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50099><colcolor=#ffffff> 필 미켈슨 Phil Mickelson | |
본명 | 필립 알프레드 미켈슨 Philip Alfred Mickelson |
출생 | 1970년 6월 16일 ([age(1970-06-16)]세) |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
종목 | 골프 |
데뷔 | 1992년 PGA 입회 |
신체 | 191cm, 91kg |
최고 순위 | 2위[1] |
메이저 우승 [2] | Masters Tournament(2004, 2006, 2010) PGA Championship(2005, 2021[3]) The Open Championship(2013) |
통산 승수 | 54승[4] PGA Tour 45승[5] European Tour 9승 Challenge Tour 1승 기타 대회[6] 5승 |
수상 내역 | Golf Hall of Fame(2012) Haskins Award(1990~1992)[7] |
스폰서 | KPMG, BARCLAY, Callaway Golf[8]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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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대한 샷은 위험을 무릅쓸 때만 나온다. 현명한 샷은 그런 위대한 샷을 시험할 배짱이 없을 때나 쓰는 샷이지.
ㅡ 2010년 마스터즈 우승 후 인터뷰에서.[10]
사상 최고의 2인자[11]ㅡ 2010년 마스터즈 우승 후 인터뷰에서.[10]
Lefty[12]
미국의 프로 골프 선수이자 현 PGA 투어 프로이다. 또한 명예의 전당 입회자이기도 하다.[13] 1992년 데뷔 이후 실력과 인기 모두 최정상급 선수였으나 세계 최고의 2인자". PGA 투어 통산 역대 9위에 해당되는 45승에, 메이저 6승을 기록 중이다. 2위만 6번한 US Open에서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자가 되지만, 지금까지 보여 온 커리어를 비추어 보면 쉽지 않을 듯 하고, 오히려 이걸 놓치는 것이 가장 필 미켈슨 다운 커리어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1993년 11월 이래, 25년간 월드 랭킹 TOP 50 안에 꾸준히 있었던 골퍼로 그야말로 꾸준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14]
골프 선수 배우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인 에이미 미켈슨 & 3명의 아들 딸과 함께 하는 가족적인 이미지도 매우 유명하다. 상금도 많이 벌었지만, 광고 등 부수 수익으로도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 쥔 미국 스포츠 계의 슈퍼스타 중 하나이다.[15]
2. 선수 경력
2.1. 데뷔 이전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나 부모 필립 안소니 미켈슨과 메리 미켈슨 밑에서 자랐다. 골프를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쉽게 골프를 접할 수 있었는데 태어났을 때는 오른손 잡이 였던 미켈슨은 오른손 잡이 아버지의 스윙을 보면서 스윙 연습을 하다가 왼손 골퍼로써 성장하게 된다. 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골프를 시작했다. 미켈슨의 아버지는 비행기 조종사였는데 근무 일정에 따라 일주일 중 여러 번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집 뒷마당에있는 광범위한 연습 공간을 통해 어린 미켈슨은 아버지와 함께 골프를 즐기며 창의적인 숏 게임을 연마 할 수 있었다.주니어 시절 어니 엘스와 함께 |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 입학한 미켈슨은 1992년 졸업할 때까지,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손꼽히며 대활약을 하였다.
대학생 신분으로 획득한 프로 첫 승 |
대학 시절, 미켈슨은 1991년 1월 아마추어로서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다. 투산에서 개최된 PGA 투어 대회 "Northern Telecom Open"에서 우승했기 때문이다. 85년도에 더그 샌더스가 이룬 후 6년 만에 이룬 업적이고, 무엇보다 미켈슨 이후 PGA 투어에서 우승한 아마추어가 없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을 달성했음을 의미한다. 이 위업을 통해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즈'에 초대 되었고 아마추어 중 최저타를 기록하며 '실버 컵'[16]을 수상, 더 이상 아마추어 무대에서는 이룰 것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2.2. 프로 커리어
2.2.1. 1992년~2003년
투어 우승을 일찌감치 이룬 덕에, Q 스쿨[17]을 면제 받아 1992년부터 PGA 투어에서 활약 중이다.데뷔 첫 해에는 상금 90위로 프로 적응에 실패하는 듯 했던 미켈슨은 1993년 Buick Invitational of California에서 프로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93년 2승 - 1994년 1승 - 1995년 1승 등 꾸준히 승을 쌓더니 1996년에는 4승으로 다승 1위 - 상금 2위 등을 거두며 투어의 간판으로 등장했다.
미켈슨은 최종일, 선배 골퍼이자 니커보커 풍의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페인 스튜어트와 한 조에서 자웅을 겨루었다. 경기 후반, 다른 조에서 맹렬히 쫓아 온 타이거 우즈를 따돌리며 우승을 향해 내달렸으나 몇 개의 퍼트를 실수하는 사이 페인 스튜어트가 착실하게 경기를 펼쳤고, 결국 1타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우승 확정 후 미켈슨에게 덕담을 건내는 페인 스튜어트 |
그리고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이게도, 우승 후 4개월이 지난 10월 페인 스튜어트는 자가용 비행기의 추락사고로 함께 탑승한 5명과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19] 이 사고로 인해 페인 스튜어트는 불멸의 스타가 되었고, 그가 생애 최후에 차지한 메이저 타이틀의 상대자가 필 미켈슨이었다라는 것은, 미켈슨이 최초의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 쥔 2004년까지 주홍글씨가 되어 그를 따라 다녔다. '2인자'의 커리어 답다라는 의미.
