 토하는 조활을 보고 석명은 이겼다고 자만하는 순간 조활이 미리 던져뒀던 수리검에 정수리에 정통으로 찔려 죽는다. 사실 조활은 미리 수리검을 하늘 위로 던지고 떨어질만한 위치까지 석명을 유인하여 일부러 내공대결로 그를 잡아두었던 것. 만약 소사매 당묵령 루트를 탔을 경우에는 조활이 석명의 어그로를 끄는사이 뒤에 접근한 당묵령과 함께한 앞뒤 암기 협공으로 죽는다. 동맹으로 청성파의 추박이 함께 한다면 그의 진면목이 모조리 들통나서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을 때 조활로부터 "당신의 고집과 헛된 욕심이 이 사단을 만든 게요."는 촌철살인의 분노의 일갈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만약 직접 처치하지 않을 경우, 당문의 보복을 두려워해 해외로 탈출했지만 백상방에 납치되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치욕을 당한 뒤 살해되어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짤막한 언급이 나온다.
석명과 직접 상대하면 나오는 전기에 따르면, 본래 그는 도를 깨달은 고승이 맞았으나 어느 날 한 범죄자를 숨겨준 것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나온다. 그 범죄자란 당중령의 사모를 희롱한 귀공자로 그를 죽이려 당중령이 숭산파까지 쫓아왔으나, 당중령이 스님들을 공경해왔기에 깽판치는 대신 불경을 읊는 동안은 문 앞에서 가만히 기다리다 남궁세가와 상관세가에서 모두 중재에 나서자 그제서야 돌아갔다. 그러나 당시 문 하나를 두고 당중령과 마주하던 스님들은 분노에 찬 채로 이를 억누르며 불경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당중령의 인영이 마치 마귀가 문 앞에서 기다리는 것 같아 전부 심마에 빠져버렸고, 석명 또한 예외는 아니라서 하산 후 세상에 법을 전했지만 수십년간 심마에 시달리다 결국 악념이 생겨 당문을 없애려는 계획을 짜게 된다. 당문을 없애면 비로소 심마를 떨쳐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 사실 따지고 보면 당중령은 사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당히 항의를 하러 온 것이고, 중들이 제풀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을 당중령 탓으로 전가하는 것이다. 자기가 악당이 되기를 골라놓고 당중령 탓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니 이미 이 때부터 싹수가 보였다. 조활도 석명을 죽이기 전에 '우리 장문께서는 아무리 당신들에게 원한이 있어도 부처와 불자를 공경하시기에 최대한 당신들을 존중하려 애쓰셨다. 하지만 부처의 얼굴이라도 세 번 때리면 성을 낸다고 하듯, 당신은 너무 지나쳤다.'라고 일갈한다.
의외로 외모로 매번 무시받는 조활의 비범한 자질을 꿰뚫어보고 있으며 본인이 직접 그 자질을 체감하자 상당히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제일 두려워하던 전성기의 당중령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며 꽤나 고평가하고 실제로도 당중령이 보고 높게 샀던 조활의 노력과 자질을 거의 비슷하게 결론내린다. 단지 이 녀석이 당문과 적대적이다보니 더 철저하게 당문을 다시 일어서지 못할정도로 멸문시켜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돼서 문제.
이런 빼도 박도 못할 악인이지만 더미 데이터인 상관형 루트에서는 상당히 비장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서무림맹 결성 루트에서 석명과 대결하면 석명과 상관형의 추가 대화가 있으며,[4] 이 대결에서는 상관형의 실수로 조활이 자신이 던진 암기에 자신이 맞게 된다. 이에 상관형이 땅에 떨어진 암기를 주워들자 석명은 조활을 죽이라고 하며 그리하면 상관형의 죄를 사해주겠다고 하나, 상관형은 되려 석명을 찌르고 펑펑 울면서 불경을 외며 석명에게 설법한다. 이에 석명은 드디어 당중령에 의한 심마를 극복하고, 죽어가면서도 상관형이 안심하도록 환속하여 상관형이 스님이 아닌 악인을 처벌했을 뿐이라며 위로해주고, 자신 안의 마귀를 찔러 죽여줬으니 상관형에게 공은 있어도 죄는 없다며 격려하면서 눈을 감는다. 당중령과 엮이지만 않았다면 고승으로서 존경받으며 살았을 것이라는 설정을 잘 드러내는 최후.
3. 복운(福韞)[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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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사의 사찰 중건을 위해 탁발하러 다니는 젊은 승려. 입심이 매우 좋다. 사람들 앞에서 이부귀가 받은 떡을 강제로 빼앗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은 개방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도움을 준 것이었으나[6] 이를 본 조화가 숭산파와 개방 사람들에게 이간질을 해서 외성에서 집단전이 일어나게 된다.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외성에서 지내게 된다.
외출 이벤트 시, 랜덤하게 복운이 창방 출신의 허대경과 대립하는 모습이 나온다. 조활이 나서지 않는다면 처음에는 몇 대 맞아주다가 혈기가 돌았는지 허대경을 두들겨 패 당문으로 압송하는 이벤트가 나오며, 당문에 유니크 제자가 하나 추가된다.
