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헨리 노베리 Henry Norbury | |
생몰년도 | 1415년 ~ 미상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하트퍼드셔 홋스돈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 |
아버지 | 존 노베리 | |
어머니 | 엘리자베스 버틀러 | |
형제 | 존 | |
아내 | 앤 크로이저 | |
자녀 | 존, 랄프, 엘리자베스, 세실리, 제인, 로즈, 앤 | |
직위 |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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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기사.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군과 상대했다.2. 생애
1415년경 잉글랜드 왕국 하트퍼드셔 홋스돈에서 브레스트 부대장과 기옌 보안관을 역임하고 하트퍼드셔의 의원으로 재직했으며, 헨리 4세 시기 고위 재무관, 추밀원 의원을 역임했던 존 노베리와 기사 토머스 버틀러의 딸 엘리자베스 버틀러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노버리셔 의원을 역임한 존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헨리 4세의 재무장관을 역임하면서 헨리 4세의 친구가 되기도 했기 때문에 궁정에 자주 들락거렸고, 헨리 5세는 그의 대부가 되어줬다. 1434년 무렵에 기사 학사가 되었고, 1435년 29명의 맨앳암즈와 400명의 궁수를 소집해 프랑스 전선에 투입되었으며, 1436년 루앙을 방위했다.1441년에서 1443년 사이에 루앙 보안관을 역임했으며, 1435년부터 1439년까지, 그리고 1443년부터 1448년 까지 서리의 순회판사를 역임했다. 1450년 토머스 스케일스의 부관으로 발탁되어 비레의 사령관이 되었고, 1450년 4월 초에 발로뉴 공방전을 수행해 그곳을 공략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뒤이은 포미니 전투에서 아군의 참패를 막지 못하고 프랑스군에 생포되었고, 프랑스군이 열흘간 공방전을 치르고 있던 비레를 항복시키는 대가로 석방되었다.
잉글랜드로 귀환한 뒤 1453년 베드퍼드셔의 샤이어 기사로서 하원 의원에 선출되어 1454년까지 직위를 유지했으며, 헨리 6세의 고문이 되었다. 장미 전쟁 시기 랭커스터 왕조의 편에 서서 1460년 노샘프턴 전투와 웨이크필드 전투, 1461년 2차 세인트 올번스 전투와 타우턴 전투에 참가했다.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 사료는 1461년 타우턴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서술했지만, 다른 사료에서는 1464년에 사망했다고 기술했다. 그는 런던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아내 앤 크로이저 옆에 안장되었다.
3. 가족
헨리 노베리는 기사 윌리엄 크로이저의 딸인 앤과 결혼했으며, 장인으로부터 서리에 있는 스토크 다버넌 영지를 물려받았다. 자녀들은 아래와 같다.- 존 노베리: 장남이자 상속인, 서리의 샤이어 기사. 제인 또는 조앤 길버트와 결혼해 외동딸 앤 노베리를 낳았다. 앤 노베리는 데번의 할웰 출신인 기사 리처드 헤일리웰과 결혼해 외동딸 제인 헤일리웰을 낳았고, 제인 헤일리웰은 초대 브레이 남작 에드먼드 브레이의 부인이 되었다.
- 랄프 노베리
- 엘리자베스 노베리: 기사 윌리엄 시드니와 초혼, 기사 토마스 우베데일과 재혼.
- 세실리 노베리
- 제인 노베리: 기사 토머스 크루스의 부인.
- 로즈 노베리
- 앤 노베리: 기사 리처드 할리웰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