2003년까지 21승을 거두었지만 메이저 타이틀이 없던 미켈슨은, 본인 보다 4년이나 늦게 데뷔하고도 같은 시점에 메이저 8승을 비롯, 39승이나 거둔 타이거 우즈에게 완전히 밀리며 저평가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 하지 못하는 최고의 골퍼"라고 평가된 그는, 2003년 상금 순위 38위까지 떨어지며 커리어 최악 시즌을 맞이한다[20] 이에 많은 사람들은 이대로 미켈슨의 커리어는 끝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2.2.2. 2004년~2013년
끼얏호! 나 메이저 먹었어!![21] |
심기일전하고 맞은 2004년 1월, 밥 호프 클래식에서 18개월 만의 우승을 차지한 미켈슨은, 그 해 4월에 열린 '마스터즈'에서 첫 메이저 타이틀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최종일 챔피언조에서 출발한 미켈슨은, 오랜 친구인 남아공의 어니 엘스의 몰아치기에 한 때 선두를 내주기도 하였지만 후반 7홀 동안 무려 5개의 버디를 몰아 치며 역전에 성공, 감격적인 메이저 첫 우승을 이룬 것이다. 이로써 메이저 우승이 없는 무관의 제왕, 이라는 비아냥에서 벗어난 미켈슨은 2005년도에 메이저 대회 'PGA 챔피언십'을 포함, 4승을 추가하며 기세를 올렸고 2006년 마스터즈에서 2번째 우승을 거두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모든 것이 평탄히 잘 풀리는 줄 알았던 그 해 여름, 미켈슨에게는 커리어 최고의 아픔을 준 사고가 발생했다. 바로 2006년 US Open으로, 미켈슨은 챔피언조로 맞이한 최종일 17번홀까지 1타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파4 18번홀에서 미켈슨은 평소 안정감이 떨어진다고 평가 받은 드라이버로 티샷을 하였다[22]. 티샷은 푸시 슬라이스가 나며 보기 좋게 좌측으로 밀렸는데 하필이면 18번홀은 페어웨이 양쪽으로 울창하고 높은 나무숲들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가볍게 레이업[23]을 해서 파를 노렸어도 되는데 미켈슨의 결정은, 나무를 뛰어 넘어 그린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친 세컷샷은 보기 좋게 나무에 걸려 30여미터를 채 못갔고 여기서 친 서드샷은 그린 옆 벙커로, 그리고 벙커샷이 너무 길게 가면서 최소 연장을 가기 위한 마지막 퍼트 조차 쉽지 않은 곳에 공이 떨어졌다. 결국 마지막 퍼트 조차 홀을 지나쳤고, 최종 미켈슨의 준우승 확정. 18번홀을 어렵게 파로 마친 호주의 제프 오길비가 US Open 챔피언이 되었다.
I'm such an idiot.[24] |
2007년 4월 오랜 스윙 코치 인 릭 스미스와 결별한 미켈슨은, 타이거 우즈와 그랙 노먼의 전 코치였던 부치 하먼과 손을 잡았다.[25][26] 다시 승수를 쌓아 올리기 시작한 미켈슨은 2009년 봄까지 7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2009년 5월, 아내인 에이미가 청천벽력 같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투어를 중단한 미켈슨은 비록 2009년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도 하였지만 전반적으로 경기력이 좋지 않았고 뒤이어 어머니도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어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 선수로써 보자면 이 때가 매우 아쉽기도 했는데, 왜냐면 본인의 '1위'라는 타이틀에 가장 큰 벽이었던 타이거 우즈가 '섹스 스캔들'로 인해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즈로 인해 세계 랭킹 1위는 물론, 상금 타이틀 1위도 못 받아 봤기 때문에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었으나 가족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그런 걸 아쉬워할 여유 조차 없었을 것이다. 2010년 4월, 마스터즈에 등장한 필 미켈슨은 본인 커리어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우승[27]을, 그리고 커리어 최고의 샷을 때렸다.
The Shot |
나무와 나무 사이 약 5피트 정도의 공간이 있었고, 나무 밑둥에 공이 떠 있어 때려내기 어렵지 않았으며 187야드는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자신의 승부욕을 발동시켜 과감히 승부를 보기로 한 것. 2006년 US Open에서의 실패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과감한 모험이겠지만 미켈슨은 시도했고, 성공한다.[28]
감동적인 우승의 마지막. 아내 에이미와의 키스. |
미켈슨 다운, 59타 달성 실패의 모습. |
이 후 미켈슨은 6월에 있은 US Open에 도전, 최종일을 챔피언조로 스타트 하며 5번의 준우승을 종식시키고 드디어 우승을 기대했지만, 퍼트 난조[30]와 영국의 저스틴 로즈의 분전에 막혀 통산 6번째 준우승에 머무고 만다. 딸의 졸업식에 참여하느라 연습도 제대로 못 하고, 첫 라운드 당일 새벽에 비행기로 도착하는 등 컨디션이 저조한 상태에서 멋진 모습은 보였으나 결국엔 눈물을 흘렸다. 이 때문에 거의 한 달 간 우울한 일상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한 달 뒤 유럽으로 여정을 떠난 미켈슨은 감동적이고 역사적인 업적을 남기게 된다.