이후에는 주로 외성에서 설법을 펼치고 있으며, 틈틈이 외성에 방문하면 용상을 붙잡고 설법으로 고통을 가하거나, 설법 중 엽운상에게 걸려 나뭇잎 가발을 씌워진다거나 하는 등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가끔은 일반 휴식(음식이나 종이접기가 아닌)에 당문 남기숙사를 기습하여 설법을 시작, 당문 사제들과 조활을 고통받게 만든다. 시장 이벤트에서는 만약 조활의 도덕이 높다면 그를 선인이라 여기며 함께 담소를 나누고 나한권보, 금강퇴, 금종조 중 비급 하나를 선물하기도 하며, 낮을 경우 시주를 하지 않으면 환속해서 패버린 다음 다시 출가하겠다는 시주를 빙자한 협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석명과 같은 땡중은 절대 아니며, 도덕 역시 가장 높은 수치인 협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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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보통 스님이 아닌, 숭산18동인의 일원으로 강대한 무공을 가진 고수다.
특정 조건 만족 시 비석방주와 대결하고 돌아오는 대사형과 조활과 합류해 동행하는데[7], 이렇게 되면 신도룡과의 싸움에 휘말리는데 무조건 생존하는 용상과 달리 복온은 아무런 조치도 안취할 경우 대사형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8] 이후 호감도가 40 이상일 경우 무림대회로 향하는 당문의 대열에 은근슬쩍 끼어있다. 이후 무림대회에서 자신이 숭산파의 방장이 될 것이라며 자신의 뜻을 밝힌다.[9]
만약 복운이 죽지 않고 무림대회 이후 이부귀와 복운의 호감도가 일정 이상이면 이부귀와 함께 당문을 찾아와 새로운 무림연맹 결성을 제안한다. 이후 아미파를 설득하기 위한 사절역을 자청해 떠나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된다. 당문을 도와주는 이유는 그동안 당문과 만나며 인연을 맺은 것에 더불어, 살수집단인 당문이 조금이나마 자비의 미덕을 알았으면 해서로, 아미파 설득 직전에 감사해하는 조활에게 고맙다면 앞으로 죽일 적을 패고, 팰 적을 혼내고, 혼낼 적을 용서하는 자비를 베풀어 자신에게 보답해달라며 웃는다.
결전 당일에는 아미파 섭외에 더해, 당문에 혹시 금색 도료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선택에 따라 전통에 따라 금칠을 한 뒤 무림맹의 대표로 찾아온 남궁심을 입담으로 물리치고 오늘 자신은 기꺼이 살계를 어길 것이라 하며 온몸에 금칠을 한 숭산십팔동인과 함께 전투에 참가한다. 복온이 서무림맹에 합류할 경우, 본래 남궁심과의 토론 이벤트에서 반박하지 못하는 선택지가 복온의 반박으로 대체되어 조활이 반박하지 못할 시 복온이 잠시 물러나라 이른 뒤 남궁심과 서무림맹 전원을 꿀먹은 벙어리로 만들어 쫓아낸다.[10]이후에는 쳐들어오는 무림맹을 숭산십팔동인과 함께 완전히 박살내버린다[11].
이때 모습이 가관인데, 아미타불!을 외치며 무림맹을 짓밟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공으로 도망을 못 간 개방 제자를 두들겨 패면서 보살님이 오늘 제게 두들겨 맞는 건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운이 없으실 뿐이라는 시정잡배스러운 언행[12]에 어이가 털린 조활이 스님이 그래도 되느냐고 하자 말에 내상을 입어 쓰러지나, 자비 없이 봉을 휘둘러 맞은 거에 쓰러지나 동일한 거라는 궤변을 선보인다.[13] 그 모습을 본 동료 십팔동인이 연기의 지혜가 담겼다며 감탄하는 모습에 조활은 태클을 걸려 하나 십팔동인이 철학 얘기는 나중에 하는 게 좋겠다고 하며 마무리된다. 이후 묘사를 보면 숭산 18동인에게 덤빈 150명의 시체를 밀어서 쌓여 작은 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대화에 의하면 18동인은 봉, 권, 각 등 각자 특기로 하는 무기가 다르다는 걸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은 입을 잘 쓴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구공 숭산사 빌드이를 반영해 구력은 무려 90으로 작중에서 복운보다 구공이 높은 캐릭터는 없으며, 허세는 아닌지 한번은 도교를 믿는 한 도사와 논쟁을 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됐냐 물으니 도사가 머리를 깎고 숭산파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고 한다.
4. 각혜 방장(覺慧方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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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운과 호감도가 높은 상태에서 무림대회에 오는 길에서 숭산파를 만난다면 조활에게 선뜻 숭산파 최고의 신통이라는 나유타겁지 비급을 건내주는 대인배 면모를 보인다. 받아들일 경우, 이후 무림대회에서는 스스로가 맹주직에 어울리지 않다며 맹주직을 거절하고 물러난다. 애초에 무림대회보다는 조활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었다고 한다.
