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3 04:18:40

포드-파이어스톤 타이어 리콜 사태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발단3. 전개4. 사고 원인5. 결과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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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드-파이어스톤 타이어 리콜 사태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와 타이어 제조사 파이어스톤 간에 일어난 사태로 271명이 사망하고 800여 명이 부상을 입는 사태로 촉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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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발단

원래 포드와 파이어스톤은 창립자 헨리 포드와 하비 새뮤얼 파이어스톤이 서로 절친한 관계였기 때문에[1] 10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협업했다.

그러던 중 1996년 초에 파이어스톤의 타이어 일부가 고속에서 트레드가 분리되면서 사고를 유발하는 것에 대한 정보가 변호사들 사이에서 퍼져 갔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NHTSA에 제출하기를 꺼렸다. 이후 애리조나 주 정부에서 파이어스톤에 고온에서 타이어 트레드가 분리되는 것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고, 이를 확인한 파이어스톤은 엔지니어를 보내서 '일반 타이어가 고하중/오프로드/비포장로 등의 가혹조건에서 사용되고 있다'라는 결론을 내려 타이어를 슈퍼 듀티급에 쓰이는 것으로 교체하기로 결론내렸다. 한편으로 파이어스톤의 내부 문건상으로는 ATX/ATX II/Wilderness AT 타이어 3종류에서 부상 사고가 늘어나고 있음을 파이어스톤 회사 차원에서도 인지하였다.#

3. 전개

1998년 7월 스테이트 팜 인슈어런스의 연구원 새뮤얼 보이든은 손해보험 회사로부터 파이어스톤 타이어의 트레드 분리로 인한 사고 자료를 정리해 달라는 요청으로 사고 21건을 찾아 NHTSA에 제출했다. 한편으로 Strategic Safety Consulting의 연구원 션 케인은 포드가 1998년부터 베네수엘라에서 파이어스톤 타이어를 교환해 주고 있다는 자료를 찾아 조사했으며, 사망사고 46건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등 중동의 포드 딜러들 역시 파이어스톤 타이어가 장착된 2세대 포드 익스플로러의 문제점을 알아챘고, 이에 아직 팔리지 않은 차량들의 타이어는 교체하고 정비를 위해 찾아온 고객들에게는 할인된 가격에 새로운 타이어를 교환해 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결국 파이어스톤은 중동/베네수엘라/말레이시아/태국 등지에서 타이어를 조사하고 한정적으로 리콜했으나 정작 NHTSA에는 이를 통지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텍사스의 KHOU-TV에서 파이어스톤 타이어를 장착한 포드 익스플로러에서 일어난 사망사고 31건을 9분짜리 영상으로 다루면서 크게 이슈가 되었다. 시청자들의 전화 공세에 시달린 KHOU는 그들과 NHTSA를 연결해주었고, 이에 NHTSA는 2000년 3월 6일 예비 조사를 실시한 데 이어 5월 2일에 일리노이 주 디케이터 지역에서 생산되던 ATX, ATX II 시리즈, 와일더니스 AT 타이어를 적용한 머큐리 마운티니어포드 익스플로러, 그리고 이 타이어를 장착한 여타 차량에서[2] 고온 지역의 바퀴 빠짐 현상으로 인해 전복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고 규명했다.

그러나 파이어스톤은 이 문제점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소비자 탓으로 돌리는 등 책임을 회피했고, 결국 포드와 파이어스톤이 서로의 책임을 주장하면서 법정 싸움에 들어갔다. 포드에서는 파이어스톤을 타이어 때문에 이 사단이 일어났다고 주장해 고소하였고, 파이어스톤 역시 포드 익스플로러와 그보다 조금 더 가벼웠던 포드 레인저의 사고율을 비교하면서 차량에 알맞지 않은 타이어를 쓴 것과[3] 익스플로러 자체가 타이어 이탈로 인한 전복 사고에 취약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맞불을 놓았다. 물론 포드도 굳이어 타이어를 쓴 익스플로러와 파이어스톤 타이어를 쓴 익스플로러의 사고율을 비교하면서 익스플로러의 설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반발했다.

4. 사고 원인

사고 원인의 공통점으로는 타이어 외부의 트레드가 타이어 본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지적되었다.
  • 타이어 노후화
  • 제조 문제
  • 온도
  • 타이어 형상

5. 결과

이로 인해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된 파이어스톤 타이어 약 1300만 개에 대한 리콜이 실시되었다. 리콜 비용, 배상금 등의 비용으로 포드는 약 5억 3천만 달러어치를, 파이어스톤은 16억 7천만 달러어치를 들여야 했고 파이어스톤의 모기업 브리지스톤은 구조조정으로 20억 달러를 사용했다. 이외에도 포드는 2001년에 55억 달러어치 손해를 보았고, 이로 인해 포드와 파이어스톤 간 약 95년 동안의 거래 관계는 완전히 청산되었다. 또한 이로 인해 미국 의회에서는 자동차 리콜 강화법이 제정되었고 타이어 공기압 측정 장치가 의무화되었다.

6. 여담

당시 경쟁 차량이던 뷰익 랑데뷰에서는 타이어 공기압 시스템을 옵션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홍역을 덜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도 2000년에 해당 차량들에 장착되었던 파이어스톤 타이어들의 교체가 이루어졌으나 당시 파이어스톤 타이어 제품은 전체 수입량의 5% 수준이었던지라 큰 파장은 없었다고 한다. #


[1] 헨리 포드가 모델 T를 만들었을 당시 타이어를 공급한 업체가 파이어스톤이었고, 포드와 파이어스톤의 창업주의 손자 윌리엄 클레이 포드 시니어와 손녀 마사 파이어스톤이 결혼해 사돈 관계를 맺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2] 마운티니어와 익스플로러 이외에도 포드 브롱코, 포드 레인저, 포드 F-시리즈, 마쓰다 B-시리즈, 마쓰다 나바호 등에 이 타이어가 들어갔었다.[3] 또한 당시 익스플로러, 마운티니어 등의 차량엔 26psi가 아닌 30psi의 공기압이 들어가는 게 맞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