2013년 7월 14일에 열린 에버딘에셋 스코티쉬 오픈에서, 최종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거머쥔다. 미국 위주로 활약하며 유럽에서 플레이 경험이 적은 미켈슨에게 유럽에서의 우승은 2007년 이후 6년 만. 원래는 쉽게 우승을 할 수 있었으나 18번 홀에서 연이은 숏게임 실패로 어이 없이 보기를 범하며 2위였던 남아공의 브랜든 그레이스에게 연장전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하지만 관록의 미켈슨은 1차 연장전에서 귀신 같은 숏게임으로 버디를 따내며 우승을 결정 지었다.
숏 게임의 귀신 |
그리고, 여세를 몰아 그 다음 주에 열린 디 오픈에서 커리어 첫 우승을 달성하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 US Open 하나 만을 남겨 놓았다.
본래 미국 위주에서 플레이 해 왔던 미켈슨에게 영국 - 스코틀랜드 지역에서의 골프는 너무나 힘들었다. 기상 변화가 심하고 바람의 영향력이 강해서 미켈슨의 플레이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평도 많았고, 실제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 실제 디 오픈에서의 성적도 2004년 3위, 2011년 2위를 제외하면 거의 하위권 혹은 컷 탈락으로 고전해 왔다.
하지만 스코티쉬 오픈에서 바람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미켈슨은 꾸준한 경기력을 보였고, 마침내 최종일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며[31] 3타차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 날의 경기력은 영상으로 감상하는 것이 제일 좋을 듯 하다.
골프 인생의 정점에 올라서다. 디 오픈 우승 하이라이트 |
2.2.3. 2014년~2017년
2013년 디 오픈 우승 이후 2017년까지 우승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토록 우승 가뭄이 심했던 적은 프로 입문 후 최초다. 나이가 든 탓도 있고, 워낙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탁월한 탓도 있지만 준우승은 꾸준히 했다. 특히 2014년 PGA 챔피언십에서 리키 파울러와 한 조로 경기하며 최고의 경기력을 보였으나 기적 같은 이글로 전세를 뒤집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로리 맥일로이에게 메이저 타이틀을 넘겨 준 경기. 그리고 17언더라는, 여느 때라면 메이저 타이틀을 타고도 남았을 경기를 보였음에도 압권의 기량으로 버디를 양산하며 20언더를 기록한 헨릭 스탠손이 빛났던 2016년 디 오픈 경기는 준우승을 하고도 우승자 못잖은 각광을 받았을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었다.2016년부터는 지금까지의 스윙 코치였던 부치 하먼과의 결별을 택하였고, 빌 클린턴의 개인 교습가이기도 했던 호주 출신의 젊은 지도자 앤드류 겟슨과 손을 잡았다. 시합 도중 가끔씩 일어나는 스윙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였고 전반적으로 안정된 경기력을 보여주며 새로운 교습가와 호흡이 잘 맞고 있음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16년 10월 탈장 수술을 받았는데, 12월에 재수술을 받는 것이 결정되어 2016-17 시즌 PGA 투어 참석은 다소 미뤄질 전망이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위해 US Open의 우승이 꼭 필요하지만, 공교롭게 17년 해당 대회 바로 전날 본인 딸의 졸업식이 있어 불참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비가 와서 대회 일정이 딜레이된다면 극적으로 참여 가능하지만, 만약 날씨가 좋다면 아쉽지만 딸의 졸업식 참여를 위해 대회를 불참한다고. 가족적인 평소의 그의 인품 대로이지만, 욕심은 나는지 마지막 날까지 참가 신청 취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일정이 맞지 않아 US Open 참가는 취소 하였다. 커리어 그랜드 슬램도 중요하지만 가족 행사가 가진 의미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유러피언 투어 '에버딘 에셋 스코티시 오픈'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본인이 2013년 해당 대회와 The Open Championship을 연달아 우승하면서 많은 선수들이 본 대회의 참가가 늘었고 그런 경향을 리드한 셈이었는데, 매년 바뀌는 링크스 골프장에 따라가는 것도 벅차고 2개 대회를 계속 뛰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앞으로는 The Open Championship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The Open Championship에서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파 70으로 진행된 본 대회에서 미켈슨은 첫 날 3오버를 치더니 날씨가 안 좋았던 둘째 날에는 7오버를 치며 컷 탈락했다.
특히 첫 날은 아이언 샷 그린적중률 33.33%이라는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해당 대회에서는 98년 이래 처음으로 노 버디 라운드를 기록했을 정도로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당시 경기력으로는 가을에 있을 '프레지던트 컵'에 미국 대표로 자력 참가가 어려울 전망이다. 캡틴 추천으로 2명을 뽑을 수 있으니 이 부분에서 가능성은 있겠으나 2016년 라이더컵도 그렇게 뽑힌 바 있기 때문에 여론상 참여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2017년 프레지던트컵 캡틴인 스티브 스트리커는 "기록만으로 볼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미켈슨의 경험과 투쟁심은 미국에 승리를 안겨 줄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필을 '캡틴 지정 선수'로 선발해 주었다. 그리고 이에 부응하듯 3경기에 출전 포볼/포섬/싱글 경기 모두 승리하며 미국에 3승(1무)을 안겨 주었고, 팀의 8회 연속 우승을 견인하였다.
