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stmann suspension |
1. 개요
1920~30년대에 영국의 전차 설계자 존 카든이 고안하고 엔지니어 시드니 홀스트만이 양산화한 코일 스프링을 사용하는 궤도차량용 서스펜션.2. 역사
1920년대에 영국의 엔지니어이자 경영가였던 시드니 홀스트만(Sidney Horstman)은 자신이 경영하던 홀스트만 차량회사에서 생산하는 차량들의 승차감을 개선하기 위한 서스펜션 개발을 시작했고, 동시에 새로운 서스펜션의 생산과 납품을 담당할 슬로모션 서스펜션 회사를 설립했다. 1929년에는 대공황 때문인지 홀스트만의 차량회사는 망했지만 서스펜션 회사는 살아남았다고 한다.1934년에 빅커스-암스트롱사의 엔지니어였던 존 카든 남작[1]은 군용 궤도차량을 위한 새로운 서스펜션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하기 위해서 시드니 홀스트만과 홀스트만의 슬로모션 회사와 협력을 했다. 당시 영국군은 빅커스 미디엄을 테스트하고 있었는데, 이 전차들에 쓰인 박스 서스펜션은 지나치게 탄력이 센 나머지 주포의 반동을 잘 흡수하지 못해서 사격만 하면 차체가 반동으로 심하게 떨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카든과 홀스트만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서스펜션은 보기(Bogey)에 배치되어 각자 벨크랭크로 연결된 한쌍의 바퀴들의 크랭크 암 사이로 가로배치된 코일스프링과 2방향 쇼크 업소버를 연결한 구조였다. 이 서스펜션은 1935년 2월부터 4월까지 A6E3 전차에 처음으로 탑재되어 시험을 거친 결과 차체 안정성에서 큰 향상을 보여줬다. 또한 Mk.1~5 경전차들에도 탑재되었고, 브렌건 캐리어와 여기서 파생된 로이드 캐리어, 그리고 극초창기의 순항전차로 개발되었던 A9 / 10 전차와 A14 전차에도 쓰였다. 단 A9과 A10 전차에 쓰인 서스펜션은 하나의 벨크랭크에는 직경이 더 큰 바퀴를 달고 나머지 벨크랭크에는 2개의 작은 바퀴를 매단 암을 다는 식으로 개량되어 한 서스펜션 모듈에 총 3개의 바퀴가 달렸다. 바퀴 3개 버전은 이후 A10을 기반으로 설계된 밸런타인 전차에도 쓰였다.
1935년에는 존 카든 남작이 사망하면서 서스펜션의 생산권이 전부 시드니 홀스트만의 회사로 넘어갔다고 한다.
1930년대 동안 홀스트만식 현가장치는 전간기에 개발된 전차들을 대상으로 탑재되어 이전보다 우수한 안정성을 보이는데 성공했지만, 영국군이 본격적으로 크리스티 현가장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전차에서의 홀스트만 방식 서스펜션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한채 과도기적인 역할에서 그쳤다. BT 전차등에도 탑재된 크리스티 현가장치는 홀스트만식보다 고속에서의 주행성능이 더 좋았기 때문에 당시 영국군의 순항전차들에 탑재하기 더 적합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가던 1944년 무렵이되자 다시 홀스트만 서스펜션도 빛을 보기 시작했다. 전간기와 대전 극초기에는 크리스티식에게 주행성능에서 밀리는 단점이 컸지만, 전쟁 후반기 무렵에 영국군이 개발하던 차세대 순항전차 A41의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A41은 순항전차로 계획되기는 했지만 이전까지의 순항전차보다 방어력을 더 중요시하여 장갑도 더 키워내고 중량도 40톤 이상으로 계획했던 더 무거운 전차였고 이전의 순항전차들만큼 고속주행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계획된 A41에는 크리스티 서스펜션보다는 늘어난 중량에 대응하기 용이한 홀스트만 서스펜션을 쓰는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되면서 최종적으로 A41에 홀스트만 서스펜션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홀스트만식 현가장치는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정식 채택 후의 A41)센추리온 전차용으로 탑재되었고, 다가오는 냉전에 대비하여 소련의 IS-3를 상대하기 위해 개발된 FV214 컨커러와 컨커러 기반의 중자주포 FV215에도 보기륜의 크기를 줄인 버전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센추리온보다 장갑을 더 강화한 영국군의 2세대 전차 치프틴까지도 이 홀스트만식 서스펜션이 사용되었다. 치프틴 이후로는 유기압 현가장치로 대체되었다[2].
시드니 홀스트만의 서스펜션 회사는 현재 'Horstmann Defence Systems'로 이름이 바뀐 방위산업체로 남아있으며, 챌린저 2에 적용된 Hydrogas 유기압식 서스펜션을 비롯한 여러가지 군사용 제품들과 기술들을 개발, 납품하고 있다.
3. 특징
기본적으로 보기라는 막대 형태의 구조물 하나에 2개 이상의 바퀴(보기륜)이 달려있는 방식이다. 두 보기륜의 크랭크는 하나의 수평 코일 스프링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서 한쪽 보기륜이 지면의 굴곡으로 인해 올라오면 스프링이 압축되면서 그 힘은 지면에 닿은 다른쪽 보기륜이 받아내게 전달된다. 물론 보기 자체도 움직일 수 있게 되어서 두 보기륜이 모두 요철을 타고 올라오거나 경사면에서 기울어지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구조 덕분에 중량이 서스펜션의 두 바퀴에 골고루 배분되어 다른 현가장치들보다 고중량에 대응하기 좋고, 코일 스프링이 압축뿐만 아니라 인장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서스펜션의 가동 범위도 넓어서 지형 적응성도 좋은 편이다.서스펜션이 차체 외부 측면에 장착된 구조라서 차체 내부공간을 거의 차지하지 않으며, 외장형 서스펜션이라는 구조상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차체 내부를 드러낼 일 없이 수리와 점검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번에 가동되는 부품이 많아서 구조적으로 간단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고, 홀스트만식은 구조상 보기 하나에 달린 2개 이상의 바퀴들이 하나의 스프링을 공유하기 때문에 보기륜들이 독립적으로 배치된 대부분의 토션바 서스펜션보다는 승차감이나 서스펜션의 가동이 떨어진다.
코일 스프링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크리스티 현가장치와 유사성이 있으나, 크리스티는 각 바퀴마다 개별적으로 스프링이 달리는데 반해 홀스트만식 서스펜션은 바퀴를 두개 이상 묶은 보기 구조물에 1개의 공용 스프링을 장착함으로써 차지하는 공간과 복잡성을 줄인 방식이라 두 서스펜션의 구조는 상당히 다르다.
프랑스에서 개발된 AMC 35를 비롯한 일부 전간기 전차들에도 홀스트만식과 유사한 방식의 서스펜션이 장착되었는데, 독특하게도 AMC 35의 경우 금속제 코일 스프링 대신에 고무로 만들어진 스프링을 사용했다. 영국제 전차의 영향을 받은 소련의 T-37 경전차에도 비슷한 서스펜션이 쓰였다.
4. 사용 전차
[1] 1935년 12월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사후 그가 생전에 설계했던 A9 / 10 전차에 홀스트만 서스펜션이 탑재되었다.[2] 한때는 영국군이 챌린저 2까지도 홀스트만식 서스펜션을 고집한다고 써졌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다. 챌린저 2는 홀스트만사에서 만든 유기압식(Hydrogas) 서스펜션을 쓰고 있는데, 아마 홀스트만 회사에서 현가장치를 납품 받았다는 사실을 오래전의 홀스트만식 현가장치를 쓰는 것으로 착각한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