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33년 2월 2일 프랑스 제3공화국 르망시에서 하녀 자매가 주인 모녀를 살해한 사건.2. 상세
1933년 2월 2일 오후 6시 30분 경, 르망의 은퇴한 변호사 르네 랑슬랭은 아내와 딸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갔다. 하지만 현관문은 굳게 잠겨서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랑슬랭 씨는 모녀가 먼저 외출한 줄 알고 약속 장소로 갔으나 둘을 만날 수는 없었다. 이후 그는 사위[1]와 함께 귀가했는데, 집은 어둡고 2층 하녀방에서만 불빛이 새어나왔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직감한 랑슬랭은 경찰에 신고한다.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은 집 뒤쪽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부인 레오니와 딸 준비에브의 시체가 거실에 나뒹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의 눈알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둘 다 얼굴이 못 알아볼 정도로 뭉개졌으며 두피가 벗겨지고, 귀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2]
경찰관들은 입주 하녀인 파팽 자매도 주인 모녀처럼 살해당했을 거라 짐작하고 하녀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크리스틴과 레아 파팽은 멀쩡히 살아있었다. 발견 당시 두 사람은 나이트가운을 입고 침대 위에 누운 상태였다. 그들은 범행 사실을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하되) 시인했으며 체포당할 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주인 모녀의 숨이 붙어있을 때 눈알을 뽑았다고 증언했다. 망치로 모녀의 머리를 때리고 부엌칼로 몸통과 다리를 베었고, 서로의 칼과 망치를 바꿔가며 몸을 난도질했다. 이후 두 사람은 범행을 숨기거나 현장으로부터 도망가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해당 사건은 당대 프랑스인의 관심을 단번에 불러일으켰다. 일단 살인 방식 자체도 매우 끔찍했지만, 살인자가 젊은 여성들이라는 사실, 비인간적인 노동 계급의 삶, 계급 전복 의식, 자매간의 근친상간, 모호한 살해 이유, 잔혹하기 짝이 없는 살해 방식 등등이 당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일단 파팽 자매의 가족사부터가 평범하진 않다. 아버지 귀스타브[3]와 어머니 클레망스는 일찍이 이혼했는데, 이유는 귀스타브가 장녀 에밀리아를 성폭행[4]하는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이후 장녀 에밀리아와 차녀 크리스틴은 보육원에, 막내인 레아는 친척집에 맡겨졌다.
에밀리아는 훗날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가족과 연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크리스틴과 레아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클레망스는 크리스틴이 수녀가 되지 못하게 막았고, 레아는 두 언니에 비해 다소 지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두 자매는 10대 중반부터 어머니 곁으로 돌아와 온 집안을 전전하며 가사노동을 했다. 그렇게 일해서 받은 돈은 모두 어머니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크리스틴과 레아는 랑슬랭 집안에 들어간 이후 하루 12~14시간 동안 가사 노동을 했다. 휴식 시간은 주말 반나절뿐이었다. 이런 가혹한 노동 조건은 당대 프랑스 식모들이 흔히 겪은 조건이었다. 자매는 랑슬랭 부인 말고는 소통하는 사람이 없었다. 외출해서 친구들을 사귀거나 이웃과 인사하는 일조차도 없었다. 랑슬랭 씨와 딸 준비에브도 이들과는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사람이라기보단 움직이는 가재도구로 취급되었으며, 자기들만의 좁은 세계에서만 소통을 했다.
부인은 우울증이 심해지자 파팽 자매를 자주 트집 잡아 학대했다. 결벽증이 있어 수시로 집안 먼지 체크를 하고, 일부러 물건을 떨어뜨린 후 눈앞에서 줍게 하기도 했다고. 범행 당일도 집안의 다리미가 고장났다는 보고를 들은 부인이 크리스틴을 두들겨 팼다. 이에 크리스틴이 준비에브[5]에게 달려들어 눈을 뽑고, 레아가 랑슬랭 부인에게 똑같은 짓을 저지르면서 끔찍한 학살이 시작되었다.
젊은 여성 두 명이 어떻게 맨손으로 다른 여성 두 명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눈을 뽑는 과정만 맨손으로 한 것이고 그 다음부턴 부엌에서 가져온 연장을 동원해 두 사람을 난자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하녀들은 하루종일 물과 연료, 청소 도구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막노동꾼이었기 때문에 근력이 상당히 좋았다.
3. 동기
자매의 범행 동기는 분명치 않다. 대부분의 증언은 크리스틴의 자백에서 나온 것이다. 레아는 크리스틴이 한 말을 똑같이 반복하기만 해서 증언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크리스틴은 “여주인들의 피부를 갖고 싶었다"고 증언하면서 집주인 가족에게 앙심을 품어 살해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덧붙였다.사건의 앞뒤 정황을 보면 파팽 자매가 랑슬랭 모녀를 살해할 동기가 다소 부족하긴 하다. 21세기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빼도 박도 못하게 파팽 자매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 사회적 기준으로 랑슬랭 집안은 노동 조건이 괜찮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까지 하녀들의 삶이라는 건 비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집주인들이 하인들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봉급을 안 주고 노동력만 갈취하는 일은 너무 흔했고 [6], 젊은 하녀들에게 남주인들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런 시대상에 비추어 보면 랑슬랭 집안은 하녀들에게 적절한 봉급을 챙겨주고 숙식을 제공했으며, 랑슬랭 부인 외에는 하녀에게 특별히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최악의 직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랑슬랭 부인은 크리스틴과 레아를 함께 고용했을 뿐만 아니라[7], 두 사람이 어머니에게 봉급을 갈취당한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고는 직접 어머니편에 전화를 걸어 '이제부터 댁에게 돈이 갈 일은 없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이에 감동 받은 자매가 친모는 '그 여자'라고 호칭하고 랑슬랭 부인을 남 몰래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였다.