2.2.4. 2018년
부상 치료 등으로 바쁘게 겨울 시즌을 보낸 뒤 맞이한 18년 시즌은 타이거 우즈가 완전 복귀를 선언한 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좋은 경기력을 보여 주었다. 첫 대회인 '커리어 빌더 챌린지' 컷 탈락 - '파머스 인슈어런스'에서는 공동 45위에 그쳤으나 '웨이스트 매니지먼트'에서는 공동 5위를 하더니 그 다음 출전 대회인 'AT&T 페블비치 내셔널 프로암'에서는 공동 2위의 성적을 올린 것. 특히 AT&T에서는 3라운드를 이븐으로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우승의 가능성도 높았을 정도로 안정된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보여 주어 5년 만의 투어 우승도 노려볼 만한 컨디션이라는 평가다.2월 중순에 열린 '제네시스 오픈'에 출전, 8언더를 치며 최종 6위를 기록 또 다시 TOP 10의 성적을 올렸다. 그렇게 계속 상승세를 기록하더니 18년 3월, 급기야 사고를 쳤다. 멕시코에서 열린 WGC 대회에서, 16언더파의 성적으로 상종가를 기록 중 '영건' 저스틴 토머스와의 연장전 대결에서 승리하며 2013년 The Open 이후 무려 4년 7개월 만에 정상 등극을 한 것. 동생과 호흡을 맞춘 이래 첫 승리이며, 2009년 캐딜락 챔피언십 우승 이후 9년 만의 WGC 대회 우승이기도 하다. WGC 역사상 최고령 우승자라는 타이틀은 덤이다.
도합 7회의 Masters Tournament 우승자인 이들의 콜라보는 1998년 LA오픈 이후 무려 20년 만의 진기한 광경으로, 로리 맥길로이와 같은 현역 대스타들 조차 "둘이 연습 라운드를 하다니... 여전히 꿈만 같다. 왠지 뭉클하다."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18년도 들어 좋은 경기력 끝에 4년 만의 우승을 거머 쥔 필과 부상을 떨치고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타이거 모두 '오거스타 주인공'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 같은 연습 라운드에서의 이벤트로 미 전역이 들끓고 있다.
Masters Tournament 첫 날은 2언더파를 기록하며 상위권에 위치, 깔끔한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2라운드 이후로는 경기력이 흔들리며 타수를 잃었으며 3라운드 때는 트러블샷을 처리하다가 헛스윙을 하는 진기도 선보였다. 최종일 5언더파를 쳐 내긴 했지만 이미 시기적으로 늦었고 결과적으로 2오버파 공동 36위로 대회를 끝마치게 되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꿈을 목표로 출전한 U.S Open에서는 첫 날부터 7오버파를 치며 일찌감치 꿈을 접더니, 3라운드에서는 말도 안 되는 기행을 저질러 구설수에 올랐다.
13번 홀 내리막 라이에서 퍼팅을 했는데 볼이 내리막을 타면서 예상보다 한참을 굴러가고 말았다. 볼이 멈추기 전에는 건들 수 없다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생각인지 필은 흘러가는 공을 따라가서 홀을 향해 다시 볼을 때렸고
9월 28일부터 3일간 프랑스에서 개최된 '2018 Ryder Cup'에 참가, 미국의 자존심을 걸고 대결했으나 결과는 필에게도 미국에게도 좋지 않았다. 17과 1/2 대 10과 1/2의 성적으로 완패. 필의 경우, 보궐 멤버인데다가 고령이어서 금요일의 포섬과 최종일 싱글 매치에 나갔는데 2경기 모두 패배하며 완패에 일조했다. 다행(?)인 건, 4경기를 나간 타이거 우즈가 싱글, 포섬, 포볼 모두에서 패배하며 4패를 기록했고 이로 인해 단장이었던 '짐 퓨릭'과 함께 가장 많이 매스컴에 등장하며 뭍힌 것이다. 이로 인해 필의 라이더컵 통산 성적은 18승 22패 7무가 되었다. 2018-19 시즌 경기로 오픈한 'Safeway Open'에 출전, 8언더파의 성적으로 공동 17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11월, 전 세계 골프팬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 시킨 'The Match: Tiger vs. Phil'이 열리게 된다.
2.2.4.1. The Match: Tiger vs. Phil
승자 독식의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별도로 홀 당 내기도 진행하는 등 '상금이 걸리긴 했으나 친선 경기의 분위기'였던 이벤트는 시종일관 불타 올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니 타이거의 극적인 17번 칩인 성공으로 연장으로 접어 들었고 파3에서의 4번에 걸친 연장전 끝에 필이 승리하였다. 당초 도박사 예상에서는 타이거의 승리가 유력시 되었으나 필이 전반적으로 경기를 리드한 끝에 어렵게 승리한 것.