무림대회에서 당문을 지지하는 주사위를 띄울 시, 20년전 젊은 시절 극락교가 준동할 때 당시 사형제들과 함께 나가 싸우지 않은 것을 평생의 후회와 죄책감으로 가지고 있다며[14] 당문을 지지하고 석명을 깐다. [15]
[1] '소림사(少林寺)'라는 단어에 저작권이 있어서 우회한 것인데, 애초에 숭산이 소림사가 있는 산 이름이다. 한국으로 치면 해운대를 쓸 수 없어 부산파라고 한 격.[2] 식신(영화)에서도 패러디가 된 적이 있는 유명 고전 영화 <소림사 18동인>의 패러디.[3] 만약 상관세가의 상관형의 호감도가 높으면 상관형이 두둔해주고 상관세가가 보호해주나 상관형의 호감도가 낮아 묵인, 당삼을 촉중당문으로 거둬들였다면 당삼의 양심고백을 통해 거짓부렁이라고 호소하면서 불리해진다. 상관세가 가주 상관준도 무림동맹에 정식 초대된 자라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말에 득죄를 떠들었으나 자신이 불리해지니 자칫하다가는 본인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리수로 조정과 깊은 연관이 있는 상관준을 떠서 확언을 받아내 버린다.[4] 상관형이 어릴 적 숭산에서 석명에게 고뇌권과 경전을 배웠기에 그를 사숙이라 부르며 스승으로써 존경하고 있다.[5] 이름의 韞자 때문에 이름이 복운인가 복온인가로 논쟁이 현재진행형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저 한자는 '감출 온/운'으로 둘 모두로 발음이 가능하기 때문에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논쟁이다(...). 나무위키에서는 문서가 처음 생성될 때 복운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해당 문단에서는 복운으로 표기하나, 문서 내에 복온이라는 표기가 공존하고 있다.[6] 실제로 이미 따로 떡을 갖고 있었고, 이부귀와 떡을 나눠먹어 화해했다. 또한 두 사람의 말을 보면 그 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사이였다.[7] 당포의가 주사위 체크로 안전한 절초를 사용하면 일부러 죽은 척하는데 이 때 복온이 그를 살펴보겠다면서 자리에 남기에 동행할 수 있다. 만약 조금 위험한 절초를 사용한다면 용상이 동행한다. 다만 주사위에 명성 보정이 붙기 때문에 명성이 49 이하여만 가능하다.[8] 디시인사이드 활협전 갤러리의 한 유저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신도룡과의 싸움 이후 복온이 사망하기 전 연단방에서 연단 활동을 2회 이상 할 시 복온의 중독 수치를 내려서 복온을 살릴 수 있다고한다. 단 이게 의술, 누적연단수치까지 감안해서 내리는 판정인지 단순히 연단 2회만 하면 확정적으로 살릴 수 있는지는 불명. 의술 레벨 5에 연단방을 이벤트 시를 제외하고 거의 가지 않은 상황에서 살리는 데 성공한 걸 보면 연단누적은 필요없거나 의술이 없을 시 조건으로 붙어있을 듯 하다.[9] 무슨 나쁜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불법을 널리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하기 때문에 방장의 자리를 얻어야 하며, 이런 뜻이 있음에도 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성실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석명과는 그릇의 크기가 다름을 보여준다.[10] 이 경우 향심과 명성이 떨어지지 않는다.[11] 외성 방어 후 당가로 올라가는 선택지를 고르면 십팔동인과 함께 단체전을 치르는데, 아군으로 진짜 18명만 나온다. 숫자빨로 승부가 나는 단체전 상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18명이 하나하나가 매우 뛰어난 유니크 유닛 판정이라 한 명도 쓰러지지 않고 순식간에 수많은 적들을 때려눕히는 강력함을 선보인다. 맷집도 맷집이지만 암기는 쓰지 않고 적 유닛을 에워싸서 근접전만 벌이기 때문에 별다른 조작을 하지 않아도 순식간에 끝나버린다.[12] 그리고 개방 제자의 단말마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이 미친 대머리야!를 볼 수 있다.[13] 도망치는 제자들에게 겁쟁이라며 조롱하며 이리 오라고 도발까지 하는데, 조활이 이를 두고 스님이라기에는 말투가 좀 그렇지 않냐고 하니 지금의 자신은 거울이라 선에 선을 악에 악을 돌려주는 것뿐이라며 능청스레 넘겨버린다.[14] 극락교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 싸운 곳이 당문과 숭산파였고, 때문에 당문과 숭산의 대부분의 고수들이 그 여파로 죽거나 은퇴했다.[15] 이에 석명은 그를 보고 노망이 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무림인들에게 그를 무시하라는 무례한 언행을 내뱉으면서도 동시에 저들의 지원이 없으면 숭산파의 사찰들은 몇 십년이 지나도 복구를 하지 못할 거라고 겁박하지만 되려 방장은 그럼 몇십년 동안 차근히 지어나가면 된다고 말하며 석명을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