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00:47:11

한왕용

8000m 14좌 완등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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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세계 7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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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fa1><colcolor=#ffffff> 히말라야 14좌 완등자
한왕용
韓王龍 | Han Wang yong
파일:한왕용16-1.jpg
이름 한왕용(韓王龍)
출생 1966년 10월 14일[1] ([age(1966-10-14)]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산악인
학력 군산동고등학교 (졸업)
우석대학교 (학사)
약력 대한산악연맹환경보전이사
(주)콜핑 홍보이사
상훈 2001년 고상돈 특별상
2003년 제4회 대한민국산악대상
2004년 체육훈장 맹호장
2012년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50인
소속 한왕용의 트레킹이야기 대표
커뮤니티 자연과 함께하는 클린마운틴
한왕용 팬카페

1. 개요2. 생애
2.1. 유년시절2.2. 히말라야 14좌 등정2.3. 그 이후
3. 등반 기록4. 어록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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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산악인으로, 대한민국에서 엄홍길박영석에 이어 세 번째, 세계에서는 열한 번째로 히말라야 8,000m 거봉 14좌를 완등한 인물이다. 히말라야의 휴머니스트. 정작 본인은 휴머니스트라는 호칭에 부담을 갖는다.

2. 생애

2.1. 유년시절

1966년 10월 14일(음력 9월 1일)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태어나 1982년 지역 학교인 군산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85년에는 전주 우석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막걸리 먹는 재미에 빠져 산악부에 발을 들인 후 산에 재미를 붙이고 산악인으로서의 기질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2.2. 히말라야 14좌 등정

1994년 초오유 등정을 시작으로 하여 2003년 브로드피크까지 히말라야 8,000m 거봉 14좌를 완등한 인물이다.

그는 1995년 에베레스트 등정 당시 박영석 대장의 부탁으로 정상 직하에서 뒤처진 다른 팀 대원을 무려 5시간 15분을 기다려 만난 뒤 기진맥진한 그를 부축해 하산하는 초인적인 휴머니즘을 발휘한 일이 있다. 기사1, 기사2 또한 1996년 여름 톈산 산맥 포베다 산에서도 타 원정대의 대원을 살려내고, 1997년 가셔브룸 1봉에서는 크레바스에 빠진 동료를 구출해 베이스캠프로 데리고 내려오기도 하는 등 진정한 휴머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2002년 K2를 등정하고 하산한 후, 쇠망치로 뒷통수를 한대 맞는 듯한 충격을 받은 후 결국 혈전으로 막혀 있었던 뇌혈관 확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관련 글

박영석엄홍길이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성공했던 2001년 당시 그는 8개의 봉우리를 등정한 상태였다. 1등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받을 수 없었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산을 오르려는 그에게 '바보 아니냐'며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도전을 계속했고, 마침내 2003년 브로드피크를 마무리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다. 최후의 목표 달성 직전 크레바스에 발이 빠져 생명이 위태로웠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기사, 네이버캐스트
2014년 KBFD뉴스에서 진행한 인터뷰

2.3. 그 이후

14좌 완등 이후 그는 선배 산악인처럼 등반가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환경보호라는 새로운 길을 택한다. 그는 세계적인 미국의 환경단체인 US LNT(Leave No Trace)에서 환경교육을 받고, 2003년부터 5년간 히말라야의 쓰레기 처리를 위한 등정을 계속하는 등 환경을 생각하는 클린 산악인으로서의 꿈을 펼치고 있다. 이런 그의 이야기는 히말라야 청소부라는 동화책으로도 출판되었다. 기사

2006년에는 방송에도 꾸준히 출연하였다. 우선,산악모임에서 친분을 쌓은 김유석의 권유로 KBS2 주말 연속극 인생이여 고마워요에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기사 한편 고정 프로그램도 생겼는데, KBS1에서 매주 일요일 정오에 방영되는 세계의 명산이 그것이다. 세계에서 유명한 산을 꼽아 한왕용씨가 직접 산행을 하며 출국부터 입산, 등반까지 일반 등산객들도 쉽게 다닐 수 있는 정보를 주는 프로그램이며,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는 국내 명산도 곁들여 소개되었다. 기사

2008년 7월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클린월드’ 운동에 참여해 지구 살리기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기사