심지어 홀 당 내기에서도 필이 60만 달러, 타이거가 20만 달러를 획득하며 필이 완승하였다.[34]
2.2.5. 2019년
4년 7개월 만의 우승, 타이거와의 이벤트 경기에서 승리하는 등 기억에 남을 만한 2018년을 보낸 필은, 19년의 첫 대회를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데저트 클래식'으로 잡았다. 1라운드에서 12언더파, 60타의 성적으로 쾌조의 출발을 하였으나 4라운드에서 약간 더딘 경기력을 보여 주었고 신인 '아담 롱'과 동타로 맞이한 18번 홀에서2월 8일부터 4일간 열리는 'AT&T 페블비치 프로암'에 출전하였다. 첫 날 1라운드에서 18홀을 플레이하며 페어웨이를 한번도 놓치지 않는 '기적'을 보여준다. 티샷이 불안정하기로 유명한 필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개인 골프 커리어에서 페어웨이 100% 기록은 처음"이라며 흥분했지만, PGA Tour에서 찾아본 기록에 의하면 무려 21년 전인 1998년 모 대회에서 달성을 한 바는 있다고 한다. 첫 날부터 안정된 성적을 보인 미컬슨은, 3타차 2위로 출발한 마지막 라운드에서 16번홀까지 6타를 줄이는 경기력으로 우승을 눈 앞에 두었으나 '일몰'로 인해 나머지 2홀을 이튿날 치르게 되었다. 2위와 3타자이기에 파만 기록해도 문제 없이 우승할 전망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치러진 나머지 2홀에서 모두 버디 찬스를 만들만큼 완벽한 샷을 보였고 18번홀에서 버디를 기록, 최종 19언더파로 통산 44승째를 확정 지었다. 해당 대회 통산 5번째(1998, 2005, 2007, 2012, 2019) 우승을 달성했다. 우승 이후로는 3번의 TOP 40와 2번의 컷 탈락을 기록했다. 그리고 통산 4회 우승을 목표로 출전한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Masters Tournament에 출전하여 1라운드 5언더파의 성적으로 2위를 기록하며 우승 가능성을 높였으나 2~4라운드의 평범한 경기력으로 최종 공동 18위에 자리했다.
3. 플레이 스타일
간단히 말하자면, '핀'만 보고 쏘는 스타일이다. 매우 공격적이고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찬스가 나면 여전히 '핀'을 향해 공격하는 선수이다. 이 때문에 "미친 쇼맨십의 왼손잡이 골퍼"라는 비평부터 "트러블 샷의 황제"라는 호평까지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창의적인 샷으로 유명한데, 트러블 상황이 잦은 편이기 때문에 창의적이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성과를 올렸을리 없다.[35]그의 플레이가 집대성 되어 있는 아래 영상을 감상해 보자.
필 미켈슨 PGA 투어 베스트샷 TOP 10 |
필 미켈슨 PGA 투어 트러블샷 TOP 10 |
드라이버는 300야드를 날리지만, 이 분야 업계의 톱 수준은 아니고, 우드 - 아이언의 정확도도 괜찮으나 최고 수준은 아니다. 다만, 타이거 우즈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정확히 볼 스트라이킹을 하여 최소한의 성과는 거두며 이로 인해 깊은 러프로 빠진 드라이버샷을 환상적인 리커버리 샷[36]으로 핀 근처로 올려 버리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물론 물에 빠지거나 OB 수준의 처참한 실패도 있다.
진정한 강점은 그린 주변의 플레이로, 벙커부터 온갖 숏 게임에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안다. 이 때문에 붙은 별칭은 '숏 게임의 마술사'. 퍼팅도 시즌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괜찮은 편. 흔히들 '필 미켈슨 퍼터'라고 불리는 오디세이 제품을 쓰는데 구스 넥 혹은 거위목
퍼팅 스타일은 꽤 독특한 편으로, 퍼터 그립을 쥔 우측 손목을 목표를 향해 살짝 꺾은 뒤 바로 터치에 들어가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
골프 스윙 자체는 리드미컬하고, 시원시원한 풀 스윙 스타일로 과거에는 클래식 스타일처럼 백스윙 시 오른발 토우를 살짝 들어 올렸으나 지금은 이 부분은 현대식으로 바꾸어 플레이 중이다.
필 미켈슨의 드라이버 |
4. 우승 경력
- 메이저 우승은 볼드 처리
- 2019년 현재 PGA 통산 45승, WGC 2승, 유러피언 2승 등 전 세계 투어 통산 52승 기록 중
1991 PGA 투어 Northern Telecom Open[37]
1993 PGA 투어 뷰익 인비테이셔널
1993 PGA 투어 The International
1994 PGA 투어 Mercedes Championships
1995 PGA 투어 Northern Telecom Open
1996 PGA 투어 노텔 오픈
1996 PGA 투어 피닉스 오픈
1996 PGA 투어 GTE 바이런 넬슨 골프 클래식
1996 PGA 투어 NEC World Series of Golf
1997 PGA 투어 Bay Hill Invitational
1997 PGA 투어 스프린트 인터내셔널
1998 PGA 투어 Mercedes Championships
1998 PGA 투어 AT&T Pebble Beach National Pro-Am
2000 PGA 투어 뷰익 인비테이셔널
2000 PGA 투어 BellSouth Classic
2000 PGA 투어 MasterCard Colonial
2000 PGA 투어 The Tour Championship
2001 PGA 투어 뷰익 인비테이셔널
2001 PGA 투어 Canon Greater Hartford Open
2002 PGA 투어 밥 호프 - 크라이슬러 클래식
2002 PGA 투어 Canon Greater Hartford Open
2004 PGA 투어 밥 호프 - 크라이슬러 클래식
2004 PGA 투어 Masters Tournament
2005 PGA 투어 FBR Open
2005 PGA 투어 AT&T Pebble Beach National Pro-Am
2005 PGA 투어 BellSouth Classic
2005 PGA 투어 PGA Championship
2006 PGA 투어 BellSouth Classic
2006 PGA 투어 Masters Tournament