랑슬랭 부인이 크리스틴과 레아를 육체적/정신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우울증에 걸린 이후다. 이 때부턴 별의별 트집을 잡아 하녀들을 괴롭혔고, 살인 당일도 다리미가 작동을 안 한다는 이유로 자매를 폭행한 사실이 있다. 그러나 크리스틴과 레아는 봉급을 저축해둔 상태였으므로 랑슬랭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 처지는 아니었고, 학대를 못 버티겠다 싶으면 다른 집에서 일자리를 찾을 자유도 있었다.
앞서 말한 상황과 자백 내용을 감안하면 범행 이유가 다소 합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대 여론은 크리스틴과 레아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을거라 추측했다. 자매의 변호사 역시 같은 주장을 펼쳤다. 결국 재판부는 자매를 관찰한 끝에 공유성 편집 장애(shared paranoid disorder)를 앓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두 사람이 일종의 망상을 공유하면서 인격 장애를 앓게 되었다는 뜻이다.
4. 재판
재판 끝에 언니 크리스틴은 사형, 동생 레아는 10년 형을 받았다. 법원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동생이 지배적인 성향을 띤 언니에게 이끌려 살인에 가담한 것으로 판단하여, 크리스틴에게만 극형을 선고했다.훗날 대통령이 사면령을 내려 크리스틴의 형은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자매는 각각 다른 교도소로 수용되었는데, 크리스틴은 정신적으로 불안해져 식음을 전폐하고 1937년에 사망하였지만 레아는 모범수로서 8년형을 살고 출소했다. 이후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 마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으며, 르망 밖에서 하녀 일을 하다가 1984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레아 파팽이 2001년 90세가 될 때까지 살았다는 소문도 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영화 프로듀서가 파팽 자매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다니던 도중, 본인이 레아라고 주장한 적이 있는 노인을 요양원에서 만났다고 한다. 당시 그 노인은 뇌졸중으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노인의 옆얼굴 실루엣과 귀의 모습은 젊은 시절 레아의 생김새와 유사했다.
5. 창작물
프랑스의 인문사회학자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사건 중에 파팽 자매 살인사건이 있거든요. 하녀인 자매가 고용주인 부인과 그 딸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인데요.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 같은 경우도 그 사건을 현대화한 느낌이 있죠. 그 사건의 경우는 시놉시스 단계에서 참고 자료로 본 기억이 납니다.
- 봉준호 감독, 기생충 각본집 중
- 봉준호 감독, 기생충 각본집 중
사건 자체가 워낙 끔찍하고, 당시 프랑스 사회를 뒤집어놓았으며 사회학자들에게 많은 연구가 되었던 사건이라 이후 많은 예술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특히 프랑스 문학/영화 쪽에서 계급 주제를 다룰 때 상당히 인기있는 모티브기도 하다. 공식적으로 영향력을 언급하거나 극화한 작품만 해도 장 주네의 <하녀들>,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 봉준호의 <기생충>, 낸시 매클러의 <시스터 마이 시스터>, 장피에르 드니의 <살인의 상처>가 있다.
위에서 말했듯 피해자 가족은 평소 자매에게 친절하진 않았다. 부인은 하녀들에게 말도 하기 싫다는 듯 서면으로 지시할 때가 잦았으며, 부인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아예 하녀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이 살인을 가혹한 노동자 착취의 결과로 보았고, 보부아르 등 지식인들은 이 사건의 궁극적인 피해자는 파팽 자매라는 주장을 했다. 이후로 이 사건은 부르주아에 대한 하층민의 항거로도 조명되었다.
당시 재판에 참여한 사람들은 크리스틴-레아의 관계가 그저 자매 간 상호의존성이 크다고 보았는데, 어쩐지 이후 재생산된 학술 연구서나 희곡, 영화는 죄다 자매의 근친상간을 주요 소재로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두 사람의 근친상간 관계에 주목했던 자크 라캉의 영향이 큰듯.
6. 기타
2020년 11월 22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942화에서 소개되었다.[1] 살해당한 차녀 준비에브 랑슬랭의 남편이 아니라 장녀의 남편이라고 한다. 이 장녀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2] papin sisters case 로 구글링하거나 해당 주제의 위키백과 프랑스어판을 찾아보면 두 사람의 시체 사진이 뜬다. 사진이 작고 저화질에 흑백이라 보기 힘든 수준은 아니지만 검색시 유의할 것.[3] 방직 노동자이며 알콜 중독자였다.[4] 표면적인 이유는 이것이지만 이미 부부는 예전부터 사이가 나빴다. 귀스타브는 결혼 전부터 계속 클레망스가 바람을 피우고 있지 않나 의심해왔으며, 에밀리아가 친딸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5] 크리스틴은 처음엔 자기가 부인에게 달려든 걸로 착각했다고 한다.[6] 보통 다락을 하녀 방으로 주는 케이스가 많았는데 당연히 거주 환경은 열악했다. 지금도 프랑스 아파트의 하녀방은 한국의 옥탑방처럼 싼맛에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7] 부인은 크리스틴을 먼저 채용했다가, 일 솜씨를 만족스러워하여 여동생 레아까지 불러들였다.