한왕용은 환경교육 이외에도 2009년에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로 각광을 받는 남미의 잉카트레일과 파타고니아를, 2013년 3월에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에 다녀오는 등 전 지구적으로 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0년 6월에는 네팔 관광의 해를 맞아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2012년에는 그동안 있었던 신발끈여행사에서 독립하여 '한왕용의 트레킹이야기'라는 새로운 여행사를 차렸다. 직원수는 두 명으로, 본사는 서울 중구 명동1가 명동길 73, YWCA연합회 회관 308호에 위치해 있다. 기업정보 보러가기

2014년 4월 5일에는 식목일을 맞아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클린마운틴 전국페스티벌'을 벌였다. 기사

3. 등반 기록

등반 연도 봉우리 높이
1994 초오유 8,201m
1994 시샤팡마 8,010m
1995 에베레스트 8,848m
1995 아콩카과 6,959m
1996 포베다 7,439m
1997 다울라기리 8,167m
1997 가셔브룸 1봉 8,068m
1997 로체 8,516m
1998 안나푸르나 8,091m
1998 낭가파르밧 8,125m
2000 마나슬루 8,156m
2000 K2 8,611m
2000 마칼루 8,463m
2001 시샤팡마 8,027m
2002 칸첸중가 8,586m
2003 가셔브룸 2봉 8,035m
2003 브로드피크 8,047m

4. 어록

왕용이형은 매우 소탈했습니다. 현지인과 잘 어울렸고 후배들에게 감자를 구워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형은 희생적이었습니다. 원정대에서 궂은 일을 도맡다시피 했습니다. 늘 웃는 얼굴을 하셨고 소박한 얼굴에 웃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범원택, 그와 함께 1996년 아마다블람을 등반한 후 그를 회상하며
지난 2002년 K2 원정길에 일본인 곤도가 "C2 텐트 속에 너희 나라 원정대들이 버린 음식물이 아직도 많다"며 쓰레기를 보여주는 순간, 얼굴이 확 붉어지더라고요. 그때 14개 고봉을 완등하고 나면 내가 히말라야에 버리고 온 쓰레기와 함께 양심도 청소하기로 마음먹었죠. (중략) 우리는 아직까지도 원정대를 대규모로 꾸려요. 또 한국에서 음식을 많이 싸가기도 하고요. 고소 캠프에서 텐트와 식량을 수거하지 않고 내려오는 것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 돼버렸죠.
2007년, 클린마운틴에 대해 설명하며
그분에 대한 첫인상은 그 어렵다는 히말라야 완등을 이루어낸 사람치고는 체격이 조금 왜소했다. 또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순박하고 순수하다는 말이 있듯이 그분 역시 순박해 보였다. 나는 ‘과연 저 사람이 세계에서 11번째로 히말라야를 완등한 사람이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의가 끝날 무렵에는 저 사람은 충분히, 아니 저 사람이었기 때문에 거봉 완등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7년 10월, 한왕용의 강의를 들은 후
돈 벌어야죠, 가장인데요. 기록이나 업적을 남기기 위한 히말라야행은 이제 접겠습니다. 저는 이제 이 무대에서 빠질 때라고 봐요.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가서 한국의 등반사를 빛내주기를 바랄 뿐이죠. 개인적으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행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아이들이나 산을 좋아하는 어르신들과 나누고픈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2007년, 산에서 완전히 발을 떼냐는 질문에
오 대장칸첸중가에 올랐다 안 올랐다를 내가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 대장이 적어도 여성 첫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란 영광스런 타이틀을 차지하는데 따르는 책임감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2010년, 산악인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 의혹이 불거지자 스포츠조선을 통해 어렵게 입을 떼며

5. 여담

  • 14좌 완등을 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은 눈사태를 두 번 당하고, 여섯 번이나 크레바스에 빠졌지만 단 한 명의 동료도 잃지 않았다. 전형적인 극지법을 선호해 무모한 산행은 피한다고.가장 안전한 등반왕
  • 2008년 가족 휴가로 설악산을 갈 만큼 산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다. 관련글
  • 간호사인 배우자와 두 아들(한대성, 한대산)을 두고 있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할 당시 그의 아내가 많이 불안해했었고, 자신이 그런 불안을 줬다는 것이 미안했다고 한다.
  • 한국인 최초 히말라야에서 소변을 누었다는 소문이 있다.

[1] 음력 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