2007 PGA 투어 AT&T Pebble Beach National Pro-Am
2007 PGA 투어 The Players Championship
2007 PGA 투어 도이체방크 챔피언십
2007 유러피언 투어 HSBC 챔피언십
2008 PGA 투어 노던 트러스트 오픈
2008 PGA 투어 Crowne Plaza Invitational at Colonial
2009 PGA 투어 Northern Trust Open
2009 WGC[38] CA Championship
2009 PGA 투어 The Tour Championship
2009 WGC HSBC 챔피언십
2010 PGA 투어 Masters Tournament
2011 PGA 투어 Shell Houston Open
2012 PGA 투어 AT&T Pebble Beach National Pro-Am
2013 PGA 투어 피닉스 오픈
2013 유러피언 투어 에버딘 에셋 매니지먼트 스코티쉬 오픈
2013 PGA 투어 The Open Championship
2018 WGC 멕시코 챔피언십[39]
2019 PGA 투어 AT&T Pebble Beach National Pro-Am
2021 PGA 투어 PGA Championship
5. 상금 및 순위
• 1992년: $171,714(90위)• 1993년: $628,735(22위)
• 1994년: $748,316(15위)
• 1995년: $655,777(28위)
• 1996년: $1,697,799(2위)
• 1997년: $1,225,390(11위)
• 1998년: $1,837,246(6위)
• 1999년: $1,722,681(14위)
• 2000년: $4,746,457(2위)
• 2001년: $4,403,833(2위)
• 2002년: $4,311,971(2위)
• 2003년: $1,623,137(38위)
• 2004년: $5,784,823(3위)
• 2005년: $5,699,605(3위)
• 2006년: $4,256,505(6위)
• 2007년: $5,819,988(2위)
• 2008년: $5,118,875(3위)
• 2009년: $5,332,755(3위)
• 2010년: $3,821,733(6위)
• 2011년: $3,763,488(12위)
• 2012년: $4,203,821(8위)
• 2013년: $5,495,793(4위)
• 2014년: $2,158,019(38위)
• 2015년: $2,154,200(38위)
• 2016년: $4,022,628(12위)
• 2017년: $2,102,599(45위)
• 2018년: $4,595,187(13위)
• 2019년: $2,293,980(165위, 현재)
6. 기타
- 캐디는 데뷔 이래 2017년 6월까지 한 명이 전담해주었다. 이름은 짐 '본즈' 맥케이,로 데뷔 시즌인 1993년도 부터 미켈슨의 캐디로 고용되어 미켈슨의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곁에 있다. 미켈슨 못지 않은 장신의 소유자이고, 매우 좋은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PGA 투어 역사에 남을 최고의 캐디 중 하나임에도 구설수가 적으며 다른 선수들 혹은 갤러리와의 충돌도 거의 없었다. 결별하고도 둘은 여전히 좋은 사이로 남아 있다.
파일:external/image.ajunews.com/20160715081244536788.jpg
- 팁에 매우 후하며 이 때문에 투어 내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실제 경기 전에 있는 프로암이나 연습 라운드 때 동료 선수나 친분이 있는 클라이언트 등과도 가볍게 돈 내기를 하며 게임을 한다. NFL 슈퍼볼 우승팀 알아맞히기로 50만 달러를 번 바가 있는 등 평소에도 도박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 타이거 우즈와는 그다지 나쁜 관계는 아니었으나 '라이더컵' 역사에 남을 2004년 라이더컵 실패를 시작[40][41][42][43]으로 껄끄러웠던 관계가 되었다. 서로 디스하는 사이라기 보다는 적당히 상대의 위치는 인정하 되, 나와 맞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 정도. 하지만 우즈가 연이은 부상으로 투어에서 멀어져 있었고 복귀 설이 날 때 마다 가장 반겨 했던 것이 미켈슨이었던 만큼 속내는 서로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시선도 있다. 16년도 라이더컵에서 우즈는 부단장으로 활약하였는데 선수로 뛴 미켈슨과 함께 종종 대화 하며 좋은 분위기를 보여 주곤 하였다. 이 분위기를 이어가 2018년도 Masters Tournament 본선을 앞두고 진행된 연습 라운드에서 둘은 20년 만의 연습 라운드 파트너로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2009년 투어 챔피언십에서 최종 대회 우승자 미켈슨. 통합 챔피언 우즈와 함께.
- 미국 vs 유럽 간, 2년에 한번씩 미국과 유럽 대륙을 오가며 치러지는 지상 최대의 골프 축제 '라이더 컵'에는 1995년 이래 11회 연속(즉, 22년 연속) 참가 중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골퍼 닉 팔도와 함께 이 부분 역대 1위. 꾸준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만큼 18년도 대회에 참가할 경우 팔도를 제치고 홀로 이 부분의 기록자가 될 수 있다.
포섬 팀 동료인 키건 브래들리와 함께 라이더 컵 경기 중의 모습
- 출전 기록 이외에도, 통산 1위의 매치 횟수, 통산 3위의 포인트, 통산 4위의 다승(18승)이지만 통산 1위의 다패(20패) 선수이기도 하다. 승률이 50%가 안 되어 명성 만큼의 성적을 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44] 14년도에 유럽에 패배한 뒤, 단장이었던 대 선배 톰 왓슨의 팀 운영에 대놓고 비난하여 이슈 몰이를 한 바 있다.[45]
- 미국과 인터내셔널팀[46]이 함께 플레이 하는 '프레지던츠 컵'[47]에서도 최다 출전자(11회)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17년도에도 캡틴 선발 멤버로 뽑혀 12회째 출전을 기록,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였다.
2015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 벙커샷을 홀인 시킨 뒤 환호하는 미켈슨
- 2016년에는 내부 정보로 주식을 거래해 거액의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고, 결국 부당이득 전액을 반납하기로 합의하면서 기소되지 않는 신분을 보장 받았다. 주식거래법을 위반 한 것은 아니고 해당 업계의 지인들과 얽히면서 있었던 일이지만 도덕적으로 본인 커리어에 금이 간 것은 사실이었다. 이 내용은 기사로도 나왔다.
- 2017년 6월, US Open이 끝난 뒤 '25년 호흡'을 자랑했던 캐디 짐 '본즈' 맥케이와 결별을 발표, PGA 투어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맥케이의 '무릎' 때문인 듯.[48] 타이거 우즈 & 스티브 윌리암스가 헤어진 뒤 험담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일방적으로 스티브 쪽이... 그래서 욕도 제일 많이 먹는다.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해준 역할에 대해 칭송하며 아름답게 지금까지 함께 했던 커리어를 마무리 지었다.
- 당분간 필은 동생인 팀 미컬슨을 동행하기로 하였고, 맥케이는 캐디 은퇴가 아닌 잠시 휴식 후 앞으로의 계획을 검토한다고 발표하였다.
- 2017년 7월 초에 열린 그린브라이어 클래식에 동생을 대동하고 나와 3언더파로 선전하였다. “캐디 교체와 같은 변화는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동생과 함께 이번 대회에서도 즐거운 경기를 했다.”고 이야기했다.
- 2022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출범하려던 슈퍼골프리그 LIV 옹호하면서 PGA를 맹렬히 비난했고, 이 과정에서 투어의 동료들과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선수생활의 위기를 맞이했고 오랜 기간 서포트를 해준 스폰서들이 떠나고 투어 일정을 잠정 취소하고 자숙에 들어가는 등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이었으나, 2023년 마스터스에서 공동 2위 메이저 대회 최고령 Top 5 기록을 세웠다. 52세 10개월.
- 대회 끝나고 매주 36시간 단식하는 걸로 유명하다. 매년 3일 단식, 6일 단식도 한다. 단식과 근력 운동으로 50세 이후에 최고령 메이저 우승, Top 5 기록을 세웠다.
[1] 본문에도 나와있지만 타이거 우즈 때문이기도 하고, 본인의 운도 없었다.[2] 메이저 준우승은 총 11회로 역대 1위인 19회에 잭 니클라우스에 이어 2위이다.[3] 우승당시 나이가 50년 11개월 7일로 역대 최고령 메이저 우승 기록을 달성했다.[4] 2023년 현재[5] 투어 올 타임 9위.[6] 이벤트 대회 등[7] 최고의 대학 선수에게 주어 지는 상이다.[8] 하지만 2022년 초,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개최하려는 슈퍼리그 옹호를 위해 PGA 투어를 대차게 비난했다가 역풍을 맞았고, 그 여파로 모든 스폰서가 후원을 중단한 상태이다.[9] 여느 때였으면 우승을 하고도 남을 스코어로 2위를 차지한 2016년 디 오픈의 결과를 두고 한 말이지만, 동시에 필의 프로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봐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 표현이다.[10]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마스터즈 역대 최고의 샷 중 하나로 꼽히는 2010년 마스터스 4라운드 13번 파5홀에서 보여준 세컨샷은, 위의 철학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11] 얼핏 앞뒤가 맞지 않는 듯 하지만, 필의 이력을 보노라면 수긍할 듯. 실력과 운, 모든 것을 통틀어 2인자의 대표이다.[12] 매스컴 등에서 필을 이렇게 부른다. 왼손 골퍼가 흔치 않지만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닌데, Lefty라 칭하면 누구나 필을 떠올릴 정도로 그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심지어 타 종목과 관련이 되어서도 가장 대표적인 왼손 운동 선수 중 하나로 꼽힐 정도이다.[13] 현역이지만 2011년 당시 전당 입회 가능 기준이었던 '만 40세'를 넘겼기에 입회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14] 2018년 3월 현재. 18년 3월 8일자 헤럴드경제 기사 참조.[15] 하지만 부수 수익의 총합으로도 골프 한정이며, 타이거 우즈 다음으로 2위이다.[16] 마스터즈에서 컷을 통과한 아마추어 중 최저타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 총 6명이 2017년 현재 프로 우승과 실버 컵을 함께 손에 넣었는데 필 포함, 잭 니클라우스 - 타이거 우즈 등이 있다.[17] 퀄리파잉 스쿨. 아마추어나 하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1부 투어를 뛰기 위한 자격을 얻는 무대. 거의 1주일 가까이에 걸쳐 진행이 되며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기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기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적자생존의 프로 무대에서 실력이 밀리는 선수에게는 어쩔 수 없이 들이 닥치게 되는 운명같은 존재. LPGA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나 PGA 투어는 2010년대 들어와 이를 폐지, 2부 / 3부 투어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18] 무리한 스윙으로 왼쪽 무릎이 맛이 간 타이거 우즈가 핸디캡을 이기고 18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상대를 꺾고 우승한 대회. 이 여파로 타이거는 시즌의 나머지 대회를 모두 포기하고 재활에 돌입했다.[19] 비행기 내 기압 문제로 인한 사고였다.[20] 진지하게 고향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야구 선수로써의 새 삶을 꿈꾸기도 했다.[21] 본인 홈페이지에도 떠 있는 이미지로, 여러 번 패러디 된 바 있는 유명한 액션이다.[22] 아무래도 중압감이 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드로 티샷을 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평가가 있다. 물론 다 지난 일이라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은 없다.[23] 트러블 상황에 빠졌을 때 위기를 벗어 나기 위해 하는 샷으로, 다음 샷을 깔끔히 진행하기 위해 치기 좋은 곳으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24] 우승 실패 뒤 인터뷰에 남긴 멘트로, 이 후 미켈슨의 지나친 모험샷에 의한 실패가 생기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따라 붙는 문구가 되었다.[25] 부치 하먼과 훈련하며 무수히 많은 영광을 누린 타이거 우즈는, 이 때 이미 2번째 스윙 코치인 행크 헤이니와 함께 였다.[26] 그리고 상당히 뚱뚱해지면서 중년 아저씨 같은 포스를 뽐내던 미켈슨이 근력 운동으로 적절한 몸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27] 아마도 가장 위대한 우승은 21년도 PGA Championship 일 것이다.[28] 1m 안으로 붙이며 이글 찬스를 만들었다. 물론 퍼트 실패로 버디에 그친 것은 함정.[29] 현재 기록은 짐 퓨릭이 16년도에 기록한 18홀 기준 파70에서 기록한 58타이며 파72 기준으로는 여전히 59타가 기록이다. 미켈슨이 도전했던 시점에선 59타를 기록한 선수가 역사상 5명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많은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짐 퓨릭은 13년도 후반 59타를 기록하며 6번째 멤버가 되었다.[30] 경기 초반 숏 퍼트 몇 개를 아쉽게 놓쳤다.[31] 특히 후반 9홀의 경기력은 압권이었다.[32] 우승자가 4라운드 도함 1오버파 우승을 할 정도로 어려운 코스 셋팅이었다.[33] 한화 약 100억원[34] 내기에서 얻은 합산액수 80만 달러는 자선 단체에 기부하였다.[35] 불안한 라이와 공의 위치 때문에 볼 스트라이킹 능력이 좋지 않으면 안되며, 상황 판단 능력 + 상상한 샷을 구사하기 위한 정확한 클럽 선정 등 다양한 능력과 경험이 없으면 쉽지 않다. 아마추어 골퍼들도 거의 매 홀이 트러블 상황에서의 샷인데, 미켈슨의 경기는 그런 점에서 공부가 된다. 프로치고는 트러블 샷 상황이 너무 많다.[36] 보통 아이언이 담당한다[37] 아마추어 신분으로 달성한 우승[38] 월드골프챔피언십. PGA - 유러피언 - 아시안투어 등 세계 상위권자들만이 겨루는 대회. 연간 총 4회의 대회를 치르며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과 함께, 메이저대회 다음 가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39] 4년 7개월 만의 우승으로, 본인 커리어에서 가장 우승 갈증이 심했던 기간이다.[40] 당시 단장이었던 할 서튼이 세계 1, 2위였던 우즈와 미켈슨을 포섬 매치의 짝으로 지었으나 상대 유럽 팀에 대패를 하였다. 전체적으로는 미켈슨의 샷이 심하게 흔들렸던 탓인데, 팀에서 제일 골프 잘하는 2명의 패배로 인해 팀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사실이다.[41] 할 서튼이 너무 갑작스럽게 둘을 팀으로 묶었다. 사용하는 볼이 다르고 감각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경기 이틀 전에야 이를 통보 받음으로써 호흡을 맞출 일이 없었고 이로 인해 대패 하면서 할 서튼을 비롯한 2004년 미국 대표팀은 속된 말로 미국 골프팬들의 비난을 온 몸으로 받아 내었어야 했다.[42] 더욱이 미켈슨은 기존에 사용하였던 타이틀리스트 클럽과 볼을, 이 시점부터 캘러웨이의 클럽과 볼로 바꾸었고 결과도 좋지 않게 나오면서 "이제 메이저 우승을 따내며 뒤늦게 명성에 걸맞은 활약을 하나 싶었는데.."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43] 2016년 라이더컵에서 미켈슨은, 단장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다가 본의 아니게 할 서튼을 비난하여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물론 미켈슨이 바로 사과하면서 내용은 정리.[44] 그래도 13승 17패의 타이거 우즈 보다는 나으며, 10승 20패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 짐 퓨릭 보다도 낫다. 이 둘 때문에 그나마 미켈슨은 욕을 덜 먹는 편[45] 하지만 이 덕분에, 16년 대회를 앞두고는 참가 선수들의 본격적인 의견 개진을 통한 팀 운영이 가능했다. 그 전까지는 단장의 단독적인 지휘 하에 움직였는데 이 부분이 유럽 팀에 비해 2000년대 이후 열세라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 유럽이 오히려 하나의 국가 같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선수 간 호흡이 좋았다.[46] 아시아 + 호주 + 남아프리카 등, 미국과 유럽이 아닌 기타 지역[47] 2015년에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개최된 바 있다. 현재까지 11회의 대회 중 9승 1무 1패로 미국이 압승 중. 17년에도 승리하여 10승 1무 1패가 되었다.[48] 캐디가 지는 짐의 무게가 꽤 되는데, 선수와 함께 계속 걷고 하는 것을 20년 넘게 했으니 무릎에 탈이 안 날 순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